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성의 삐딱한 신기루
"하늘도 무심하시지."
백도진은 백기상단 청풍지부의 차가운 대청마루에 맨발로 선 채, 먼 산에 걸린 보라색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천벌의 정전기 때문에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손가락 끝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파지직거리는 청색 불꽃이 튀는 꼴이,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용만 한 번개가 내리꽂힐 것만 같아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품속에 들어 있는 ‘탕진 천벌의 붉은 장부’에는 잔인하리만치 선명한 숫자가 박혀 있었다.
[보유 자산: 1,000,000 하급 영석]
[천벌 마감 시한: 연말 자정]
"100만 영석이라니……. 이 미친 돈을 연말까지 한 푼도 남김없이 다 쓰지 않으면 대가리가 깨져 죽는단 말이지."
도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임 감사관 황세락이 자신을 '무소유의 성자'로 오해해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가압류는커녕 청풍성의 실질적 지배자 신분이 되어 자산이 10배로 폭증해 버렸다. 이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청풍성 안에서는 성주 이태평이 하사한 '특별 상업 고문 패' 때문에 합법적인 세금 폭탄이나 벌금으로 망하는 것조차 원천 차단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합법적이고, 규모가 어마어마하며, 완벽하게 망해서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대형 불량 건설 프로젝트를 일으키는 것!’
도진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즉시 대청마루 아래에서 대기하던 비서실장 냉소희를 불렀다.
"소희야."
"예,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냉소희는 푸른 비단 안경을 치켜올리며 단정한 자세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에는 도진을 향한 종교에 가까운 경외심이 서려 있었다. 세무 감사를 청렴함으로 돌파한 도진의 깊은 지략에 완전히 매료된 뒤였다.
"내가 청풍성 서쪽 땅에 거대하고 화려한 객잔을 하나 지으려 한다. 이름은 '신기루각'이라 할 것이다."
"객잔 건설 말씀이십니까?"
냉소희의 서류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동산 투자는 상단의 자산을 불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였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청풍성이 온천 관광 도시로 급부상하는 시점을 노려, 서쪽의 길목에 거점을 선점하시려는 계획이시군요. 당장 대륙 최고의 건축가들을 섭외하겠습니다. 남궁세가의 전속 건축가나 황실 조형관 출신들을 알아볼까요?"
"아니, 절대 안 된다!"
도진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 똑똑한 놈들을 고용했다간 건물이 너무 튼튼하게 지어져 대대손손 번창할 터였다.
"내가 원하는 건축가는 그런 타성에 젖은 천재들이 아니다. 청풍성에서 가장 평판이 나쁘고, 설계하는 족족 무너뜨려 건축 협회에서 영구 제명당한 비운의 인재를 원한다."
"예……? 평판이 나쁜 건축가 말씀이십니까?"
냉소희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진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그렇다! 기존의 규칙을 완전히 파괴하는 파격적인 예술가! 기둥을 똑바로 세우는 뻔한 건축이 아니라, 기둥을 비스듬히 세우거나 아예 거꾸로 박아버리는 그런 독창적인 건축가여야만 한다. 그런 인물이 청풍성에 분명 있을 터인데?"
냉소희는 도진의 광기 어린 눈빛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둥을 거꾸로 세우는 파격적인 건축이라니……? 아! 도련님께서는 일부러 건물의 외관을 위태롭고 기괴하게 지어, 본가와 경쟁 상단들의 눈을 속이시려는구나! 겉보기에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 같은 건물을 지어 적들을 방심하게 만들고, 그 배후에서 진짜 거대 금융 요충지를 구축하시려는 성동격서의 전술이 틀림없다!’
냉소희의 머릿속에서 도진의 기행은 다시 한번 우주급 지략으로 둔갑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서류를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깊은 뜻을 알겠습니다. 마침 청풍성 건축 협회에서 '붕괴의 손'이라 불리며 영구 제명된 자가 한 명 있습니다. 이름은 '가풍수'라 하옵니다. 그가 지은 건물들은 모두 15도 이상 기울어져 지반 침하를 일으켰고, 결국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재는 일거리가 없어 시장통에서 사기 풍수지리를 보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가풍수! 이름부터가 완벽하구나! 당장 그를 데려오너라!"
도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흘 만에 무너지는 건물이라니! 완공되자마자 폭삭 주저앉으면, 공사비 수십만 영석은 물론이고 인근 상점들에 지불해야 할 붕괴 배상금과 벌금으로 남은 자산을 완벽하게 청산할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후, 삐딱하게 쓴 안전모를 머리에 얹고 낡은 설계도를 품에 안은 마른 체구의 사내, 가풍수가 벌벌 떨며 대청마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바, 백기상단의 도련님께서 이 비천한 가풍수를 어찌 찾으셨는지요……? 저는 이제 더 이상 기둥을 만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나이다……."
