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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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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의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흘러내린 핏방울이 천마전 바닥을 적실 때, 하진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천마전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무겁고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 교단 밑바닥 교도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마교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안도하던 찰나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정보 지부장 임소승의 모습은, 하진에게 이곳이 여전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칼날 위의 강호임을 뼈저리게 상기시켰다.


하진은 예비 휠체어에 앉아 차가운 은빛 천마 철가면을 깊게 고쳐 썼다. 소매 안쪽에서 떨리는 오른손의 마비와 심맥을 찌르는 구음절맥의 통증을 억지로 억누르며, 그는 목의 은판을 울려 낮고 장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소승아, 정신 차려라. 대체 무슨 일이냐."


임소승이 가슴을 움켜쥐고 검은 피를 토해내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안광에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깊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교, 교주님…… 죄송하옵니다. 총단의 외곽 경계선을 수색하던 중, 대장로 독고용의 도주 경로를 역추적하다가 황실의 세작과 조우했사옵니다. 그자는 마교의 경비 무사로 위장하고 있던 동창의 밀정, 이평이었습니다. 그자가 교단의 방어 지도를 훔쳐 달아나려던 것을 소승이 목숨을 걸고 저지하여 생포했사옵니다."


동창(東廠).


제국 황실의 직속 비밀정보기관이자, 무림의 씨를 말리려 암약하는 가장 냉혹한 사냥개들. 하진의 기억의 궁전 속에서 선친 연우량이 남긴 정세 비망록의 구절들이 어지럽게 스쳐 지나갔다. 황실 동창의 수장 장무기는 무림의 정사와 사파를 이이제이로 공멸시키려는 집착을 품은 음험한 정치가였다. 그 동창의 마수가 이 음습한 흑월곡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다는 사실에 하진의 등덜미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자를 안으로 들여라."


하진의 명령에 침전의 무거운 문이 열리고, 친위대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사내가 끌려 들어왔. 사내는 마교의 경비 무복을 입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사파의 무인들과 달리 조정의 사냥개 특유의 오만함과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 그가 바로 동창의 밀정, 이평이었다.


이평은 온몸이 포박당하고 무릎이 꿇려진 상태에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비열하게 웃었다.


"하하하! 네놈들이 감히 황실의 금군이자 동창의 정찰대를 가두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천하제일 마두라 불리는 천마 독고혈이라 할지라도, 제국의 천만 대군 앞에서는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할 터! 당장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황제의 분노가 이 흑월곡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이평의 오만한 기세에 임소승이 검자루를 쥐며 살기를 뿜었으나, 하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면 뒤의 창백한 얼굴 위로 차가운 이성이 번뜩였다. 하진은 '미세 근육 경련 해독' 기술을 가동하여 이평의 안면을 정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평이 황실의 권위를 내세우며 소리칠 때, 그의 왼쪽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고, 목덜미의 경동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포박된 밧줄을 꽉 쥐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짓말이다.’


하진은 단번에 간파했다. 이평은 지금 황실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극심한 두려움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그가 품고 있는 진짜 목적은 단순한 지도 유출이 아니었다.


하진은 휠체어를 천천히 굴려 이평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복화술로 증폭된 목소리가 천마전의 청동 공명판을 타고 울려 퍼지며 이평의 고막을 무겁게 짓눌렀다.


"동창의 사냥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구나. 하지만 이평, 네놈이 품고 있는 진짜 밀지는 총단의 방어 지도가 아닐 텐데?"


이평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그의 호흡 주기가 단 1초 만에 불규칙하게 흐트러지는 것을 하진의 관찰안이 포착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놈은 대장로 독고용의 실각 소식을 듣고, 본좌의 진짜 건강 상태와 무공 유무를 확인하라는 장무기의 밀명을 받고 침투한 척후병이다. 네놈이 훔치려 한 지도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지. 진짜 밀지는 네놈의 뇌리에 새겨진 '천마의 무공 상실 여부'다. 그렇지 않으냐?"


