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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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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탁!


천장 깊은 곳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불길한 마찰음이 고요한 지하실의 공기를 찢었다. 철문 너머, 어두운 약고 내부의 천장 기어 틈새로 낙하하는 흑철 칼날의 궤적이 무진의 정안(靜眼)이 그리는 붉은 시야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곽 집사, 늙은 쥐새끼가 기어코 덫을 놓았구나.’


무진은 한철가면 속에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기 검진을 기만으로 통과하자마자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우측 안구의 실핏줄이 터질 듯 팽창하며 정안의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어둠 속, 허공을 가로지르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강철 인장 실들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철문을 여는 순간 그 실이 당겨지며 천장에 숨겨진 거대한 흑철 낙하 칼날이 격발된 것이다.


슈우우우욱!


무게가 수백 근에 달하는 흑철 칼날이 무진의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떨어져 내렸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퇴로인 비밀 통로는 성인 사내 하나가 겨우 기어갈 정도로 비좁았고, 정면의 약고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면 그대로 두 동강이 날 터였다.


하지만 무진의 오른쪽 어깨는 으스러진 골절상으로 인해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고, 오른손 목 인대는 파열되어 덜렁거렸다. 게다가 낮에 복용했던 빙백초(氷魄草)의 잔류 한기가 단전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어 전신 경맥의 3할이 마비된 상태였다. 몸을 급격히 움직이려 하자 단전이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오한과 함께 관절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라. 여기서 멈추면 무희도, 나도 끝이다.’


무진은 이 악물고 전신의 관절을 스스로 어긋나게 만드는 축골술(縮骨術)을 시전했다.


우두둑, 우드득!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어깨와 척추가 압축되는 끔찍한 파찰음이 좁은 통로에 울렸다. 부러진 뼈들이 서로 마찰하며 신경을 찌르는 백색 고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무진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한철가면의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을 삼켰다. 신장을 순간적으로 삼 척 이상 줄이며 몸을 한껏 웅크린 무진은, 낙하하는 흑철 칼날과 바닥 돌판 사이의 손바닥 한 장만 한 틈새를 향해 신형을 던졌다.


쾅—!


거대한 칼날이 무진의 등가죽을 스치며 돌바닥에 박혔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무진은 축골술로 압축된 몸을 굴려 가며 간신히 약고 내부의 어둠 속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찢어진 야행복 등 뒤로 식은땀과 피가 섞여 흘렀지만, 멈출 여유는 없었다.


무진은 거친 호흡을 죽이며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과거 마교의 전용 대장장이였던 탁무선(탁무선)이 설계한 기문둔갑의 정밀한 기계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심연의 금고’였다. 약고의 사방 벽면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 흑철 판으로 채워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코를 찌르는 희귀 약재들의 쌉싸름한 향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바닥의 돌판 하나, 벽면의 이음새 하나조차 미세한 기어 장치와 연결되어 있어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독화살이나 마비 가스가 분출될 터였다.


무진은 정안을 가동한 채 소리 없이 움직였다. 발바닥의 용천혈에 미약한 음기 진기를 집중하여 지면과의 마찰 소음을 완벽히 흡수하는 묵영보(묵영보) 구결을 시전했다. 관절이 비틀릴 때마다 빙백초의 잔류 한기가 단전을 갉아먹었지만, 무진은 오직 눈앞의 기계적 궤적만을 쫓았다.


약고 중앙의 거대한 흑철 진열대 위에 그가 찾는 영약 상자가 보였다. 설약경이 요구했던 환맥단(환맥단)과 이종진기단(이종진기단)의 핵심 약재인 빙혼석과 천령삼이 보관된 상자였다.


하지만 상자 아래의 받침대에는 미세한 무게 센서 기믹이 설치되어 있었다. 상자를 들어 올리는 순간, 질량의 변화를 감지한 기어가 맞물리며 약고 전체가 폐쇄되고 침전의 소천이 대역을 서고 있는 알리바이가 완전히 박살 날 것이 분명했다.


