복수의 채찍, 부러지는 가열의 철편
서산령 흑철 광산 경비실 내부, 중앙 무기고로 향하는 진입 회랑은 좁고 습했다. 사방의 석벽에서는 눅눅한 지하수가 배어 나왔고, 바닥에 깔린 석판 틈새마다 매캐한 탄가루와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쩔렁, 쩔렁.
강태벽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먹에 감긴 흑철 쇠사슬이 무거운 마찰음을 냈다. 최영민의 피로 물든 사슬은 거무죽죽하게 변색되어 기괴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태벽아, 저놈이다……!”
뒤를 따르던 칠성이 거구의 몸을 낮추며 흑철 곡괭이를 고쳐 잡았다. 그의 우람한 팔뚝이 긴장으로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회랑 안쪽의 어둠을 가르고 나타난 사내, 경비대장 가열은 이글거리는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가시 돋친 붉은 쇠채찍이 뱀처럼 바닥을 쓸며 기분 나쁜 쇳소리를 냈다. 가열의 뒤편으로는 철제 갑옷으로 무장한 정예 사병 삼십여 명이 장검과 창을 비껴든 채 통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단전이 깨진 폐물 놈이 쥐새끼들을 충동질해 폭동을 일으키다니. 최영민 도련님을 해친 죄, 네놈의 사지를 찢어 혈골동에 처박아도 모자라다!”
가열의 목소리에 서린 살기가 회랑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차갑게 내려앉았다. 가열은 삼류 극성의 내공을 보유한 무인으로, 그의 붉은 쇠채찍에는 이미 이글거리는 붉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벽력편법(霹靂鞭法)의 내력이 채찍 끝을 따라 요동칠 때마다 좁은 통로의 공기가 팽팽하게 팽창했다.
태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가열을 바라볼 뿐이었다.
태벽의 오른쪽 허벅지에서는 사병의 창에 찔린 자상에서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려 누더기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습한 지하 공기 탓에 한철천에서 몸을 담갔을 때 얻은 만성 관절통 후유증이 도져 뼈마디가 바늘로 찌르는 듯 쑤셔왔다. 화려한 신법이나 가벼운 회피는 애초에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태벽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뇌로 가는 모든 고통을 분노의 의지로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무통식(無痛式)을 전개했다.
단골 초기(斷骨 初期)의 경지.
스스로 뼈를 부러뜨리고 철골고를 발라가며 완성한 무쇠 골격이 그의 피부 아래에서 단단하게 맞물렸다. 내공은 단 한 모금도 쓸 수 없었지만, 대지를 딛고 선 그의 다리뼈는 그 어떤 무쇠 기둥보다도 견고했다.
“가열.”
태벽의 갈라진 목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회랑을 울렸다.
“내 등에 새겨진 이 채찍 흉터의 주인이 바로 너였지. 오늘, 그 채찍과 함께 네놈의 손목뼈를 부러뜨려 주마.”
“오만한 놈! 죽어라!”
가열이 참지 못하고 오른팔을 휘둘렀다.
쉬이이익——!
가시 돋친 붉은 쇠채찍이 파멸적인 파공음을 내뿜으며 태벽의 안면을 향해 사납게 날아왔다. 채찍 끝에 실린 삼류 극성의 내공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좁은 회랑의 벽면을 긁었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눈을 가렸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고개를 숙이거나 뒤로 물러서며 회피를 시도했을 터였다. 하지만 다리의 부상과 관절통으로 기동력이 저하된 태벽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태벽은 왼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안면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전신의 관절과 뼈마디를 순간적으로 잠가 외부의 충격을 상쇄하는 외가 방어 심법, 폐골결(閉骨結)을 발동했다.
우드득, 우두득!
태벽의 팔뚝 피부 아래에서 뼈들이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맞물리는 기괴한 마찰음이 울렸다. 그의 요골과 척골이 비정상적으로 밀착하며 하나의 거대한 강철 방패처럼 고정되었다.
퍼어억——!
가열의 붉은 쇠채찍이 태벽의 왼팔뚝을 정확히 직격했다. 채찍에 박힌 날카로운 쇠가시들이 태벽의 살가죽을 찢어발기며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깡——!
가죽이 찢어지는 파열음 뒤로, 무쇠와 무쇠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둔탁한 금속성이 회랑을 가득 메웠다. 가열의 채찍 끝에 달린 가시들이 태벽의 팔뚝 뼈를 뚫지 못하고 찌그러지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무, 무엇이……!”
가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자신의 전력을 다한 벽력편법의 일격이었다. 내공을 실어 휘두른 쇠채찍에 정면으로 맞았다면, 팔뼈가 산산조각 나며 사지가 분리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노예 놈은 뼈가 부러지기는커녕,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태벽의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검붉은 빛을 발산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살가죽이 찢겨 뼈가 드러난 팔뚝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태벽의 얼굴에는 고통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무통식 상태의 그에게 피부의 자창은 그저 차가운 감각에 불과했다.
“내 뼈는…… 네놈의 그깟 쇠사슬 채찍보다 단단하다.”
태벽이 차갑게 읊조리며 오른손을 뻗었다.
가열이 당황하여 채찍을 회수하려 채찍 자루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삼류 극성의 내력을 폭발시켜 채찍의 가시를 태벽의 살 속에서 회전시키며 뜯어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태벽의 반응이 한 발 더 빨랐다.
