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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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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의 녹슨 날이 묵철 사슬을 쓸고 내려가며 일으킨 불꽃이 철사황의 백골 가면에 차갑게 튀었다. 찰나의 순간, 무진의 정안(靜眼)이 포착한 것은 철사황의 오른쪽 손목 뼈마디가 비틀리며 백골퇴의 무게중심을 잃는 0.5초의 틈이었다.


“크, 크윽……!”


철사황이 경악하며 뒤늦게 손목을 회전시키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무진의 녹슨 무명 대도는 가차 없이 그의 손목 관절 틈새를 파고들었다. 만상도골공(萬象盜骨功)으로 흡수했던 백골퇴의 파괴적인 에너지가 대도 끝에서 폭발하듯 뿜어졌다. 수라참도법(修羅斬刀法)의 살기 어린 참격이 철사황의 두꺼운 살가죽과 경맥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서걱!


“아아아악!”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며 철사황의 오른손이 백골퇴의 자루와 함께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백 근 무게의 철퇴가 연무장 돌바닥을 때리며 둔탁한 굉음을 냈다. 철사황은 잘려 나간 손목을 움켜쥐고 뒤로 비틀거리며 단상 아래로 무참히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일류 초입의 마두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남은 왼손으로 품속을 더듬었다. 그의 핏발 선 눈동자에는 지독한 동귀어진의 살기가 서려 있었다.


“이, 이 비천한 노비 버러지 놈이……! 내 혼자 죽을 것 같으냐! 네 누이년과 함께 지옥으로 가자!”


철사황이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백골문 지하 깊은 곳에서 정제한 치명적인 적사독(赤蛇毒) 항아리였다. 저 항아리가 바닥에 깨지는 순간, 지독한 가스 독기가 밀실 전체를 가득 채워 피할 길 없는 몰살을 부를 터였다.


무진의 안구가 터질 듯이 붉게 충혈되었다. 정안의 붉은 시야 속에서 철사황의 왼손가락이 항아리의 봉인을 풀려는 미세한 궤적이 포착되었다. 무진은 오른쪽 발목 관절의 균열로 인한 극통과 왼팔의 마비를 무시한 채, 오른발로 대지를 강하게 박찼다.


‘묵영신법(墨影身法).’


소리 없는 흑색 잔상이 어둠을 가르며 철사황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무진은 오른손의 찢어진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미끄러운 대도 자루를 터질 듯이 움켜쥐고, 전신의 마지막 내력을 대도 날에 집중시켰다.


스사삭!


대도가 허공을 수평으로 갈랐다. 차가운 쇠붙이가 살을 가르고 뼈를 깎아내는 서늘한 감각이 무진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툭.


철사황의 백골 가면이 반쯤 깨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그의 목이 몸뚱이와 분리되어 허공을 돌다 흙먼지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잘려 나간 손에 쥐여 있던 적사독 항아리는 봉인이 풀리지 않은 채 철사황의 몸뚱이 아래로 깔려 침묵했다. 백골문의 문주이자 장로회의 충직한 사냥개였던 철사황의 비참한 종막이었다.


“하아…… 하아……”


무진은 무명 대도를 지면에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비약의 남은 시간은 이제 두 시간 남짓. 단전 내부에서는 억지로 끌어올린 이종의 진기들이 충돌하며 오장육부를 칼로 짓이기는 듯한 내상을 가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무진은 고통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무희야…….”


무진은 대도를 버려두고 감옥 구석으로 기어가듯 달려갔다. 그곳에는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의식을 잃어가는 여동생 무희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왼쪽 손목에는 백골문의 낙인(白骨門의 烙印)이 찍혀 붉게 타들어 간 화상 흉터가 선명했다.


“무희야! 정신 차려라! 오라비가 왔다!”


무진은 떨리는 손으로 무명 대도를 들어 무희의 사슬을 내리쳤다.


깡! 깡!


몇 번의 불꽃이 튄 끝에 두꺼운 쇠사슬이 끊어졌다. 무진은 쇠사슬을 걷어내고 무희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무희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이마에서는 서늘한 음기 열병이 기묘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희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그녀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것은 차가운 한철가면(寒鐵假面)이 아닌, 가면을 벗어던져 가시 침 자국과 흉터로 가득한 오라비의 흉측한 진짜 얼굴이었다.


“오라…… 버니……? 정말 오라버니에요……?”


무희의 트고 갈라진 손끝이 무진의 뺨에 새겨진 깊은 칼자국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오빠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떤 지옥을 건너왔는지, 왜 차가운 무쇠 가면을 쓰고 살아야 했는지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 무희야. 미안하다. 오라비가 너무 늦었구나.”


무진은 가면 속에서 참아왔던 분노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무희는 오빠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껴안으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 때문에 아프지 마세요, 오라버니…….”


그들의 눈물겨운 상봉도 잠시였다. 지하 감옥 천장 기어 틈새로 불길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장로회의 정찰조가 백골문의 이변을 감지하고 이곳으로 들이닥칠 시간표가 가동되고 있었다. 이 피비린내 나는 도살의 흔적을 그대로 둔다면 소교주의 대역 신분은 물론이고 무희의 신변도 즉각 노출될 터였다.


‘흔적을 지워야 한다. 백골문을 통째로 재로 만들어야 해.’


무진은 무희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뉘어두고, 고문실 구석에 쌓여 있던 기름 항아리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왼팔의 마비와 발목의 통증이 극에 달해 한 걸음을 딛을 때마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비명이 뇌리를 때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기름 항아리 세 개를 깨뜨려 고문실 바닥과 목조 대들보 사방에 뿌렸다.


이윽고 벽면에 걸려 있던 횃불을 들어 올렸다.


“가자, 무희야.”


무진은 횃불을 기름더미 위로 던졌다.


화르륵!


순식간에 붉은 불길이 고문실 전체를 집어삼키며 솟구쳤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가 산소를 급격히 앗아갔다. 무진은 무희를 등에 업었다. 무희의 가냘픈 몸무게가 부러진 갈비뼈를 짓누를 때마다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고였지만, 무진은 멈추지 않았다.


정문으로 탈출하려 했으나, 이미 무너져 내린 기와더미와 불타는 목재들이 입구를 완벽히 가로막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정안(靜眼).’


무진은 다시 한번 우측 안구의 기혈을 터뜨렸다.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붉은 시야 속에서 천장 구석의 좁은 환기구 통로가 유일한 퇴로로 포착되었다. 사람이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구멍이었다.


‘축골(縮骨).’


무진은 전신의 뼈마디를 인위적으로 줄여 체구를 압축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극통 속에서, 그는 무희를 먼저 좁은 환기구 틈새로 밀어 넣은 뒤 자신 역시 기형적으로 몸을 굽혀 수로를 빠져나갔다.


쿠르릉! 쾅!


그들이 빠져나온 직후, 백골문의 지하 감옥 대들보가 거대한 불길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무진은 무희를 등에 업은 채 묵영신법을 전개하여 불타오르는 백골문 전각의 후방 개구멍을 통해 외곽 숲으로 탈출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숲속의 서늘한 바람이 무진의 피땀 젖은 얼굴을 때렸다. 전각 전체가 거대한 불꽃의 기둥이 되어 검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이었다.


피리리릭— 쾅!


백골문이 불타 무너져 내리는 불길을 뒤로하고, 저 멀리 어두운 숲속 나무들 사이에서 장로회의 정찰조가 쏘아 올린 붉은 신호탄이 밤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솟구쳐 올랐다. 붉은 광채가 숲 전체를 피빛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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