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단에게 바치는 자진 납세 기획
“강 단장. 내 말 똑똑히 들었겠지? 산적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칼을 버리고 항복하는 거다. 일절 저항해서는 안 돼. 알겠나?”
청풍성 외곽, 탕진각의 비밀 마차 보관소.
백도진은 붕대로 꽁꽁 싸맨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앞에 선 호위 무사 강철구에게 신신당부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젯밤 최한량의 도박장에서 흡수한 뇌전 정전기 때문에 여전히 사방으로 뻗친 폭탄머리 상태였다. 그 해괴한 몰골로 비장하게 명령을 내리는 도진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묘한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강철구는 품에 안은 거대한 참마도(참마도)를 꽉 쥐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무조건 항복하라니? 청룡산 산적단은 청풍성 인근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난 금강두(Geum Gang-du)의 패거리다. 그들이 무림맹주의 비전 서신을 노리고 상단의 화물을 습격하려는데,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라 하심은 대체 무슨 뜻인가.’
강철구의 머릿속에서 도진의 기행을 분석하는 고도의 지략가 필터가 맹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 도련님께서는 이미 저들의 습격 경로를 완벽히 파악하고 계신다. 굳이 이 좁은 산길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켜 아까운 표사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기보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산적들의 본거지인 흑호산채(Heukhosanchae)로 직접 걸어 들어가 저들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버리시려는 포석이로구나! 아아, 이 얼마나 자비롭고도 무서운 전술인가!’
강철구는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을 느끼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
“도련님의 깊은 혜안과 백성을 아끼는 자비심에 온몸의 전율이 흐릅니다! 이 강철구, 도련님의 지시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항복 연기를 펼치겠습니다!”
“오! 그래! 항복 연기든 진짜 항복이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칼부터 버려야 한다! 약속한 거다!”
도진은 강철구의 우렁찬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산적들이 내 화물을 통째로 약탈해 가야 내 장부의 돈이 합법적으로 날아간다!’
현재 도진의 품속에 있는 [탕진 천벌의 붉은 장부]는 무려 7,530,000 하급 청풍영석이라는 무시무시한 액수를 가리키며 붉은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천벌의 벼락 강도가 100배로 강화되었다는 경고등이 심장 부근에서 찌릿찌릿 정전기를 내뿜을 때마다 도진은 자다가도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계약의 ‘타인 무상 기부 금지 조항’ 때문에 돈을 그냥 남에게 줄 수는 없었지만, 산적들에게 ‘강탈’당하는 것은 엄연한 자연재해이자 불가항력적인 손실로 인정받을 터였다. 심지어 도진은 이번 수송을 합법적인 거래로 위장하기 위해 ‘산행 통행세 납부’라는 억지 명분까지 기획해 계약의 꼼수 차단 장치를 완벽하게 우회했다.
“소희야, 마차 준비는 끝났느냐?”
도진이 뒤를 돌아보며 묻자, 단정한 비서 복장을 한 냉소희가 푸른 비단 안경을 치켜올리며 서류철을 내밀었다.
“예, 도련님. 도련님의 지시대로 상단 금고에서 가장 등급이 낮은 하급 청풍영석(하급 청풍영석) 20만 매를 황금 궤짝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마차 역시 멀리서도 번쩍이는 가장 화려한 황금 마차로 준비했습니다.”
냉소희의 목소리에는 깊은 경외심이 묻어 있었다.
‘가짜 도자기를 매입해 무림맹주의 진짜 비전 서신을 발굴해 내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소문을 미끼로 청룡산 산적단 전체를 유인하시다니. 20만 영석이라는 거금을 아낌없이 미끼로 던지는 저 대범함……! 과연 대륙 경제를 흔들 지략가이시다.’
“아주 훌륭해! 멀리서도 번쩍여야 산적들이 눈이 뒤집혀서 습격하기 편하지! 소희야, 너는 탕진각을 지키고 있거라. 내가 직접 마차를 몰고 산적들을 마중 나가마.”
도진은 맨발에 먼지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황금 마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발가락의 붕대가 눈에 띄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드디어 파산할 수 있다는 희열과 광기가 교차하고 있었다.
“사부님!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사부님의 위대한 무소유의 실천을 가장 가까이서 기록해야 합니다!”
당소소가 약선 요리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소매를 펄럭이며 마차 조수석으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녀는 이미 수첩과 붓을 손에 쥐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도진은 그녀를 말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좋소! 다들 출발합시다! 파산의 길로!”
도진이 힘차게 마차 채찍을 휘둘렀다. 황금 마차는 20만 영석의 묵직한 무게를 실은 채, 청룡산의 험준한 산길을 향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르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청룡산의 울창한 숲속 험준한 절벽 길.
“두목! 진짜 그 황금 마차가 오고 있습니다! 멀리서도 아주 눈이 멀 정도로 번쩍거립니다!”
외눈박이 산적이 나무 위에서 내려오며 흥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바위에 앉아 거대한 강철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있던 산적 두목 금강두는 텁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안광을 번뜩였다. 그의 온몸은 야만불괴체(야만불괴체)의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흐흐흐, 백기상단의 서자 놈이 제정신이 아니군. 무림맹주의 비전 서신을 얻었다고 자랑하더니, 감히 그 보물을 싣고 호위 무사 단 몇 명만 거느린 채 내 구역을 지나가다니. 오늘 Heukhosanchae의 금고가 가득 차겠구나!”
금강두는 도끼를 고쳐 잡으며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모두 매복해라! 마차가 협곡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순간, 바위를 굴려 길을 막고 단숨에 포위한다! 서신과 영석을 한 푼도 남김없이 약탈해라!”
“와아아아!”
