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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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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깊게 가라앉은 천마전(天魔殿)의 침전은 오직 한 줄기 촛불만이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사방에 드리워진 검은 비단 장막은 바깥세상의 빛을 완벽하게 차단했고, 방 안에는 기괴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


"우웁……! 쿨럭! 쿨럭!"


휠체어에 기대어 앉아 있던 연하진이 갑작스레 상체를 꺾으며 격렬한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하얀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은빛 철가면 아래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구음절맥(九陰絶脈).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경맥이 뒤틀려 막힌 시한부의 육체. 어젯밤, 예리한 안광으로 자신을 검증하려던 혈조각주 사패(司覇)를 속이기 위해 감행했던 ‘사혈 동조 침술’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억지로 열었던 기맥은 이제 성이 난 독사처럼 날뛰며 하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잘게 부서지는 듯한 극통에 하진은 이를 악물었다.


소리 없이 다가온 늙은 벙어리 시종 아복(아복)이 마른 수건으로 하진의 입가와 철가면에 묻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그의 흐릿한 눈망울에는 깊은 연민과 함께 주군의 안위를 걱정하는 빛이 가득했다. 아복은 갈홍이 조제해 준 혈맥 안정 약탕을 따뜻하게 데워 하진의 입가에 대어 주었다. 뼛속까지 시린 약탕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요동치던 심박이 간신히 진정세를 보였다.


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머릿속 가상의 서고, ‘기억의 궁전’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패를 포섭한 것은 거대한 수확이다. 하지만 대장로 독고용(獨孤龍)은 결코 만만한 늙은이가 아니다.’


사패가 무릎을 꿇는 광경을 목격하고 도망친 대장로의 밀정은 틀림없이 독고용에게 ‘천마의 무공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보고를 올렸을 터였다. 독고용은 공포에 질리는 동시에, 더는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극단적인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비상 장로회’였다.


장로 전당(長로 殿堂)에 마교의 모든 원로들을 소집하여, 교주의 철가면을 강제로 벗기고 그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정치적 음모.


‘적이 판을 짜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의 단전을 통째로 부숴버릴 미끼를 던져야 한다.’


하진의 눈동자가 철가면의 좁은 틈새 너머로 서늘하게 빛났다. 그는 떨리는 왼손을 움직여 탁자 위의 한지 위에 붓을 들었다. 그리고 기억의 궁전 깊숙한 곳, 무림맹과 마교의 수많은 비전 구결들이 보관된 서랍을 열었다.


그가 설계하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전설의 무공, 바로 가짜 천마기공 '허무심법'(虛無心法)이었다.


하진은 선친 연우량이 남긴 정세 비망록과 유가의 역학 이론, 그리고 마교 천마신공의 기초 구결을 정교하게 융합하기 시작했다. 허무심법의 서두는 그 어떤 일류 고수가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완벽하고 심오한 도가(道家)의 청명한 기운으로 포장되었다. 단전의 화기(火氣)를 누르고 주화입마를 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구결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기하학적 함정이었다.


‘태음(太陰)의 맥을 따라 기를 흘려보내다, 제3단계에 이르러 기혈을 극도로 압축하는 순간…….’


하진의 붓끝이 한지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제3단계의 구결은 교묘하게 경맥의 흐름을 뒤틀어 놓았다. 수련자가 내공을 극대화하려 할수록,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진기가 심장 부근의 거궐혈로 역류하여 스스로 경맥을 찢어발기도록 설계된 최악의 역류 공법이었다. 무공 지식이 일천한 삼류 무사는 물론이고, 평생 무를 닦아온 초일류 고수조차 탐욕에 눈이 멀면 그 모순을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신화적인 위조 비급이었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가짜 비급의 필사본이 완성되었다. 하진은 붓을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매향(梅香)을 들여보내라."


하진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목의 은판을 울리며 침전을 차갑게 진동시켰. 아복이 묵묵히 고개를 숙인 뒤 장막 너머로 사라졌고, 이윽고 화려한 시녀 복을 입은 미모의 여인, 매향이 부들부들 떨며 안으로 들어섰.


그녀는 원래 대장로 독고용이 천마를 감시하기 위해 심어놓은 수석 시녀이자 첩자였으나, 이미 하진에게 가족의 생사를 저당 잡혀 이중간첩으로 전향한 상태였다.


"교, 교주님. 미천한 매향, 대령했사옵니다."


