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가의 이단아, 강철의 동맹
활활 타오르는 수십 개의 횃불이 비좁은 지하 갱도의 천장과 벽면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붉은 화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철사방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력 집행부대, 혈투대(血鬪隊)였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거대한 참마도와 귀두도가 어둠 속에서 살기등등한 광채를 뿜어냈다.
범무강은 묵묵히 굳게 닫힌 출구 길목에 서서 그들을 응시했다. 목덜미와 손목에는 방금 전 부방주 조백의 가시 채찍에 쓸린 상처가 벌어져 붉은 피가 검게 찌그러진 현철갑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쇠독과 상처가 결합하여 뼛속을 찌르는 미세한 발열 통증이 유발되기 시작했으나, 무강의 안광은 요동치지 않았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딛자, 천근 현철갑의 육중한 무게가 지면을 울리며 쿵 하는 중후한 지진음을 토해냈다. 무릎 관절 내부의 기어들이 삐걱거리며 거친 마찰음을 뿜어냈고, 갑옷 표면에서는 주조소에서 묻은 돈피 마찰유 특유의 비린 탄 기름 냄새가 매캐하게 피어올랐다. 하체의 관절들이 격렬한 힘 분출의 여파로 서서히 굳어가는 과부하 상태였으나, 무강은 손목에 현철 족쇄 사슬을 다시 감아쥐며 최악의 난전을 준비했다.
“여기 있었군, 쇠송장 놈.”
혈투대의 갈라진 대오 사이로 횃불을 밝히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멧돼지 같은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는 거한, 혈투대장 염귀였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귀두도가 바닥을 긁으며 거친 불꽃을 튀겼다.
“조백 부방주를 상대로 제법 발악을 했다지. 하지만 내공이 봉인되고 사지가 묶인 죄수 주제에 이 많은 참마도의 장막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기어이 9번 갱도를 너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염귀의 살기 어린 외침에 삼돌과 노예 광산 연합 무리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옹벽을 부수고 가스실을 탈출한 기쁨도 잠시, 철사방 최정예의 포위망은 절망적일 정도로 촘촘했다. 무강이 사슬을 팽팽하게 당기며 선봉으로 나설 채비를 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쿠쿠쿵—!
암도의 우측 벽면, 깊은 감옥 구역과 연결된 단단한 암반벽이 굉음과 함께 붕괴했다. 사방으로 바위 파편이 비산하는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벼락같은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쥐새끼 같은 철사방 놈들이 대낮부터 횃불 장난질이냐!”
자욱한 먼지를 헤치고 걸어 나온 자는 사자 갈기 같은 붉은 머리털에 통나무 같은 팔뚝을 지닌 거구의 사내였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으나, 이미 그의 무식한 완력에 의해 이음새가 찌그러져 있었다. 하북팽가의 방계 무사였으나 죄를 짓고 이곳 깊은 감옥에 유배당해 있던 이단아, 팽대혁(彭大赫)이었다.
팽대혁은 흙더미를 털어내며 갱도 중앙에 우뚝 선 범무강을 바라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흑철 갑옷으로 무장한 검은 거인.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에도 대지를 내리누르는 압도적인 질량감과 기개에 팽대혁의 호랑이 같은 눈이 크게 뜨였다.
“호오? 이 지옥 같은 광산 밑바닥에 이런 진짜 괴물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형씨, 온몸에 천근짜리 무쇠 가마솥을 걸치고도 그 조백 놈의 채찍을 뺏어 부수었다지? 마음에 드는군!”
대혁이 가슴을 활짝 펴며 호방하게 웃었다. 그의 전신에서 일류 초입의 강맹한 혼원강기(混元罡氣)가 파도치듯 뿜어져 나왔다.
“형씨, 내 제안 하나 하지. 저 비열한 철사방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이 지옥을 탈출하려면 식량과 진짜 병장기가 필요해. 마침 이 통로 바로 너머에 철사방의 군량 창고가 있지. 저 혈투대 놈들의 저지선을 우회해 창고를 털고, 보급 식량과 철판 도를 확보하는 게 어떻겠나? 내 무공과 형씨의 완력이 합쳐진다면 저 고철 덩어리들쯤은 단숨에 으스러뜨릴 수 있어!”
무강은 투구의 좁은 틈새로 팽대혁을 응시했다.
