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최강 타짜와의 기묘한 승부
자욱한 먼지와 매캐한 담배 연기 사이로 들이닥친 사내의 기세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단단한 체구에 화려한 비단 도포를 걸치고, 한쪽 눈에는 검은 비단 안대를 쓴 사내. 손가락 마디마다 우드득 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오는 그의 등 뒤로 청풍상회의 수하들이 좌우로 늘어섰다. 그가 바로 청풍성 최대 상단인 청풍상회의 단주 독고전이 백도진을 완벽하게 파멸시키기 위해 섭외한 대륙 최고의 타짜, 임전패였다.
“백기상단의 애송이 놈이 겨우 하급 주사위 하나를 깨뜨려 놓고 도박왕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는구나. 내 너의 그 얄팍한 뇌전 사기 주술을 오늘 이 자리에서 완벽하게 깨뜨려 주마! 내 도전장을 받겠느냐, 백도진?”
임전패의 오만한 목소리가 지하 도박장의 높은 천장을 흔들었다.
그 순간, 바닥에 맨발로 드러누워 오열하고 있던 백도진의 뇌리가 번쩍였다.
‘어? 대륙 최고의 타짜? 독고전이 보낸 사기꾼?’
도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슬그머니 들어 임전패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방금 전 터진 정전기 폭발 때문에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오른발 엄지발가락에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진의 가슴속에서는 그 어떤 순간보다 뜨거운 희열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왔다! 진짜가 왔다! 최한량 같은 어설픈 동네 야바위꾼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주름잡는 진짜 프로 사기꾼이 제 발로 찾아왔어!’
도진은 심장 부근의 벼락 인장이 찌릿거리는 것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품속의 [탕진 천벌의 붉은 장부]에는 현재 보유 자산이 무려 ‘2,385,000 영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최한량의 도박장을 억지로 인수당하고 10배 잭팟까지 터지는 바람에 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 결과였다. 이대로 연말을 맞이했다간 20배나 강해진 청색 벼락이 머리통을 강타해 뼈도 못 추릴 것이 뻔했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잃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합법적이고 깔끔하게, 한 푼도 남김없이 털려야 했다.
‘최고의 타짜라면 내 돈을 가장 확실하게, 단 한 판 만에 공중분해 시켜줄 수 있겠지! 오오, 하늘이시여! 저에게 이런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시다니!’
도진은 눈물을 훔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임전패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자비롭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 임전패 대인! 환영합니다! 정말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장 자리에 앉으시지요. 무슨 도박이든 좋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상대해 드리지요!”
도진의 너무나도 열렬하고 기쁜 환대에,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었던 임전패가 흠칫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뭐지, 이 반응은?’
임전패는 안대 너머의 외눈을 가늘게 뜨며 도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보통의 상인이나 무인이라면 대륙 최강의 타짜가 등장했을 때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숨겨둔 호위 무사를 부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자머리 애송이는 마치 일확천금을 약속받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보통내기가 아니군. 최한량의 사기 주사위를 단 한 번의 정전기 방전으로 깨부순 괴물이라더니, 내 등장을 미리 예견하고 기선제압을 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인가?’
임전패는 침착하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자리에 앉자, 그의 품속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정교한 옥 상자가 테이블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놓였다. 상자의 표면에는 고대 부적의 문양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좋다. 싱거운 잔재주는 사양하겠다. 나는 독고전 단주의 의뢰를 받고 왔으니, 판돈은 확실하게 가야겠지. 네놈이 방금 최한량에게 빼앗은 이 지하 도박장의 권리증, 그리고 현금 10만 영석을 걸어라. 나 역시 내가 가진 풍뢰무역지대의 황실 보증 채권 20만 영석어치를 걸겠다.”
임전패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채권 문서를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도진은 그 문서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행복감에 휩싸였다.
‘도박장 권리증에다가 10만 영석까지 한 번에 털어갈 수 있다고? 이 얼마나 자비로운 조건인가!’
도진은 더 크게 탕진하기 위해 [바가지 자청하기] 기술을 본능적으로 가동했다. 그는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쳤다.
“아니, 대인! 대륙 최고의 타짜를 모셔놓고 겨우 10만 영석이라니요! 그것은 대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기왕 거는 거, 제 품에 있는 현금 100만 영석을 통째로 걸겠습니다! 도박장 권리증도 두 장 더 얹어드리지요! 제발 다 걸어주십시오!”
도진의 눈에는 진심 어린 애원과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발 내 돈을 다 털어가 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쿵—!
