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의 선택
지하 백 장 아래, 마교의 가장 깊고 음산한 나락인 철골굴(鐵骨窟)의 공기는 언제나 피와 썩은 철 냄새로 가득했다.
우두둑, 우드득.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뼈 부딪히는 소리와 노비들의 신음이 축축한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열일곱 살의 노비 소년 무진은 쇠사슬에 묶인 채 차가운 흑석 바닥에 무릎이 꿇려 있었다. 소년의 야윈 어깨 위로 떨어지는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마치 그를 집어삼키려는 괴물의 아가리처럼 일렁였다.
“똑같군. 체구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 비열하게 가라앉은 눈빛마저도.”
거친 가죽 무복을 입은 철골굴의 총교관, 강태성이 무진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리며 읊조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풍기는 피비린내가 무진의 코끝을 찔렀지만, 무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간수와 눈을 마주치지 말 것. 매질을 당할 때는 소리를 내지 말 것.’
머릿속에 박힌 철골굴 생존 수칙이 무진의 이성을 차갑게 옭아맸다. 고개를 들면 즉사다. 그것이 이곳의 유일한 철칙이었다.
강태성의 뒤편 어둠 속에서, 마교의 둘째 장로 독고염이 보낸 밀사가 기괴한 기물 하나를 들고 걸어 나왔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광채를 내뿜는 한철(寒鐵)로 주조된 가면이었다. 사람의 얼굴 뼈대를 그대로 본뜬 한철가면의 안쪽에는 벼루처럼 날카로운 미세한 가시 침들이 돋아나 있었다.
“소교주 설하진께서 폐관 수련 도중 단전이 깨져 도망치셨다. 교주께서 이 사실을 아시는 날에는 철골굴은 물론이고 장로회 전체가 피바람에 쓸려나갈 터.”
밀사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오늘부터 너는 인간 사냥의 표적이자 겁쟁이 소교주의 대역이다. 이 가면을 쓰고 사지에서 살아남아라. 만약 정체가 탄탄나거나 도망치려 한다면, 네 누이 무희의 사지를 찢어 이곳 채굴장의 밑거름으로 쓸 것이다.”
무희.
그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무진의 비쩍 마른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백골문의 하급 침선비로 잡혀가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유일한 혈육이자 여동생. 무진이 이 지옥 같은 대역 기만극을 수락한 단 하나의 약점이자 구원이었다.
“씌워라.”
강태성의 무자비한 군령이 떨어졌다.
교관들이 무진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차가운 한철가면이 무진의 얼굴 위로 사정없이 내리눌려졌다.
푸욱, 푹!
“윽……!”
가면 안쪽에 돋아난 미세한 가시 침들이 무진의 뺨과 이마, 턱뼈의 살가죽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갔다. 생살이 찢기고 뼈를 긁는 극심한 고통에 무진의 전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찢어진 틈새로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와 철가면의 턱밑 틈새로 뚝뚝 떨어졌다.
철컥, 철컥!
귀밑 부분의 흑철 홈에 한철 열쇠가 꽂히고 세 번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기계 장치가 맞물리며 가면은 무진의 안면 뼈대를 터질 것처럼 조여왔다. 이제 열쇠 없이는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영원한 철의 족쇄가 소년의 얼굴을 완전히 가두어버린 것이다.
“흐하하! 아주 기가 막힌 대역이 탄생했군.”
강태성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쫙! 쫘아악!
무진의 삼베옷이 찢겨 나가며 등에 붉은 파열상이 새겨졌다. 가시 박힌 채찍이 살점을 뜯어낼 때마다 지독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치솟았다. 하지만 무진은 소리 내어 울부짖지 않았다. 가면의 좁은 눈 틈새 너머로, 강태성의 어깨 근육이 수축하는 각도와 채찍을 휘두르는 팔꿈치의 궤적을 바둑판을 보듯 집요하게 관찰했다.
‘오른쪽 어깨가 삼 분 내려앉을 때 채찍 끝이 왼쪽 사각을 때린다. 발바닥의 무게중심은 뒤꿈치에 쏠려 있다.’
