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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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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설천우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천마전 침전의 묵직한 내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뼛속까지 시린 빙백검기(氷魄劍氣)가 방안의 촛불들을 단숨에 꺼뜨리며 서늘하게 휘몰아쳤다. 어둠이 순식간에 방안을 지배했고, 오직 열린 문 틈새로 흘러드는 복도의 푸르스름한 월광만이 좌호법 설천우의 서늘한 은빛 무복을 비추고 있었다.


장막 뒤, 흑단목 휠체어에 앉아 있던 연하진은 허파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초일류 고수가 뿜어내는 살기 서린 검풍은 무공이 없는 그의 뒤틀린 경맥을 가차 없이 유린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핏물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진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피를 강제로 삼켰다. 철가면 내부의 좁은 공간으로 비린 피비린내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단 한 번의 신음이라도 내뱉는 순간, 모든 기만극은 끝이다.


설천우는 얇은 명주 장막 앞에 우뚝 서서, 검자루를 쥔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의 안광은 얼음송곳처럼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교주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총단 내에 도는 흉흉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본좌가 직접 교주님의 기혈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주화입마로 인해 단전이 파열되셨다면, 마교의 호법으로서 마땅히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천우의 목소리에는 거침없는 야심과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장막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의 보법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의 카펫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그가 장막을 걷어내고 하진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내공이 단 한 푼도 없는 병약한 서생의 실체는 백일하에 드러날 터였다. 하진의 떨리는 왼손이 휠체어 팔걸이 밑에 숨겨진 은빛 철선 '천기선(天機線)'의 손잡이로 향했다. 손가락 끝이 천기선의 미세한 화약 격발 스위치에 닿았다. 최악의 순간에는 이 철선에서 독침을 뿜어내고 동귀어진할 수밖에 없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식은땀이 철가면 내부를 적셨다.


‘진정해라. 상대는 의심이 많고 잃을 것이 많은 자다. 강할수록 공포에 약한 법이다.’


하진은 뇌리 속 가상의 서고, ‘기억의 궁전’을 급격히 회전시켰다. 천마비록의 설천우 페이지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의 가문, 그의 약점, 그의 두려움들이 정교한 체스판의 말처럼 배치되었다.


하진은 휠체어의 바퀴를 미세하게 굴려 천마전 한가운데의 특정 위치로 이동했다. 그곳은 천마전 천장의 목조 돔 구조가 만들어내는 음향의 초점, 즉 소리가 사방으로 가장 완벽하게 반사되는 중심점이었다.


하진은 왼손으로 천기선을 쥔 채, 오른손 손가락으로 목에 부착된 얇은 은판의 위치를 조절했다. 목구멍 깊은 곳의 성대를 짓누르며 복부의 압력을 극한으로 수축시켰다. 목소리 변조 복화술(腹話術)의 시동이었다.


하진이 입술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목구멍 속 은판의 진동만을 이용해 아주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설천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하진의 가냘픈 속삭임은 천마전 천장의 돔형 구조를 타고 벽면에 설치된 수십 개의 청동 공명판으로 반사되었다. 사방의 벽면이 동시에 미세하게 진동하며, 듣는 이의 귀 바로 뒤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웅장하고 묵직한 음향으로 증폭되었다. 소리 반사 성음공 트릭이었다.


쿠구구구구-!


천마전 내부의 먼지 쌓인 청동 기물들이 공명하며 바르르 떨렸다. 사방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교주의 목소리는 흡사 심오한 내공을 담아 뇌를 직접 타격하는 사자후(獅子吼)의 극의와도 같았다.


"네놈이 기어이 본좌의 침전에서 칼을 뽑는구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설천우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오만한 안광에 순간적으로 당혹감과 경악이 스쳐 지나갔. 설천우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기세를 방어하기 위해 빙백검기를 급격히 회수했다. 장막 너머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의 압도적인 기세는, 단전이 파열된 병자의 그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천우는 이내 이를 악물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목소리는 여전하십니다, 교주님. 하지만 본좌의 빙백검기가 이토록 방안을 휘감고 있음에도, 장막 너머에서는 그 어떤 내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진짜 강자라면 본좌의 기세를 진작에 내공 장막으로 밀어내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리한 지적이었다. 설천우는 역시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그는 촉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장막 너머의 무형의 공백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진은 철가면의 얇은 슬릿 틈새로 관찰안 1단계: 미세 표정 포착을 가동했다. 달빛에 비친 설천우의 얼굴이 하진의 시야에 정밀하게 들어왔.


설천우의 왼쪽 눈꺼풀이 0.1초 동안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그의 턱 근육은 비정상적으로 굳어 있었고, 검자루를 쥔 손아귀에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확신에 찬 공격자의 자세가 아니었다. 혹시나 천마가 진짜 무공을 숨기고 있어 자신이 즉사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심리적 공포와 불안감이 자아내는 방어적 태세였다.


‘걸려들었다. 저놈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공포의 틈새에 쐐기를 박아넣어야 한다.’


하진은 은판을 울려 다시 한번 웅장한 반사 목소리를 격발했다. 이번에는 분노가 아닌,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차갑고 나지막한 조소였다.


"내력의 파동이라…… 설천우, 네놈의 얄팍한 경지로는 본좌의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감지할 수조차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구나. 네놈이 믿는 것은 오직 눈앞의 칼날뿐이니, 가문의 파멸이 다가오는 것조차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가문의 파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설천우의 어깨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진은 기억의 궁전에서 암기해 둔 천마비록의 설씨 가문 비리 내역을 한 자 한 자 나지막이 읊조렸다. 목소리는 사방의 벽을 타고 설천우의 고막을 직접 때렸다.


"설태진. 네놈의 숙부가 흑철 광산의 이권을 빼돌려 정파의 남궁세가(南宮世家)와 은밀히 불법 무기를 거래해 온 것이 벌써 오 년째더구나. 매달 보름날 밤, 북악 계곡의 제3수로를 통해 나간 철광석의 양이 자그마치 수만 근에 달하지."


설천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검을 쥔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것은 설씨 가문의 존망이 걸린 최악의 극비 사항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장로회에 폭로된다면, 설씨 가문은 정파와 내통한 반역죄로 삼족이 멸해질 터였다. 설천우는 천마가 주화입마로 누워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가문 목줄을 완벽하게 쥐고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절망과 공포를 느꼈다.


"교, 교주님…… 그것은……."


설천우의 목소리가 처참하게 흔들렸다. 그의 빙백검기가 완전히 흩어지며 방안의 서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장막 뒤의 하진은 천기선을 쥔 손을 천천히 내리며, 철가면 속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심리전의 완벽한 승리였다. 설천우는 이제 무공의 유무를 검증할 이성을 잃었다. 가문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그의 뇌리를 완전히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천우는 물러서기 전, 마지막으로 벼랑 끝에 몰린 짐승 같은 눈빛을 번뜩였다. 그는 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기묘한 청동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딸깍-


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방안에 기괴한 비린내가 감돌기 시작했다. 설천우가 하진을 향해 상자를 내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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