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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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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로 독고용. 감히 교주님께 칼을 겨누다니, 정녕 미쳤구나.”


설천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손에 쥔 설화검(雪花劍) 끝에서 피어오른 빙백의 한기가 독고용의 혈영검(血影劍)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검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리며 전당 내부에 서늘한 성에를 피워 올렸다. 두 초일류 고수의 내력이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파가 장로 전당의 웅장한 천장을 흔들었고, 사방의 청동 화로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독고용은 혈영검을 비스듬히 거두며 설천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안색은 가짜 비급 ‘허무심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검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핏대가 터질 듯이 솟아 있었다.


“설천우! 네놈이 정녕 저 가짜 껍데기의 감언이설에 속아 가문을 파멸로 이끌 셈이냐! 저놈은 천마가 아니다! 주화입마로 무공을 잃은 폐인에 불과하단 말이다!”


독고용의 광기 어린 외침이 전당을 울렸으나, 설천우의 안광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진에게 약점을 잡혀 가문의 명줄이 저당 잡힌 설천우에게는, 눈앞의 교주가 자신들의 모든 치부를 꿰뚫어 보고 있는 ‘절대적인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 설천우는 설화검을 더욱 굳건히 겨누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닥쳐라, 반역자 놈. 교주님의 심오한 무공 경지를 감히 네놈의 얄팍한 식견으로 재단하려 들다니.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베어 교단의 기강을 바로잡겠다.”


상황은 독고용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철가면을 벗겨 대역극을 폭로하려던 그의 계획은, 하진이 던진 ‘대장로의 횡령 장부’ 실물에 의해 완벽하게 분쇄되었다. 정파 남궁세가와의 밀거래라는 매교(賣敎) 혐의가 입증된 순간, 독고용은 마교의 대장로에서 척살해야 할 배신자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흐흐흐…… 하하하하!”


독고용이 광소했다. 그의 기맥이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단전 부근에서 검붉은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 가짜 비급의 역류 덫이 작동하고 있었으나, 분노에 눈이 먼 그는 자신의 단전이 부식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좋다! 정녕 나를 매교노로 몰아 처단하겠다면, 이 전당을 피로 물들여 주마! 마불! 저 가짜의 머리를 깨부숴라!”


독고용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에 서 있던 거구의 사내, 장로 마불(馬佛)이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왔.


“쿠오오오!”


백근 무게의 거대한 흑철퇴 ‘마불퇴(馬佛槌)’가 허공을 가르며 하진의 휠체어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 일류 고수의 괴력이 실린 철퇴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하진의 약하디약한 구음절맥 신체를 가루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공은 한 푼도 없다. 저 철퇴의 여파만 스쳐도 내 심장은 멈춘다. 하지만……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진은 철가면 뒤에서 이를 악물었다. 사혈 동조 침술의 여파로 심장이 찢어질 듯한 극통이 밀려왔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고요하고 차가웠다. 하진은 휠체어 손잡이를 쥔 왼손을 미세하게 움직여 은빛 철선 ‘천기선’의 격발 장치에 손가락을 대기시켰다. 최악의 순간에는 독침을 쏴 동귀어진할 각오였다.


바로 그 순간, 하진의 그림자 뒤에서 묵직한 강철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


콰아아앙-!


우호법 독고린(獨孤隣)이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중검 ‘묵철검(墨鐵검)’을 뽑아 들고 마불의 철퇴를 정면으로 막아섰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며 전당 내부가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독고린의 강력한 무극대검법(無極大劍法)의 기세가 마불의 괴력을 제자리에서 완벽하게 상쇄시켰다.


“교주님 앞이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무기를 휘두르느냐.”


독고린의 묵직한 음성이 전당의 살기를 무겁게 가라앉혔. 마불은 자신의 일격이 완벽하게 가로막히자 경악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독고린의 충직한 방패막이가 하진의 신변을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었다.


하진은 이 혼란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목의 은판을 수축시키며, 전당 천장의 공명판을 향해 목소리를 내뱉었다. 소리 반사 성음공 트릭이 다시 한번 전당 전체를 웅장하게 뒤흔들었다.


“반역에 동조하는 자들이 또 누구더냐.”


웅장한 교주의 목소리에 전당 내부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하진은 그의 관찰안(Observation Eye)을 급격히 가동하여, 대장로의 뒤에 서서 눈치를 보고 있던 소장파 장로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하진의 시선이 장로 장필(張必)에게 닿았다. 장필의 뺨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경동맥은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미세 근육 경련 해독)의 격발이었다.


“장로 장필. 네놈의 왼손 소매 속에 숨겨진 주머니에는 남궁세가로부터 받은 만 냥짜리 은표가 들어 있더군. 본좌의 안광을 피할 수 있을라 믿었느냐?”


장필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 비밀은 오직 대장로와 자신만이 아는 극비였다. 장필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교, 교주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대장로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하진의 시선이 옆에 있던 장로 조웅(趙雄)에게로 향했다. 조웅은 하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주저앉았다.


“장로 조웅. 네놈 역시 남궁세가의 무기 밀거래 경로를 묵인해 주는 대가로 팔천 냥을 받아 챙겼지. 본좌가 그 거래 장부의 사본을 이 자리에서 읽어주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흐익! 교주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전당 내부는 순식간에 참회와 통곡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진이 단 한 푼의 내공도 쓰지 않고 오직 그들의 미세한 안면 떨림과 기억의 궁전 속 정보를 이용해 배신자들을 단번에 지목해 내자, 장로들은 천마가 자신들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절대적인 신앙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중립파의 영수, 장로 사패(沙覇)가 마침내 검을 뽑아 들었다. 사패는 이미 하진의 의학적 자비에 감복해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다. 사패가 외쳤.


“혈조각(血彫閣)의 무사들은 들으라! 교단의 피를 정파에 팔아넘긴 배신자 독고용과 그 잔당들을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척살하라!”


“처단하라!”


사패의 외침과 함께 중립파 장로들과 혈조각의 정예 무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대장로파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대세는 완벽하게 하진의 손아귀로 넘어왔다. 독고용의 정치적, 군사적 기반은 전당 내부에서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들이……!”


독고용은 자신의 모든 세력이 단 한 순간에 붕괴되는 것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의 단전에서 허무심법의 부작용인 극심한 기혈 역류가 발생하여 입가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독고용은 마지막 발악을 결심했다. 그는 전신의 내력을 폭발시키며 혈영수(血影手)의 붉은 장막을 전방에 펼쳐 올렸다.


콰아아앙-!


붉은 진기 폭발이 전당 내부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자욱한 먼지와 핏빛 안개가 피어오른 틈을 타, 독고용은 장로 마불과 자신의 최정예 사가 무사 50여 명을 이끌고 장로 전당의 측면 석벽을 부수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천마! 내 기필코 네놈의 가짜 가면을 벗기고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독고용의 분노에 찬 비명이 흑월곡의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대장로가 총단의 공식적인 명분을 잃고 외곽으로 도주함으로써, 흑월마교는 피할 수 없는 내부 분열과 공식적인 내전 정국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전당 내부의 불길이 서서히 가라앉고, 장로들은 휠체어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하진의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하진은 철가면 너머로 도주한 독고용의 방향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사혈 침술의 반동으로 인한 피비린내가 다시 한번 솟구쳤으나, 하진은 그것을 태연하게 삼켜내며 은빛 철선을 가볍게 접었다.


체스판의 첫 번째 장벽이 무너졌고, 진짜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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