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완벽한 훼방
어둠이 짙게 깔린 청풍성의 밤은 평화롭지 않았다. 방금 전 토지 거래소에서 검은 골짜기 황무지 매입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자산 ‘영(0)’을 달성한 백도진은 저택 침실에 누워 일생일대의 단잠을 만끽하고 있었다. 머리통을 깨부술 듯 찌릿거리던 천벌의 정전기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 도진은 꿈속에서 드디어 가문과 의절하고 평화로운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스스로를 보며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같은 시각, 도진이 낮에 독고전 상단주에게 사기를 당해(?) 10만 영석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들인 ‘청풍성 만년 쓰레기 매립지’ 외곽.
사방에 가득한 오물 냄새와 독기 가스 사이로, 검은 복면을 쓴 무리들이 은밀하게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선 사내는 비단 옷을 대충 걸쳐 입고 쇠파이프를 든 거구의 청년, 독고전의 아들이자 청풍상회의 행동대장인 독고패였다.
“흐흐흐, 멍청한 백기상단의 서자 놈. 감히 우리 아버지를 등쳐먹고 이 쓰레기장을 사 가? 무언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묻어둔 줄 아나 본데, 오늘 밤에 아주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독고패는 이빨을 갈았다. 아버지가 화병으로 쓰러진 것은 모두 저 백도진이라는 교활한 서자 놈의 기만책 때문이라 확신했다. 그는 품속에서 꺼림칙한 기운을 풍기는 물건을 꺼냈다. 사악한 주술사 탁발귀에게 거금을 주고 구한 ‘번개를 부르는 저주 인형’이었다. 음산한 백골 문양이 새겨진 인형을 매립지 구석의 흙더미에 파묻으며, 독고패가 비열하게 웃었다.
“이 저주 인형이 네놈의 저택과 이 매립지에 하늘의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것이다!”
독고패가 치켜든 손가락 사이에 시뻘건 불꽃을 머금은 부적이 들려 있었다. 청풍상회의 비전 방화용 부구인 ‘흑염 부적’이었다. 던지기만 하면 꺼지지 않는 마법 불꽃이 일어나 사방을 태워버리는 흉물이었다.
“거기 누구냐!”
그 순간, 매립지 가건물 어둠 속에서 묵직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낡았지만 서슬 퍼런 대검을 어깨에 멘 거구의 노장 무인, 강철구였다. 도진이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를 지키는 일’에 시세의 10배에 달하는 호위 비용을 주며 고용한 은퇴 용병이었다.
강철구는 매서운 안광을 뿜어내며 대검을 뽑아 들었다. 축기기 초입의 강력한 기세가 쓰레기장의 독기를 단숨에 걷어냈다.
“도진 도련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태산과 같거늘, 감히 어떤 쥐새끼들이 도련님의 신성한 영지에 불을 지르려 하느냐!”
강철구에게 도진은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었다. 쓸모없는 늙은 용병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주며 ‘그저 서 있기만 해도 좋다’고 격려해 준 인생의 구세주였다. 그의 대검 끝에서 푸른 검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철벽검무의 초식이 가동되며 독고패의 부하 세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치, 치명적인 고수가 숨어있었잖아! 퇴각해라!”
독고패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이성을 잃고 폭력공의 내공을 끌어올리며, 들고 있던 흑염 부적에 마력을 주입해 강철구를 향해 던지는 척하다가, 매립지 한가운데의 거대한 쓰레기 구덩이를 향해 던졌다.
“다 같이 죽자, 이 서자 놈아!”
슈우우우— 쾅!
붉은 부적이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에 닿는 순간, 폭발적인 보라색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수백 년 동안 쌓여 있던 오물과 가연성 가스가 불꽃과 반응하며 순식간에 거대한 화마로 변모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매립지 전체를 보라색 장막으로 뒤덮었다.
“도련님의 영지가……!”
강철구가 경악하며 불을 끄기 위해 내공을 방출하려던 그 찰나, 그의 품속에 있던 전음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도진의 목소리였다.
—강 단장! 당장 손을 떼세요! 불 끄지 마!
“예, 예엣? 도련님? 지금 매립지가 완벽하게 불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도련님의 자산이 모두 재가 됩니다!”
저택 침실에서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난 백도진은, 전음구 너머로 들리는 불길 소리에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맨발로 탭댄스를 추며 환호성을 질렀다.
‘불이 났다고? 독고패가 내 쓰레기장에 불을 질렀어?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역시 악당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도진은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라앉히며, 짐짓 엄숙하고 초탈한 목소리로 전음구에 대고 속삭였다.
—강 단장, 이것은 모두 자연의 섭리입니다. 불타 없어질 쓰레기들은 불타야 하는 법. 억지로 불을 끄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 마음이 찢어집니다. 소방대 소집도 늦추세요. 아예 부르지 마세요! 그냥 하늘의 뜻에 맡기란 말입니다!
“도, 도련님…… 백성들의 안전과 제 안위까지 걱정하사 자산의 파괴를 묵인하신단 말입니까? 이 무슨 위대한 자비란 말인가……”
강철구는 전음구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흘렸다. 도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연의 섭리는 개뿔! 불타서 잿더미가 되면 땅값이 폭망할 테고, 환경 오염 배상금으로 수만 영석을 관청에 추가로 납부해야 하잖아! 그러면 내 자산은 완벽한 적자를 넘어 마이너스가 된다! 천벌 방어 성공률 200%다!’
도진이 행복한 상상에 빠져 침실에서 춤을 추던 바로 그 순간.
매립지 한가운데, 독고패가 던진 흑염 부적의 불꽃이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하던 정체불명의 균열 틈새로 스며들었다. 그 균열은 다름 아닌 지하의 메탄가스와 봉인된 고대 영맥의 가스가 분출되던 숨구멍이었다.
화르르륵— 웅웅웅웅!
갑자기 보라색 불꽃이 기이한 고주파 음을 내며 지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지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었다. 청풍성 전체의 지반이 뒤틀리는 듯한 거대한 지하의 맥박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도진이 춤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맨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묵직하고 불길했다. 저 멀리 매립지 하늘 위로, 보라색 불꽃과 함께 황금빛 영기가 기둥처럼 치솟아 오르는 광경이 도진의 창문 너머로 선명하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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