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방문
끼이이익, 스스스.
천마각 침전 벽면의 비밀 통로가 소리 없이 닫혔다. 좁고 어두운 흙길을 기어 나오는 내내, 무진은 전신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듯한 극통에 시달려야 했다. 축골술(縮骨術)을 풀어 원래의 골격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매번 뼈마디에 불달군 송곳을 박아 넣는 것 같은 가학적인 고통을 동반했다. 게다가 낮에 삼켰던 빙백초(氷魄草)의 잔류 한기가 단전 주위를 여전히 차갑게 옥죄고 있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부근의 미세 골절 부위가 비명을 질렀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침상 위에서 휠체어를 탄 채 소교주 설하진의 대역 실루엣을 연기하고 있던 소천이 급히 뛰어내려왔다. 소천은 무진의 찢어진 야행복 등 뒤로 흐르는 붉은 선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진은 떨리는 손으로 소천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라. 곽 집사 늙은 여우의 눈이 아직 밖에서 빛나고 있다."
무진은 품속에서 약고에서 절취한 서늘한 빙혼석과 붉은 천령삼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밀정의 시체에서 빼앗은, 자색 인장이 찍힌 ‘가짜 가면 도안’을 소매 안쪽 깊숙한 비밀 주머니에 다져 넣었다. 장로회가 이미 자신을 대체할 새로운 대역 노비를 물색 중이라는 사실은 무진의 심장을 얼음 송곳처럼 찔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짜 설하진의 무공인 천뢰마공을 완벽하게 모사해내야만 했다.
그때, 침전의 창문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마교의 추방당한 의원이자 무진의 유일한 의학적 조력자인 설약경이었다. 설약경은 탁자 위의 약재들을 보자마자 안도와 탐욕이 뒤섞인 기괴한 안광을 뿜어냈다.
"빙혼석과 천령삼…… 기어코 가져왔구나! 이로써 내 딸아이의 음독을 치료할 이종진기단을 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약속은 지켰다. 이제 내 단전의 위장을 시작해라. 장로회의 눈을 속여야 한다."
무진이 흑단목 휠체어에 몸을 던지듯 앉으며 차갑게 말했다. 설약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서 한철로 된 침통을 꺼냈다. 그는 예리한 은침 세 자루를 뽑아 들어 무진의 왼쪽 손목 요골 혈도와 가슴의 신문혈에 깊숙이 자침했다. 맥상위장술(脈象僞裝術)의 시술이었다.
"흐읍……!"
은침이 경혈을 관통하는 순간, 무진은 단전이 거꾸로 뒤집히는 듯한 극심한 오한을 느꼈다. 설약경의 침술은 무진의 전신 진기 흐름을 강제로 억누르고 역류시켜, 외부의 고수들이 맥을 짚었을 때 오직 단전이 완전히 파열되어 쓸모없어진 이류(二流) 수준의 병약한 맥상으로만 느껴지게 만들었다. 진짜 설하진의 단전 파열 상태를 완벽하게 모사한 기만의 극의였다.
"됐다. 이제 누가 네 맥을 짚어도 무공을 잃은 폐인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력이 억제된 상태니 무리하게 힘을 쓰면 경맥이 폭발할 게야."
설약경이 은밀히 창문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쿵!
천마각 침전의 묵직한 목조 문이 허락도 없이 거칠게 열려젖혀졌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가벼우면서도 지면을 지극히 패도적으로 내딛는 소리. 침전 입구에 서 있던 호위무사 위강이 즉각 검자루를 쥐며 삼엄한 살기를 뿜어냈다.
"누구냐! 소교주님의 침전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자가!"
"호들갑 떨지 말거라, 위강. 이 어미가 오랜만에 조카의 안부를 물으러 온 것뿐이니."
