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자의 탐욕, 어두워지는 갱도
부러진 명검의 파편들이 먼지 속에서 빛나는 찰나, 팽철의 참마도가 범무강의 어깨를 향해 무겁게 낙하했다.
시퍼런 건양진기(乾陽眞氣)를 두른 참마도는 공기를 찢어발기며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명검을 잃고 핏발 선 눈으로 주저앉은 모용탁의 등 뒤에서, 팽철은 일격에 범무강의 목을 날려버릴 기세로 온 힘을 실었다.
범무강은 피하지 않았다. 모용탁의 한빙 검기가 안개처럼 스며들어 왼쪽 어깨 관절이 일시적으로 경직된 상태였으나, 하체를 단단히 지탱하는 돈피 마찰유(豚皮 摩擦油)의 매끄러운 기운은 아직 식지 않았다. 무강은 장장군의 비책에 적힌 구결대로 사장보(死葬步)를 디디며 대지 깊숙이 무게중심을 고정했다. 전신의 천근 질량이 단단한 흙바닥을 짓누르며 굳건한 축을 형성했다.
콰앙-!
무강이 오른손으로 치켜든 백 근 무게의 흑철 삽날 면이 참마도의 무거운 칼날과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불꽃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사방으로 튀었고, 귀를 찢는 굉음이 연무장을 메웠다. 일류 초입에 달한 팽철의 강맹한 진기가 흑철 삽을 타고 무강의 팔을 들이쳤다.
하지만 무강은 이미 ‘골격 분산(骨擊 分散)’의 묘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어깨와 척추의 관절을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어 무지막지한 충격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팽철이 쏟아부은 건양진기의 파괴력은 현철갑의 표면을 타고 흘러내려 무강의 발끝을 통해 연무장 바닥으로 고스란히 배출되었다.
쩌적! 쩌적!
무강이 딛고 서 있던 단단한 황토 바닥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먼지를 뿜어냈다. 무강의 신형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참마도를 내리친 팽철의 두 팔이 엄청난 반동으로 인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살아있는 강철 성벽을 내리친 듯한 무력감이 팽철의 뇌리를 스쳤다.
“이, 이 괴물 같은 장수 놈이……!”
팽철이 경악하며 참마도를 회수하려 했으나, 무강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잠긴 양팔의 제약 탓에 화려한 도법을 펼칠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완력의 투사만으로도 충분했다. 무강은 흑철 삽자루 끝으로 팽철의 가슴팍을 향해 육중한 일격을 가했다.
퍽-!
별도의 초식조차 섞이지 않은 무식한 밀어치기였으나, 천근력(千斤力)의 괴력이 실린 일격은 무시무시했다. 팽철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로 열 걸음 이상 밀려나며 흙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가슴뼈가 삐걱거리는 통증에 팽철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순간, 연무장 외곽의 경비 초소에서 날카로운 놋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란을 감지한 철사방의 순찰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무강은 차가운 안광으로 주저앉은 모용탁과 신음하는 팽철을 내려다본 뒤, 흑철 삽을 어깨에 메고 삼돌과 철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한다.”
그의 무겁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에 삼돌과 철우는 정신을 차리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연무장에 모인 하급 간수들은 범무강이 보여준 압도적인 질량의 공포에 질려, 감히 그들의 퇴로를 막아서지 못하고 길을 터주었다. 세 사람은 순식간에 안개 낀 연무장을 벗어나 어두운 제9번 지하 갱도의 입구로 몸을 숨겼다.
***
깊고 축축한 지하 갱도 내부, 노예 수용소 제4막사(노예 수용소 제4막사)의 어둠은 유독 짙었다.
바람이 들이치는 허술한 판자벽 사이로 희미한 기름등잔 불빛이 흔들렸다. 벙어리 소녀 아란은 가냘픈 손으로 범무강의 어깨 장갑 틈새를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있었다. 모용탁의 한빙 검기에 노출되었던 쓸린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으나, 아란이 정성스럽게 바르는 약초 덕분에 뼛속을 찌르던 한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무강은 투구 속에서 말없이 소녀의 헌신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 뭉클한 의기를 다졌다.
막사 구석에서는 비밀 정보원 배충(배충)과 연락책 곰보(곰보)가 머리를 맞대고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수로의 빗장을 푸는 것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조치해 두었네. 하지만 최근 간수장 마태강의 순찰이 비정상적으로 촘촘해졌어. 염철전(염철전) 몇 푼으로 매수하려 했던 하급 보초 놈들도 완전히 입을 닫아버렸단 말일세.”
배충이 품속에서 짤랑거리는 염철전 주머니를 만지며 초조하게 말했다.
“그렇네. 9번 갱도 배후의 지하 수로 통로(지하 수로 통로)로 빠져나가는 것이 유일한 퇴로인데, 이미 그 주변의 경비가 두 배로 늘어났어. 무언가 정보가 새고 있는 게 분명해.”
곰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무강을 바라보았다. 무강은 과묵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적들이 이미 자신들의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갱도의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 어둠 속, 막사의 가장 구석진 짚단 뒤에는 비열한 눈빛 하나가 숨어 있었다.
악질 노예 왕충(왕충)이었다. 굽실거리는 허리와 지저분한 몰골을 한 그는 짚단에 누워 자는 척하며 배충과 곰보의 밀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엿듣고 있었다. 그의 비굴한 입꼬리가 탐욕스럽게 비틀려 올라갔다.
