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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문의 붉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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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바람이 복면 너머 노출된 뺨의 생살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맨살의 감각인가. 늘 얼굴 피부를 옥죄고 살을 파고들던 한철가면(寒鐵假面)의 족쇄가 사라진 자리에는, 가시 침이 남긴 붉은 구멍들과 딱지 앉은 흉터들이 거친 밤공기 속에서 아리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고통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기괴할 정도의 해방감이었다. 쇠창살 뒤에 갇힌 가축이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로 피를 흘리고 뼈를 깎아내기 위해 서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각.


무진(武鎭)은 검은 복면 위로 드러난 눈동자를 가만히 감았다가 떴다.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서늘한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전신의 기혈을 안구 주변으로 집중시키는 비술, 정안(靜眼)이었다.


어둠에 잠긴 백골문(白骨門)의 거대한 흑철 대문이 정안의 붉은 시야 속에서 기하학적인 선과 입체적인 궤적으로 해체되어 보였다. 문 안쪽, 지면을 밟는 거친 발걸음 소리와 호흡의 간격이 바둑판 위의 돌처럼 선명하게 뇌리에 박혔다.


‘셋.’


정문을 지키는 백골문의 순찰 무사는 총 세 명이었다. 그들의 보법은 조잡했고, 호흡은 일정하지 않았다. 마교의 정예 살수들이 아닌, 그저 장로회의 뒷배를 믿고 하층민들을 약탈하며 연명해 온 사파의 양아치들. 소리와 기류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만한 정밀한 이성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무진은 어깨에 메고 있던 녹슨 무명 대도(錄슨 無名 大刀)의 자루를 왼손으로 굳게 움켜쥐었다. 대장장이 탁무선이 거칠게 갈아낸 칼날이 달빛을 흡수하며 둔탁한 흑색 빛을 뿜어냈다. 비약의 기운으로 단전에서 일시적으로 폭발한 일류(一流) 극의의 진기가 그의 뒤틀린 어깨 경맥을 타고 뜨겁게 요동쳤다. 약효는 단 세 시간. 그 안에 백골문을 피로 쓸어버려야 했다.


‘묵영(墨影).’


무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소리 없이 지워졌다. 독고충 스승이 전수한 묵영신법(墨影身法)이었다. 발바닥의 용천혈에 음기 진기를 집중하여 지면과의 마찰음을 완벽히 흡수하자, 그는 대문 옆 거대한 바위 그림자 속으로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스스슥.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보다 더 가벼운 기척이 흑철 대문의 틈새를 통과했다. 문 안쪽 마당을 순찰하던 첫 번째 무사가 기묘한 위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이미 무진의 신형은 그의 등 뒤 그림자 속에 안착해 있었다.


무진의 왼손가락 끝이 무사의 목덜미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짓쳐 들었다. 매질당하는 동료들의 뼈를 맞추며 손끝 감각으로 터득한 경맥 차단술, 안마술(按摩術)이었다. 예리한 핀셋처럼 정확하게 경추 삼 번과 사 번 사이의 기혈을 짚어 누르자, 무사는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고 전신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성대 근육이 일시에 마비되어 목구멍을 긁는 미세한 바람 소리조차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턱.


무진은 굳어버린 첫 번째 무사의 신형을 왼팔로 받아내며, 동시에 오른손으로 녹슨 무명 대도를 뽑아 들었다.


그 기척을 눈치챈 나머지 두 명의 무사가 황급히 병기를 뽑아 들려 했다. 그들의 어깨 근육이 수축하며 검을 칼집에서 빼내려는 순간, 무진의 정안이 그들의 다음 궤적을 찰나에 계산해 냈다.


대도가 허공을 가르며 패도적인 반원을 그렸다.


스사삭!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오른쪽 어깨의 골절상 여파로 인해 대도의 궤적이 미세하게 흔들린 것이다. 묵직한 칼날 끝이 두 번째 무사의 철제 어깨 보호대를 때리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쇳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진다면 백골문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릴 터였다.


‘축골(縮骨).’