산적 패거리 80명이 수풀 속으로 은밀하게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숲속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황금 마차가 덜컹거리며 협곡 안으로 진입했다. 마차의 바퀴가 구를 때마다 황금빛 서기가 은은하게 흩날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쿵! 콰르릉!
마차가 협곡 한가운데에 도달한 순간, 절벽 위에서 거대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지며 앞길을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습격이다! 산적이다!”
마차 주변을 따르던 표사들이 당황하며 무기를 뽑아 들려 했다. 그 순간, 수풀 속에서 거대한 도끼를 든 금강두와 80명의 산적 떼가 함성을 지르며 길을 포위했다.
“움직이면 목을 베겠다! 우리는 청룡산 산적단이다! 가진 보물과 영석을 모두 내놓고 맨몸으로 기어 나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금강두가 우렁찬 사자후를 토해내며 도끼를 땅에 쾅 내리찍었다. 지면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축기기 초입 무인의 위압감이 협곡을 가득 메웠다.
보통의 상단이었다면 비명을 지르며 대항하거나 사색이 되어 도망쳤을 상황.
하지만 황금 마차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걸어 나온 백도진의 모습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도진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에, 발가락에는 허연 붕대를 감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거칠게 뻗친 폭탄머리였고, 전신에서는 미세하게 푸른색 정전기 스파크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나 당황은커녕,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고 눈부신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어?”
금강두는 도진의 범상치 않은 비주얼을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저 사자머리는 대체 뭐지? 왜 맨발인 거야? 전신에서 흐르는 저 푸른 스파크는…… 설마 전설로만 전해지는 극양의 뇌신공 내공인가?!’
금강두가 뇌정지에 빠진 그 찰나, 도진의 옆에 서 있던 호위 무사 강철구가 비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강철구는 도진의 지시대로 참마도를 바닥에 툭 던져버리더니,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외쳤.
“우리는 패배했다! 무기를 버리고 무조건 항복하겠다! 도련님의 깊은 성심에 따라, 우리는 저항하지 않고 모든 화물을 순순히 넘기겠다!”
표사들 역시 강철구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도진의 사전 지시에 따라 무기를 땅에 버리고 만세를 부르며 항복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흘러가자, 오히려 약탈을 하러 온 금강두와 산적 패거리들의 머릿속이 완벽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싸우지도 않고 칼을 버리는 거지? 저 강철구라는 노인은 분명 축기기의 강자일 텐데, 왜 저렇게 당당하게 항복을 선언하는 거야?’
금강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 이놈들! 무슨 꿍꿍이냐! 장난질을 치면 이 도끼로 머리를 쪼개버리겠다!”
금강두가 억지로 기세를 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마차에서 내린 백도진이 맨발로 부드럽게 흙바닥을 밟으며 금강두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도진은 금강두의 손을 덥석 잡으려다, 금강두가 도끼를 치켜들자 멈춰 서서 환하게 웃었다.
“아이구, 금 대인! 정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룡산의 영웅이신 금강두 대인을 이제야 뵙는군요!”
“뭐, 뭐라고? 나를 기다렸다고?”
“그렇고말고 요! 대인께서 저희 상단의 화물을 약탈해 주시러 이 험한 산길까지 마중 나오셨는데, 어찌 빈손으로 보내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 소희야! 당장 궤짝을 열어라!”
도진의 지시에 따라, 마차 뒤편에 실려 있던 거대한 철제 궤짝들이 열렸다.
스우우우—!
궤짝이 열리는 순간, 협곡 전체가 눈이 멀 것 같은 푸른색 서기로 가득 찼다. 궤짝 내부에는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하급 청풍영석] 20만 매가 가득 쌓여 있었다. 영석들이 내뿜는 영기가 정전기와 반응하여 사방으로 타닥타닥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번져 나갔.
“이, 이것은……!”
산적 패거리들이 영석의 눈부신 빛에 압도되어 침을 흘리며 뒤로 주춤했다. 20만 영석은 청룡산 산적단이 평생을 약탈해도 만져볼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도진은 기쁨에 겨워 영석 더미에 손을 집어넣어 한 움큼을 쥐어 금강두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의 눈에는 제발 이 돈을 다 가져가 달라는 간절함과 눈물겨운 열망이 서려 있었다.
“보십시오, 금 대인! 아주 순도가 높은 하급 청풍영석입니다! 대인께서 산행 통행세 명목으로 이 20만 영석과 무림맹주의 비전 서신을 기쁘게 강탈해 가 주신다면, 저희 상단은 아무런 불만 없이 청풍성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자, 어서 가져가십시오! 마차째로 끌고 가셔도 좋습니다!”
도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심이었고, 그의 미소는 천사처럼 맑았다.
하지만 그 당당하고 거침없는 자진 상납의 태도는, 미신을 극도로 믿고 겁이 많던 산적 두목 금강두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금강두는 도진의 폭탄머리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청색 뇌전 정전기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도진의 손끝에서 튀는 스파크가 영석 상자의 주파수와 공명하며 기이한 전자기장을 형성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속았다! 이것은 대함정이다!’
금강두의 뇌리에 번개 같은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저 맨발의 사자는 지금 우리를 비웃고 있는 거다! 저 영석 상자들 내부에 황실 포졸들이 우리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심어놓은 고도의 추적 유도 결계 마법이 걸려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20만 영석이라는 거금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바칠 수 있단 말인가! 저 사자머리 애송이는 우리를 흑호산채째로 날려버리려는 황실의 비밀 특사다!’
금강두는 온몸에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치켜들고 있던 강철 도끼를 쥔 손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도진이 내민 영석 자루가 마치 자신들의 목을 죌 교수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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