하지만 그 제안을 들은 임전패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경계심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무엄한 놈! 감히 나 임전패를 상대로 그런 얄팍한 도발을 감행하다니! 100만 영석을 한 판에 걸어 나를 위축시키고, 내 귀수(Ghost Hand)의 흐름을 흔들려는 수작이로구나! 대륙의 수많은 거상들이 그런 배짱 베팅으로 나를 흔들려 했으나 모두 내 발밑에서 파산했다. 나는 내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규칙대로 딱 10만 영석과 도박장 권리증만 건다!”
‘아니, 제발 좀 가져가라고! 도발이 아니라 진짜 내 전 재산을 다 주고 싶어서 그런단 말이야!’
도진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임전패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사기꾼이 사기를 치겠다는데 피고용인이 판돈을 깎아달라고 사정하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당소소는 깊은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아……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100만 영석이라는 거금을 한낱 돌멩이처럼 던지시며 물질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시는구나. 저 오만한 타짜가 판돈의 크기에 연연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낼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물질을 초탈한 경지에서 저 자를 굽어보고 계신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 구도의 가르침인가!’
당소소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소유의 도박학 제3장: 판돈을 돌같이 보라]라고 엄숙하게 받아 적기 시작했다. 도진은 그녀의 수첩을 빼앗아 불태워버리고 싶었지만,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정전기 때문에 손가락 끝이 찌릿거려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도진의 단전에는 [연기경 일중 (煉氣境 一重)]의 기초 뇌전 에너지가 완전히 정착해 있어, 조금만 감정이 격해져도 정전기가 제멋대로 방출되는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좋다. 그럼 게임은 심플하게 주사위로 가자.”
임전패가 옥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스르륵 열린 상자 안에서 은은한 보라색 서기를 뿜어내는 세 개의 주사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반 주사위가 아닌, 상대방의 영기 흐름을 읽고 무게중심을 스스로 조절하는 사기 도박용 고대 법구, [천령 주사위]였다.
임전패는 주사위들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이 주사위 세 개를 컵에 넣고 흔들어 나온 숫자의 합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단, 룰은 간단하지만 조건이 있다. 나는 컵을 흔드는 타짜이니 무조건 ‘짝수’를 지킨다. 너는 도전자의 입장이니 무조건 ‘홀수’에 걸어야 한다. 이의는 없겠지?”
도진은 그 룰을 듣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하하! 타짜 놈이 주사위를 흔드는데 자기는 무조건 짝수를 지키고 나한테는 홀수를 강요한다고? 이건 대놓고 사기를 쳐서 자기가 이기겠다는 소리잖아! 역시 대륙 최강의 타짜답게 양심이 터졌구나!’
도진은 너무 기쁜 나머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아주 훌륭한 규칙입니다! 저는 무조건 홀수에 걸겠습니다! 자, 어서 흔드십시오!”
도진은 품에서 도박장 권리증과 금고에서 가져온 10만 영석어치의 황금 어음 상자를 테이블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그의 얼굴에는 패배를 확신한 자의 해맑은 평온함이 가득했다.
임전패는 도진의 막힘없는 베팅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애송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홀수에 올인을 하다니……? 최한량의 주사위를 박살 냈던 그 뇌전 주술을 다시 쓰겠다는 속셈인가? 하지만 내 천령 주사위는 황실의 최고급 결계 방어막이 걸려 있어, 그 어떤 정전기나 미세한 마력의 간섭도 완벽하게 차단한다. 네놈의 사기 주술은 내 천령 주사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임전패는 비단 안대 속의 눈을 번뜩이며 검은 주사위 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천령 주사위 세 개를 순식간에 컵 안으로 쓸어 담았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임전패의 손놀림은 실로 예술적이었다. 그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컵 내부에서 주사위들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독문 공법인 귀수(Ghost Hand)의 기운이 컵을 감싸며 주사위 내부의 미세한 마법 진법을 자극하고 있었다. 임전패는 이미 주사위들의 눈이 완벽한 짝수인 ‘4-4-6’이 나오도록 무게중심을 고정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임전패는 알지 못했다.
백도진의 품속 비단 주머니에 들어있는 [번개를 부르는 저주 인형]이 체내의 뇌전 정전기와 반응하여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자기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징웅웅웅—!
도진이 제발 져서 파산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테이블을 짚는 순간, 그의 단전에 정착된 연기경 일중의 뇌전 에너지가 저주 인형의 음기와 공명하여 테이블 아래로 은밀하게 흘러갔다.
타닥! 타다닥!
테이블의 목조 결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청색 스파크는 너무나도 은밀하여 일반적인 수도자의 안광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스파크가 임전패가 흔들고 있는 주사위 컵의 바닥에 닿는 순간, 기이한 이변이 발생했다.