하진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평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는 천마가 자신의 마음속 가장 은밀한 계획까지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진은 기세를 몰아 '호흡 동조 가스라이팅'을 가동했다. 이평의 다급한 심박 주기에 맞춰 자신의 나지막한 대화 톤을 조율하며, 그의 정신적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장무기가 정사와 사파의 대전을 유도하여 무림 전체를 몰살하려 한다는 계획은 이미 본좌의 바둑판 위에 올라와 있다. 조정의 내시 놈이 감히 강호의 패권을 쥐려 들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네놈이 끝까지 침묵한다면, 혈조각의 사마광이 네놈의 뼈를 한 마디씩 갈아 독충의 먹이로 줄 것이다."


이평은 침을 삼키며 품속에 감춰둔 독약을 삼켜 자결하려 했다. 그러나 하진의 눈빛 신호를 미리 읽고 대기하고 있던 늙은 시종 아복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아복은 소리 없이 이평의 턱관절을 가격하여 턱을 탈골시켰다. 이평의 입안에서 으깨지려던 독약 캡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읍! 으읍!"


턱이 빠진 채 침을 흘리며 절망적인 눈빛으로 하진을 바라보는 이평. 하진은 은빛 철선 '천기선'의 끝으로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겨누며 싸늘하게 명했다.


"아복, 턱을 맞춰라. 이자의 입에서 진짜 진실이 나올 때까지 본좌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다."


아복이 뼈를 맞추는 투박한 소리와 함께 이평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완전히 붕괴된 이평은 이마를 대리석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살,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은……! 장무기 수장님이 제 가솔들을 인질로 잡고 있어 어쩔 수 없었사옵니다!"


"장무기의 진짜 계획이 무엇이냐. 숨김없이 털어놓아라."


"수, 수장님은 이미 무림맹의 강경파 남궁무쌍과 은밀히 내통하여, 마교의 내분을 빌미로 정사 대전을 촉발시키려 하옵니다. 그리고 대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황실의 금군 대군을 투입해 정사와 사파를 한 번에 궤멸시키려 하옵니다!"


하진의 철가면 뒤로 서늘한 이성이 차갑게 굳어졌다. 황실의 이이제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조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평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단어는, 하진의 영혼을 문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 그리고…… 수장님은 이미 천마의 철가면 뒤에 숨은 자가 진짜 독고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계셨사옵니다. 그리하여…… 네놈의 진짜 정체를 추적하던 중, 몰락한 연씨 가문의 장남 연하진이라는 단서를 확보하셨사옵니다!"


쿵-!


하진의 심장이 멎는 듯한 거대한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구음절맥의 한기가 단전 부근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며 오장육부를 얼려버리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아냈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자신의 정체는 오직 백화련과 독고린, 그리고 아복과 갈홍만이 아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황실 동창의 정보망은 하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집요했다.


이평의 폭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 수장님은 이미 고향에 남겨진 네놈의 눈먼 노모 임씨 부인과, 동생 연하랑, 여동생 연하선의 은신처를 완벽히 파악하셨사옵니다! 그들을 인질로 잡아 가짜 천마의 대역극을 천하에 폭로하고 마교를 자멸시키기 위해, 이미 '동창 밀정대'의 정예 자객들이 고향 가옥으로 급파되었사옵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가옥을 포위했을 터……!"


"으윽……!"


하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쩍였다.


눈먼 노모 임씨 부인. 형의 뒤를 이어 가문을 일으키려 밤낮으로 공부하던 동생 연하랑. 그리고 병약하여 늘 마음을 졸이게 만들던 막내 여동생 연하선.


그들은 하진이 이 피비린내 나는 마교 총단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짜 천마의 가면을 쓰고, 매일 밤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독약과 자해 침술의 고통을 견뎌내며 버텨온 유일한 이유이자 영혼의 기둥이었다. 그 소중한 가족들이 지금 황실의 잔혹한 살수들의 칼날 아래 놓여 있었다.


