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터널의 질식살
백무의 역회전된 단도가 기둥 모서리를 깎아내며 무진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서슬 퍼런 은빛 궤적이 무진의 정안(靜眼)에 포착되었다. 극도로 고요해진 시야 속에서 단도의 회전 반경과 바람을 가르는 미세한 진동이 찰나의 선들로 분할되어 뇌리에 박혔다. 백무는 왼손잡이였고, 역회전으로 베어 오는 힘의 중심은 그의 왼쪽 어깨에 쏠려 있었다. 그것은 그의 오른쪽 사선 방향이 완벽히 무방비 상태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회피할 공간이 너무나도 협소했다. 기둥과 벽 사이에 낀 무진의 신형은 꼼짝없이 단도에 꿰뚫릴 판이었다. 게다가 낮에 교관 강태성의 흑풍장을 받아내며 생긴 갈비뼈의 미세 골절 부위가 숨을 쉴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여기서 정면으로 받아치면 단전의 실상이 드러난다. 놈을 조용히 인멸할 장소로 끌고 가야 한다.’
무진은 이 악물고 전신의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독고충 스승이 전수했던 축골술(縮骨術)의 기초를 가동했다.
우두둑, 드드득!
기괴한 뼈마디의 어긋남과 함께 무진의 상체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며 뒤로 누웠다. 갈비뼈의 골절 부위가 비명을 질렀지만, 철가면 뒤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빛날 뿐이었다.
쉬이이익! 캉!
백무의 단도가 무진의 코끝을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가며, 단단한 한철가면(寒鐵假面)의 턱밑을 긁었다. 찌르르한 불꽃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기둥의 석재 파편이 무진의 뺨을 때렸으나, 무진은 이미 묵영신법(墨影身法)을 밟고 있었다.
발바닥의 용천혈에 미미한 음기 진기를 집중시켜 지면과의 마찰음을 지운 무진은, 백무가 자세를 바로잡기 전 그의 오른쪽 사각지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처소의 깨진 틈새를 통해 철골굴 지하의 가장 깊고 음산한 수중 터널 구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이놈이……! 삼류 노비 놈이 기어코 마공을 숨기고 있었구나!”
베개를 찌르고 속았을 때보다 더 큰 경악이 백무의 얼굴에 스쳤다. 노비 쇠돌이가 보여준 기괴한 신체 변형과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신법은 도저히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백무는 단도를 고쳐 쥐고 분노 어린 살기를 뿜어내며 무진의 뒤를 맹렬히 추격했다.
지하 터널의 공기는 갈수록 습해졌고, 광산의 폐수와 핏물이 섞인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곳은 철골굴 제3채굴장 아래에 위치한 수중 터널로, 한 번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고 익사하기 십상인 죽음의 구역이었다.
무진은 주저 없이 흙빛의 차가운 지하 수면 위로 몸을 던졌다.
풍덩!
얼음처럼 차가운 물의 한기가 한철가면의 이음새를 타고 들어와 안면 피부를 바늘로 찌르듯 옥죄었다. 무진은 허파가 터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잠수했다. 물속은 기척을 숨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지만, 동시에 움직임이 제약되는 지옥이기도 했다.
‘여기서 끝장을 낸다.’
무진은 물속에서 전신의 관절을 다시 한번 비틀었다. 축골술의 시전이었다. 수압이 뼈마디를 누르는 상황에서의 축골술은 육지에서의 수련보다 수십 배는 더한 작열통을 동반했다. 척추와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무진은 자신의 신장을 삼 척 이상 줄이고 어깨를 좁혀 바위 틈새의 겨우 사람 머리 하나 들어갈 법한 어두운 구멍 속으로 소리 없이 기어 들어갔다.
곧이어 수면을 가르며 백무가 물속으로 침투했다.
이류 초입(二流 初入)의 무공을 지닌 교관답게, 백무는 물속에서도 침착하게 단전에 모인 진기를 사방으로 뻗치며 무진의 흔적을 수색했다. 비록 묵영보로 발소리는 지웠을지언정, 무진의 허벅지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핏자국이 수중에서 붉은 아지랑이를 그리며 백무의 시야에 포착된 탓이었다.