매향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철가면을 쓴 가짜 천마가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지적 위압감은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하진은 휠체어에 앉은 채, 방금 완성한 허무심법의 비급을 서고의 가장 은밀한 서랍 속에 넣는 모습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대장로가 본좌의 주화입마를 치료할 비전 구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더군. 매향아, 네가 오늘 밤 천마전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이 서랍 속 비급을 ‘훔쳐’ 대장로에게 전달하거라. 단 한 점의 의심도 사지 않도록 완벽하게 연출해야 할 것이다."


매향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그녀는 이 비급이 대장로파를 파멸로 이끌 치명적인 독배임을 직감했다.


"조, 존명……. 목숨을 걸고 대장로의 손에 쥐여주겠나이다."


"가거라. 네 가족의 목숨줄이 이 비급 한 장에 걸려 있음을 명심하고."


하진의 무심한 경고에 매향은 이마를 바닥에 찧은 뒤,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비급을 품에 안고 천마전을 빠져나갔다. 침전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고, 하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미끼는 던져졌다. 이제 탐욕스러운 늙은 뱀이 미끼를 물 차례였다.


* * *


같은 시각, 흑월곡 외곽의 웅장한 대장로 처소.


대장로 독고용은 매향이 목숨을 걸고 훔쳐왔다는 허무심법의 필사본을 등잔불 밑에서 정밀하게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긴 백수염이 흥분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뱀처럼 매서운 안광이 한지 위에 적힌 심오한 구결들을 탐욕스럽게 핥았다.


"오오……! 도가의 극의와 마교의 천마신공이 이토록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다니!"


독고용은 평생 초일류의 무공을 닦아온 고수였다. 그렇기에 하진이 설계한 허무심법의 앞부분이 지닌 압도적인 정교함에 완벽하게 매료당했다. 기맥의 뒤틀림을 바로잡고 진기를 순식간에 폭발시키는 구결들은, 주화입마에 빠진 천마가 왜 휠체어에 앉아서도 그런 가공할 위엄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유일한 단서처럼 보였다.


"교주 놈이 주화입마를 치료하기 위해 이 심법을 비밀리에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구나!"


독고용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걸렸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최측근 장로 마불(馬佛)이 거구의 몸을 기울이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장로님, 정말 이 비급이 진짜 천마의 비전 구결이 맞사옵니까? 혹여 가짜일 위험은……."


"바보 같은 소리! 이 구결의 깊이는 화경(化境)의 경지에 도달한 자가 아니면 평생 단 한 줄도 적어 내릴 수 없는 무의 극의다! 내공이 없는 서생 따위가 이토록 완벽한 경맥의 흐름을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해!"


독고용은 자신의 무학적 자부심에 갇혀 하진의 지적 천재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수하 정예 무사 세 명을 불러들였다.


"너희들은 지금 즉시 이 허무심법의 제1단계 구결을 연마해 보아라. 내 단전의 흐름을 직접 관찰하겠다."


무사들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비급의 구결대로 기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단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무사들의 얼굴에 붉은 생기가 돌며 단전 부근에서 강력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단전의 진기가 이전보다 배는 빠르게 회전하옵니다! 가슴속의 뭉쳤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무사들의 감탄에 독고용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것이 기맥 역류의 초기 증상인 일시적 기혈 팽창이라는 사실을, 탐욕에 눈이 먼 늙은 마두는 깨닫지 못했다. 미세한 역류의 불씨가 그들의 단전 깊은 곳에 심어지는 순간이었다.


독고용은 비급을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장착하며 광기 어린 안광을 번뜩였다.


"좋다! 교주 놈이 이 비급으로 주화입마를 완전히 치료하기 전에, 장로 전당에서 그의 가면을 벗겨내야 한다! 무공의 약점을 쥐었으니, 장로회 당일 놈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 * *


사흘 뒤, 운명의 날이 밝았다.


흑월마교 총단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장로 전당(長老 殿堂).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버티고 서 있는 어둡고 장엄한 전각 내부는 침묵을 지키는 수십 명의 장로들이 뿜어내는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대장로 독고용을 중심으로 모인 반란파 장로들은 소매 속에 무기를 숨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고고고고고-!


장로 전당의 거대한 철문이 무거운 금속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밤안개가 전당 바닥을 쓸며 흘러들었다.


안개 속에서, 정교한 흑단목 거치 휠체어의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차가운 은빛 천마 철가면을 얼굴에 고정하고, 화려한 흑색 비단 장포를 걸친 연하진이 휠체어에 앉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왼손에는 은빛 철선 '천기선'이 쥐여져 있었고, 그의 안광은 철가면의 슬릿 너머로 전당 내부의 모든 살기를 차분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단 한 푼의 내공도 없는 병약한 서생이, 자신을 찢어 죽이려는 수십 명의 초일류 고수들이 대기 중인 사지로 당당하게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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