가면 뒤에서 극심한 인간적 공포와 절망감이 하진의 전신을 지배했다. 휠체어의 팔걸이를 쥔 하진의 왼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철가면을 벗어던지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원초적인 서생의 비명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요동쳤다.


‘안 된다. 진정해라, 연하진. 여기서 네가 흔들려 가짜 천마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네 가족은 물론이고 너를 따르던 모든 이들이 즉시 참수를 당할 것이다. 공포를 지배하지 못하면, 지배당해 죽을 뿐이다!’


하진은 어금니를 깨물어 입술을 터뜨렸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비릿한 선혈의 맛이 그의 무너져가던 이성을 강제로 끌어올렸다. 하진은 솟구치는 공포와 슬픔을 분노의 가장 완벽한 카리스마로 치환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평을 굽어보았다. 철가면의 좁은 틈새 너머로 번뜩이는 안광은, 가짜 천마의 허상을 초월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악마가 되기로 결심한 지략가의 잔혹한 살풍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진은 나지막이 명했다.


"독고린, 이평에게 교단의 방어 지도를 넘겨주어라."


전당 내부의 모두가 경악했다. 임소승과 독고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주, 주군! 정녕 황실에 지도를 넘기시려는 것이옵니까?"


"넘겨주되, 본좌가 새로 작성한 지도를 넘긴다."


하진은 품속에서 붓을 꺼내, 기억의 궁전 속에 보관된 Heukwol Valley의 지형지물 중 퇴로와 매복 요충지를 교묘하게 뒤틀어 놓은 '가짜 지도'를 순식간에 그려냈다. 지도의 겉보기는 완벽한 극비 지도였으나, 실제로는 황실 군대가 진입하는 즉시 깎아지른 절벽의 함정과 대홍수 수문에 갇혀 전멸하도록 설계된 죽음의 덫이었다.


하진은 가짜 지도를 이평의 품속에 거칠게 찔러 넣었다.


"이평, 네놈은 이 지도를 들고 동창으로 복귀하여 '천마는 주화입마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교단의 방어선은 무너졌다'고 장무기에게 보고해라. 만약 단 한 글자라도 다르게 말하거나 수작을 부린다면, 네놈의 삼족을 멸하여 흑월곡의 거름으로 쓸 것이다. 알겠느냐?"


"존, 존명! 교주님의 뜻대로 하겠나이다!"


이평은 천마의 귀신같은 지략과 살기에 영혼까지 완전히 굴복하여,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 친위대원들이 이평을 끌고 밖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다.


이평이 퇴장하자마자, 하진은 휠체어에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나지막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


딱-!


맑은 손가락 튕김 소리와 함께, 천마전 내부의 촛불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 같은 흑포를 입고 형체가 희미한 어둠 속의 암살자, 그림자 자객 귀영(貴影)이었다.


하진은 귀영과 부상을 치료받은 임소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철가면 뒤의 눈빛은 서늘하게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뼛속까지 시린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귀영, 그리고 소승아. 지금 즉시 교단 내부의 정예 살수들을 이끌고 내 고향, 연씨 서가로 출격해라."


귀영이 고개를 숙이며 어둠 속에서 검날을 가볍게 쥐었다.


"동창의 밀정대 놈들이 가문에 손을 대기 전에, 그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라. 내 눈먼 노모와 동생들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한다면, 본좌는 황실 동창은 물론이고 중원 전체를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주군의 명을 목숨 바쳐 수행하겠나이다."


귀영과 임소승이 어둠 속으로 신형을 감추며 소리 없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천마전의 침묵 속에서, 하진은 가슴을 쥐어짜며 휠체어 팔걸이를 꽉 쥐었다. 오른손의 마비와 구음절맥의 극통이 다시금 그의 온몸을 엄습했으나, 철가면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안광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교 내부의 핏빛 반란을 잠재운 가짜 천마의 위대한 지략이, 이제 천하를 삼키려는 황실 동창의 거대한 음모를 깨부수기 위해 제국의 어둠 속으로 장엄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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