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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령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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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전당을 가득 메운 안개와 핏빛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바닥에 엎드린 장로들의 호흡 소리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장로 독고용이 부수고 나간 전당의 석벽 너머로 냉혹한 북악의 밤바람이 몰아쳤지만, 그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좌호법 설천우가 검을 거두며 휠체어 옆에 한 걸음 물러서서 부동자세를 취했고, 우호법 독고린은 중검을 바닥에 짚은 채 교주의 침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하진은 철가면 너머로 전당을 메운 수백 명의 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가슴팍을 후벼 팠다. 장로회 전반에 걸쳐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가슴 사혈인 거궐(巨闕), 신문(神門), 극천(極천)에 은침을 꽂았던 ‘사혈 극대화 자해 침술’의 부작용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뒤틀린 경맥이 비명을 지르며 냉기를 뿜어냈고, 지난번 설천우의 시험에서 삼켰던 만독즙(萬毒汁)의 잔여 화독(火毒)이 그 냉기와 부딪히며 오장육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한 극통을 유발했다.


가면 속 입안은 이미 뜨거운 선혈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하진은 피비린내를 목구멍 깊숙이 삼켜내며, 창백한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 쥐어진 것은 칠흑 같은 한철로 주조된 차가운 패, 마교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신물인 ‘천마령(天魔令)’이었다.


달빛을 흡수한 검은 철패가 하진의 손끝에서 서늘한 광채를 뿜어냈다. 하진은 목의 은판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며, 천장 공명판을 향해 목소리를 내뱉었다. 성음공 트릭을 통해 전당 전체를 뒤흔드는 천마의 장엄하고 무거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대장로 독고용은 본좌를 시해하려 획책하고, 교단의 신성한 철광석을 정파 남궁세가에 밀수출한 대역죄인이다. 본좌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독고용과 그 반역 무리들을 이 중원에서 남김없이 추적하여 그 삼족을 멸하라.”


하진의 차가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당 입구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던 은빛 철가면의 거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철가면대의 수장인 친위대장 호번(胡燔)이었다. 호번은 온몸을 덮은 육중한 강철 갑옷을 울리며,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철가면대장 호번, 교령을 받드나이다! 교주님의 천마령이 가리키는 곳이라면, 저 지옥의 끝이라도 달려가 반역자들의 목을 베어 바치겠나이다!”


“혈조각 역시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미 하진의 지적 자비에 굴복한 장로 사패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그 뒤를 이어 전당 내부의 모든 중립파 장로들과 무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드나이다! 천마령의 위엄이 온 강호를 지배하리라!”


수백 명의 초일류 무인들이 뿜어내는 복종의 외침이 장로 전당의 무너진 석벽을 흔들었다. 단 한 푼의 내공도 없는 병약한 서생이, 오직 횡령 장부라는 지략의 카드와 상대의 공포를 지배하는 허장성세만으로 마교의 전권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순간이었다.


하진은 차가운 안광을 유지한 채 휠체어 바퀴를 가볍게 굴려 호번의 앞으로 나아갔다.


“호번.”


“예, 교주님.”


“지금 즉시 철가면대를 가동하여 총단 내부의 모든 관문과 밀도를 통제하라. 쥐새끼 한 마리도 흑월곡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도주한 독고용의 잔당들이 내부에서 폭동을 모의하는 즉시, 현장에서 참수하라.”


“존명!”


호번은 거대한 은빛 방패를 고쳐 쥐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의 단호한 지휘 아래 칠흑 같은 갑주를 입은 철가면대 무사들이 전당 밖으로 무섭게 흩어졌다. 교단 내부의 사법권과 군사적 통제권이 완벽하게 하진의 손아귀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나 하진의 내면은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가슴팍에 박힌 은침들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이물감이 극에 달했다. 자해 침술로 강제로 일깨운 가짜 기혈의 순환이 멈추려 하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맥박이 급격히 느려졌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어 천마령을 쥔 왼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진은 떨림을 숨기기 위해 천마령을 품속 깊은 곳에 집어넣고, 왼손으로 은빛 철선 ‘천기선’을 꽉 쥐었다.


“우호법.”


장막 뒤에서 하진의 진짜 정체를 묵인하고 있던 독고린이 신속하게 다가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독고린은 하진의 휠체어 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교주님을 침전으로 모셔라. 장로회는 이것으로 끝이다.”


설천우가 전당 내부의 장로들을 통제하며 길을 열었다. 독고린은 소리 없이 휠체어를 밀어 장로 전당을 빠져나갔다.


전당을 벗어나 어두운 회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밤바람이 하진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깊은 신음을 삼켰다. 차가운 바람이 폐부로 흘러들 때마다, 만독즙의 화독이 위장을 불태웠고 구음절맥의 냉기가 뼈마디를 얼려버렸다. 극단적인 두 성질의 고통이 체내에서 소용돌이치며 하진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조금만 더…… 천마전까지만 버텨야 한다.’


하진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었다. 만약 여기서 단 한 순간이라도 흔들리거나 신음소리를 흘린다면, 회랑 구석구석에 숨어 감시하는 대장로파의 세작들에게 자신의 무공 부재가 폭로될 터였다. 기만의 탑은 단 한 장의 벽돌만 어긋나도 완전히 붕괴한다.


