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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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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약경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무진의 안광과 마주쳤고,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가면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네놈은 설하진이 아니군.”


그 나직한 한마디가 무진의 심장을 얼려버릴 듯이 파고들었다.


천마각 침전의 문가에서는 다른 의원들이 서찰에 정기 검진 결과를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독고염의 세작인 곽 집사는 소교주의 무공이 소멸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며 위강과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짧은 틈을 타, 무진의 휠체어 옆에 바짝 밀착한 설약경만이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무진은 턱끝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느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방금 전 복용했던 빙백초(氷魄草)의 잔류 한기가 단전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며 전신 경맥의 3할을 얼려버린 상태였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어 흑단목 휠체어의 손잡이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무진은 성대의 근육을 쥐어짜며, 설하진 특유의 날카롭고 오만방자한 변성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감히 이 추방당한 의원 놈이 내 몸에 손을 대고 무례한 수작을 부리는구나. 위강! 당장 이 자의 손목을 잘라라!”


허장성세였다. 하지만 설약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진의 귀밑, 한철가면의 가시 침이 피부를 파고들어 굳은 딱지가 찢어진 상처 부위를 거친 손가락으로 지그시 내리눌렀다. 찌르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때렸으나 무진은 가면 안쪽에서 신음 소리를 억누르며 정안(靜眼)을 가동했다.


설약경의 눈동자 주변에 미세하게 솟구친 붉은 실핏줄. 그것은 광기에 가까운 원한과 집착의 증거였다. 설약경이 무진의 귓가에 조용히 소리 없는 전음(傳音)을 흘려보냈다.


‘소용없다. 설하진의 맥상은 병약할지언정 가문 비전의 천뢰마공 기운이 미세하게나마 뼈마디에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네놈의 골격은 비정상적으로 유연하며, 단전의 얼음벽 뒤에 숨겨진 진기는 마교의 그것이 아니야. 무엇보다…… 네 한철가면 귀밑의 흑철 자물쇠가 최근에 억지로 열렸던 흔적이 있더군. 진짜 소교주가 가면에 열쇠를 꽂아 스스로 얼굴을 찢었을 리가 없지.’


무진의 안광이 살기로 번뜩였다. 오른손 목 인대가 파열되고 어깨 관절이 어긋난 상태였지만, 손가락 끝의 안마술로 설약경의 목덜미 기혈을 즉사 각도로 타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설약경은 무진의 살기를 느끼고도 오히려 나직하게 비웃었다.


‘나를 죽여 입을 막고 싶겠지. 하지만 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문밖에 대기 중인 곽 집사와 장로회의 무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단전이 멀쩡하다는 사실이 들통나는 즉시, 네놈은 물론이고 백골문에 갇혀 있는 네 여동생 무희의 목숨도 끝장이다.’


여동생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무진의 전신이 굳어버렸다. 설약경은 이미 무진의 모든 신상과 약점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진은 살기를 거두고 차갑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설약경의 눈동자에 서린 복수심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설약경의 일족 몰살사(薛藥景의 一族 沒殺史)가 그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다.


‘과거 마교 설씨 가문은 내 일족을 기괴한 주술 실험의 제물로 삼아 몰살했다. 나 역시 그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아 이 퀴퀴한 약방에 버려지듯 처박혔지. 내 평생의 염원은 마교 가문의 혈통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마교의 음독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딸이 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신의 경맥을 강제로 융합하고 다스릴 이종진기단(二種珍氣丹)과 네 뒤틀린 맥상을 완벽히 속여줄 환맥단(換脈丹)이 필요하다.’


설약경은 침통을 매만지며 무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비약들의 핵심 재료인 빙혼석과 천령삼이 바로 이곳, 천마각 지하 비밀 약고에 숨겨져 있다. 장로회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공식적인 반출은 불가능하지. 네놈이 밤중에 그 약고에 침투해 약재들을 훔쳐 오너라. 성공한다면 네 여동생의 안전을 보장하고, 매 검진마다 네 단전 맥상을 소교주의 것으로 완벽히 위장해 주마. 어차피 이종 진기의 충돌을 막으려면 네놈에게도 이종진기단이 절실할 터.’