천령 주사위 내부에 심어진 고대 마법 진법과 미세한 납 덩어리들이, 도진의 전자기장과 공명하며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위잉—! 웅웅웅!
“……윽?!”
임전패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
주사위 컵을 흔들고 있던 그의 오른팔 전체에 무시무시한 진동이 전해졌다. 컵 내부의 주사위들이 부드럽게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성난 야수처럼 컵 벽면을 사정없이 들이받으며 요동치고 있었다. 주사위 내부의 금속 성분들이 전자기 인력에 끌려 제멋대로 회전축을 바꾸려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임전패의 고막을 때렸다.
‘이, 이게 무슨 진동이지?! 천령 주사위의 결계가 왜 제멋대로 요동치는 건가!’
임전패는 식은땀을 흘리며 귀수의 내공을 극도로 끌어올려 주사위를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도진의 품속 저주 인형은 하늘의 벼락마저 끌어당기는 저주받은 법보였다. 그 흡인력은 임전패의 범인 수준의 사기 기술로는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도진은 임전패의 안색이 나빠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저 영감 왜 저래? 얼굴이 왜 저렇게 파랗게 질렸어? 설마 벌써부터 사기 치는 게 들통날까 봐 긴장한 건가? 안 돼! 기죽지 마, 타짜 영감! 어서 힘을 내서 내 돈을 다 털어가란 말이야!’
도진은 임전패가 게임을 포기하거나 판을 깨뜨릴까 봐 극도로 초조해졌다. 어떻게든 임전패의 승리를 확실하게 굳혀주어야 했다.
‘그래! 내가 일부러 반칙을 저지르거나 주사위를 떨어뜨려서 낙장불패로 지는 거야! 도박장의 규칙상 도전자가 주사위를 건드리거나 판을 어지럽히면 즉시 실격패 처리가 되니까!’
도진은 기막힌 탕진 꼼수를 떠올리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주사위 컵을 낚아채 바닥으로 던져버리려 했다.
“대인! 제가 주사위를 직접 굴려보겠습니다!”
도진이 테이블 위로 손을 뻗는 찰나, 그의 손가락 끝이 임전패의 주사위 컵 근처에 닿았다.
파지직! 타다닥!
“아악!”
도진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뒤로 거두어들였다.
도진의 체내에 가득 차 있던 뇌전 정전기가 저주 인형의 음기와 만나 손가락 끝으로 과다 방출된 것이었다. 찌릿한 고전압 스파크가 도진의 오른손 전체를 관통하며 손가락 마디마디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제멋대로 오그라들었다. (도진의 오른손 손가락 마비 발생)
하지만 이 정전기 방전은 임전패에게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치명적인 공격으로 인식되었다.
콰르릉! 파지직!
도진의 손끝에서 방출된 청색 정전기 스파크가 테이블 위의 공간을 찢으며 임전패의 주사위 컵을 직격했다. 주사위 컵 내부의 천령 주사위들이 강한 전기 충격을 받아 컵 내부에서 ‘깡! 깡!’ 소리를 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임전패는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그의 안대 너머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 이 미친놈이……! 말로 나를 안심시켜 놓고 손끝으로 영역 전개급 뇌전 결계를 뿜어내 내 천령 주사위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려 드는구나! 일부러 미친 사자머리에 맨발 행세를 하며 방심하게 만들더니, 실상은 내 귀수의 맥로를 끊어놓으려는 무시무시한 살수를 숨겨두고 있었어!’
임전패는 도진의 마비된 손가락이 굳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신을 짓누르기 위한 고도의 ‘뇌신공 기개’라 확신했다.
테이블 위의 주사위들은 이제 임전패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컵 내부에서 부서질 듯 회전하며 청색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임전패가 마지막 공력을 쥐어짜 주사위를 강제로 짝수 칸에 멈추려 시도했으나, 컵은 이미 도진의 전자기 인력에 이끌려 테이블 바닥에 자석처럼 찰떡같이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으, 으으으……!”
임전패는 온몸의 기혈을 쥐어짜며 주사위 컵을 내리누르려 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구쳤다.
도진은 마비된 오른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아니야! 난 그냥 주사위를 떨어뜨리려 한 것뿐이라고! 왜 주사위가 테이블에 붙어서 안 떨어지는 건데! 제발 좀 떨어져라,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들아!”
도진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도박장 지하를 가득 메웠고, 임전패는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사위 컵을 움켜쥐었다. 대륙 최강의 타짜와 탕진을 꿈꾸는 호구의 기묘한 대결은, 이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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