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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결사의 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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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수호 장벽이었던 귀영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천마전 내부에는 오직 뼛속까지 시린 침묵만이 가라앉았다.


연하진은 흑단목 거치 휠체어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차가운 은빛 천마 철가면 너머로 텅 빈 전각의 어둠을 응시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구음절맥의 혹독한 냉기가 솟구쳐 올라 기도를 막아섰다. 콜록, 나지막한 기침과 함께 가면 밑바닥으로 비릿한 선혈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하진은 피를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다.


머릿속 가상의 서고, ‘기억의 궁전’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눈먼 노모 임씨 부인, 강직한 동생 연하랑, 그리고 병약한 여동생 연하선. 황실 비밀정보기관 동창의 수장 장무기가 보낸 정예 살수들이 이미 고향 연씨 서가를 포위했다는 사실은 하진의 영혼을 통째로 짓누르는 공포였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유일한 실제 무력인 그림자 자객 귀영과 심복 임소승을 급파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으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현재 천마전 내부의 물리적 방어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귀영의 부재를 대장로 독고용의 잔당들이 눈치채는 순간, 이 가면극은 즉시 종막을 고한다. 무공을 모르는 서생의 목 따위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쉽게 깨질 터.’


하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손가락으로 은빛 철선 ‘천기선’을 움켜쥐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 치명적인 공백을 오히려 가장 화려한 기세로 위장해야 했다. 적들이 감히 천마전의 공기를 의심하지 못하도록, 더 크고 무자비한 판을 짜야 했다.


“밖에서 대기 중인 좌호법 설천우를 들여라.”


하진이 목에 밀착된 은판을 진동시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복화술로 증폭된 목소리가 천마전 천장의 돔 구조를 타고 증폭되어 사방의 청동 공명판을 무겁게 울렸다. 성음공 트릭이 자아내는 장엄한 울림이 침전의 무거운 문을 넘어 외곽 복도로 뻗어 나갔.


스르륵, 문이 열리며 은빛 검사 포를 입은 오만한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마교 역사상 최연소 좌호법이자, 초일류의 빙백검기를 부리는 천재 무인 설천우였다.


설천우는 옥좌 아래에 서서 가볍게 포권을 취했으나, 그의 안광은 평소보다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코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좌호법 설천우, 교주님을 뵙나이다.”


설천우가 고개를 숙였으나, 그의 예리한 감각은 천마전 내부의 기묘한 이질감을 포착하고 있었다. 평소 천마의 등 뒤 어둠 속에서 숨 막히는 살기를 뿜어내던 ‘그림자’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설천우가 은밀하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 천마전의 공기가 평소보다 가볍사옵니다. 늘 주군의 그림자 뒤를 지키던 그 서늘한 기운이 감지되지 않으니…… 혹 그림자 호위에게 다른 밀명을 내리신 것이옵니까?”


예리한 척후병의 감각이었다. 하진의 심장이 요동쳤으나, 철가면 뒤의 얼굴은 단 1밀리미터의 미세 근육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진은 ‘관찰안 2단계’를 가동하여 설천우의 경동맥 떨림과 어깨의 흔들림을 정밀하게 해독했다.


설천우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들이쉬는 숨은 길고, 내쉬는 숨은 짧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내면에서는 교주의 약점을 잡기 위해 극도의 긴장 속에서 간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하진은 천기선을 가볍게 흔들며, 복화술 목소리를 한 단계 더 차갑게 내리깔았다.


“설천우. 네놈이 감히 본좌의 그림자의 행방을 캐묻는구나. 그 오만한 대가리가 아직 목 위에 붙어 있는 것이 지루해진 모양이지?”


“교, 교주님! 소장은 그저 주군의 안위를 걱정하여…….”


“ 걱정이라? 가소롭구나.”


하진은 천기선을 탁자 위에 툭 내려놓았다. 그 가벼운 소리가 청동판을 타고 천둥 같은 공명으로 변해 전당을 흔들었다. 하진은 기억의 궁전 속에서 설씨 가문의 아킬레스건을 끄집어냈다.


