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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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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은빛 철가면의 차가운 표면에 닿아 미세한 이슬로 맺혔다.


천마전 침전 내부를 가득 채운 보랏빛 안개는 소리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내공을 지닌 고수라면 단전을 뒤틀어 발작을 일으켰을 치명적인 무색무취 독향(無色無觸 毒香). 하지만 단 한 푼의 내공도 존재하지 않는 연하진의 ‘구음절맥’ 신체는 그 어떤 기맥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기맥의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 그것은 무림의 상식선에서 오직 독을 완벽하게 다스리는 ‘만독불침’의 초월적 경지에 도달한 괴물만이 보일 수 있는 기적이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혁련소소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요염하게 휘어졌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제 경악과 깊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아버님의 독향을 정면으로 마시고도 기의 흐름조차 흔들리지 않다니. 이 자는 진짜 괴물이다.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소문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었어!’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타들어 가는 식도와 위장의 극통을 정신력으로 짓눌렀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검은 피가 울컥 솟구치려 했으나, 그는 찻잔을 쥔 왼손에 힘을 주며 강제로 피비린내를 삼켰다. 그의 오른손은 이전 사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감각 없이 휠체어 팔걸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직 왼손 하나에 전 가문과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하진은 목에 부착된 은판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후두 근육을 극도로 수축시키며 복화술 발성을 가동하자, 사방의 청동 공명판이 울리며 침전 전체를 뒤흔드는 웅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도천극의 개가 혀가 제법 길구나. 혁련소소, 네 왼쪽 눈꺼풀이 방금 세 번 떨렸고, 목덜미의 경동맥 박동은 평소보다 두 배나 빠르다. 본좌의 눈 앞에서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교, 교주님……! 소녀는 단지 아버님의 명을 받아 차를 올렸을 뿐이옵니다. 결코 다른 뜻은 없었사옵니다!”


혁련소소는 살려달라는 듯 처량한 목소리로 애원하며 고개를 더 낮추었다. 그녀의 보랏빛 손톱 끝이 천마전의 대리석 바닥을 긁으며 쟁강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진은 ‘관찰안 1단계: 미세 표정 포착’을 극한으로 가동했다. 철가면의 좁은 슬릿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차가운 안광이 혁련소소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그녀의 뺨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고, 호흡은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 기술이 그녀의 내면에 도사린 극도의 공포와 배신의 흔적을 실시간으로 도출해 냈다.


“거짓말.”


단 한 마디였다.


나지막하지만 전당의 모든 공기를 얼려버릴 듯한 그 목소리에 혁련소소의 숨결이 턱 하고 막혔다.


하진은 품속에 숨겨둔 천마비록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인출했다. 만독각의 인물 정보, 그리고 혁련소소라는 독공 천재가 가진 치명적인 지병의 비밀이 뇌리 속 서랍에서 선명하게 펼쳐졌다.


“네가 익힌 만독심법(萬毒心法)은 극독을 내력으로 삼아 다스리는 가공할 마공이지. 하지만 그 대가로 매달 보름달이 뜰 때마다 삼초(三焦)의 기혈이 역류하여, 심장을 수만 마리의 독충이 뜯어먹는 듯한 각혈의 극통을 겪고 있을 터.”


혁련소소의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 굳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하진을 바라보았다.


“그, 그것을 어찌…….”


“네 손톱 끝의 보랏빛이 단순히 독공의 깊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더냐? 그것은 네 심맥이 만독의 독기에 침식되어 이미 부식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네 아비 도천극은 네 수명이 길어야 일 년도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본좌의 진기를 시험하기 위해 너를 고기방패로 던진 것이다. 아직도 도천극과 대장로 독고용의 약조가 너를 구원해 줄 거라 믿느냐?”


