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독설
자뢰검 끝에서 뿜어지는 자색 번개 불꽃이 무진의 가죽 담요를 시커멓게 태우며 그의 무릎 뼈마디를 향해 파고들었다.
지지직, 지직!
천마각 침전의 서늘한 공기 속으로 가죽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호랑이 가죽 담요의 털끝이 붉은 불꽃을 일으키며 오그라들었고, 그 아래로 설하태의 일류 극의(一流 極意)에 달한 뇌풍강기(雷風剛氣)가 무진의 무릎 뼈를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눌렸다. 찌릿한 전류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 골막을 직접 지지는 듯한 지독한 작열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치솟았다.
‘크윽……!’
무진은 이빨이 깨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었다. 한철가면 안쪽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뺨의 찢어진 가시 침 상처를 적셨다. 당장이라도 단전을 개방해 기혈을 역류시키고 싶은 충동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무진은 머릿속에 울리는 설약경의 경고를 떠올렸다.
‘무리하게 내력을 쓰면 맥상위장술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뒤틀린 경맥이 폭발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침전 구석에서 뱀처럼 차가운 안광을 빛내고 있는 가짜 고모, 설민혜의 존재가 무진의 모든 신체 본능을 억눌렀다. 그녀는 자하음공(紫霞陰功)의 미세한 진동을 사방으로 뻗치며 무진의 단전 부근을 집요하게 탐색하고 있었다. 여기서 단 한 줌의 마공이라도 방출하는 순간, 단전이 멀쩡하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대역의 기만극은 그 자리에서 종막을 고할 터였다.
endure. 버텨야 한다.
무진은 정안(靜眼)을 극도로 활성화했다. 붉게 충혈된 시야 속에서 설하태의 자뢰검을 타고 흐르는 자색 전류의 궤적이 기하학적인 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류의 흐름은 패도적이었지만, 특정한 마디를 주행할 때 미세하게 굴절되는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무진은 그 찰나의 틈새를 향해 자신의 신체를 조정했다.
‘충격 흡수(衝擊 吸收).’
무진은 등 뒤의 갈비뼈 미세 골절 통증을 무시한 채, 무릎과 골반의 관절들을 미세하게 탈골시키듯 뒤로 슬라이딩시켰다. 독고충 스승에게 배운 축골술의 해부학적 제어 기술이었다. 관절 사이의 미세한 틈새가 벌어지며 설하태가 가하는 직접적인 타격 경로가 흐트러졌다.
동시에 무진은 전류의 흐름을 자신의 단전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흑단목 휠체어(黑檀木 휠체어)의 철제 지지대와 목재 바퀴 축을 향해 우회하여 흘려보냈다. 휠체어 바퀴가 지면의 돌판과 맞닿아 있는 틈새로 자색 벼락 기운이 소리 없이 방출되도록 경로를 유도한 것이다.
찌지직! 콰직!
흑단목 휠체어의 왼쪽 바퀴 축이 강한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미세한 균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무진은 상체를 휠체어 등받이에 깊숙이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진짜 폐인처럼, 허벅지 위의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설하태의 얼굴에 기괴한 의구심이 스쳤다.
‘이놈이 정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내 뇌풍강기가 무릎 골막을 지지고 있거늘, 어찌 신형의 떨림조차 없단 말인가?’
설하태는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뢰검을 쥔 손목에 힘을 더 주었다. 보검 끝에서 뿜어지는 자색 전류가 더 굵어지며 무진의 살점을 태우려 했다. 무진의 손가락 끝이 본능적으로 휠체어 오른쪽 손잡이 안쪽에 내장된 비밀 방아쇠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사천당가 독침을 발사해 저 오만한 사촌의 눈을 뚫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진은 멈추었다. 설민혜의 예리한 눈초리가 자신의 손끝 움직임을 집요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암기를 가동하는 미세한 기계음조차 그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무진은 물리적인 무기 대신, 가면 뒤에 숨겨진 가장 잔혹한 무기를 꺼내 들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진짜 소교주 설하진의 영혼을 모사한 지독한 독설이었다.
“……겨우 이 정도더냐?”
무진은 변성술(變聲術)을 가동했다. 목구멍의 후두 위치를 인위적으로 고정하고 성대 주변 기혈에 억제된 진기를 주입하자, 진짜 설하진 특유의 날카롭고 오만방자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침전의 침묵을 찢고 흘러나왔다.
