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거대한 음모론
“기, 기혈이 뚫렸다! 내 평생의 고질병이 나았어!”
폭발 연기가 자욱한 연설화의 연금공방 잔해 마당 너머로, 청풍성 서쪽 거리 주민들의 광기 어린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온몸에 검댕을 뒤집어쓴 채 맨발로 서 있던 백도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주민들의 눈빛은 방금 전 가옥 파손에 분노하던 폭도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살아있는 활불(活佛)을 알현한 듯한, 지독하리만치 경외에 찬 안광이었다.
‘잠깐, 이게 왜 정화가 되는 건데?! 연설화 이 사고뭉치 녀석이 넣은 건 분명히 지독한 폭발성 황화염 분말이었잖아!’
도진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공방을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그 여파로 무너진 이웃들의 담벼락과 깨진 장독대 배상금으로 남은 2만 영석을 단숨에 청산하는 것. 하지만 세상의 억지 행운은 그의 파산 계획을 비웃듯, 그 지독한 폭발 연기를 청풍성의 고질적인 음기 독소를 치료하는 ‘영약 연기’로 둔갑시켜 버렸다.
“의원님! 아니, 백씨 가문의 성자시여! 이 무너진 담벼락은 저희가 자발적으로 고치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은혜를 입었으니 저희가 영석을 바쳐야……!”
한 노인이 무릎을 꿇으며 품에서 꾀죄죄한 주머니를 꺼내려 하자, 도진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주지 마! 제발 받지 말라고! 여기 무너진 담벼락 보상금으로 내가 1만 영석을 줄 테니 당장 가져가시오! 제발 바가지를 씌워달란 말이다!”
도진이 울부짖으며 영석 자루를 주민들에게 강제로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겠습니까! 성자께서 베푸신 의술에 비하면 이깟 담벼락은 흙먼지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져가! 제발 가져가라고! 내 수명이 걸린 일이야!”
도진이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주민들은 그의 처절한 외침을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위대한 구도자의 겸손함’으로 완벽하게 오해했다. 급기야 몇몇 주민들은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도진을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서실장 냉소희는 감격에 겨워 안경을 치켜올렸다.
‘아아…… 폭발 사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이용해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 동시에 본가의 감시망을 완벽하게 교란하시는구나. 돈을 주며 거절하는 척하면서도 민심을 장악하는 이 치밀한 행보. 과연 우리 도련님이시다.’
“도련님, 일단 흥분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처소로 피하셔야 합니다. 본가에서 파견한 첩자들이 이 광경을 보면 곤란해집니다.”
냉소희가 비장한 표정으로 도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결국 도진은 억지로 떠밀려 검댕투성이가 된 맨발로 백기상단 청풍지부의 낡은 폐창고 아지트로 도망치듯 복귀해야만 했다.
***
같은 시각, 청풍성 중심부에 위치한 웅장한 기와 건물. 대가문 남궁세가의 청풍성 지부이자 변방의 요충지인 [남궁세가 청풍분타]의 최고 집무실.
남궁세가의 엘리트 소가주이자 분타주인 남궁혁은 창가에 서서 고성능 원거리 망원경인 ‘천리추적경’을 통해 백기상단 청풍지부의 동태를 매섭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푸른색 무복 깃이 바람에 날렸고, 등 뒤에 멘 명검 청강검이 은은한 검기를 흘렸다.
“백도진…… 백기상단 가주가 내쫓은 무능한 서자인 줄 알았거늘, 완전히 우리를 기만했군.”
남궁혁의 차가운 목소리에 집무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옆에 대기하던 수석 총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가주님, 그자가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입니까? 그저 연금술 공방 하나를 실수로 폭파시킨 한량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소리!”
남궁혁이 천리추적경에서 눈을 떼며 차갑게 일갈했다.
“그 폭발이 일어난 연금공방의 위치를 봐라. 그곳은 우리가 남쪽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은밀히 침투해 있던 구역의 길목이다. 게다가 그자가 매입한 만년 쓰레기 매립지는 우리 남궁세가의 물류 수송로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요새의 혈자리이지.”
남궁혁은 탁자 위에 청풍성 지도를 펼쳐놓고 붉은 선을 그었다.
“백도진은 청풍성에 오자마자 아무 가치도 없는 쓰레기 매립지를 10만 영석이라는 거금에 매입했다. 다들 미친 호구라 비웃었지. 하지만 오늘 보아라. 그 매립지 바로 옆 공방에서 터진 보라색 연기가 서쪽 거리 전체의 마기와 독소를 완벽하게 정화했다. 이것이 우연이겠느냐?”