무공이 없는 삼류(三流) 노비의 몸뚱이였지만, 무진에게는 타고난 기이한 신체적 재능이 있었다. 뼈가 비정상적으로 유연하여 타격을 흘려보내는 근골, 그리고 극도의 고요 속에서 적의 움직임을 느리게 포착하는 눈. 비록 지금은 내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소년의 내면에는 가해자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차가운 관찰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쓸모없는 고기방패 놈을 당장 제3채굴장으로 처넣어라! 사흘 동안 살아서 흑철 광석 백 근을 캐내지 못한다면, 대역의 자격조차 없는 것이니 그 자리에서 매장해 버려라!”
교관들의 거친 손길에 이끌려 무진은 철골굴에서 가장 깊고 위험한 제3채굴장으로 던져졌다.
천장이 수시로 무너져 내리는 낙석 지대이자, 마시면 폐가 썩어 들어가는 흑철 먼지가 자욱한 죽음의 광도였다. 무진의 손에는 무겁고 투박한 곡괭이 한 자루가 쥐어졌다.
“캐라! 쉬는 시간은 없다. 하루 16시간 동안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채찍이 네 뼈를 부술 것이다!”
간수들의 고함 소리와 함께 채굴장의 무거운 철문이 닫혔다. 완전한 암흑과 희미한 횃불빛만이 남은 공간.
쿠구구구!
갑자기 천장이 흔들리며 거대한 바위더미가 무진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광산 붕괴의 신호였다. 다른 노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혼란 속에서, 무진은 침착하게 정안(靜眼)의 감각을 가동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돌멩이들의 낙하 궤적이 기묘하게 느려 보였다.
‘왼쪽 삼 보, 뒤로 이 보.’
무진은 전신의 뼈마디를 기형적인 각도로 비틀며 떨어지는 낙석의 틈새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뼈가 흐물흐물하게 휘어지는 특이 체질 덕분에, 거대한 바위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관절을 탈골시키듯 꺾어 충격을 완벽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퍼억! 콰아앙!
그가 서 있던 자리가 거대한 돌더미로 주저앉았지만, 무진은 가벼운 타박상만을 입은 채 살아남았다. 숨을 헐떡이며 찢어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곡괭이를 다시 쥐었다. 가면 안쪽에서 흘러내린 피가 차가운 철판에 눌어붙어 지독한 가려움과 통증을 유발했지만, 소년은 묵묵히 광석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깡! 까앙!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16시간의 가혹한 노동이 끝난 후, 무진은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관절이 어긋난 채 썩은 짚더미가 깔린 어두운 감방 구석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가면의 좁은 틈새로 들어오는 공기는 희박했고, 등의 채찍 상처는 차가운 지하의 습기를 만나 덧나기 시작했다. 뼈가 에이는 듯한 신경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아…… 윽……”
스스로 어깨뼈를 맞추려 손을 뻗으려 했으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얼어 죽거나 쇠독에 중독되어 소모품처럼 버려질 것인가. 절망의 한기가 소년의 심장을 조여오던 그때였다.
스스스슥…….
기괴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썩은 짚더미를 헤치며 무언가가 기어 오고 있었다. 무진은 경계하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두 눈이 짓물러 멀어버렸고, 온몸의 뼈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가부좌조차 제대로 틀지 못하는 늙은 장님 노비, 독고충이었다.
독고충은 흙투성이 손을 내밀어 무진의 야윈 다리를 더듬더니, 이내 기어 올라와 무진의 척추 중앙을 짚었다.
“누구……냐.”
무진이 갈라진 성대를 조여 신경질적인 소교주의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독고충의 손가락 끝이 무진의 척추 마디마디를 강하게 내리누르는 순간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직, 지지직.
독고충의 거친 손끝에서 기묘하고 음산한 음기(陰氣)가 뿜어져 나와 무진의 단전과 뼈마디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긋나 있던 어깨뼈와 갈비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는 극통이 전신을 관통했지만, 무진은 가면의 눈 틈새로 독고충의 얼굴을 지독하게 노려보았다.
독고충은 장님의 먼 눈으로 무진의 철가면을 응시하는 듯하더니, 이내 소년의 전신 골격이 가진 기이한 유연함과 꺾임새를 손끝 감각으로 완전히 훑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크흐흐…… 큭큭큭!”
늙은 장님의 입술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감방의 퀴퀴한 어둠을 가르는 음산하고 웅장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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