설하태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진은 가면의 좁은 눈 틈새 너머로 설하태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차가운 무쇠 철가면 너머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는 상대의 가장 아픈 약점을 정확히 후벼파는 잔혹함이 서려 있었다.
“방계의 미천한 서출(庶出) 핏줄이라 그런지, 번개 기운마저 저잣거리 광대패의 불장난 같구나. 하태야, 내 무릎이 찌릿하지도 않으니 힘을 더 써보거라. 장로회가 네놈에게 먹인 영약의 효험이 벌써 다한 모양이로군.”
“이, 이 비천한 폐인 놈이……!”
설하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서출이라는 단어는 그가 평생을 바쳐 일류 극의에 도달하고도 가문 내부에서 지워지지 않던 가장 지독한 낙인이었다. 사촌 형인 설하진의 그 오만하고 나약한 주둥아리가 다시 한번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자, 그의 이성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네 다리를 완전히 잘라내어 평생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설하태가 자뢰검을 높이 치켜들며 전신의 뇌풍강기를 폭발시키려 했다. 검신을 감싼 자색 검강(劍剛)이 침전의 천장을 그을리며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위강이 검자루를 완전히 쥐고 무진의 앞을 막아서려 한 찰나였다.
“그만두거라, 하태.”
침전 구석에서 상황을 방관하던 설민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절정 초입(絶頂 初入) 고수의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설민혜는 자색 장포 자락을 가볍게 휘날리며 다가와 아들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자하진기가 자뢰검의 폭주하는 뇌격을 순식간에 억눌렀다.
“어머니! 이 폐인 놈이 감히 저를……!”
“흥분하지 말거라. 가문의 법률을 잊었느냐? 소교주의 처소에서 사사로이 무력을 행사해 후계자를 시해하려 한 죄는, 아무리 방계의 공자라 할지라도 단전이 파괴되고 마교 총단에서 추방당하는 대죄다.”
설민혜는 아들을 제지하면서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무진의 얼굴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진의 한철가면 귀밑 자물쇠 부근에 남은 미세한 흠집과, 휠체어 바퀴 축이 타들어 간 흔적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러나 무진이 내력을 뿜어 반격한 흔적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오직 뼈의 유연함으로 버텨낸 기괴한 신체 제어력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설민혜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무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진아, 네 다리가 정말 마비되었음을 확인했으니 이 고모의 마음이 한결 가볍구나. 평화 회담을 앞두고 몸조리 잘하거라.”
그녀는 아들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퇴각하려 했다. 하지만 설하태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품속에서 붉은 비단으로 봉인된 서첩 하나를 꺼내 무진의 무릎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탁!
“사흘 뒤다, 사촌 형님.”
설하태가 이빨을 갈며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살기와 굴욕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마교 대연무장(마교 대연무장)에서 가문의 정통성을 걸고 공식적인 무공 검증 비무를 신청하겠다. 장로회의 승인은 이미 받아두었으니, 그때도 그 주둥아리를 놀릴 수 있을지 두고 보지. 네놈의 그 차가운 가면을 내 손으로 직접 깨부수고 진짜 얼굴을 만인 앞에 드러내 주마.”
설하태는 자뢰검을 거칠게 칼집에 밀어 넣고는, 침전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설민혜 역시 의미심장한 눈빛을 무진에게 남긴 채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목조 문이 닫히고, 침전 내부에 마침내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소교주님!”
위강이 급히 다가와 무진의 무릎을 살폈다. 무릎 위의 가죽 담요는 이미 시커멓게 타들어 가 살가죽에 붙어 있었고, 등 뒤 야행복 안감은 갈비뼈 파열로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천 역시 눈물을 흘리며 휠체어 바퀴 축의 균열을 조사했다.
무진은 그들의 도움을 거절하며 상체를 서서히 앞으로 굽혔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단전 깊은 곳에서 참았던 부작용이 폭발하듯 밀려왔다.
“우욱…… 쿨럭!”
무진은 참았던 검붉은 가래와 선혈을 바닥을 향해 울컥 토해냈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물이 차가운 한철가면의 턱밑 틈새를 적시며 뚝뚝 떨어졌다. 설하태의 뇌풍강기를 직접 몸으로 받아내고 억지로 지면으로 흘려보낸 대가였다. 단전 깊은 곳에서 맥상위장술의 은침 기운과 빙백초의 잔류 한기가 급격히 뒤틀리며, 전신의 경맥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열과 통증이 그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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