무진은 소매 안쪽에서 철골굴 광산에서 몰래 빼돌려 숨겨두었던 묵직한 한철 광석 조각을 꺼냈다. 정안의 시야로 상자의 무게와 부피를 입체적으로 계산한 무진은, 왼손 끝으로 상자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한철 광석 조각을 받침대 위에 정밀하게 대체해 밀어 넣었다.


달그락.


미세한 금속음이 울렸으나, 기어 장치는 다행히 작동하지 않았다. 질량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춘 것이다. 무진은 상자 내부에서 서늘한 냉기를 내뿜는 푸른 빙혼석과 붉은 광채를 띠는 천령삼을 신속히 꺼내 품속에 다져 넣었다. 성공이었다.


하지만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뒤를 돌아선 순간, 약고 입구 쪽에서 아주 미세한 기류의 변화가 느껴졌다.


스스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스며드는 차가운 살기. 장로회의 둘째 장로 독고염이 배치한 감시조장 추풍(추풍)의 정예 밀정이었다. 밀정은 약고 내부의 미세한 공기 흐름이 달라진 것을 감지하고, 검자루에 손을 올린 채 무진이 숨어 있는 기어 장치 뒤편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 사각.


밀정의 가죽 장화가 미세한 돌가루를 밟는 소리가 무진의 귀에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들키면 끝이다. 소리 없이 죽여야 한다.’


무진은 무기를 뽑을 수 없었다. 검을 맞부딪치는 쇳소리가 단 한 번이라도 전각 위로 새어 나간다면, 천마각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릴 터였다. 무진은 묵영보를 극한으로 전개해 어둠 속에 자신의 신형을 완벽히 동화시켰다. 한기가 단전을 얼려 장기가 뒤틀리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범음호흡법으로 심장 박동을 극도로 늦추며 살기를 지웠다.


밀정이 무진이 숨어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 모퉁이를 돌아서는 찰나.


무진의 신형이 유령처럼 그의 등 뒤에서 솟아올랐다. 밀정이 기척을 느끼고 검을 반쯤 뽑아 돌리려 했으나, 무진의 왼손이 더 빨랐다. 무진은 손가락 끝에 미약한 음기 내력을 실어 밀정의 목덜미와 오른쪽 어깨의 핵심 혈도를 강하게 짚어 누르는 안마술(안마술)을 시전했다.


퍽!


“읍……!”


밀정은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안마술의 정밀한 압박에 의해 목의 기혈과 기도, 심장으로 가는 경맥이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폐쇄되었다. 밀정의 전신이 돌처럼 굳어버렸고, 그의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붉게 충혈되며 부풀어 올랐다.


무진은 굳어버린 밀정의 몸을 왼팔로 단단히 감싸 안으며, 그가 바닥에 쓰러지며 낼 수 있는 사소한 마찰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밀정은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숨을 들이쉬려 했으나, 폐포가 완전히 마비되어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 수십 초 만에 밀정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그의 목이 툭 꺾이며 완벽한 질식사 상태로 침묵에 잠겼다.


무진은 죽은 밀정의 시체를 기어 장치 아래의 어두운 틈새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의 옷자락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가문에 보고할 밀서나 장로회의 징표를 찾아 인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밀정의 품속 깊은 곳, 야행복 안감에 숨겨진 비밀 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얇은 양피지 한 장이 손끝에 걸려 나왔다.


무진은 양피지를 꺼내 정안의 시야로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과 함께 기괴한 문양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진이 지금 쓰고 있는 한철가면(한철가면)의 내부 기계 구조와 귀밑 자물쇠의 설계를 완벽하게 복제한 ‘가짜 가면 도안’이었다. 도안의 하단에는 둘째 장로 독고염의 자색 인장과 함께 나직한 필체로 밀서가 적혀 있었다.


[대역의 맥상이 비정상적이다. 진짜 설하진이 돌아오기 전에 이 모조 가면을 씌울 새로운 고기방패를 철골굴에서 추가로 선별하라.]


가면 속 무진의 붉은 눈동자가 지독한 분노와 전율로 가늘게 떨렸다. 장로회는 이미 소교주가 가짜 대역임을 의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체할 또 다른 가짜 대역 무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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