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밑바닥, 서산령 흑철 광산
쇠사슬이 대지를 긁는 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둔탁했다. 철컹, 철컹. 쇠와 돌이 부딪칠 때마다 튀는 녹슨 철비린내가 콧등을 찔렀다.
서산령(西山嶺) 흑철 광산. 이곳은 해가 뜨지 않는 지옥의 밑바닥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암벽은 온통 검은 석탄가루와 쳇가루로 뒤덮여 있었고, 갱도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 연기는 숨을 쉴 때마다 허파를 따갑게 긁어댔다. 내공을 부리지 못하는 범인(凡人)들이 평생 철광석을 캐다 짐승처럼 죽어 나가는 곳. 그곳이 바로 강태벽이 버려진 새로운 세상이었다.
태벽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건조했다. 그의 등가죽은 이미 채찍에 맞아 진물이 흐르고 있었고, 열여덟 소년의 마른 몸은 광산의 가혹한 노역으로 인해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 선명하게 새겨진 ‘노(奴)’ 자 낙인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깊은 굴욕의 낙인이었다.
‘청엽검종…… 강씨 세가.’
태벽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불길을 억눌렀다. 그는 가문의 서자였다. 명문 정파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태어날 때부터 단전(丹田)이 파괴되어 한 모금의 내공도 쌓을 수 없는 기형적인 체질이었다. 가문에게 그는 존재 자체가 수치였다. 친부이자 청엽검종의 가주인 강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태벽의 단전을 완전히 폐기하라는 명을 내렸고, 가문의 하급 집사 강철웅은 태벽의 목에 개줄을 채워 이곳 서산령의 광산주 최현도에게 노예 대금 몇 푼을 받고 팔아넘겼다.
단전이 없는 무인은 쓰레기다. 그것이 무림의 철칙이었고, 태벽이 평생토록 들어온 저주였다.
“어이, 청엽검종의 고귀하신 도련님이었던 놈아. 왜 멍하니 서 있지?”
음산하고 비열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태벽이 고개를 돌리자,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비죽 웃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서산령 광산의 행동대장급 간수, 마두식이었다. 그는 검은 때가 찌든 가죽 옷을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가시가 돋친 굵은 가죽 채찍을 쥐고 있었다.
마두식은 태벽의 앙상한 몰골을 보며 침을 퉤 뱉었다.
“가문에서 아주 쓰레기 처리를 확실하게 했더군. 단전이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서 내공 한 줌도 못 쓰는 놈을 우리 광산에 던져놓다니. 최현도 나리께서 청엽검종에 바친 은자가 아까울 지경이다!”
마두식의 비아냥거림에 주변의 간수들이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태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흙먼지가 날리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쥘 뿐이었다. 그의 주먹은 뼈마디가 하얗게 바래 있었다.
“이 무식한 노예 놈이 눈빛만 살아있군. 어서 저 흑철 원석 바구니를 짊어져라! 오늘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네놈의 등가죽을 완전히 벗겨내 갈고리에 걸어둘 테니!”
마두식이 가리킨 곳에는 성인 장정 두 명이 겨우 들 수 있을 법한 거대한 무쇠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시퍼런 빛을 띠는 무겁고 단단한 흑철 원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공의 도움 없이 순수한 인체의 힘만으로 저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태벽은 천천히 걸어가 무쇠 바구니의 밧줄을 어깨에 걸었다. 밧줄이 어깨뼈를 짓누르는 순간,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쇄골이 내려앉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허리가 기이한 각도로 꺾였고, 무릎이 사정없이 떨렸다. 단전이 파괴된 여파로 몸의 중심을 잡아줄 기운이 전혀 없었기에, 무게의 균형이 단숨에 무너졌다.
쿵!
태벽은 바구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거친 돌바닥 위로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바구니에 담겨 있던 흑철 원석들이 사방으로 쏟아졌고, 날카로운 돌날이 그의 뺨을 긁어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하하! 꼴 좋구나! 검종의 핏줄이라는 놈이 흙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꼴이라니!”
마두식이 광소하며 가죽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휙! 쫙!
공기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매서운 채찍날이 태벽의 등을 강타했다. 내공의 보호막인 호신강기가 전혀 없는 태벽의 육체는 채찍이 닿는 대로 정직하게 찢겨나갔다. 살가죽이 터지고, 붉은 선혈이 검은 석탄가루 위로 점점이 흩뿌려졌다. 뼈를 때리는 듯한 극심한 격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직격했다.
“으윽!”
