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의 거인과 사냥개
지하로 내려가는 쇠창살 승강기는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위에서 불어오던 북방의 차가운 칼바람은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숨이 턱 막히는 유황 냄새와 축축한 열기였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락, 제9번 지하 갱도. 그곳은 철사광산에서도 가장 깊고 붕괴 위험이 높아 죄수들 사이에서 ‘망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막장이었다.
쿵.
승강기가 바닥에 닿자 둔탁한 진동이 무강의 무릎을 타고 올라왔. 사지 잠금의 금제 탓에 무릎 관절이 삼십 도 이상 굽혀지지 않아, 그는 떨어지는 충격을 오직 단단한 뼈의 밀도로만 받아내야 했다. 쇠사슬이 부딪히는 묵직한 소음이 어두운 동굴 벽면에 반사되어 웅웅거렸다.
“내려라, 역적 놈아.”
간수가 무강의 쇠틀을 거칠게 밀쳤다. 천근(千斤)의 무게를 지닌 거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축축한 진흙 바닥이 움푹 패어 들어갔.
철컥, 쿵. 철컥, 쿵.
무강은 투구의 좁은 틈새로 사방을 관조했다. 횃불이 흐릿하게 밝히는 갱도 내부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암반들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이마에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뼈만 남은 몰골의 죄수들이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하루의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가해질 채찍질에 대한 공포만이 그들의 마른 육체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새 얼굴이군.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쇳덩이를 걸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흑철 원석이 가득 담긴 삼베 주머니를 나르던 사내가 무강을 바라보았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가득하고 낡은 가죽 조끼를 걸친 사내, 9번 갱도의 십장 삼돌이었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과 함께 묘한 동정심이 서려 있었다.
“이봐, 거기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흑철이나 캐! 오늘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우리 모두 저녁 배급은 구경도 못 한다고!”
삼돌의 옆에서 바위처럼 두꺼운 가슴과 통나무 같은 팔뚝을 지닌 거구의 사내가 소리쳤다. 순박한 얼굴에 온통 숯검댕을 묻힌 사내, 철우였다. 그는 천생 괴력을 타고난 광부였지만, 제아무리 장사라도 내공 없이 하루 열두 시간 동안 흑철을 캐는 중노동 앞에서는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무강은 묵묵히 갱도 구석에 놓인 무거운 흑철 삽을 집어 들었다.
일반적인 삽보다 세 배는 더 무겁고 두껍게 제작된 무기나 다름없는 삽이었다. 사지 잠금의 족쇄 탓에 팔꿈치와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무강은 전신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쓰러뜨리며 삽자루를 꽉 쥐었다.
스슥, 콰직.
그가 삽을 내리꽂을 때마다 단단한 암반이 쩍 갈라지며 고순도의 흑철 원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내공의 도움 없이 오직 전신의 질량과 뼛속 깊이 박힌 근육의 힘만으로 이뤄내는 채광이었다. 삼돌과 철우는 무강의 비정상적인 완력과 무뚝뚝한 태도에 침을 삼키며 감탄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켜라, 쥐새끼들아.”
동굴 안쪽의 어둠을 찢고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갱도 내부의 죄수들이 일제히 몸을 떨며 길을 터주었다.
나타난 자는 한쪽 팔이 기괴하게 길고 가슴에 거친 털이 무성한 흉악한 몰골의 사내였다. 간수들의 사냥개 노릇을 하며 신입 노예들의 배급을 빼앗고 군림해 온 악질 죄수, 귀수 삼랑이었다. 그의 뒤로 날카롭게 간 철편을 쥔 대여섯 명의 패거리들이 거들먹거리며 따라왔다.
귀수 삼랑의 뱀처럼 날카로운 안광이 범무강의 거대한 흑철 갑옷에 머물렀.
“흐흐흐, 소문으로만 듣던 북방의 대장군이 정말로 이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졌군. 온몸에 천근짜리 무쇠 가마솥을 걸치고서 무슨 대단한 광부질을 하겠다는 거냐?”
삼랑이 다가와 무강의 가슴 플레이트를 철편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깡, 깡.
청명한 쇳소리가 동굴 내부에 불길하게 울렸다. 무강은 투구 속에서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과묵함은 삼랑의 오만함을 더욱 자극했다.
“역적 놈이라 그런지 귀도 먹었나 보군. 이곳의 규칙을 가르쳐 주지. 새로 온 놈은 첫 배급으로 나오는 빵과 약초를 나에게 바쳐야 한다. 그리고 네놈의 그 거대하고 거추장스러운 갑옷 틈새에 숨겨둔 쓸만한 물건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놓는 게 좋을 거다.”
