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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림의 백색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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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사각.


차가운 밤바람이 대나무 잎사귀들을 스치며 서늘한 파공음을 만들어냈다. 일 년 내내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는 흑월곡(黑月谷) 외곽, 사람들은 이곳을 ‘환각의 미로’라 불렀다. 깎아지른 듯한 기묘한 돌기둥들과 유독한 식물들이 뒤엉켜 자생하는 이 숲은, 경공의 대가라 할지라도 방향 감각을 잃고 영원히 헤매다 죽어가는 금역(禁域)이었다.


그 푸르스름한 어둠과 자욱한 안개 사이로, 한 줄기 백색 그림자가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백색 도포 위에 푸른 비단 띠를 두르고, 머리를 옥비녀로 단정하게 묶은 여협. 아미파(峨嵋派)의 차세대 제일검이자 정파 무림맹의 촉망받는 후계자 후보, 유설아(柳雪兒)였다. 그녀의 손에는 빙청강(氷晴鋼)으로 제련되어 서늘한 푸른빛을 내뿜는 빙우검(氷雨검)이 쥐어져 있었다.


유설아는 숨을 죽인 채 대나무 줄기 뒤에 몸을 숨겼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안개 너머를 매섭게 탐색했다. 무림맹 부맹주 남궁무쌍의 진격 명령을 거부하고 홀로 이곳까지 침투한 것은, 마교 총단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정세의 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전임 천마 독고혈이 급사했다는 소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호법 설천우가 교주전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모순된 정보. 그 거대한 기만극의 실체를 밝혀내야만 정사 대전의 파멸적인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기척이…… 없다?’


유설아는 미세하게 이마를 찌푸렸다. 절정 고수의 이감(耳感)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음에도 주변에서는 오직 바람 소리와 대나무 잎이 부딪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직관은 경고하고 있었다. 이 안개 너머에, 자신을 지켜보는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스으으윽.


그때, 안개 너머에서 기묘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른 흙바닥과 낙엽을 지긋이 누르며 천천히 다가오는 기계적인 바퀴 소리.


유설아의 전신이 긴장으로 팽팽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검자루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도화보(桃花步)의 신법을 전개할 준비를 마쳤다. 서늘한 한기가 빙우검의 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교한 흑단목으로 제작된 화려한 휠체어였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있는 사내.


온몸을 감싼 칠흑 같은 천마 장포, 그리고 얼굴 전체를 차갑게 가리고 있는 은빛 천마 철가면(은빛 천마 철가면). 사내의 무릎 위에는 붉은 호피 담요가 덮여 있었고, 그의 왼손에는 기묘한 은빛 철선 ‘천기선’이 쥐어져 있었다. 오른손은 장포 소매 속에 깊숙이 감추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천하제일 마두, 천마(天魔).


유설아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 때문이었다. 철가면의 좁은 슬릿 너머로 번뜩이는 차갑고 고요한 안광이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 철가면 뒤에 숨은 서생 연하진(연하진)은 매 순간 단전이 찢어지는 듯한 극통과 싸우고 있었다. 갈홍이 지어준 구음단(九陰丹)의 약효로 겨우 상체를 가누고 서 있는 척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장기는 이미 독성 약물로 인해 서서히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오른손은 이전 사술의 반동으로 감각이 완전히 죽어 휠체어 팔걸이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삼류 무사의 가벼운 검 한 자루만 날아와도 그의 목숨은 즉시 끊어질 터였다.


‘진정해라. 상대는 아미파의 수제자 유설아다. 무공으로 대적하면 찰나의 순간에 내 목이 날아간다. 힘이 없는 자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방의 마음속 공포를 완벽히 지배하는 것뿐이다.’


하진은 뇌리 속 가상의 서고, ‘기억의 궁전’을 급격히 회전시켰다. 유설아의 성격, 신념, 검법의 궤적, 그리고 그녀가 가진 정의감의 본질이 머릿속에서 완벽한 체스판의 말처럼 정렬되었다.


스륵.


하진은 왼손을 미세하게 움직여 휠체어 오른쪽 하단에 숨겨진 비밀 밸브를 열었다. 휠체어 중앙에 고정된 용 모양의 청동 향로, 침향 연도기(침향 연도기)가 소리 없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향로 내부의 특수 장치에 의해, 사람의 대뇌를 자극하여 극도의 긴장감과 환각을 유발하는 희귀 약초 사향백초(사향백초)가 미세한 열기와 함께 연소되어 안개 속으로 은밀히 확산되었다.


동시에 하진은 휠체어 뒷부분에 장착된 미세 광학 장치의 셔터를 조절했다. 대나무 숲의 어둠과 자욱한 안개, 그리고 휠체어 뒤편에 숨겨진 미세한 불꽃의 각도가 일치하는 순간.