태벽은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터져 비린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는 순간, 자신이 저 자들에게 완전히 굴복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라? 이놈 봐라? 신음 소리 한번 안 내네? 어디 끝까지 버텨보시지!”
마두식의 눈에 독기가 올랐다. 채찍이 사정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쫙! 쫙! 채찍이 등가죽을 때릴 때마다 살점이 튀고 뼈가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가혹한 매질이 이어졌다. 태벽은 바닥을 움켜쥐며 버텼다. 그의 손톱이 부러져 손끝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의 눈빛만은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아픔을 느끼는 와중에도 마두식의 움직임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마두식의 어깨가 들리는 각도, 채찍을 휘두르기 전 발끝이 미세하게 돌아가는 방향, 호흡이 가빠지는 타이밍. 내공이 없는 태벽이 살아남아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적의 모든 습관을 뼈에 새기듯 기억해야만 했다. 지금 힘으로 부딪치면 개죽음뿐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독종 같은 놈! 아직도 눈을 부릅뜨고 있구나!”
마두식은 태벽의 꺾이지 않는 안광에 기괴한 공포감을 느꼈다. 그는 채찍을 거두고 주변의 간수들에게 턱짓을 했다.
“이놈의 발목에 흑철 쇠사슬을 채워라! 영원히 이 광산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장 무겁고 거친 놈으로!”
간수들이 둔탁한 무쇠 족쇄와 녹슨 흑철 쇠사슬을 가져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태벽의 양쪽 발목에 차가운 족쇄가 단단히 채워졌다. 쇠사슬의 무게만 해도 수십 근에 달했다. 발목의 살가죽이 무쇠에 쓸려 순식간에 짓무르고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마두식은 태벽의 가슴팍을 가죽 장화로 짓밟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네놈은 평생 이 사슬에 묶여 흑철을 캐는 가축이다. 가문에서도 버린 쓰레기가 감히 무인인 나를 노려봐? 평생 기어 다녀라, 이 벌레 같은 놈아!”
마두식이 발에 힘을 주어 태벽의 갈비뼈를 압박했다. 짓눌린 가슴에서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태벽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바닥의 흙을 쥐어짜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두 다리가 쇠사슬의 무게로 인해 사정없이 떨렸지만, 그는 억지로 무릎을 펴고 대지를 딛고 일어섰다.
우드득,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발목의 족쇄가 뼈를 깎아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으나, 태벽은 기어이 두 발로 우뚝 서서 마두식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짓밟힐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무쇠와 같았다.
마두식은 순간 태벽의 눈빛에서 풍기는 기괴한 기세에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공도 없는 짐승 같은 노예 놈의 눈빛이 어째서 이토록 서늘하단 말인가. 마두식은 침을 뱉으며 채찍을 허리에 찼다.
“더러운 서자 놈의 기개는 여전하군. 어서 노역장으로 꺼져라! 내일 아침까지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땐 정말 죽음뿐이다!”
간수들이 비틀거리는 태벽을 거칠게 밀쳐냈다. 태벽은 무거운 흑철 쇠사슬을 끌며 어둡고 축축한 광산 한구석, 대장간의 열기가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움막 모퉁이로 걸어갔다. 온몸이 피와 석탄가루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그는 쓰러지듯 낡은 가마적때기 위에 누웠다. 등 뒤의 상처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전율하는 통증이 밀려왔다. 단전은 텅 비어 있었고, 육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복수를 하고 싶어도, 자신을 버린 가문의 명검들을 부러뜨리고 싶어도 힘이 없었다.
그때였다.
대장간의 붉은 화로 불꽃이 어스름하게 비치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쇠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양눈이 멀어 기괴한 흉터로 가득 차 있었고, 머리는 불꽃에 그을린 백발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체는 웬만한 거인보다 더 장대했고, 특히 쇠를 두드리는 그의 양손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고 단단해 보였다. 서산령 광산의 장님 대장장이, 철무진(鐵武진)이었다.
철무진은 눈이 보이지 않는 듯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다가오더니, 태벽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거칠고 뜨거운 손을 뻗어 태벽의 어깨와 쇄골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윽!”
태벽이 신음을 흘렸으나, 철무진의 손아귀 힘은 마치 거대한 무쇠 집게처럼 태벽의 전신 골격을 압박해 들어왔다. 노인의 손가락이 태벽의 으스러진 쇄골과 척추, 그리고 갈비뼈마디를 하나하나 정밀하게 짚어가며 만지기 시작했다.
철무진의 눈먼 얼굴에 기이한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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