삼랑의 부하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무강의 주변을 포위했다. 삼돌이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혔다.
“삼랑 형님, 이분은 오늘 처음 와서 광산의 법도를 잘 모릅니다. 저희가 대신 오늘 채굴량을 채워드릴 테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 이 늙은 조장이 미쳤나.”
삼랑이 긴 팔을 휘둘러 삼돌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삼돌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철우가 분노하여 곡괭이를 쥐고 나서려 했으나, 삼랑의 부하들이 날카로운 철편을 겨누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귀수 삼랑은 삼돌을 짓밟은 발로 무강의 발목 사슬을 툭 찼다.
“장군님이라 대접해 주니까 내가 우스워 보이나 보지? 무릎을 꿇어라, 범무강! 이 무거운 쇠틀 속에서 뼈가 으스러지기 전에 내 발밑을 기란 말이다!”
무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투구의 좁은 슬릿 틈새로 타오르는 묵직하고 차가운 안광이 삼랑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그것은 멸문당한 가문의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물리적 갑옷의 무게를 이겨내며 쌓아 올린 대장군의 처절한 분노였다.
삼랑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꼈으나, 주변의 부하들과 간수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억지로 살기를 뿜어냈다.
“이 독종 놈이…… 죽고 싶어 발악을 하는구나!”
삼랑이 날카롭게 갈아 만든 철편을 꼬아 쥐고 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귀수조(鬼手爪)의 초식을 전개했다. 사파의 음독함이 실린 일격이 무강의 갑옷 이음새 중 가장 얇은 부위를 정확히 노리고 쏘아져 왔다.
무강은 피하지 않았다. 사지 잠금의 제약 탓에 신속한 회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하체를 단단히 고정했다. 군부의 실전 보법인 사장보(死葬步)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읊조리며, 전신의 중량을 발끝으로 떨어뜨려 대지에 굳건히 박았다.
팅-!
삼랑의 날카로운 철편이 무강의 목덜미 견갑에 닿는 순간, 거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철편은 범무강의 전신을 보호하는 ‘동피철골(銅皮鐵骨)’의 방어벽과 두꺼운 만년한철의 경도를 뚫지 못하고 비껴 나갔다. 오히려 타격의 반동으로 인해 삼랑의 손목 뼈가 삐걱거리며 비틀렸다.
“뭐, 뭐라고……?”
삼랑이 경악하는 찰나, 무강의 거대한 주먹이 움직였다.
내공의 푸른 빛 따위는 없었다. 오직 천근의 무게를 실어 앞으로 쓰러뜨리는 중력의 낙하 가속도와, 뼛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인적인 ‘천근력(千斤力)’의 완력만이 주먹 끝에 응집되었다. 군부 실전 권법인 ‘군부 사장권법’의 가장 투박하고 단단한 단격 초식이었다.
무강의 묵직한 주먹이 대기를 찢으며 삼랑의 얼굴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
콰직!
동굴 전체를 뒤흔드는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귀수 삼랑의 비명은 채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주먹이 닿는 순간 그가 쥐고 있던 강철 철편이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서 삼랑의 턱뼈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바스러졌고, 그의 몸뚱이는 마치 거대한 대포알에 맞은 것처럼 허공을 날아 동굴 벽면에 거칠게 처박혔다.
쿵!
돌가루와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삼랑은 피와 부러진 이빨을 쏟아내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단 한 격. 내공조차 쓰지 않은 단 한 번의 무식한 완력의 일격에 9번 갱도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굴 내부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곡괭이질 소리도, 거친 숨소리도 모두 멈췄다. 삼랑의 부하들은 무기를 쥔 채 사르르 떨며 뒤로 물러섰고, 흙바닥에 쓰러져 있던 삼돌과 거구의 철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무강의 검은 철갑옷을 올려다보았다.
무강은 주먹을 천천히 거두었다. 급격한 힘의 분출로 인해 무릎 관절의 피로 골절 통증이 욱신거리며 밀려왔지만, 그의 거대한 신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산처럼 서 있었다. 투구의 좁은 틈새로 흘러나오는 장군의 안광이 어둠 속의 죄수들을 묵묵히 쓸어내렸다.
귀수 삼랑이 바스러진 턱뼈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어둠 속에서 범무강을 지켜보던 노예들의 눈빛에 경외심과 함께 기묘한 불꽃이 일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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