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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의 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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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대지를 찢어발기는 듯한 자색 뇌격이 대연무장 중앙을 강타했다. 일류 극의에 달한 설하태의 모든 내력이 실린 자뢰검은 무진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흑단목 휠체어의 왼쪽 바퀴 축을 정확히 관통했다.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천 년 묵은 흑단목 프레임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휠체어 등받이에 장착되어 있던 스프링 압축식 묵철 방패마저 뒤틀린 쇠붙이가 되어 돌바닥 위를 뒹굴었다. 사방을 메우는 자욱한 흙먼지와 자색 번개 불꽃의 파편 속에서, 무진의 비쩍 마른 신형이 중심을 잃고 연무장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졌다.


“조카님!”


단상 높은 곳에서 설민혜가 가식적인 비명을 질렀으나, 그녀의 뱀 같은 눈매에는 감출 수 없는 희열이 서려 있었다. 둘째 장로 독고염 역시 수염을 매만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휠체어가 부서져 바닥에 나뒹구는 소교주라니. 가문의 정통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연무장 가장자리에 서 있던 호위무사 위강이 검자루를 쥔 채 한 걸음 내딛으려 했으나, 심판인 수라전주 배무현의 서늘한 안광이 그의 움직임을 묶어세웠다. 아직 비무는 끝나지 않았다. 휠체어가 박살 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교주의 목을 설하태가 베어내는 일뿐이었다.


“하하하! 바닥을 기어라, 설하진!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국 휠체어 없이는 서지도 못하는 폐물에 불과하거늘!”


설하태가 공중에서 가볍게 신형을 뒤집으며 착지했다. 그의 자뢰검 끝에는 여전히 자색 전류가 지지직거리며 뱀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한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 먼지를 뒤집어쓴 무진의 머리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최후의 일격인 뇌풍참을 내리찍으려는 기세였다.


돌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무진은 가면 안쪽에서 피비린내를 삼켰다.


통증이 전신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 관절은 설하태의 충격을 받아 완전히 탈골되어 덜렁거렸고, 왼손 검지는 한기에 노출되어 감각이 마비된 상태였다. 갈비뼈 부근의 미세 골절 부위는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을 내뿜었다.


하지만 무진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가면의 좁은 틈새 너머로 그의 눈동자가 조용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정안 경계(靜眼 境界).


시야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며 사방의 기류와 설하태의 근육 움직임이 극도로 느린 화면처럼 분할되어 보였다. 설하태가 검을 거꾸로 쥐고 내리찍으려는 순간, 그의 오른쪽 어깨가 미세하게 삼 분 내려앉고 무게중심이 뒤뒤꿈치로 쏠리는 해부학적 맹점이 포착되었다.


‘지금이다.’


무진은 단전의 진짜 내력을 개방하지 않은 채, 오직 뼈와 근육의 한계를 시험하는 비술을 발동했다.


축골술(縮骨術).


우두둑, 우드득!


전신의 뼈마디가 기괴하게 맞춰지는 마찰음이 흙먼지 속에서 나직하게 울렸다. 무진은 스스로 오른쪽 어깨 관절을 뒤틀어 압축함과 동시에, 척추의 마디를 하나로 모아 신형의 무게중심을 인위적으로 바꾸었다. 다리가 마비된 척 연기하던 신체가 축골술의 반동을 이용해 바닥을 구르는 유연한 뱀처럼 변했다.


쉬이익!


설하태의 자뢰검이 무진의 머리가 있던 돌판을 찍어 내렸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돌바닥이 파여 나갔지만, 무진은 이미 축골술로 신형을 압축해 그 궤적을 반 치 차이로 피한 뒤였다.


“무엇이……!”


설하태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해야 할 설하진이, 상상할 수 없는 각도로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고 심지어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무장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일었다. 단상 위의 독고염과 배무현 역시 휠체어에서 일어나 똑바로 선 무진의 모습에 안광을 굳혔.


무진은 일어섰다. 비록 오른쪽 어깨는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왼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한철가면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큼은 연무장 전체를 압도할 듯 패도적이었다. 그는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설하태를 내려다보았다. 다리가 마비되었다는 소문 자체가 장로회를 기만하기 위한 가짜 덫이었음을 만인 앞에 시각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서출의 얕은 꾀에 내가 놀아나 줄 줄 알았더냐, 하태야.”