“네놈의 숙부 설태진이 정파 남궁세가와 철광석을 밀거래하며 작성한 이중 장부의 원본이 여전히 본좌의 지하 밀실에 보관되어 있다. 네놈이 대장로 독고용의 잔당들과 내통하여 가문의 파멸을 자초하려 한다면, 본좌는 기꺼이 그 장부를 장로회에 공개하여 설씨 가문의 삼족을 멸할 것이다.”


설천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목 경동맥이 사정없이 요동치는 것을 하진의 관찰안이 포착했다. 하진은 기세를 몰아 ‘호흡 동조 가스라이팅’을 전개했다. 설천우의 다급한 심박 주기에 맞춰 자신의 음성 템포를 조율하며, 그의 정신을 완벽하게 난타했다.


“독고용은 실각하여 외곽 거점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그 쥐새끼를 따르던 잔당들이 여전히 교단 내부에서 흉흉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고 있지. 설천우, 네놈에게 기회를 주마.”


하진은 휠체어에서 상체를 미세하게 앞으로 숙였다. 철가면의 차가운 반사광이 설천우의 시선을 압도했다.


“지금 즉시 네놈의 직속 군세를 이끌고 출격하여, 대장로파의 도주 거점과 잔당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라. 단 한 명의 배신자도 살려두지 마라.”


설천우의 눈동자에 의구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교주님…… 어찌하여 교주님께서 직접 움직이시거나 그림자 호위를 쓰지 않으시고, 미천한 소장에게 이 거대한 숙청의 전권을 맡기시는 것이옵니까?”


마지막 의심의 끈이었다. 하진은 이 순간, 전신의 구음절맥 경맥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고통에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하진은 왼손에 쥔 천기선의 은빛 깃털 장식을 펼쳐 떨리는 손끝을 자연스럽게 가렸다. 그리고 마치 내공의 기세를 갈무리하는 고도의 초고수 동작인 것처럼 우아하게 부채를 접었다.


“본좌가 직접 움직일 가치조차 없는 쥐새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진은 복화술의 음압을 극한으로 높여, 전당 전체가 무너지듯 웅장한 목소리를 내뿜었다.


“네놈의 검이 본좌의 장막을 대신할 만큼 날카롭게 자랐는지 증명해 보아라. 만약 실패한다면, 설씨 가문은 대장로의 잔당들과 함께 흑월곡의 거름이 될 것이다. 이것이 본좌의 밀명이다.”


설천우는 전율했다. 교주의 압도적인 기세와 가문의 목줄을 쥔 약점 폭로 앞에 그의 미세한 의구심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천마 독고혈이 여전히 자신들을 손바닥 위에 두고 조롱하는 절대자임을 맹신하게 되었다.


쿵-!


설천우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찧었다.


“교주님의 밀명을 받드나이다! 소장, 좌호법의 검이 주군의 방패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피로써 증명하겠나이다! 즉시 대장로파의 잔당들을 척살하러 출격하겠나이다!”


설천우는 검을 움켜쥐고 천마전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호령 아래, 교단 외곽을 지키던 정예 무사들이 횃불을 밝히며 대장로파 숙청을 위해 거대한 군세를 이끌고 총단 밖으로 폭풍처럼 쇄도해 나갔.


설천우의 군세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 직후, 천마전 내부에는 다시 한번 극단의 고립과 침묵이 찾아왔.


하진은 철가면을 움켜쥐며 휠체어 위에서 거칠게 각혈했다. 후두 은판의 무리한 진동과 사혈 침술의 부작용이 겹쳐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가장 강력한 방패막이인 설천우마저 밖으로 보냈으니, 이제 천마전 내부에는 자신을 지켜줄 물리적 무력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치지직…….


천마전 중앙에 위치한 용 모양의 거대한 향로, ‘침향 연도기’에서 피어오르던 자욱한 향연이 거짓말처럼 뚝 끊기며 불꽃이 꺼져 내렸다.


어두워진 침전의 장막 사이로, 달콤하면서도 뼛속을 싸하게 만드는 기이하고 불길한 보랏빛 독취(毒臭)가 소리 없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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