철사방 군량 현물. 천근의 갑옷 무게를 지탱하며 전투를 치르기 위해 하루에 일반 무인의 열 배에 달하는 열량을 소모해야 하는 무강에게 식량은 단순한 보급품이 아닌 생명줄이었다. 게다가 탈옥 폭동을 성공시키려면 노예들에게 쥐여줄 병장기 또한 절실했다. 대혁의 제안은 지극히 타당했다.
“길을 열어라.”
무강의 무겁고 과묵한 쇳소리가 암도를 울렸다.
“좋아! 형님으로 모시지! 가자고!”
팽대혁이 기합을 넣으며 전방으로 돌격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하북팽가 비전의 호보혼원권(虎步混元拳)을 작렬시켰다. 콰아앙! 강맹한 권풍이 전방의 혈투대 무사 서너 명을 단숨에 벽면으로 날려버렸다. 무강 역시 하체의 관절을 삐걱거리며 사장보의 무게중심 이동을 가동했다. 거대한 철갑의 신형이 앞으로 무너지듯 돌진하자, 그 질량을 이기지 못한 혈투대의 포위망 우측이 종이짝처럼 찢겨 나갔.
“막아라! 창고 쪽으로 가는 길을 막아라!”
염귀가 비명을 지르며 대오를 돌리려 했으나, 이미 범무강과 팽대혁, 그리고 분노한 노예 연합의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강 일행은 혈투대의 저지선을 우회하여 갱도 뒤쪽의 거대한 석조 통로를 따라 번개처럼 질주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붉은 연기와 열기가 감도는 갱도 외곽 구역에 다다르자 거대한 철제 이중문으로 굳게 닫힌 철사방의 군량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고 앞마당은 단단한 암반으로 다져져 있었고, 사방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러나 창고 성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사내를 본 순간, 팽대혁의 호방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곳에는 하북팽가의 문양을 가죽 무복으로 가린 채, 어깨에 거대한 참마도를 메고 서 있는 거한이 있었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매서운 살기를 풍기는 사내, 철사방의 중갑 도법 교관이자 팽가의 방계 배신자인 팽철(彭鐵)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기어왔구나, 가문의 수치스러운 이단아 놈.”
팽철이 참마도를 바닥에 쿵 내리찍으며 음산하게 비웃었다.
“팽대혁, 네놈이 광산 감옥에서 썩어가더니 이제는 역적 범무강의 사냥개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냐? 명문 팽가의 이름을 더럽힌 배신자 놈, 내 친히 여기서 네놈의 목을 가문의 규율에 따라 베어주마.”
“하! 배신자?”
팽대혁이 이빨을 드러내며 광포하게 웃었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가문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자마자 비겁하게 철사방의 개가 되어 동족들을 감시하던 놈이 누구더러 배신자라 지껄이는 거냐! 팽철, 네놈의 그 가식적인 참마도법을 오늘 이 주먹으로 산산조각 내주마!”
팽철은 대혁의 분노를 비웃듯, 참마도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뜨겁고 강맹한 양기를 품은 건양진기(乾陽眞氣)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붉은 진기가 참마도의 넓은 칼날을 감싸 안으며 아지랑이 같은 열기를 만들어냈다. 일류 초입의 경지에 달한 교관다운 위압감이었다.
무강은 묵묵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광산 대장간에서 중벌용으로 특수 주조된, 일반 삽보다 세 배는 더 무겁고 두꺼운 묵직한 흑철 삽이 들려 있었다. 대도 대용으로 완력을 투사하기 위해 쥐어 잡은 임시 무기였다.
“형님, 저놈의 참마도는 팽가 특유의 강맹함이 실려 있어 정면으로 부딪치면 뼈가 울릴 겁니다! 조심하십시오!”
팽대혁이 경고했으나, 무강은 이미 흑철 삽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양팔의 관절 자물쇠가 뻑뻑하게 조여와 어깨를 크게 휘두를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천근의 무게와 순수 완력이 있었다.
“대역죄인 범무강, 네놈의 철갑째로 쪼개주마!”
팽철이 포효하며 대지를 박찼다. 그의 신형이 중갑을 입었음에도 건양진기의 폭발적인 추진력을 받아 탄환처럼 쇄도했다. 참마도가 허공을 가르며 붉은 낙하 궤적을 그렸다.
스으으읍!
무강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사지 잠금의 제약으로 인해 피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동피철골의 외공을 전신 근육에 집중시켰. 그리고 허리의 회전 관성을 실어 흑철 삽을 대각선 아래로 무식하게 내리쳤.