백무의 눈동자에 잔인한 독기가 서렸다. 그는 무진이 바위 틈새에 숨어 있음을 직감하고, 왼손의 단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파아앗! 콰르릉!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백무의 단도 끝에서 날카로운 수중 검기(水中 劍氣)가 뿜어져 나왔다. 칼날 같은 물결이 수중 터널 내부의 암반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무진이 숨어 있던 바위 틈새 주변이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윽……!”
무진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날카로운 돌 조각들과 굴절된 검기 중 하나가 무진의 왼쪽 허벅지를 깊게 긋고 지나갔다. 지독한 고열과 함께 붉은 선혈이 차가운 지하수 속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수중 은신이 완전히 노출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하지만 무진은 정안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 시야가 온통 피색으로 물드는 와중에도, 물결의 진동과 백무의 내력 흐름을 바둑판의 행마처럼 분석했다. 백무의 패도적인 수중 검기는 물속이라는 환경적 제약 때문에 끝부분이 미세하게 굴절되고 있었다. 그 굴절되는 파동의 중심, 그곳이 바로 검기의 사각지대였다.
무진은 뼈가 에이는 통증을 무시한 채, 굴절된 파동의 틈새를 타며 유령처럼 헤엄쳐 나갔. 물결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묵영신법의 궤적이 수중에서 기묘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백무의 등 뒤로 이어졌다.
백무는 핏자국이 퍼지는 방향만을 주시하며 단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자신의 등 뒤에서 물 한 방울의 진동조차 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스스슥.
마침내 백무의 목덜미 바로 뒤에 도달한 무진의 손가락 끝이 흑철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 노비 시절 매질당한 동료들의 뼈를 맞추며 터득했던 인체 해부학의 정수, 안마술(按摩術)이었다.
무진은 주저 없이 백무의 양 어깨와 목덜미가 만나는 핵심 기혈인 폐문혈(肺門穴)과 신문혈(神門穴)을 강하게 찔러 눌렀.
푹! 푹!
“우읍……!?”
백무의 입에서 거대한 기포가 터져 나왔다. 내력을 운기하려던 그의 단전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고, 전신의 경맥이 단숨에 폐쇄되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완벽한 기혈 마비 상태. 백무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려 했으나, 몸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무진은 자비 없이 백무의 목을 뒤에서 움켜쥐고 수중 터널의 바닥을 향해 짓눌렀다. 백무의 눈동자가 공포와 경악으로 뒤집혔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멸시하던 삼류 노비의 손에 의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익사당하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에 몸부림쳤다.
꼬르륵, 뽀글.
백무의 허파에서 마지막 산소가 빠져나갔고, 이내 그의 굳센 신형이 스르륵 풀리며 완벽한 시체로 변해갔다. 무진은 백무가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목을 놓지 않았다. 전신 경맥이 마비된 상태에서 물을 들이마신 백무의 죽음은, 그 누구가 보아도 실족으로 인한 완벽한 사고사(事故死)였다.
숨이 가빠진 무진이 백무의 시체를 수중 터널 밑바닥으로 밀어내려던 찰나, 백무의 젖은 가죽 품속에서 얇은 양피지 한 장이 물결을 타고 흘러나왔다.
무진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 양피지를 낚아챘다.
양피지 모퉁이에는 마교 내부에서 오직 고위 장로들만이 사용하는 자색 인장(紫色 印章)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둘째 장로 독고염의 비밀 표식이었다. 무진이 물속에서 양피지를 소매에 깊숙이 찔러 넣는 순간, 수중 터널 지상 입구 방향에서 불길한 울림이 터널 벽을 타고 전해져 왔다.
두두두두!
그것은 사나운 야수들의 발걸음 소리이자, 철골굴 최고의 추적자인 사백(사백)이 이끄는 검은 사냥개들의 울부짖음이었다. 허벅지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가 이미 지상까지 풍겨 나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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