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들의 만찬
쇠사슬 소리 너머로 맹도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무진의 고막을 찢어발겼다.
습하고 어두운 석조 계단 끝,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것은 썩은 피와 비린내, 그리고 지독하게 달콤한 향기였다. 그것은 백골문 지하 감옥(白骨門 地下 監獄)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미혼독(迷魂毒)의 냄새였다. 지하 고문실 내부의 풍경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사방의 돌벽에는 도굴해 온 비석들이 기괴하게 박혀 있었고, 천장에는 녹슨 사슬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 사슬 끝에, 무희가 매달려 있었다.
남루한 회색 침선복은 피와 땀으로 얼룩져 찢겨 있었고, 잦은 노역으로 트고 갈라진 가냘픈 두 손목은 흑철 사슬에 묶여 허공에 대롱거리고 있었다. 열다섯 소년의 눈망울처럼 맑았던 여동생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감겨 있었고, 왼쪽 손목 안쪽에는 백골문의 낙인(白骨門의 烙印)인 붉은 화상 흉터가 선명하게 박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핏물이 번들거리는 가죽 앞치마를 두른 깡마르고 창백한 사내가 서 있었다. 고문 기술자 맹도(孟濤)였다. 그는 한 손에 붉은 살점이 묻은 고문용 인장을 쥔 채, 기괴한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항아리를 흔들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무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얼굴을 빼앗긴 노비로서의 근원적 분노와 혈육을 향한 처절한 살의가 용암처럼 들끓어 올랐다. 이성이 통째로 타버릴 것 같은 분노였으나, 무진은 이를 악물며 내면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지금 흥분하면 무희의 목숨이 먼저 날아간다.
‘범음(梵音).’
무진은 소림사의 방랑 승려 혜명 대사에게 전수받은 범음호흡법(梵音呼吸法)을 전개했다. 코로 차가운 한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심장의 뜨거운 살기를 길게 내뿜자 쿵쾅거리던 맥박이 서서히 고요를 되찾았다. 머릿속이 바둑판처럼 맑아지며, 고문실 내부의 모든 기류와 적의 미세한 근육 수축이 정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냐, 감히 백골문의 지옥에 발을 들이는 쥐새끼가.”
맹도가 비릿한 안광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복면을 쓰고 녹슨 무명 대도(錄슨 無名 大刀)를 쥔 채 서 있는 무진의 전신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은 것이다. 외곽 경비무사 10여 명을 도살하고 온 살기가 좁은 감옥 내부를 서늘하게 얼렸다.
“네놈이 장로님이 말씀하신 그 가짜 소교주 놈이로구나. 휠체어에 앉아 다리가 마비된 척하더니, 누이년의 목숨줄을 쥐어짜니 제 발로 기어 나왔군!”
맹도가 잔인한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놓여 있던 거대한 진흙 항아리를 발로 차 깨뜨렸다.
와장창!
항아리가 박살 나며 그 안에서 붉은 반점이 가득한 수십 마리의 적사(赤蛇)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골문이 지하 무덤에서 키워낸 치명적인 흡혈 독사들이었다. 독사들은 쉭쉭거리는 기괴한 비늘 마찰 소리를 내며 무진의 발목을 향해 탄성력 있게 짓쳐 들었다.
‘정안(靜眼).’
무진은 주저 없이 안구 주변의 기혈에 내력을 집중시켰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날아오는 독사들의 탄성 궤적과 이빨이 돋아난 각도가 극도로 느린 화면처럼 분할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스사사삭!
무진은 무명 대도를 사선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화려한 초식은 없었으나, 일류 극의의 진기가 실린 대도의 묵직한 칼바람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오던 독사 다섯 마리를 단번에 일도양단했다. 잘려 나간 뱀의 머리들이 바닥을 뒹굴며 핏물을 뿜었다.
그러나 위기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급격하게 축골술과 묵영신법을 병용한 대가로 왼쪽 발목 관절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기에, 급격한 횡보를 디디는 순간 발목 뼈마디가 에이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때린 것이다.
“윽!”
무진의 신형이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 그 틈을 타 바닥을 기어온 독사 한 마리가 무진의 왼쪽 팔뚝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푸욱!
“크윽……!”
지독한 사독(蛇毒)이 살가죽을 뚫고 경맥으로 침투했다. 왼팔 전체가 불길에 닿은 듯 타들어 가며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손가락 끝의 감각이 빠르게 마비되어 갔다. 설약경의 비약으로 억지로 끌어올린 일류의 내력이 독성을 막으려 단전에서 요동쳤다.
“하하하! 멍청한 놈! 우리 백골문의 적사독은 일류 고수라 할지라도 삼 십 합 안에 심장을 얼려 죽인다! 어디 이 독도 받아보거라!”
맹도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매를 크게 털었다. 그의 손끝에서 짙은 보랏빛의 미혼독 가루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고문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달콤하면서도 지독한 단내가 무진의 호흡기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뒤편에는 쇠사슬에 묶인 무희가 있었기에 뒤로 물러설 퇴로는 없었다.
무진은 눈을 부릅떴다.
‘당가독경(唐門萬毒經).’
