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그림자 장포
우르릉! 쿠구구구구!
제3채굴장의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집채만 한 한철 암반들이 굉음을 지르며 쏟아졌고, 자욱한 흑철 먼지가 사방을 집어삼켰다. 숨을 쉴 때마다 칼날 같은 돌가루가 허파를 찔러왔다. 산소는 빠르게 고갈되어 갔고, 출구는 이미 거대한 돌더미에 막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진은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는 깊은 골절상을 입어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오른손 목은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갈비뼈의 미세 골절은 숨을 쉴 때마다 칼로 가슴을 비비는 듯한 극통을 선사했다. 전신이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무희를 두고……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어.’
무진의 오른쪽 눈동자가 정안(靜眼)의 영향으로 붉게 충혈된 채 어둠 속을 헤맸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반으로 갈라진 한철가면(寒鐵假面)에 닿았다. 가면을 버려두고 나간다면, 설령 이 동굴을 빠져나간다 해도 대역 무사로서의 신분이 노출되어 즉사할 터였다. 살기 위해서는 이 지옥의 족쇄를 다시 얼굴에 채워야만 했다.
무진은 떨리는 왼손을 뻗어 차가운 무쇠 가면 조각들을 움켜쥐었다. 뺨과 이마에 가득한 상처 위로 다시 가면을 밀착시키는 감각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찢어진 생살 위로 무쇠의 서늘한 감각이 닿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철컥.
가면 귀밑의 비밀 홈에 강태성의 시체에서 빼앗은 한철 열쇠를 꽂아 넣었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한 끝에 겨우 열쇠가 맞물렸다. 무진은 이를 악물고 열쇠를 왼쪽으로 세 번 돌렸다.
지리리릭, 철컥!
가면 내부의 미세한 태엽 장치가 역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가며, 후퇴했던 가시 침들이 다시 맹렬하게 전진했다.
푸욱! 푹!
“크으으으윽……!”
철가면 안쪽에서 쇠가시들이 무진의 안면 뼈대와 찢어진 뺨의 생살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갔다. 고통으로 인해 뇌리가 하얗게 타버릴 것 같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한 극통이 혼절해가던 무진의 정신을 벼락처럼 깨웠다. 가면 틈새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내렸다. 무진은 가면을 다시 고정하자마자 축골술(縮骨術)을 시전했다.
우두둑, 우드득!
관절의 뼈마디를 인위적으로 축소하는 기괴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부러진 오른쪽 어깨와 갈비뼈가 제멋대로 뒤틀리며 가해지는 통증에 무진은 눈물을 흘렸지만, 비명은 철저히 가면 안쪽으로 삼켰다. 신장을 삼 척 이상 줄인 무진은 묵영보(墨影步)의 구결에 따라 발소리와 바람 소리를 완전히 지운 채, 지하 수중 터널로 이어지는 바위 틈새의 비좁은 개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지하 폐수가 전신을 덮쳐왔다. 상처 입은 몸으로 물길을 헤엄쳐 나가는 매 순간이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이었지만, 무진은 오직 살겠다는 집념 하나로 어둠을 뚫고 나아갔다.
***
어마어마한 한기와 함께 정신이 깨어났다.
무진이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철골굴의 퀴퀴한 흙바닥이 아니었다. 천장에는 화려한 자색 비단이 드리워져 있었고, 은은한 침향이 코끝을 스쳤다. 몸을 덮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호랑이 가죽 담요였다.
이곳은 흑풍마교의 가장 화려하고 차가운 전각, 소교주 설하진의 처소인 ‘천마각(天마閣)’이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소교주님.”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침전의 침묵을 깨뜨렸다.
무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상 옆 어둠 속에 칠척 장신의 사내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 그리고 항상 등 뒤에 비스듬히 메고 다니는 무거운 보검 ‘묵풍검’. 소교주의 직속 호위무사이자 차가운 검객, 위강(魏剛)이었다.
무진은 자신이 금사로 정교하게 수놓인 흑색 장포를 입고 있으며,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척 연기하기 위해 목제 휠체어에 앉혀져 있음을 깨달았다. 오른쪽 어깨와 손목은 비단 붕대로 단단히 고정되어 장포 속에 숨겨져 있었다. 강태성의 죽음이 완벽한 자살로 위장되었고, 대역 무사 선발이 최종 확정되어 자신이 이 화려한 감옥으로 이송된 것이 분명했다.
위강의 날카로운 눈빛이 무진의 다리를 덮은 호랑이 가죽 담요를 집요하게 훑었다. 위강은 과거 설하진의 잔혹함과 변덕스러운 성정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에, 눈앞의 소교주가 보여주는 기묘한 침묵에 본능적인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진은 가면 안쪽에서 침을 삼켰다. 성대의 근육을 극도로 조여 소교주 설하진 특유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하이톤 목소리를 가장하는 변성술(變聲術)을 시전해야 했다.
“……무엇을 그리 쳐다보는 것이냐, 위강.”