화려한 자색 비단 장포를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교주 설천악의 누이이자 마교의 권력자인 가짜 고모, 설민혜였다. 그녀의 뱀처럼 차갑고 예리한 눈매는 벌써부터 침전 내부의 공기와 무진의 안색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어깨가 넓고 힘이 넘쳐나는 방계 공자 설하태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따르고 있었다. 설하태의 허리춤에는 자색 뇌격의 기운이 서린 보검 자뢰검(紫雷劍)이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무진은 가면 속에서 정안(靜眼)을 조용히 가동했다. 설민혜의 소매 끝에 숨겨진 음독 침 발사 장치와 설하태의 다리에 실린 일류 극의의 뇌풍강기 흐름이 붉은 궤적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침전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고모님께서 이 깊은 밤에 무슨 일로 천마각까지 걸음 하셨습니까?"
무진은 변성술(變聲術)을 극도로 끌어올려 진짜 설하진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오만한 하이톤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리가 마비된 척 연기하기 위해 호랑이 가죽 담요를 무릎 위로 더 단단히 끌어당기며, 휠체어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설민혜는 가식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무진의 침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예리한 안광이 무진의 다리를 덮은 담요 아래를 집요하게 꿰뚫으려 했다.
"하진아, 강남 무림맹과의 평화 회담을 앞두고 네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총단에 돌더구나. 이 고모의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방계의 사냥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필요는 없지요."
무진의 가시 돋친 독설에 뒤에 서 있던 설하태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설하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무진이 타고 있는 흑단목 휠체어의 바퀴를 군화 발로 툭 차서 흔들었다.
덜컹!
"사촌 형님, 여전히 입담은 살아계시는군요. 하지만 다리가 이 지경이 되셨는데도 그 오만함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위강이 분노로 안광을 빛내며 묵풍검을 반쯤 뽑아 들려 했다. 무진은 눈빛으로 위강을 제지했다. 지금 위강이 움직이면 장로회가 놓은 덫에 그대로 걸려드는 꼴이었다. 무진은 가면 뒤에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하태 너였구나. 서출의 핏줄이라 그런지 예법을 배우지 못한 개처럼 주인의 휠체어를 발로 차는 버릇은 여전하군. 장로회가 그리 가르치더냐?"
"이놈이……!"
설하태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무진의 휠체어 발판 위로 자신의 무거운 군화 발을 강하게 내리밟았다.
콰직!
흑단목으로 짜인 휠체어 발판이 쩍 갈라지며 무진의 발가락 관절을 가차 없이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지독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치솟았다. 단전에서 내력을 뿜어 그의 발을 튕겨내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렸으나, 무진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지금 힘을 보여주면 단전이 멀쩡하다는 사실이 탄나 장로회의 정기 검진 기만극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무진은 충격 흡수(衝擊 吸收) 기술을 극도로 발동하여 설하태의 발끝에서 전해지는 파괴적인 물리적 진동을 전신 관절의 유연함으로 흘려보내 지면으로 방출했다. 등 뒤의 미세 골절 부위가 다시 파열되며 야행복 안감으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가면의 좁은 눈 틈새 너머 무진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고요했다.
설민혜는 아들의 무례를 말리는 척 가식적인 손짓을 취했으나,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무진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지 여부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무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설하태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겨우 발판 하나 부수는 것이 네놈이 가진 무공의 전부더냐? 가소롭구나."
설하태는 무진이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지독한 열등감과 격분에 휩싸였다. 진짜 설하진이 무공을 잃은 폐인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그는 허리춤의 자뢰검으로 손을 뻗었다.
서릉—!
자색 비단 칼집에서 자뢰검이 뽑혀 나오며, 침전 내부의 공기가 찌릿한 뇌격의 살기로 가득 찼다. 설하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검 끝을 무진의 무릎을 향해 겨누었다. 검신을 타고 보랏빛 전류가 지지직거리며 뱀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말 다리에 감각이 없는지…… 이 사촌 동생이 직접 검으로 확인해 드리지요, 형님."
설하태는 자뢰검에 일류 극의의 뇌풍강기(雷風剛氣)를 실어 무진의 무릎 뼈를 향해 서서히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찌릿한 번개 기운이 호랑이 가죽 담요를 태우며 무진의 살가죽을 향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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