스으으으윽-


안개 속에서 하진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유설아의 눈앞에, 휠체어에 앉은 하진의 형상이 아닌, 삼 장 거구의 거대한 천마의 백색 그림자가 대나무 숲 전체를 뒤덮으며 춤을 추는 듯한 환각이 펼쳐졌다. 광학 착시 그림자 놀이(광학 착시 그림자 놀이)의 격발이었다.


“윽……!”


유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공기 중에 퍼진 사향백초의 달콤하면서도 무거운 향취가 그녀의 호흡기를 타고 들어가 뇌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단전의 순양 진기가 기묘하게 흔들렸고, 눈앞에 일어선 거대한 백색 그림자가 마치 실존하는 초절정 고수의 무형검기(無形劍氣)처럼 느껴져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무공의 경지를 초월한, 흡사 자연재해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였다.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깊은 숨을 삼키며 목에 부착된 얇은 은판의 진동을 조절했다. 목구멍 깊은 곳의 성대를 수축시키며, 복부의 압력을 이용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 변조 복화술이었다.


“아미파의 백색 깃털이 기어이 이 음습한 흑월곡의 안개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그 목소리는 천마전 천장의 공명 구조를 모사한 대나무 숲의 돌기둥들을 타고 반사되어, 유설아의 귀 바로 뒤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성음공(聲音功)으로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에 유설아의 심장이 요동쳤다.


“천마…… 독고혈!”


유설아는 이를 악물며 빙우검을 들어 올렸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기가 안개를 가르려 했으나,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하진의 손바닥 안에서 춤추고 있었다.


하진은 천천히 왼손에 쥔 은빛 철선 천기선을 펼쳤다. 촤르륵 하는 맑은 쇠붙이 소리가 안개 속을 날카롭게 찢었다. 부채살 끝부분에 장착된 미세한 스프링 조준선이 유설아의 목 사혈을 향해 고정되었다. 비록 무공은 없으나, 초근접 상황에서 격발하면 절정 고수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기계식 일격필살의 무기였다.


하진은 목소리의 톤을 한 단계 낮추며, 유설아의 호흡 주기에 맞춰 대화의 박자를 일치시키기 시작했다. 호흡 동조 가스라이팅의 시동이었다.


“빙우검의 날카로움은 여전하나, 검을 쥔 자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구나. 유설아, 네놈은 무엇을 위해 이 검을 뽑았느냐? 명예욕에 눈이 먼 남궁무쌍의 사냥개가 되기 위함이더냐, 아니면 위선으로 가득 찬 무림맹의 가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함이더냐.”


유설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천마가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무림맹 내부의 부패와 남궁무쌍의 야심까지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사향백초의 향이 그녀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었고, 눈앞의 거대한 그림자는 그녀의 신념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강호의 평화를 지키고, 무고한 이들의 피를 막기 위해 이곳에 왔다! 천마, 네놈이 이끄는 마교가 중원을 피로 물들이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유설아가 외쳤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진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고 차갑게 조롱했다.


“평화라…… 가소롭구나. 황실의 동창(東廠) 수장 장무기가 정사와 사파의 공멸을 유도하기 위해 뒤에서 판을 짜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정파의 맹인들이 평화를 논하는가? 네놈들이 이 흑월곡을 피로 물들이는 그 순간, 제국의 대군이 무림 전체를 고철로 만들어 지배할 것이다. 네놈이 쥔 그 검은 진정한 평화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제국의 사냥개가 되기 위한 징표냐.”


하진의 날카로운 일갈이 대나무 숲을 뒤흔들었다. 유설아의 머릿속이 거대한 혼란으로 뒤덮였다. 황실 동창의 개입, 이이제이의 음모. 천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보들은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치명적이었다. 그녀가 평생 믿어온 정파의 명분이 한순간에 추악한 위선으로 변해 흘러내리는 듯한 굴욕감과 경외감이 동시에 밀려왔.


‘이 자는…… 잔혹한 마두가 아니다. 세상을 통달하고, 무림의 파멸을 막으려는 고독한 거인인가?’


유설아의 눈빛에서 살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빙우검을 쥔 그녀의 손끝이 아래로 느슨하게 기울어졌다. 천마의 압도적인 위엄과 자비로운(? ) 대국적 안목에 그녀의 신념이 완전히 균열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치의 우위는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었다. 이제 그녀를 자신의 장기말로 포섭하여 무림맹 내부의 방패막이로 삼을 마지막 한 마디를 던지려던 바로 그 찰나.


스스슥-!


갑자기 하진이 탄 휠체어 뒤편, 빽빽한 대나무 장막 사이에서 살풍경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 매복해 있던 대장로 독고용의 직속 자객이, 천마의 무공 상태를 검증하기 위해 기습의 칼날을 내리꽂으며 튀어나온 것이었다! 날카로운 검끝이 하진의 무방비한 등덜미를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유설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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