‘지하 수로 통로라고? 흐흐흐, 탈옥 계획이 아주 구체적이었구나. 범무강 저 오만한 장수 놈이 광산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노예들을 선동할 때부터 알아봤지.’
왕충의 마음속에서는 시기와 탐욕의 불꽃이 붉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범무강의 묵직한 기개와 노예 연합의 결속을 볼 때마다 깊은 열등감을 느꼈다. 자신은 평생 밑바닥에서 기며 간수들의 발을 핥아왔는데, 역모 누명을 쓰고 들어온 죄수 놈이 단숨에 우두머리가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제갈무경이 내건 특별 사면 포상과 황금의 유혹은 왕충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범무강을 밀고하면 나는 이 지옥 같은 광산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 특별 배식은 물론이고, 황금까지 얻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단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 과거 가문의 파멸을 불렀던 배신자 범태호(범태호)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했다. 오직 자신의 안위와 탐욕을 위해 혈육을 팔아넘겼던 비열한 자. 왕충은 그 배신자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려 하고 있었다.
깊은 밤, 보초들의 교대 시간이 되자 왕충은 소리 없이 막사를 빠져나갔. 그림자처럼 어둠을 틈타 9번 갱도 출구를 지나쳐 간수장 마태강의 개인 집무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똑, 똑.
비밀스러운 문소리에 문이 열리고, 마태강의 기름진 얼굴이 드러났다.
“무슨 일이냐, 이 비천한 노예 놈이 밤중에 감히 어디를 기어들어 와?”
“간수장님! 살려주십시오! 제게 아주 엄청난 밀고거리가 있습니다!”
왕충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마태강의 장화를 핥을 듯이 아부했다. 그의 비굴한 눈빛에 탐욕의 안광이 번뜩였다.
“범무강 그 장수 놈과 9번 갱도의 쥐새끼들이 탈옥을 모의하고 있습니다! 지하 수로 통로의 열쇠와 동선을 전부 짜두었단 말입니다!”
마태강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왕충의 덜미를 잡아채며 붉게 타오르는 촛불 앞으로 끌어당겼다.
“상세히 말해라. 한 글자라도 거짓이 있다면 네놈의 가죽을 벗겨 갱도 벽에 걸어둘 것이다.”
“거짓이 아닙니다! 무강 놈은 밤마다 흑철 동혈에서 괴상한 보법을 수련하고 있고, 덕칠이라는 놈이 동물 기름을 빼돌려 갑옷에 바르고 있습니다! 그 덕에 다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왕충은 자신이 들은 모든 비밀 연락망과 탈옥 동선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범무강의 무력의 비밀인 돈피 마찰유의 존재와 야간 보법 수련 사실까지 낱낱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마태강의 입가에 잔인하고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염철전 몇 닢을 꺼내 왕충의 얼굴에 던졌다.
“기특하구나, 쥐새끼치고는 쓸모가 있었어. 제갈 분타주님께 즉각 보고하여 대규모 소탕 작전의 허가를 받아내겠다.”
왕충은 바닥에 떨어진 염철전을 허겁지겁 주워 담으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비굴한 웃음소리가 어두운 간수실 내부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
같은 시각, 막사로 돌아가던 비밀 연락책 곰보는 어둠 속에서 왕충이 간수실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왕충의 품속에서 은밀하게 반짝이는 염철전의 금속음과 그의 야비한 미소를 포착한 순간, 곰보의 등골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
‘왕충 저 비열한 놈이…… 결국 장군님을 밀고했구나!’
곰보는 기척을 지우고 소리 없이 벽을 타며 무강이 수련 중인 9번 갱도 깊은 곳으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멈출 수 없었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왕충 놈이 간수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누설되었습니다!”
무강의 곁에 도달한 곰보가 다급하게 전음으로 경고를 전달했다. 아란과 삼돌, 철우의 얼굴이 동시에 사색이 되었다.
무강은 묵묵히 흑철 삽을 굳게 쥐었다. 투구 속 그의 눈동자가 붉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가문을 파멸로 몰고 갔던 배신자 범태호의 비열한 얼굴이 떠오르며, 그의 뼛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분노가 끓어올랐. 사지 잠금의 족쇄보다 더 끔찍한 것은, 동료의 탈을 쓴 배신자의 칼날이었다.
“퇴로를 확인한다.”
무강의 무거운 명령에 배충이 다급히 지하 수로 통로의 입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이 도달하기도 전에, 저 멀리 갱도 입구에서 수십 개의 횃불 불빛이 어둠을 붉게 물들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철컥! 콰르릉-!
육중한 강철 쇠창살이 9번 갱도의 유일한 출구를 가로막으며 무섭게 내려앉았다. 마태강이 이끄는 무장 간수 수십 명이 쇠창살 너머에서 차가운 병기를 겨눈 채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지하 수로 통로의 철문 역시 이미 두꺼운 자물쇠로 굳건히 잠겨 있었다.
“흐흐흐, 범무강! 대장군의 머리가 고작 노예 놈의 혓바닥 하나에 놀아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구나!”
쇠창살 너머에서 마태강이 채찍을 털며 포효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간수들이 쇠창과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그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었다.
완벽한 포위이자, 퇴로가 차단된 고립이었다. 9번 갱도의 어둠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그들을 짓눌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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