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의 감시자, 그림자의 속삭임
쇠사슬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붉은 연막이 가득한 갱도 내부를 찢어발겼다.
범무강의 양손목에 감긴 굵고 육중한 현철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불꽃을 튀겼다. 사슬 끝에 옭아매인 혈투대장 염귀의 거대한 귀두도가 무강의 압도적인 완력에 끌려 서서히 요동치고 있었다. 내공의 도움이라곤 단 한 줌도 없는, 오직 뼈와 근육의 한계를 초월한 순수 천근력(千斤力)의 투사였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염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류 극성의 경지에 달한 자신의 혈살공 진기마저 범무강의 무식한 질량 앞에서는 아무런 디딤돌이 되지 못했다. 무강이 사슬을 감아쥔 손목을 묵직하게 뒤틀어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쿠우웅—!
염귀의 손아귀를 떠난 귀두도가 암도 바닥에 처박히며 불꽃을 일으켰다. 무기를 잃은 염귀는 공포에 질려 뒤로 나자빠졌고, 주변에 있던 혈투대 살수들이 다급히 그의 신형을 부축해 붉은 연막 너머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형님! 적들이 물러갑니다! 이 틈에 군량 창고를……!”
팽대혁이 혼원강기를 거두며 포효했으나, 범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투구의 좁은 틈새 너머로 보이는 그의 전신이 기묘하게 굳어 있었다. 무릎 관절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극대화된 마찰열로 인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고, 가슴을 조여오는 천근 현철갑의 압박으로 인해 입가에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사방을 메운 붉은 연무를 뚫고, 오직 범무강의 귓가에만 꽂히는 차갑고 음산한 전음술(전음술)의 파동이 밀려들었다.
—범무강. 어리석고 가여운 대장군이여. 네가 이곳 지옥의 밑바닥에서 발버둥 친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무림맹 감시역 독고운의 목소리였다. 뱀이 살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 나쁜 속삭임이 무강의 고막을 잔인하게 두드렸다.
—네가 북방 국경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제국과 무림맹이 너에게 어떤 자비를 베풀었는지 잊었느냐.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조카 범소하…… 그 어린아이가 사흘 전 무림맹 본산의 대광장에서 대역죄인의 핏줄이라는 명목으로 참수당했다.
쿵.
무강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전의 내공이 아홉 겹의 금제 사슬에 잠겨 흐르지 못함에도, 심장이 터질 듯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단 열 살에 불과한 계집아이더군.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 네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꼴이 제법 볼만했지. 그 아이의 머리는 지금 대광장의 차가운 쇠창 끝에 효수되어 까마귀들의 밥이 되고 있다. 범무강, 너는 가문을 파멸시키고 유일한 혈육마저 죽음으로 몰고 간 죄인이다.
“……아.”
무강의 입술 틈새로 쇳소리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가문이 멸문당하던 피비린내 나는 밤, 끝내 지켜내지 못하고 홀로 광산으로 끌려와야 했던 어린 조카 소하. 그 맑고 깊은 눈망울을 가졌던 아이가 자신 때문에 목이 잘려 효수당했다는 소식은, 무강의 강철 같은 정신을 단숨에 부수어버렸다.
투구 안쪽에서 묵묵히 참아왔던 뜨거운 피눈물이 흘러내려 쇠독으로 짓무른 뺨을 적셨다. 천근 현철갑이 전신을 조여오는 물리적인 압박보다, 뼛속 깊이 박히는 죄책감과 절망감이 그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무강의 거구가 중심을 잃고 삐걱거리며 바위벽에 기대어 비틀거렸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안색이……!”
팽대혁이 무강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연막이 걷히며 광산 내부의 혼란은 극에 달해 있었고, 노예 광부들이 철사방 무사들과 뒤엉켜 싸우는 소리가 동굴을 메우고 있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광산 구석의 광물 수레 뒤에 숨어 있던 벙어리 소녀 아란이 무강의 고통을 감지하고 다급히 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란의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아란의 등 뒤에서 어두운 삼베옷을 입은 늙은 노예 하나가 소리 없이 접근했다. 광산 내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품없고 왜소한 광부의 모습이었으나, 그의 움직임에는 기이할 정도로 소리가 없었다.