수석 총무의 눈이 크게 번쩍였다.
“설마…… 독소를 정화해 땅의 가치를 올린 뒤, 그 요충지에 남궁세가를 견제할 거대 요새나 상단을 건설하려는 포석입니까?”
“그렇다. 겉으로는 낭비벽 심한 서자인 척 위장하면서, 배후에서는 영지의 독기 정화 기술을 시험하고 땅을 선점하는 고도의 경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지략이다. 백기상단 가주 백기환이 왜 아들을 변방으로 보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우리 남궁세가의 숨통을 조이려는 백기상단의 비밀 병기였던 거야!”
남궁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만한 그의 자존심이 백도진이라는 ‘숨겨진 천재’의 존재에 깊은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
“당장 정예 첩자들을 추가로 배치해라. 백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자가 움직이는 땅이 있다면 우리 남궁세가가 먼저 선점해야 한다. 백기상단의 변방 독점을 결코 허용치 않겠다!”
***
한편, 낡은 백기상단 폐창고 아지트 내부.
도진은 부러진 나무 상자 위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품속에서 꺼낸 [탕진 천벌의 붉은 장부]는 여전히 불길한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유 자산: 20,000 하급 영석]
[천벌 마감 시한: 남은 일수 89일]
‘미치겠네. 아직도 2만 영석이나 남았어. 이 돈을 연말까지 다 쓰지 못하면 머리통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통구이가 된다고!’
도진은 심장 부근의 벼락 인장이 찌릿거릴 때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공포를 느꼈다. [타인 무상 기부 금지 조항]과 [고의적 자산 파괴 금지법]이라는 악랄한 제약 때문에 돈을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 무조건 ‘합법적이고 멍청한 비즈니스’의 테두리 안에서 돈을 날려야 했다.
“도련님, 본가에서 보낸 감시자 고집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다음 투자처를 신중히 결정하셔야 합니다.”
냉소희가 단정한 태도로 장부를 정리하며 조언했다. 도진은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 부동산이다! 땅을 사는 것만큼 돈을 확실하고 거대하게 묶어버리는 수단은 없지. 하지만 매립지처럼 지하에 영맥이 숨겨져 있는 땅을 사면 또 대박이 터질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대륙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저주받고, 아무것도 지을 수 없으며, 평생 세금만 내야 하는 최악의 흉지(凶地)를 사야 한다!’
최악의 쓰레기 땅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지리학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평범하고 유능한 지리학자를 고용했다간 본능적으로 좋은 땅을 추천할 터였다.
도진은 과거 청풍성 시장통에서 들었던 기이한 찌라시를 떠올렸다.
지도를 거꾸로 읽고 산맥의 흐름을 완전히 반대로 계산하여, 그가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찍은 땅은 전부 늪지대로 변해 가산이 탕진되고, ‘최악의 저주받은 흉당’이라 버린 땅에서는 기적적으로 영석 광산이 터져 나와 온 문파를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똥손 지리학자.
그의 이름은 바로 김맹충(金盲忠)이었다.
김맹충은 사실 고대 지리학 가문의 후손이었으나, 음양의 흐름을 완벽하게 반대로 인지하는 [김맹충의 저주받은 천재 지리학적 혈통]이라는 기괴한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 덕분에 그가 추천한 땅을 산 상인들은 100% 파산했고, 결국 지리학 협회에서 영구 제명당해 시장통에서 뺨을 맞으며 연명하는 신세였다.
‘이 자다! 이 자야말로 내 전재산을 가장 완벽하고 합법적으로 공중에 날려줄 구세주다!’
도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발에 묻은 흙먼지도 털지 않은 채, 그는 광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시장통으로 달려갔다.
***
청풍성 시장통 한구석, 먼지가 가득한 노점 바닥에 한 청년이 주저앉아 있었다. 두꺼운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낡은 양가죽 지도를 거꾸로 든 채 훌쩍이고 있는 청년. 그의 손에는 동서남북을 가리키지 못하고 제멋대로 빙빙 도는 [고장 난 나침반]이 쥐여 있었다.
“이, 이 나침반이 분명히 이 자리가 금전의 기운이 솟구치는 명당이라 했는데…… 왜 지나가는 마차에 치여 웅덩이에 처박히는 거냐고……”
김맹충이 눈물을 훔치며 웅얼거릴 때,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자네가 지리학의 대가, 김맹충 선생인가?”
