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골격의 역설, 뼛속의 뇌성
독고황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움켜쥔 범무강의 무쇠 손가락이 터질 듯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조카 소하가 살아 있다. 무림맹 본산 인근의 지하 사찰에 감금되어 자신을 유인할 인질로 보존되어 있다는 잔혹하고도 명백한 진실. 절망의 나락에서 타오른 분노는 그의 가슴속에 핏빛 불꽃을 지폈으나, 그의 육체는 이미 한계를 선언하고 있었다.
“으윽…….”
무강의 입술 틈새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딛자, 전신을 결박한 천근 현철갑의 무릎 관절 기어들이 쇠 비틀리는 기괴한 파공음을 내며 굳어 들어갔다. 삐걱, 끼이익. 윤활유 삼아 발라두었던 돈피 마찰유가 타 들어가는 비린내가 쇠독으로 진물러 터진 피부의 피비린내와 뒤섞여 암도 내부의 공기를 무겁게 오염시켰다.
내공의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천근의 무게를 순수 근육과 뼈로만 버텨온 대가였다. 척추와 무릎 관절의 뼈마디가 서로를 사정없이 갉아먹는 골밀도 마모(骨密度 磨耗) 현상이 극에 달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뼈를 타고 뇌리를 찌르는 끔찍한 신경통이 밀려왔다. 무강의 거구가 중심을 잃고 암벽에 기댔다. 천근의 철갑이 바위에 부딪히며 쿵 하는 육중한 진동이 울렸다.
“장군님!”
어둠 속에서 장님 의원 갈홍이 더듬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마른 손끝이 무강의 투구 이마 부위와 옆구리 장갑 틈새를 짚었다. 은침을 쥔 갈홍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평생 쇠를 다루고 군인들의 정기를 진단해 온 갈홍의 눈먼 안광에 깊은 슬픔과 경악이 서렸다.
“골막이 갈려 나가고 있소. 척추와 무릎의 뼈들이 서로 부딪혀 미세한 가루가 되어 흘러내리는 상태요. 장군, 이대로 제갈무경과 대적하려 했다간 다리 자물쇠를 풀기도 전에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뼈가 부러져 평생 주저앉는 불구(不具)가 될 것이오.”
“……소하가 살아 있다.”
무강의 목소리는 지하 깊은 갱도에서 긁혀 나오는 무쇠처럼 낮고 거칠었다.
“살아서…… 기다리고 있다. 내 다리가 무너져선 안 된다.”
“알고 있소, 장군님. 그렇기에 더욱 뼈를 재편해야 하오.”
갈홍이 무강의 가슴 플레이트를 짚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 광산 깊은 곳,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9번 갱도 너머의 폐갱도 깊숙한 곳에 무명노인이 머물던 금지 구역이 있소. 강한 자성(磁性)이 휘몰아치고, 만년한철 정수(萬年寒鐵 精髓)의 극저온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흑철 동혈(黑鐵 洞穴)’이오. 그곳의 한기로 쇠독의 열기를 식히고, 자성을 역으로 버텨내며 뼈의 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천근 자성 제어 수련’을 감내해야 하오. 그것만이 장군의 천생골격을 깨워 금강골(金剛骨)로 격동시킬 유일한 활로요.”
무강은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 소하를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뼛속을 송곳으로 쑤시는 고통이라도 감내할 터였다. 그는 팽대혁과 아란에게 창고의 보급품을 지키며 경계를 서라 이른 뒤, 홀로 9번 갱도 끝 무너진 암반 틈새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
***
흑철 동혈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웠고, 벽면은 푸르스름한 만년한철 원석들이 기괴한 빛을 발하며 박혀 있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범무강의 전신을 감싼 현철갑 표면이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암벽 사방에 흐르는 강력한 자성(磁性) 때문이었다.
철컥! 콰르릉!
무강이 동굴 중앙에 들어서는 순간, 사방의 암벽들이 천근의 현철갑을 향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쇠 손을 뻗어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우측 어깨 장갑이 오른쪽 암벽으로 강하게 끌려갔고, 동시에 왼쪽 골반 자물쇠 부위는 반대편 암벽을 향해 찢겨 나가듯 장력을 받았다. 사지 잠금(四肢 鎖金) 상태의 뻣뻣한 관절들이 비틀리며 뼈가 관절와에서 어긋나는 끔찍한 파열음이 동굴 내부를 메웠.
“우드득…… 으으윽!”
내공이 봉인된 무강으로서는 이 무시무시한 인력을 상쇄할 진기가 없었다. 자칫 힘의 균형을 잃고 한쪽 암벽에 몸이 달라붙는 순간, 천근의 무게에 짓눌려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죽을 터였다. 무강은 무기를 쥘 완력마저 잃은 채, 바닥에 흑철 삽을 내팽개치고 오직 맨몸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그는 발바닥을 단단한 한철 암반 위에 고정했다. 그리고 무당파 속가제자 진무에게 배웠던 도가 장생식(道家 長生式) 호흡법을 가동했다.
후우우…… 들이쉬고, 가늘게 날숨을 뱉는다.
호흡을 3단계로 나누어 극도로 미세하게 조절하자,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분당 10회 이하로 느려지며 전신의 긴장이 가라앉았다. 무강은 단전의 봉인을 우회하여 흐르는 미세한 체내의 정기를 끌어모아 근육 세포가 아닌, 갈려 나가던 뼈마디의 골막 깊은 곳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정기 압축(精氣 壓縮).’
자성 바위가 현철갑의 사지를 찢어발기려 당길 때마다, 무강은 관성의 법칙을 역이용해 몸의 무게중심을 미세하게 반대편으로 기울이며 하체로 땅을 내리눌렀. 뼈가 어긋나는 고통이 뇌리를 사정없이 찢어발겼으나, 동혈 깊은 곳에서 방출되는 만년한철 정수의 극저온 한기가 갑옷 틈새를 타고 들어와 피로 얼룩진 쇠독 상처를 얼려버렸다. 한기는 고통을 강제로 마비시키는 차가운 마취제가 되어 그의 부동심을 붙잡아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무강의 뼛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뇌성 같은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웅웅웅—! 쿠구구구!
그것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혹한 중량 압박과 자성의 인력을 견뎌내며, 일반인보다 세 배 이상 조밀했던 그의 천생골격 구조가 재편되는 소리였다. 뼛속의 골수가 황금빛 정기와 공명하며 요동치는 금강골 격동(金剛骨 激動)의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무강의 좁은 투구 틈새 너머로 보이는 그의 두 눈이 은은한 황금빛 안광을 뿜어내며 어둠을 밝혔다. 전신의 뼈마디가 강철보다 단단한 결을 형성하며 스스로 자성의 인력을 밀어내는 굳건한 하체 지지력을 확보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터벅, 터벅.
동혈 입구의 어둠을 찢고, 대지를 뒤흔드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횃불의 붉은 불빛들이 밀려들어왔다. 쇠창을 치켜든 철사방 무사들의 대오 중앙, 키가 팔 척에 달하고 삼백 근 무게의 거대한 가시 철퇴를 어깨에 멘 흉포한 거구가 짐승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걸어 나왔다.
“크하하하! 대장군 범무강이 이 쥐구멍에 숨어 뼈를 깎고 있었구나! 철사방 최강의 무사, 이 금강 야차(金剛 夜叉)가 네놈의 무덤을 만들어주러 왔다!”
금강 야차가 가시 철퇴를 바닥에 내리치자 쿵 하는 파공음이 동굴을 메웠고, 그 뒤로 철사방 무사들이 범무강의 퇴로를 완벽하게 포위하며 좁혀오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