무진은 사천당가의 방계 여협 당소혜의 도움으로 서고에서 훔쳐 익혔던 당가독경의 정화 구결을 단전에서 가동했다. 그는 범음호흡법으로 심장 박동을 극한으로 늦추어 독기가 전신 경맥으로 퍼지는 속도를 물리적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들이마신 미혼독의 기운을 단전의 음기 진기로 감싸 안아 한곳으로 응축시켰다.
화아아악!
독기가 단전에서 마교의 음기와 충돌하며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고열과 오한이 동시에 찾아왔다. 내장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에 무진의 모공에서 핏방울이 배어 나왔지만, 그는 이 악물고 그 독성을 왼손 경맥으로 강제로 유도했다. 사천당가의 비전 기술인 독기 역류(毒氣 逆流)의 응용이었다.
“어찌…… 어찌 아직도 서 있는 것이냐! 미혼독을 정면으로 마시고도 왜 쓰러지지 않는 거지?”
맹도의 창백한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이미 뇌의 신경이 마비되어 거품을 물고 쓰러졌어야 할 시간이었다.
무진은 대답 대신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맹도를 향해 겨누었다. 그의 왼쪽 손가락 끝이 시커멓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손톱 끝에서 지독한 보랏빛 독기가 침針의 형상으로 응축되어 파르르 떨렸다.
“네놈이 준 선물을 돌려주마.”
가면을 벗은 무진의 갈라진 진짜 목소리가 고문실의 어둠을 찢었다.
피식!
무진의 손가락 끝에서 응축되어 있던 미혼독의 결정체가 번개 같은 속도로 사출되었다. 독기 역류 기술이었다. 공기를 가르는 보랏빛 독선의 궤적은 맹도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여 들어갔다.
“억……!”
맹도는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자신의 미혼독 침을 목덜미에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독기가 그의 경맥을 타고 역류하는 순간, 맹도의 전신 근육이 돌처럼 굳어지며 눈동자가 뒤집혔다. 스스로 만든 지독한 환각독에 중독되어 전신이 마비된 것이다.
무진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맹도에게 다가갔다. 왼쪽 발목 관절의 균열과 왼팔의 독성 통증이 전신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지만, 그의 안광은 오직 야수처럼 번뜩였다.
탁.
무진의 손가락 끝이 마비되어 굳어 있는 맹도의 목덜미 혈도를 정확하게 짚었다. 노비 시절 매질당한 동료들을 치료하며 뼈의 구조를 암기해 터득한 안마술(按摩術)이었다. 손끝에 실린 일류의 진기가 맹도의 경추 삼 번과 사 번 사이의 경맥을 사정없이 파괴했다.
콰직!
“끄, 으으윽……”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절규 속에서 맹도의 전신 경맥이 완벽하게 폐쇄되었다. 무진은 굳어버린 맹도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서 여전히 우글거리며 붉은 혀를 낼름거리는 독사 항아리의 잔해 속으로 그를 던져버렸다.
“네놈이 키운 자식들의 밥이 되어라.”
스사사사삭!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독사들이 마비된 맹도의 가죽 앞치마와 살가죽을 파고들며 사정없이 이빨을 박아넣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는 맹도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그의 육체는 수십 마리의 독사들에게 뜯기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무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쇠사슬에 매달린 무희에게로 달려갔다.
스릉!
무명 대도가 허공을 가르며 무희를 옭아매고 있던 흑철 사슬을 단번에 끊어냈다.
철그렁!
무진은 떨어지는 무희의 가냘픈 신형을 왼팔로 받아안아 바닥에 조심스럽게 뉘었다. 무희의 창백한 이마를 짚자, 얼음처럼 차가운 음기의 열병이 손끝을 타고 흘러들었다. 설약경의 경고대로, 무희의 특이 체질이 지하 감옥의 음산한 독기와 공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희야…… 무희야, 정신 차려라. 오라비가 왔다.”
무진이 복면을 벗어던지고, 가시 침 상처와 흉터로 가득한 자신의 진짜 맨얼굴을 무희의 뺨에 비벼대며 나직하게 울부짖었다. 무희가 고통스러운 신음 끝에 희미하게 눈을 떴다. 오라비의 흉측하지만 따뜻한 눈빛을 마주한 여동생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라…… 버니…… 정말 오라버니야……? 왜 얼굴이…… 이렇게……”
“괜찮다. 다 괜찮아. 이제 지옥은 끝났다. 오라비가 너를 구했다.”
무진이 무희를 품에 안고 굳은 맹세를 다지는 찰나였다.
쿠우우웅—!
지하 감옥 전체가 무너질 듯한 거대한 진동과 함께, 고문실 깊은 곳의 두꺼운 흑철 문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열려젖혀졌다. 문이 열리는 순간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기압이 고문실 천장의 바위들을 부수며 먼지를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거구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골 가면을 쓴 채 백 근 무게의 묵철 철퇴를 바닥에 질질 끌며 걸어오는 사내, 백골문주 철사황(鐵沙皇)이었다. 철퇴가 돌바닥을 긁을 때마다 튀는 붉은 불꽃이 무진의 진짜 얼굴을 흉측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맹도가 독사들에게 뜯겨 죽어가는 비명 속에서, 감옥 깊은 곳의 흑철 문이 열리며 백골문주 철사황이 거대한 묵철 철퇴를 끌고 나타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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