무진은 변성술을 가동해 오만방자한 소교주의 하이톤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천마각 비전 서고에서 정안으로 훔쳐보고 각인해 두었던 천뢰마공(天雷魔功)의 운기 경로를 머릿속으로 전개했다. 진짜 소교주 설하진은 단전 파열로 익히지 못했던 가문의 비전 무공. 그러나 만상 모사(萬象 模寫)의 극의에 도달한 무진에게는 적의 뼈 움직임과 비급의 구결만으로 그 궤적을 실시간으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단전의 음기를 극도로 압축하여 척추의 명문혈을 지난다. 그리고 손끝으로 번개의 성질을 방출한다…….’


무진은 왼손의 손날을 세웠. 부러진 오른손 대신, 오직 왼손 하나에 전신의 내력을 집중시켰다. 단전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차가운 사기가 역천의 경로를 타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직!


무진의 왼손 손가락 끝에서 푸르스름한 전류가 아닌, 사천당가의 독기와 마교의 탁한 사기가 융합된 기괴한 자색의 번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설씨 가문의 정통 천뢰마공보다 훨씬 더 어둡고 음산한 파괴력을 품은 변칙적인 뇌격이었다.


“이, 이놈이…… 천뢰마공을 시전한다고? 단전이 파괴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설하태는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자색 뇌격을 보고 평생을 지배해 온 서출의 공포를 다시금 자각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자뢰검을 휘둘러 뇌풍검법의 최종 초식으로 무진의 목을 날려버리려 광폭하게 쇄도했다.


그러나 무진의 정안은 이미 설하태가 검을 뻗는 찰나, 그의 어깨가 이 분 아래로 내려앉으며 발생하는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포착하고 있었다.


무진은 묵영신법의 미세 보법을 전개하며 설하태의 검강 사각지대로 신형을 밀어 넣었다. 자뢰검의 날카로운 벼락 끝이 무진의 한철가면 옆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불꽃을 튀겼다.


그리고 그 찰나의 교차점.


무진의 왼손 손날이 설하태의 겨드랑이 밑, 기혈의 사각을 향해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만상 모사, 천뢰음격(天雷陰擊)!


콰르릉— 쾅!


연무장에 기괴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진의 손날 끝에서 방출된 음산한 자색 뇌격이 설하태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설하태의 자뢰검에서 뿜어지던 뇌풍강기가 무진의 모사된 뇌격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났다.


“아아악!”


설하태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보검 자뢰검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그의 두꺼운 가슴뼈가 뒤로 함몰되며 전신 경맥이 무진의 음산한 뇌격에 지져져 타들어 갔다. 단전이 그 자리에서 파괴된 설하태의 신형은 연무장 돌판 위를 수십 장이나 뒹굴며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그의 몸은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이자 파멸이었다.


대연무장 전체에 무서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로들은 물론이고 수라전주 배무현조차 소교주가 보여준 완벽한 천뢰마공의 위력 앞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리 마비도, 단전 파열 소문도 모두 장로회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소교주의 거대한 기만극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무진은 연무장 중앙에 우뚝 서서, 한철가면 너머의 차가운 안광으로 단상의 독고염을 내려다보았다.


“장로회는…… 겨우 이 정도의 서출 버러지를 내세워 본 소교주를 시험하려 했단 말이냐.”


오만하고 냉혹한 독설이 연무장을 울렸다. 위강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검을 거두었고, 독고염은 분노로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승리를 선포한 무진의 내부는 이미 지옥이었다.


억지로 천뢰마공의 운기 경로를 모사해 이종의 진기를 단전에서 폭발시킨 대가는 참혹했다. 무진이 지니고 있던 차가운 음기와 설하태에게서 흡수했던 정파 고유의 순양 진기가 단전 내부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종진기 충돌(二種珍氣丹 衝突).


단전의 3할이 파열되는 듯한 극통과 함께 온몸의 모공에서 피가 솟구치는 감각이 밀려왔다.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정안의 시야가 꺼졌다. 전신의 뼈마디가 축골술의 반동으로 어긋나며 무진의 신형이 앞으로 쓰러지듯 흔들렸다.


울컥!


무진은 가면 턱밑 틈새로 검붉은 피 한 사발을 토해내며 연무장 바닥으로 쓰러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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