가풍수의 목소리에는 패배감과 피로가 가득했다. 도진은 대청마루에서 내려가 맨발로 흙바닥을 딛고 가풍수의 손을 꽉 잡았다.
"가 선생! 내가 자네의 위대한 '역주공법(逆柱工法)'에 대해 들었네. 기둥을 거꾸로 세우고 벽을 비스듬하게 짓는 그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말이네!"
"예? 제, 제 건축을 예술이라 불러주시는 겁니까?"
가풍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부실 건축가라 비웃으며 돌을 던졌는데, 대륙 거상의 아들이자 청풍성의 실질적 지배자인 백도진이 자신의 설계를 예술이라 칭송하고 있었다.
"그렇고말고! 세상의 멍청한 건축가들은 기둥을 똑바로 세우는 법만 알지, 비스듬히 세울 때의 미학을 모르네. 내가 자네에게 청풍성 서쪽 땅을 내어줄 테니, 자네의 예술 세계를 마음껏 펼쳐보게. 화려하지만 완벽하게 삐딱한 객잔을 지어다오!"
"도, 도련님……! 제 평생의 한을 알아봐 주시는 주군을 이제야 만났습니다!"
가풍수는 대성통곡을 하며 도진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등 뒤로 자발적 야근의 불꽃 같은 오라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냉소희는 도진의 배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상단의 최소한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도련님, 아무리 적들을 속이기 위한 위장 전술이라 할지라도, 건물이 너무 쉽게 무너지면 상단의 신용도가 타격을 입습니다. 최소한 기초 공사만큼은 단단한 '청풍화강암'을 사용하여 뼈대를 강화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무슨 소리! 화강암이라니, 내 예술을 모독하지 마라!"
도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강암을 썼다가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면 벼락을 맞는 것은 자신이었다.
"신기루각은 가볍고 자연스러운 미학을 살려야 한다. 가장 가볍고 약해서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오동나무'와 얇은 목재만을 사용하여 뼈대를 올려라! 이것은 가주의 대리인인 나의 절대적인 명령이다!"
도진이 특별 상업 고문 패를 번쩍이며 절대적 결재권을 휘두르자, 냉소희는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냉소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오동나무처럼 가벼운 목재를 쓰라는 것은, 건물이 무너지는 연출을 가장 완벽하고 신속하게 해내기 위함이구나. 적들이 안심하고 아군을 공격하려 진입하는 순간, 건물을 스스로 붕괴시켜 적들을 일망타진하려는 무서운 계책이다……!’
도진은 품속에서 탕진 천벌의 붉은 장부를 꺼내 들었다. 가풍수에게 설계비 및 선급 자재비 명목으로 거액의 전송 도장을 찍는 순간이었다.
[딩! 부실 설계 건축가 가풍수에게 연구 개발비 및 선급금 50,000 하급 영석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유 자산: 950,000 하급 영석으로 감소 완료.]
줄어든 숫자를 보며 도진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안도감을 느꼈다. 드디어 합법적으로 5만 영석을 날렸다! 이 건물이 완공되어 사흘 만에 무너진다면, 추가로 수십만 영석의 손실을 더 낼 수 있었다.
공사는 청풍성 서쪽 외곽, 지리학자 김맹충이 '김맹충식 오차 지오맨시'를 통해 지정한 최악의 흉당(실제로는 지반이 가장 약한 싱크홀 예정지)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뒤, 서쪽 공사 현장.
가풍수의 지휘 아래 수백 명의 인부들이 기둥을 거꾸로 세우는 기괴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둥들은 하나같이 15도 이상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가벼운 오동나무 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도진은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완벽했다. 이 건물은 무조건 무너진다!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폭삭 주저앉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삐딱하게 세워진 기둥들이 서로 맞물려 묘한 균형을 이루기 시작하자, 저택과 공사 현장 지붕 위로 갑자기 칠흑 같은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쿠르릉…… 쾅!
맑은 하늘에 갑작스러운 마른하늘의 날벼락 징조가 울려 퍼지며, 청풍성 인근 산맥에서 심상치 않은 대지의 진동이 미세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도진의 머리카락이 다시 한번 쭈뼛 서며 청색 스파크가 튀었다. 무언가 기이한 인과율의 비틀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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