하진의 가스라이팅은 정교하고도 무자비했다. 그는 천마비록에 적힌 만독파의 치명적인 운기 부작용과 그녀가 처한 정치적 고립을 엮어,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혁련소소의 머릿속은 붕괴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천마를 시험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썼다는 사실, 그리고 눈앞의 천마가 자신의 몸 내부 상태와 만독각의 비밀 약조까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절대적인 공포가 그녀의 영혼을 지배했다.


“교주님…… 소녀가 어리석었사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아버님은 저를 도구로만 여겼을 뿐이옵니다!”


그녀는 흐느끼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이마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침전을 울렸다. 요염했던 독공의 천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나약한 인간만이 남아 있었다.


하진은 왼손을 움직여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녀의 앞에 툭 던졌다. 그것은 그가 미리 의선 갈홍에게서 조달받은 특수 혈맥 안정 처방전이었다.


“이것은 의선 갈홍의 비방이다. 네 심맥에 쌓인 독기를 일시적으로 중화시켜 보름날의 극통을 멈추게 해 줄 것이니라.”


혁련소소는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움켜쥐었다. 종이에 적힌 약재들의 배합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독공의 천재인 그녀는 이 처방이 진짜 자신의 심맥을 구원해 줄 유일한 생명줄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진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바닥에 엎드린 혁련소소의 턱을 은빛 철선 ‘천기선’ 끝으로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다.


“선택해라. 만독각으로 돌아가 도천극의 눈과 귀가 되어 본좌에게 충성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네 아비의 독향에 녹아내린 시체가 될 것인가.”


“소녀, 교주님의 그림자가 되겠나이다! 아버님을 속이고 만독각의 모든 동태를 교주님께 실시간으로 바치겠나이다! 제발 버리지 마옵소서!”


혁련소소는 눈물을 흘리며 하진의 발아래 이마를 다시 한번 찧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는 이제 ‘천마는 신이며, 그의 뜻을 거스르면 즉사한다’는 절대적인 심리적 지배력이 각인되었다. 완벽한 전향이었다.


하진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철가면의 차가운 은빛과 대비되는 기묘할 정도로 부드럽고 잔혹한 손길이었다.


“착한 아이로구나. 만독각으로 돌아가 도천극에게 전해라. ‘천마는 건재하며, 그 독공은 이미 하늘에 닿아 만독불침의 몸이 되었다’고.”


“존명…… 교주님의 뜻대로 거행하겠나이다.”


혁련소소가 눈물을 닦으며 천마전의 비밀 통로를 통해 소리 없이 물러갔다. 침전 내부에 도사리던 핏빛 살기가 비로소 완전히 가라앉은 순간이었다.


“우웁……!”


혁련소소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하진은 참았던 검은 피를 바닥에 거칠게 토해냈다. 독향을 직접 폐로 들이마신 대가로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내상이 가슴을 짓눌렀다. 창백한 그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바로 그 순간, 침전의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온몸이 땀과 먼지로 범벅된 정보 담당관 임소승이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교, 교주님! 큰일이옵니다!”


하진은 급히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휠체어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가면 뒤의 목소리는 다시 차가운 기세를 회복했다.


“무슨 일이냐, 소승아. 가문의 구출 작전에 차질이라도 생긴 것이냐?”


“아닙니다, 주군의 가족분들은 귀영의 호위 하에 안전하게 이동 중이옵니다! 하지만…… 외곽 정찰대인 비영대로부터 긴급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무림맹 강경파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南宮輝)가 이끄는 정파 선봉대가 흑월곡(黑月谷) 외곽 경계 관문까지 진격해 들어왔사옵니다!”


임소승의 보고에 하진의 안광이 다시 한번 차갑게 굳어졌다.


내부의 독공 첩자는 완벽히 포섭했으나, 마교의 내분을 틈타 공을 세우려는 정파의 칼날이 기어이 흑월곡의 문턱까지 도달한 것이다. 무력 호위들이 자리를 비운 최악의 시점, 하진의 휠체어 바퀴가 새로운 파멸의 체스판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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