김맹충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헝클어지고 온몸에 검댕을 뒤집어쓴, 그러나 눈빛만큼은 굶주린 야수처럼 번쩍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김맹충은 또 자신에게 사기 지도를 샀다며 때리러 온 피해자인 줄 알고 바짝 엎드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판 지도는 분명히 고대의 문헌을 바탕으로 한 명당이었습니다! 그 땅이 갑자기 유독가스가 분출되는 독사 늪으로 변한 건 제 잘못이 아니라 자연의 변덕입니다!”
“독사 늪으로 변했다고?”
도진의 심장이 기쁨으로 세차게 고동쳤다. 명당이라 믿고 샀는데 독사 늪으로 변하는 기적의 마이너스의 손!
“훌륭하다! 참으로 위대한 안목이로군! 김 선생, 나는 백기상단 청풍지부장 백도진일세. 자네를 우리 상단의 전속 Chief Geographer, 즉 ‘수석 지맥 분석관’으로 특별 채용하겠네!”
“예, 예에? 저를요?”
김맹충이 귀를 의심하며 멍하니 도진을 바라보았다. 도진은 품에서 묵직한 영석 주머니를 꺼내 김맹충의 품에 거칠게 안겨주었다.
“이것은 채용 선금 및 탐사 장비 구입비 8,000 하급 영석이네! 계약 조건은 단 하나, 자네가 가진 그 [고장 난 나침반]과 지리학적 직관을 총동원하여, 청풍성 인근에서 ‘가장 가치가 없고 평생 개발이 불가능한 최악의 황무지’를 골라내어 나에게 보고하는 것이네!”
[보유 자산: 12,000 하급 영석 (8,000 영석 합법적 차감 완료)]
도진은 장부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8,000 영석 해결! 그리고 이 녀석이 추천하는 최악의 땅을 사들이면 내 남은 12,000 영석도 완벽하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다! 파산이 눈앞에 보인다!’
김맹충은 품에 안긴 8,000 영석의 묵직한 무게와 도진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도, 도련님……! 대륙의 그 어떤 상인도 저를 사기꾼이라 욕하며 침을 뱉었거늘, 오직 도련님만이 제 학문적 가치와 이 나침반의 비밀을 알아봐 주시는군요! 제 가문에 내려오는 저주받은 혈통을 이해해 주시다니…… 이 목숨 다 바쳐 도련님을 위해 청풍성 최고의 ‘명당’을 찾아 바치겠습니다!”
“아니, 명당 말고 최악의 흉지를 찾으라니까?”
“알고 있습니다, 도련님! 남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흉지’라는 위장 명칭을 쓰시는 거군요! 제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진짜 보물은 언제나 가장 험난한 곳에 숨겨져 있는 법이지요!”
김맹충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비장하게 외쳤다. 도진은 그의 해맑은 오해에 뒷목을 잡았지만, 어차피 저 녀석의 뇌는 음양을 반대로 인지하니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
한편, 저잣거리 건물 지붕 위에서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훔쳐보고 있던 남궁세가의 정예 첩자가 다급히 전음구를 켰다.
“보고 드립니다, 소가주님! 백도진이 방금 시장통에서 지리학계의 이단아이자 파산 제조기로 불리는 김맹충을 포섭했습니다! 무려 8,000 영석이라는 거금을 선금으로 지급하며 비밀 지맥 탐사 임무를 맡겼습니다!”
분타실에서 전음을 수신한 남궁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흑빛으로 변했다.
“김맹충이라고?! 그자는 풍수학계에서 이단으로 몰려 추방당했지만, 일설에는 고대 신선들의 맥을 짚는 비전 수련법을 은밀히 전수받았다는 소문이 돌던 자다! 백도진……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군. 평범한 지리학자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미치광이 행세를 하는 은둔 고수를 찾아내다니!”
남궁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서 백도진은 이미 청풍성의 모든 지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경제의 사신(死神)’과 다름없었다.
“백도진이 김맹충의 엉터리 보고서를 보며 광기 서린 미소를 짓고 있다고? 으음…… 이미 청풍성 지하의 거대한 비밀 영맥 지도를 손에 넣은 것이 틀림없다. 남궁세가의 명운을 걸고, 그자가 찍는 모든 땅을 주시해라! 그자가 사려는 땅이 있다면 우리가 무조건 가문을 파산시켜서라도 선점해야 한다!”
석양이 붉게 물드는 청풍성의 하늘 아래, 낡은 창고 창가에서 김맹충의 낙서 같은 거꾸로 된 지도를 보며 ‘드디어 망할 수 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백도진과,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감시하며 공포와 긴장감에 휩싸여 식은땀을 흘리는 남궁혁의 눈빛이 팽팽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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