‘백살(백살).’
노예로 위장해 범무강의 주변을 감시하던 무림맹 대장로 독고황의 일급 그림자 살수였다. 백살은 무강이 조카의 사망 소식에 정신을 잃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그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아란을 납치하려 움직인 것이다. 백살의 소매 틈새로 스치기만 해도 전신을 마비시키는 칠보단혼독이 발라진 얇은 은침이 소리 없이 흘러나왔.
스스슥.
보통의 무인이라면 갱도의 소음과 연막에 가려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은밀한 신법. 하지만 범무강은 뼛속 깊은 곳에 새겨진 군인의 직감과 지형 진동 감지 능력을 가동하고 있었다.
쿵.
무강의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대지의 진동 속에, 비정상적으로 가볍고 정교한 발걸음이 포착되었다. 굶주림에 지쳐 비틀거리는 노예들의 투박한 진동이 아니었다.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제어하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초일류급 무영신법의 궤적.
‘아란……!’
조카를 잃었다는 피눈물 속에서도, 눈앞의 약자를 지켜야 한다는 대장군의 의지가 그의 육체를 격동시켰다. 무강은 가슴의 통증을 억누르며 상체를 앞으로 급격히 기울였다.
‘중력 낙하 보법!’
천근의 중량이 앞으로 쓰러지며 엄청난 관성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무강은 단 한 걸음 만에 아란의 전방으로 신형을 던졌다.
철컥! 콰아앙!
무강의 거구가 아란의 앞을 가로막는 순간, 백살의 은침이 현철갑의 두꺼운 옆구리 장갑 표면에 부딪혀 깡!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나갔다.
“이, 이놈이 어떻게……!”
백살이 경악하며 뒤로 도약하려 했다. 그의 신형이 무영기공의 탄력을 받아 허공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려는 찰나, 범무강의 무쇠 같은 손아귀가 허공을 갈랐.
스피드는 느렸으나, 상대의 도주 궤적을 미리 예측하고 내지른 정밀한 일격이었다.
콰직—!
“끄아아악!”
범무강의 거친 흑철 장갑이 백살의 오른쪽 손목을 정확히 낚아챘다. 천근력의 완력이 가해지자, 백살의 손목뼈가 단숨에 가루처럼 바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이 암도를 메웠다. 백살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꺾였다.
무강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부러진 손목을 쥔 채 백살을 그대로 들어 올려 단단한 바위벽에 정면으로 처박았다.
쿵—!
바위벽에 금이 가며 낙석이 떨어져 내렸다. 등뼈가 으스러진 백살이 각혈하며 주저앉자, 무강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투구의 좁은 틈새로 차가운 안광을 뿜어냈다.
“역용(역용)이군.”
무강의 목소리는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쇳소리처럼 차가웠다. 백살의 목덜미와 귀 뒤쪽의 부자연스러운 가죽 틈새를 포착한 무강은, 거친 철갑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 표면을 사정없이 움켜쥐고 단숨에 찢어발겼다.
쫘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늙은 광부의 가짜 가죽 가면이 뜯겨 나가고, 그 안에서 독고황의 일급 밀정인 백살의 창백하고 날카로운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누가 보냈지.”
무강이 그의 목을 더 강하게 조이자, 백살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숨이 막혀왔다. 백살은 살기 위해 품속을 버둥거렸고, 무강은 그의 삼베옷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그 순간, 백살의 안쪽 주머니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한 장의 서신이 바닥의 검은 흙먼지 속으로 툭 떨어졌다.
서신의 표면에는 무림맹 대장로 독고황(독고황)의 직인이 찍힌 서명과 함께, 섭정 조경신과의 밀약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범소하의 생존 여부와 감금 위치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범소하는 현재 살아있으며, 무림맹 본산 인근의 지하 사찰에 극비리에 감금하여 인질로 보존할 것.
소하가 살아있었다.
독고운의 속삭임은 자신을 절망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려던 추악한 거짓말이었다.
범무강의 투구 틈새로 피눈물 대신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독고황의 서신을 움켜쥐는 그의 철갑 손가락이 터질 듯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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