‘흑철삽격(黑鐵鏺擊)!’
콰아아앙—!
건양진기가 실린 참마도의 날과 무강의 묵직한 흑철 삽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연무장 전체를 뒤흔드는 웅장한 쇳소리가 사방을 찢어발겼다. 충돌 지점에서 발생한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바닥의 암반을 거미줄처럼 쪼개어 놓았다.
“이, 이 힘은 대체……!”
팽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참마도를 타고 흘러드는 무강의 상식 파괴적인 물리적 중량과 완력은 일류 고수의 내공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팽철의 참마도가 비껴 나가며 바닥의 암반을 깊숙이 쪼갰다. 팽철의 방어 진형이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지금이다! 호보혼원권!”
팽대혁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수처럼 도약했다. 그의 주먹이 혼원강기를 두른 채 팽철의 열린 옆구리를 향해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호랑이의 포효 같은 파공음이 울렸다.
그러나 팽철은 철사방의 수석 교관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참마도를 원형으로 회전시켜 대혁의 주먹을 쳐냈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팽대혁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팽철은 즉각 신형을 비틀며, 무강의 무릎과 허리 사이, 갑옷의 측면 이음새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참마도를 수평으로 휘둘렀. 붉은 건양진기가 칼날 끝에 날카로운 검막을 형성하며 쇄도했다.
양팔이 묶여 검을 막아낼 회전 각도가 나오지 않는 상황. 무강은 주저 없이 전신의 중량을 한쪽으로 쓰러뜨렸다.
‘철산고(鐵山靠)!’
그는 피하는 대신, 천근의 무게를 지닌 현철갑의 어깨와 등 판 자체를 무기 삼아 참마도의 날 면을 향해 정면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참마도의 날이 무강의 두꺼운 견갑 장갑에 부딪히는 순간, 팽철은 거대한 무쇠 성벽에 정면으로 충돌한 듯한 극심한 반동을 느꼈다. 건양진기의 열기가 갑옷 표면을 그을렸으나, 현철갑의 극단적인 두께는 팽철의 검기를 내부로 투과시키지 않았다(검기 관통 한계). 오히려 무강의 무식한 질량 돌격에 참마도의 궤적이 완전히 찌그러지며 팽철의 신형이 뒤로 크게 비틀거렸다.
“으윽……!”
팽철이 신음하며 뒤로 다섯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무강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참마도에 실린 강맹한 건양진기의 물리적 충격파가 현철갑의 두께를 뚫지는 못했으나, 내부의 뼈와 장기를 강하게 진동시켰다. 구중 경맥 봉인으로 인해 진기의 보호막이 없는 그의 내장으로 진동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울컥.
투구 안쪽, 무강의 입가로 검붉은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가슴 경맥이 뒤틀리는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으나, 무강은 고통 면역으로 뇌의 통각을 차단한 채 차가운 안광으로 팽철을 응시했다. 그 흔들림 없는 거인의 풍채에 팽철은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단아 놈들을 모두 처단해라!”
팽철이 다급하게 손짓하자, 창고 주변에 대기하던 철사방 무사들이 쇠창을 들고 포위망을 좁혀왔다. 팽대혁이 침을 뱉으며 무강의 옆으로 다가와 등을 맞댔다.
“형님, 제법 묵직한 통증이 온 모양이군요. 하지만 저 배신자 놈의 참마도도 방금 형님의 몸통 박치기에 이가 나갔습니다. 한 번 더 몰아붙이면 끝장낼 수 있습니다!”
대혁의 주먹이 다시 한번 혼원강기로 붉게 타올랐다. 무강 역시 흑철 삽자루를 고쳐 잡으며 하체의 지지력을 극대화했다. 팽철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창고 성문 너머, 갱도 깊은 곳에서부터 수십 개의 횃불 불빛이 다시 한번 밀려들며 비명 같은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염귀 대장님의 명령이다! 군량 창고를 완전히 포위해라! 쥐새끼 한 마리도 살려 보내지 마라!”
철사방 최강의 정예 살수 부대, 혈투대의 대군이 기어이 창고 앞마당을 완전히 둘러싸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자루의 참마도가 횃불 불빛 아래에서 핏빛 장막을 형성하며 그들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해 왔다.
팽철의 강맹한 참마도가 범무강의 어깨 장갑을 강타해 웅장한 쇠소리가 사방을 울리는 순간, 팽대혁이 팽가 비전의 호보혼원권으로 팽철의 옆구리를 파고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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