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명검, 질량의 공포
삭풍이 몰아치는 철사방 연무장(鐵砂坊 演武場)의 아침은 차갑고도 무거웠다. 북방 국경의 칼바람은 광산 구석구석에 쌓인 검은 철사 가루와 석탄 먼지를 사정없이 쓸어 올리며 무인들의 뺨을 때렸다. 다져진 흙바닥 위에 서 있는 범무강은 좁은 투구 틈새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스스스, 지이익.’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 관절 내부에서 미세하게 들려오는 묵직하고 매끄러운 기계음. 덕칠이 매일 밤 목숨을 걸고 발라준 돈피 마찰유(豚皮 摩擦油) 덕분에 하체의 가동성은 일시적으로 회복된 상태였다. 그러나 무강은 이전처럼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척 연기하며 묵묵히 흙바닥을 디뎠다. 마태강을 비롯한 간수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무력한 폐인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는 무게가 백 근에 달하는 묵직한 흑철 삽(묵직한 흑철 삽)이 쥐여 있었다. 일반적인 삽보다 세 배는 더 무겁고 두껍게 제작된, 중벌용 채굴 도구. 간수들은 그가 천근의 현철 갑옷을 입고도 쓰러지지 않자 일부러 이 무식한 쇳덩이를 쥐여주며 중노동을 강요했으나, 무강에게 이것은 훌륭한 임시 무기이자 완력 수련의 도구였다.
“어이, 거기 저는 다리로 꾸물거리는 놈. 네놈이 한때 북방을 호령했다던 그 대장군 범무강이냐?”
연무장 중앙 단상 옆에서 들려온 오만방자한 목소리가 바람을 찢었다.
무강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청색 비단 도포를 걸치고, 허리에는 보석이 박힌 검집을 찬 청년이 서 있었다. 모용세가의 오만한 후기지수, 모용탁(慕容拓)이었다. 그는 철사방의 방주 제갈무경의 빈객으로 광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유배지의 죄수들을 벌레처럼 여기며 자신의 무공을 과시할 먹잇감을 찾던 중이었다.
모용탁의 곁에는 철사방 무사들을 훈련시키는 교관이자 하북팽가의 배신자인 거한, 팽철(팽철)이 거대한 참마도를 어깨에 멘 채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용 소협, 저놈이 맞습니다. 역모죄로 내공이 완전히 봉인된 채 천근의 쇠틀에 갇힌 가여운 들개지요. 한때는 장군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흙이나 파먹는 광부에 불과합니다.”
팽철의 조롱 섞인 설명에 모용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는 허리춤에서 푸른빛 안기가 서린 보검을 서서히 뽑아 들었다. 모용세가 비전의 한철 보검이었다. 검신이 드러나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극저온의 한빙진기(寒氷眞氣)가 연무장 바닥을 하얗게 얼려 들어갔.
“내공도 없는 쇠송장 놈이 대장군의 기개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기에 내 친히 그 오만함을 꺾어주려 왔다. 검을 쥔 자가 무기를 잃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나.”
모용탁이 검을 가볍게 털자, 서늘한 매화 검기가 공기를 얼리며 쇄도했다.
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투구의 좁은 틈새로 보이는 그의 안광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단전의 진기를 전혀 쓸 수 없는 구중 경맥 봉인 상태였으나, 뼛속 깊이 새겨진 군인의 의지와 천생골격에서 비롯된 순수 완력은 쇠틀의 압박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벼려져 있었다.
“받아라!”
모용탁의 신형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이류 극성의 경지에 달한 그의 신법은 눈부시게 빨랐다. 모용세가 비전의 한빙검법(寒氷劍法)이 전개되며, 그의 검날이 무강의 좌우 사각지대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쉬이익! 팍!
차가운 한빙검기가 범무강의 현철갑 관절 이음새를 스치며 지나갔다. 극저온의 냉기가 갑옷 틈새를 파고들어 피부를 얼리려 했고, 관절 내부의 기름마저 얼어붙게 만들려는 듯한 혹독한 한기 통증이 밀려왔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경맥이 얼어붙어 비명을 질렀을 터였다.
하지만 무강의 안광은 요동치지 않았다.
‘고통 면역 (痛覺 遮斷)’.
가혹한 고문과 갑옷의 상시 압박 속에서 신경 감각을 스스로 마비시킨 그의 육체는 웬만한 한기 통증을 통증으로 인지하지 않았다. 무강은 차가운 냉기를 묵묵히 무시한 채, 장장군의 비책에 적힌 구결대로 사장보(死葬步)를 딛고 지면을 단단히 디뎠다. 천근의 몸무게를 하체에 실어 대지 깊숙이 무게중심을 고정하자, 그의 신형은 폭풍 속의 바위산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 둔해 빠진 무쇠 덩어리가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모용탁은 무강이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오판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며, 범무강의 가슴 플레이트 중앙, 가장 미세한 이음새를 향해 전력의 일점 집중 찌르기를 감행했다. 푸른 한빙검강이 검끝에 응집되며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그 찰나의 순간, 범무강의 거대한 철갑 손이 움직였다.
그는 무식하게 무거운 흑철 삽자루를 꽉 쥐고 허리의 회전력을 실어 비스듬히 내리쳤다.
‘흑철삽격 (黑鐵鏺擊)’.
그것은 화려한 초식이 아니었다. 오직 천근의 무게와 순수 근력(천근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무자비한 물리적 질량의 투사였다. 검은 바람을 가르듯 웅장한 파공음이 연무장을 메웠다.
깡-!
귀를 찢는 듯한 강렬한 쇳소리가 연무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모용탁의 한철 보검이 범무강의 흑철 삽날 면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모용탁은 순간 자신의 검이 움직이는 거대한 강철 성벽에 부딪힌 듯한 끔찍한 물리적 반동을 느꼈다.
이류 고수의 검기는 천근 현철갑의 두께와 묵직한 흑철 삽의 밀도를 뚫지 못하는 검기 관통 한계(검기 관통 한계)에 부딪혀 표면에서 허망하게 소멸했다.
“어, 억……!”
모용탁의 비명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내뿜은 한빙진기가 범무강의 무식한 완력과 삽의 질량에 밀려 역으로 그의 경맥을 타고 되돌아갔다. 한철 보검의 검신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뒤틀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쩌적! 콰직!
명문 모용세가가 자랑하던 보검이 범무강의 흑철 삽날 아래에서 무참히 바스러졌다. 강철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연무장 바닥에 박혔다. 모용탁은 부러진 검자루만을 쥔 채 뒤로 대여섯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의 고운 손끝은 충격으로 인해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고,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렸다.
“이, 이럴 리가 없다…… 내공도 없는 죄수 놈이 어떻게 가문의 명검을 맨손으로…….”
모용탁의 눈동자에 오만함 대신 지울 수 없는 절대적인 질량의 공포가 각인되었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거대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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