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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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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약경의 차가운 손가락이 무진의 손목 요골 혈도에 닿는 순간, 그의 소매 속에 숨겨져 있던 은침이 소리 없이 무진의 장포 아래로 스며들었다.


대연무장을 가득 메웠던 교도들의 함성이 멀어지고, 무진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일어난 불과 얼음의 충돌은 무진의 의식을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설하태의 순양 진기를 강제로 모사해 방출한 대가는 참혹했다. 마교의 탁한 음기와 훔쳐낸 양강의 기운이 단전 안에서 서로의 살점을 뜯어내듯 격돌하고 있었다.


“소교주님을 침전으로 이송하라! 심맥이 뒤틀려 한기가 역류하고 있다!”


설약경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무진의 희미해진 고막을 때렸다. 독고염과 배무현의 의심 어린 시선이 무진의 등에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진은 밀려오는 어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


정신이 돌아왔을 때, 무진은 천마각 외곽의 낡고 매캐한 약초 냄새가 가득한 설약경의 백초당 밀실에 누워 있었다.


“크윽……!”


눈을 뜨자마자 단전을 찢는 듯한 고통에 무진의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다. 전신의 뼈마디가 축골술의 반동으로 어긋나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입가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움직이지 마라. 기혈이 완전히 뒤틀렸다.”


백발이 성성한 설약경이 차가운 안광을 빛내며 무진의 가슴팍에 천생침 세 자루를 깊숙이 자침했다. 은침을 타고 흘러드는 서늘한 기운이 폭주하던 이종의 진기를 강제로 억누르기 시작했다. 설약경은 약탕기 옆에 놓여 있던 자색의 둥근 환약 한 알을 무진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종진기단(二種珍氣丹)이다. 단전에서 충돌하는 양강과 음기의 파동을 억지로 중화시켜 줄 게야. 하지만 이것은 극약이다. 복용할 때마다 네 장기는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갈 것이다.”


환약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가슴을 짓누르던 지독한 작열감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설약경의 말대로 오장육부가 소금에 절여지듯 아려오는 둔탁한 통증이 뒤따랐. 무진은 한철가면 너머로 거친 숨을 내쉬며 어긋난 오른쪽 어깨 관절을 스스로 맞추었다. 우두둑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관절이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찰나였다.


쾅!


백초당의 낡은 목조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비쩍 마른 체구의 소년 소천이 밀실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이닥쳤. 소천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형님……! 형님, 큰일 났습니다!”


소천이 무릎을 꿇으며 가죽 주머니에서 핏자국이 낭자한 백색 비단 서찰을 꺼내 들었다. 무진의 가면 속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서찰을 향해 고정되었다. 서찰의 겉면에는 백골을 형상화한 붉은 문양과 함께, 둘째 장로 독고염의 자색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


무진의 변성술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소천은 울음을 터뜨리며 서찰과 함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작은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남루한 회색 침선복의 옷자락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무진이 철골굴에서 여동생에게 건넸던, 어머니의 유품인 작은 나무 빗의 부러진 조각이 피에 젖은 채 엉겨 붙어 있었다.


순간, 무진의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무희…….”


가면 밑에서 야수 같은 거친 호흡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려 서찰을 제대로 움켜쥐지도 못했다. 무진은 피 묻은 서찰을 찢듯이 펼쳤다.


[소교주의 가면을 쓴 비천한 쥐새끼에게.

네놈이 대연무장에서 아무리 날뛰어봐야 결국 철골굴의 노비 버러지에 불과함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네놈이 목숨을 거는 유일한 약점인 여동생 무희는 지금 백골문 지하 감옥(白骨門 地下 監獄)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살고 싶다면, 그리고 네 누이의 사지가 찢기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사흘 뒤 자시까지 소교주의 권한을 상징하는 흑수령을 들고 백골문으로 와라. 그리고 그곳에서 스스로 단전을 깨부수고 자결해라.

만약 기한을 넘기거나 장로회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네 누이의 심장을 도려내어 교주님의 제단에 바칠 것이다. - 백골문주 철사황]


“철사황…… 독고염……!”


무진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백초당 내부의 서늘한 정적을 깨뜨렸다. 분노가 온몸의 피를 역류시켰다. 억누르고 있던 단전의 이종진기가 다시금 폭발하듯 끓어올랐다.


그때, 밀실의 그림자 속에서 호위무사 위강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도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소교주님. 백골문은 장로회 독고염파의 비밀 행동 지부입니다. 그들은 이미 백골문 주변에 혈영대의 정예 살수들을 매복시키고 소교주님의 출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로회의 군령 차단으로 인해 공식 호위대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위강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독고염은 연무장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무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올가미를 씌운 것이다. 단전 파열의 내상을 입은 무진이 홀로 백골문으로 간다면 그것은 완벽한 자살 행위였다.


하지만 무진은 서신 끝에 묻은 무희의 잘려 나간 비단 옷자락을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다. 여동생의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 그를 지탱하던 모든 이성적 통제가 붕괴되고 있었다.


“설 의원.”


무진이 고개를 들어 설약경을 바라보았다. 한철가면의 좁은 눈 틈새 너머로, 전설 속 야수의 그것과 같은 붉은 살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내 단전의 경맥을 일시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비약을 내놓아라.”


설약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친 짓이다. 지금 네 상태에서 단전을 강제로 각성시킨다면, 경맥의 8할이 영구적으로 파열되어 평생 폐인으로 살아야 할 게야!”


“내 누이가 저들의 손에 죽어가고 있다.”


무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대지를 뒤흔들 만큼 묵직했다.


“폐인이 되든, 심장이 터지든 상관없다. 오늘 밤, 백골문을 피로 쓸어버릴 힘이 필요하다.”


서신 끝에 묻은 무희의 잘려 나간 비단 옷자락을 본 무진의 눈동자가 정안의 붉은 살기로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하는데…….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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