무진은 주저 없이 스스로의 왼쪽 어깨 관절을 뒤틀어 탈골시켰다. 뼈마디의 간격을 인위적으로 늘려 팔의 길이를 순간적으로 삼 치 이상 연장하는 기형적인 인체 개조 기술이었다.


우두둑!


끔찍한 뼈 마찰음과 함께 무진의 왼팔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대도의 칼날 끝을 미세하게 안쪽으로 꺾었다. 철제 방어구를 우회한 녹슨 칼날이 두 번째 무사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그대로 관통했다.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 나오기도 전에, 대도의 묵직한 중량감이 회전력을 더하며 세 번째 무사의 관자놀이를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퍽!


뇌수가 터지는 소리조차 숲의 바람 소리에 묻혔다. 순식간에 세 명의 무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무진은 입술을 깨물며 왼쪽 발목을 움켜쥐었다. 어둠 속에서 급격하게 축골술과 묵영신법을 병용한 대가로,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발목 관절 부위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뼛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단전의 비약 기운이 통증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있었지만, 뼈마디가 에이는 물리적인 한계는 속일 수 없었다.


무진은 쓰러진 시체 세 구를 대문 옆 대나무 숲 그림자 속으로 신속하게 끌고 가 숨겼다. 그들의 품을 수색해 경비 교대 시간표와 백골문 내부 지도가 그려진 가죽 패를 확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반.’


그는 대도 끝에 묻은 피를 시체의 옷자락에 거칠게 닦아낸 뒤, 백골문의 붉은 전각 내부를 향해 다시 신형을 움직였다.


백골문 본단 내부의 정원은 기괴할 정도로 음산했다. 도처에 도굴해 온 무덤의 비석들이 기단처럼 쌓여 있었고, 썩은 흙냄새와 지독한 독약의 단내가 코를 찔렀다. 무진은 묵영보를 시전한 채 전각 지붕 위의 음영을 타고 유령처럼 기동했다.


정안의 시야 속에서 순찰을 돌던 하급 무사들이 하나씩 포착되었다. 무진은 그들의 뒤편에서 소리 없이 낙하하며 손끝의 안마술로 경추를 꺾거나, 무명 대도의 투박한 등판으로 뒤통수를 으스러뜨렸다. 단 한 번의 격돌도, 단 한 자락의 비명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소리 없는 도살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전각 마당을 지나갈 때마다, 백골문의 하급 무사 십여 명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그림자 속에 파묻혔다. 무진의 전신은 이제 그가 흘린 안면의 피와, 적들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선혈로 얼룩져 기괴한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가면을 벗어던진 소년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들이 피에 젖어 붉게 빛났다.


마침내 무진은 백골문 정각 뒤편, 썩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옆의 흑철 문 앞에 도달했다.


이곳이 바로 여동생 무희가 잡혀 있는 백골문 지하 감옥(白骨門 地下 監獄)의 입구였다. 철문 틈새로 지독한 곰팡이 냄새와 핏비린내가 섞인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무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대도의 자루를 고쳐 잡았다. 비약의 열기가 단전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며 심장을 거차게 때렸다.


철문을 천천히 밀어젖히자, 아래로 향하는 어둡고 습한 석조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무진은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는 완벽히 지웠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살기는 이미 감옥 내부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리고 있었다.


계단 끝에 도달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무진의 가죽 신발 끝에 무언가 끈적한 촉감이 닿았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검붉고 끈적한 핏자국이 고여 있었다. 누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피를 흘리며 끌려갔음을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 감옥 깊은 곳의 쇠창살 너머로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쇠사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철커덕! 철컥!


이어서, 살가죽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지독하게 가학적인 웃음소리가 어두운 통로를 타고 흘러나왔다.


“흐흐흐……! 소교주의 대역 노비 년이라 그런지, 살가죽이 제법 질기구나. 자, 장로님께 보낼 서찰에 찍을 핏빛 인장이 필요하니, 조금 더 고운 비명을 질러보거라!”


고문 기술자 맹도(孟濤)의 음산하고 퀴퀴한 목소리였다.


무진의 눈동자가 정안의 극치에 달해 핏빛 번개처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발밑에 고인 sticky한 선혈 위로, 녹슨 무명 대도의 칼날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쇳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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