태벽은 주먹에 감긴 흑철 쇠사슬을 휘감아 가열의 붉은 채찍 궤적을 얽어맸다. 사슬과 채찍이 서로 엉키며 쩔렁이는 금속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태벽은 찢어진 왼손바닥의 아귀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바위조차 으스러뜨리는 아귀힘의 기예, 철포악(鐵砲握)이었다.
카가강!
태벽은 채찍을 움켜쥔 채 오른팔을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놈이……!”
가열은 채찍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내공을 발 안쪽으로 모으며 대지를 딛고 버텼다. 하지만 단전이 파괴되어 기운을 쓰지 못하는 태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리적인 완력은 가열의 상상을 초월했다. 하루 16시간 동안 무거운 흑철 바구니를 지탱하며 야수골의 기틀을 다진 육체였다.
태벽이 쇠사슬을 감은 팔에 단골경(斷骨勁)의 탄성을 실어 거칠게 당기자, 가열의 장대한 거구가 중심을 잃고 태벽의 방향으로 사정없이 끌려왔다.
“대장님!”
뒤에 서 있던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창을 내뻗으려 했으나, 좁은 회랑의 지형 탓에 진형이 엉켜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가열이 태벽의 품 안으로 강제로 끌려오는 찰나, 태벽은 왼발을 앞으로 강하게 디뎠다. 허벅지의 자상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리뼈의 지지력을 바탕으로 어깨와 팔꿈치 관절을 유기적으로 회전시키며 힘을 극대화했다.
태벽의 오른주먹이 가열의 가슴팍을 향해 직선으로 내뻗어졌다.
“철기타(鐵器打)!”
쇠사슬이 칭칭 감긴 무거운 주먹이 가열이 착용한 무쇠 가죽 갑옷의 흉갑 중앙을 정확히 강타했다.
콰아아앙——!
뇌성을 연상케 하는 폭음이 좁은 경비실 회랑 전체를 뒤흔들었다.
태벽의 주먹에 실린 압도적인 물리적 질량이 가열의 흉갑을 정면으로 타격하는 순간, 단단하던 무쇠 흉갑의 중앙이 쩍 갈라지며 형체도 없이 찌그러졌다. 흉갑의 파편이 가열의 가슴 가죽을 찢고 들어갔고, 그 뒤를 이어 뼈마디의 탄성을 폭발시키는 단골경의 충격파가 가열의 흉곽 내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우드득! 콰직!
가열의 갈비뼈와 가슴뼈가 통째로 바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이 회랑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가열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붉은 쇠채찍은 태벽의 쇠사슬에 얽힌 채 중간 마디마디가 물리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쩌적 소리와 함께 완전히 부러져 나갔다. 가시 돋친 붉은 채찍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석판 바닥에 뒹굴었다.
쿵! 콰당탕!
가열의 거구가 회랑 뒤편의 목조 책상들을 박살 내며 처참하게 처박혔다. 그의 입에서는 검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고, 함몰된 가슴팍은 기이한 각도로 내려앉아 있었다. 가열은 무기를 잃은 채, 부러진 흉곽을 움켜쥐고 극도의 공포에 질린 눈으로 태벽을 바라보았다.
“괴, 괴물…… 단전도 없는 노예 놈의 주먹이…… 어떻게 가문의 쇠갑옷을……”
가열은 말을 잇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혼절했다. 그의 주무기인 붉은 쇠채찍은 이제 태벽의 손목에 엉망으로 엉킨 고철 조각에 불과했다.
“대장님이 쓰러지셨다!”
“물러서라! 이놈은 인간이 아니다!”
정예 사병들은 자신들의 수장이 단 한 방의 주먹에 가슴뼈가 함몰되어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극도의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쓰러진 가열의 몸을 황급히 들쳐 메고 무기고 안쪽의 깊은 통로를 향해 허겁지겁 후퇴하기 시작했다.
“태벽아! 저 쥐새끼들을 추격하자! 무기고의 문이 바로 저 앞이다!”
칠성이 곡괭이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노예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
태벽 역시 가열의 잔당들을 쫓아 무기고를 완벽히 장악하려 오른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전신 골격에서 찌릿한 마찰열과 함께 숨이 턱 막히는 격통이 일었다. 무리하게 단골경과 폐골결을 연쇄적으로 구사한 여파로, 조각났던 다리뼈와 허벅지의 자상 부위가 한계를 경고하고 있었다. 태벽은 쇠사슬을 감은 주먹으로 무릎을 짚으며 일시적으로 신형을 멈췄다.
바로 그 찰나였다.
쿠우우우웅——!
경비실 외부, 광산의 심장부인 흑철 주조소 방향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이 회랑 전체를 타고 전해졌다. 석벽이 요동치며 천장에서 굵은 돌가루와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이 무슨 소리냐? 지진이냐?”
칠성이 깜짝 놀라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벽은 고개를 돌려 주조소 방향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회랑 입구 너머, 붉은 용광로의 열기가 흐르던 주조소 구역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피어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낙석 사고가 아니었다. 화약이 터진 듯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노예들의 비명 소리가 대지를 타고 메아리치고 있었다.
주조소에는 스승 철무진과 노예 대장장이 용이, 그리고 무기를 제련하던 철골동맹의 핵심 동료들이 머물고 있었다.
가열의 무기를 부러뜨리고 승기를 잡은 순간, 주조소 방향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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