무진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직감했다. 설약경의 제안은 목을 죄어오는 밧줄이자, 동시에 지옥 같은 대역 놀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동맹의 손길이었다.


“거래는 성립되었다. 단, 내 누이의 신변에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네 딸의 목을 먼저 베어 가문에 바칠 것이다.”


“약속하지. 오늘 밤, 곽 집사의 감시가 가장 느슨해지는 자시(子時)에 움직여라.”


설약경은 은침을 거두고 태연하게 물러섰다. 의원단이 침전을 빠져나가자, 방 안에는 다시 음산한 침묵이 감돌았다.


밤이 깊어 자시가 가까워지자, 천마각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진은 흑단목 휠체어에 앉아 전신의 통증을 다스렸다. 오른쪽 어깨의 골절상과 갈비뼈의 미세한 균열이 숨을 쉴 때마다 에이는 듯한 고통을 유발했다. 게다가 빙백초의 잔류 한기가 단전 주변에 굳어 있어 기혈의 흐름이 둔탁했다.


스스스.


그때, 침전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곽 집사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독고염의 지령을 받은 곽 집사는 소교주의 거동을 불시에 살피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침전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의 뱀 같은 눈빛이 무진의 다리와 방 안의 집기들을 예리하게 훑었다.


“소교주님, 밤이 깊어 심신을 안정시킬 따뜻한 차를 올립니다.”


곽 집사는 차를 내려놓는 척하며 무진의 무릎을 덮은 호랑이 가죽 담요의 위치가 낮과 미세하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무진은 가면 속에서 정안을 가동해 곽 집사의 시선 방향을 읽어냈다.


무진은 왼손을 뻗어 찻잔을 사정없이 쳐서 바닥으로 날려버렸다.


쨍그랑!


뜨거운 찻물이 돌바닥에 튀며 자욱한 김을 피워 올렸다. 무진은 소교주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오만한 독설을 내뱉었다.


“독고염의 개새끼가 보낸 차 따위를 내가 마실 것 같으냐! 이 늙은 쥐새끼가 감히 내 침소까지 제집처럼 드나들며 내 거동을 살피려 드는구나. 당장 꺼지지 않으면 위강을 시켜 네놈의 가죽을 벗겨 천마각 대문에 걸어두겠다!”


포악하고 거침없는 기세에 곽 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무공을 잃은 폐인이라 할지라도 소교주의 지위는 엄연히 살아 있었다. 위강이 침묵 속에서 검자루를 쥐자, 곽 집사는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며 뒤로 물러섰다.


“소, 송구하옵니다 소교주님! 노복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곽 집사가 황급히 문을 닫고 물러가자, 무진은 숨을 길게 내쉬며 단전의 한기를 다스렸다. 시간이 없었다. 곽 집사의 미행이 완전히 차단된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무진은 휠체어를 굴려 침대 옆 비밀 보관함 앞으로 향했다. 그곳의 바닥 타일 중 하나를 특정 각도로 누르자, 목삼이 설계해 둔 정밀한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울렸다.


스르륵.


돌바닥이 소리 없이 갈라지며 좁고 어두운 흙길이 드러났다. 천마각 지하 비밀 통로(天마閣 地下 秘密 通路)였다. 무진은 휠체어에서 상체를 굽혀 좁은 통로 안으로 신형을 밀어 넣었다. 어깨의 골절상과 갈비뼈의 내상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진은 이 악물고 묵영신법의 호흡으로 소리를 지우며 기어 나갔.


비좁고 습한 통로를 한참 동안 기어간 끝에, 마침내 천마각 비밀 약고의 흑철 문이 무진의 눈앞에 나타났다. 문틈 사이로 희귀한 영약들의 쌉싸름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진은 한철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조심스럽게 맞추었다.


철컥.


비밀 통로의 철문을 열고 약고 내부로 진입하려는 순간, 천장 위에서 곽 집사가 배치한 은밀한 진법 장치가 작동하며 쇳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데...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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