독고린은 하진의 고통을 눈치채고 휠체어를 이동시키는 속도를 극도로 높였다. 회랑을 지나 천마전의 장엄한 검은 목조 정문이 나타났다.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늙은 벙어리 시종 아복이 문을 소리 없이 열었다. 하진이 들어서자마자, 독고린은 묵직한 강철 문을 쿵 소리가 나도록 닫아걸었다.


“철컥!”


이중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천마전 내부를 무겁게 울렸다.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


그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하진의 몸이 휠체어 위에서 거칠게 앞으로 꺾였다.


“컥……! 우웁!”


참았던 각혈이 폭포수처럼 철가면 하단의 틈새를 뚫고 터져 나왔다. 검붉다 못해 완전히 칠흑색에 가까운 피가 천마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며 쏟아졌다.


“교주님!”


독고린이 경악하며 하진을 부축하려 했으나, 하진은 이미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 아아…… 윽!”


하진은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웅장한 천마의 성음이 아닌, 고통에 울부짖는 가냘픈 서생의 비명이었다. 전신의 경맥이 안에서부터 얼어붙는 동시에 불타오르는 기괴한 감각에 하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가슴팍의 옷을 찢어발기자, 스스로 꽂았던 세 개의 은침 주변이 시퍼렇게 죽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침끝을 통해 구음절맥의 음기가 역류하여 심장을 얼려버리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억지로 삼켰던 만독즙의 잔여 독성이 심맥 부근에서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며 그 음기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음과 양의 한계 대립. 단전에 기가 한 푼도 없는 하진의 신체는 이 두 거대한 에너지를 중화할 방법이 없었다.


“침을…… 침을 뽑아라…… 독고린……!”


하진이 바닥의 피를 움켜쥐며 간신히 속삭였다.


독고린이 급히 손을 뻗어 하진의 가슴에 박힌 세 개의 은침을 차례로 뽑아냈다. 침이 빠져나온 구멍에서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기혈의 흐름이 강제로 차단되자 하진은 전신을 크게 경련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토해낸 검은 피가 닿은 대리석 바닥이 기이하게 찌르르 소리를 내며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구음절맥의 극음(極陰)의 냉기가 화독과 결합하여 물리적인 한기로 변해 바닥의 수분을 얼려버린 것이다.


하진의 호흡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안색은 핏기가 완벽하게 사라져 시체처럼 창백해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얼어붙어 성에처럼 맺혔다.


“이대로는 심장이 멈춥니다. 당장 백초당의 의원을……!”


독고린이 다급하게 외치며 침전 문을 향해 몸을 돌리려 했다.


“안 된다……!”


하진이 가냘픈 손을 뻗어 독고린의 장포 자락을 붙잡았다. 그의 손귀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지만, 독고린은 그 손길에 담긴 비장한 의지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의원을 부르면…… 독고용의 세작들이 내 정체를 눈치챈다…… 천마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밖으로 흘러나가서는 안 된다…….”


하진은 숨을 헐떡이며 철가면 속에서 눈을 부릅떴.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고향의 눈먼 노모와 동생들이 모두 몰살당한다. 아복의 희생과 설천우를 포섭한 모든 판이 물거품이 된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그의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독고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초일류의 무력을 지닌 그였지만, 망가져 가는 서생의 생명력을 억지로 붙잡아둘 내공 전수법은 없었다. 구음절맥의 신체에 무리하게 내력을 주입했다가는 오히려 경맥이 대폭발하여 즉사할 위험이 컸다.


그때,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늙은 시종 아복이 소리 없이 다가왔.


아복은 바닥에 흘러내린 하진의 검은 피를 낡은 걸레로 묵묵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피가 얼어붙은 바닥을 긁어내며, 아복의 흐릿한 눈동자가 하진의 가슴팍에 남은 침 자국을 응시했다.


아복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지만, 전임 교주 독고혈 밑에서 수십 년간 학대를 견디며 천마전 내부의 모든 비밀을 몸으로 체득한 자였다. 그는 하진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았다.


아복은 걸레를 내려놓고 품속에서 오래되고 낡은 사각 청동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천마전 침대 밑 지하 밀실의 진짜 열쇠이자, 역대 교주들이 극비리에 남겨둔 요새 제어실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아복은 하진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인 뒤, 침대 하단의 목조 장식 속에 열쇠를 집어넣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렸다.


철컥, 쿵-


무거운 침대 밑 강철 바닥이 소리 없이 열리며 지하 밀실로 통하는 어두운 석조 계단이 나타났다. 아복은 독고린을 향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교주의 시신 안치소이자 극비 구역인 한빙 동굴과 연결된 비밀 통로, 그곳에 전임 교주가 은밀히 숨겨두었던 의학적 구원자인 의선 갈홍(醫仙 葛洪)을 부를 수 있는 비밀 장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복은 하진의 얼어붙어 가는 검은 피가 묻은 걸레를 품에 안은 채, 독고린에게 하진을 안고 지하 밀실로 내려가라는 몸짓을 취했다.


하진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아복이 쥔 청동 열쇠와 지하의 어둠을 응시했다. 심장이 완전히 얼어붙기 직전의 찰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아복의 거친 발소리만이 소리 없이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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