갈라진 목소리가 철가면의 울림판을 타고 흘러나왔다. 목구멍의 미세 근육을 과도하게 조이자 후두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찾아왔고, 입안으로 비릿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무진은 소교주 특유의 오만한 눈빛을 유지하며 위강을 쏘아보았다.
“소교주님의 다리 상태가 염려되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위강이 묵묵히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예리한 안광은 여전히 무진의 어깨와 손목의 붕대 자국을 향해 있었다.
이때 침전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늙은 집사 곽 집사(郭 執事)가 은반지에 찻잔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곽 집사는 천마각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보며 장로회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영민한 인물이었다.
“소교주님,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의원들이 처방한 따뜻한 차를 가져왔습니다.”
곽 집사가 다가와 찻잔을 무진의 왼손 근처에 내려놓았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미세한 열기가 무진의 얼굴을 스쳤다. 무진은 정안을 가동해 곽 집사의 눈동자 움직임과 그의 미세한 발걸음 무게중심을 살폈다. 곽 집사의 시선 역시 무진이 다리를 정말로 움직이지 못하는지, 손목의 맥박이 소교주의 진짜 맥박과 일치하는지를 탐색하듯 기웃거리고 있었다.
무진은 여기서 조금이라도 나약하거나 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즉시 가짜임이 탄로 날 것임을 직감했다. 진짜 설하진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가축 이하로 취급하는 오만하고 잔혹한 혈통주의자였다. 기선제압이 필요했다.
탁!
무진은 왼손을 뻗어 곽 집사가 가져온 찻잔을 사정없이 쳐서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콰당!
뜨거운 찻물이 화려한 비단 카펫 위로 쏟아지며 찻잔이 산산조각 났다. 갑작스러운 파열음에 곽 집사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위강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등 뒤의 묵풍검 자루를 향해 움직였다가 멈췄다.
“이깟 미지근한 오물 따위를 차라고 내오는 것이냐!”
무진이 변성술을 극도로 끌어올려 신경질적인 독설을 내뱉었다.
“내 다리가 조금 불편해졌다고 해서 이 천마각의 종놈들까지 나를 무시하는 모양이군! 곽 집사, 네놈의 목을 베어 연못의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철가면의 좁은 눈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무진의 야수 같은 살기에 곽 집사는 급히 무릎을 꿇었다.
“소, 소교주님! 죽여주옵소서! 노재의 불찰이옵니다!”
곽 집사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지만, 무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흑단목 휠체어(黑檀木 輪椅)의 바퀴를 왼손으로 강하게 밀어 곽 집사의 머리맡까지 다가갔다. 휠체어의 묵직한 바퀴가 곽 집사의 손가락 바로 옆을 스치며 거친 소리를 냈다.
“위강.”
무진이 차갑게 위강을 불렀다.
“저 늙은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라. 내 차 온도를 맞추지 못한 대가다.”
침전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위강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무진을 응시했다. 진짜 설하진이라면 당장 칼을 휘둘렀을 터였으나, 위강은 무진의 이성적인 안광 뒤에 숨겨진 기묘한 위화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위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곽 집사는 교주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천마각의 가신입니다. 사소한 불찰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교주님의 권위에 누를 끼칠 수 있습니다.”
위강이 무진의 손목에 손을 대어 그의 정통 맥박을 직접 확인하려는 듯,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손끝에 실린 가느다란 일류(一流) 무사의 내력이 무진의 피부를 향해 뻗어왔다.
오른손 목 인대가 파열되고 단전의 기혈이 뒤틀린 무진으로서는 위강이 손을 대는 순간 가짜 신분과 내상 상태가 완벽하게 노출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무진은 휠체어 등받이에 은밀히 장착된 스프링 압축식 묵철 방패의 기믹 버튼을 왼손가락 끝으로 미세하게 누르며 거리 유지를 시도했다.
“감히 내 명령에 토를 다는 것이냐, 위강!”
무진이 휠체어 바퀴를 급격히 뒤로 빼며 위강의 손길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네놈이 내 호위무사인지, 장로들이 보낸 감시자인지 헷갈리는구나.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을 대려 한다면, 네놈이 아끼는 그 검을 부러뜨려 목구멍에 쑤셔 넣어주마!”
무진의 가차 없는 독설과 기선제압에 위강은 결국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곽 집사 역시 사르르 떨며 바닥의 깨진 찻잔 조각들을 다급히 치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면 기만극은 무진의 철저한 오만 연기 덕분에 임시방편으로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무진이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침전의 거대한 활엽목 문이 거칠게 열려젖혀졌다.
쿵!
문가에 들이닥친 것은 둘째 장로 독고염(獨孤炎)의 직속 밀정이자 최측근 전령이었다. 전령은 휠체어에 앉은 무진을 향해 고압적인 태도로 서찰을 치켜들며 외쳤다.
“장로회의 군령입니다! 소교주 설하진의 건강 회복과 단전의 기혈 상태를 검증하기 위해, 장로회에서 파견한 의원단이 지금 즉시 소교주님의 단전을 직접 검사할 것입니다!”
천마각의 문이 활짝 열리며, 은침 통을 든 의원들이 삼엄한 기세를 풍기며 침전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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