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의 봉화, 사슬을 끊는 거인
지하 9번 갱도의 어둠을 찢고 울려 퍼진 경보 나팔 소리는 비명보다 날카로웠다. 망자 구덩이의 석조 옹벽이 무너지고, 역류한 장기 가스에 중독된 철사방 간수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경비실은 이미 지옥의 초입과 다름없었다. 사독의 시신을 딛고 선 범무강의 투구 틈새로 은은한 황금빛 안광이 밤하늘의 유성처럼 번뜩였다.
“장군님! 출구 쪽에서 무장한 놈들이 몰려옵니다!”
9번 갱도의 십장 삼돌이 낡은 곡괭이를 꽉 쥔 채 소리쳤다. 그의 뒤에는 가스실의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삼십 명의 노예 광부들이 횃불과 쇠삽을 든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억압받던 민초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굴종이 없었다. 오직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구원한 검은 거인을 따르기 위해 타오르는 투기만이 가득했다.
무강은 대답 대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쿵, 쿵. 발을 디딜 때마다 천근 현철갑의 육중한 무게가 지면을 흔들었고, 무릎 관절 내부의 기어들이 삐걱거리며 둔탁한 금속음을 뿜어냈다. 갑옷 내부에는 주조소에서 묻은 돈피 마찰유의 비린 탄 냄새가 차가운 쇠독 상처의 피비린내와 엉겨 붙어 기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라.”
무강의 목소리는 쇠가 갈리는 듯 무겁고 낮았다. 양팔의 관절 자물쇠가 단단히 잠겨 있어 정교한 초식을 전개할 수는 없었으나, 그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현철 족쇄 사슬이 어둠 속에서 차가운 빛을 발하며 바닥을 쓸었다.
갱도 출구로 이어지는 좁은 암도 너머에서, 수십 개의 횃불 불빛과 함께 철사방의 정예 진압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봉에 선 자는 철사방의 부방주, 조백이었다. 뺨에 가로지른 흉터가 횃불 불빛에 붉게 일렁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뱀의 비늘처럼 번뜩이는 가시 돋친 쇠채찍이 감겨 있었다.
“대역죄인 범무강이 결국 노예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켰구나! 제갈 분타주님의 명이다. 주동자 범무강은 다리를 잘라 생포하고, 나머지 쥐새끼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라!”
조백의 잔인한 외침과 함께 철사방 무사들이 쇠창을 치켜들고 돌격했다.
쉭-! 콰직!
그 순간, 조백이 허리춤에서 가시 돋친 쇠채찍을 풀며 허공을 내리쳤다. 이류 극성의 음독한 내공인 사혈공(蛇血功)이 실린 채찍은 어둠 속에서 검은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범무강의 목덜미를 정확히 휘감았다. 강철 가시들이 현철갑의 목 보호대 표면을 긁으며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잡았다! 이 쇠송장 놈아!”
조백이 비열하게 웃으며 채찍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가시들이 갑옷 틈새를 파고들어 무강의 목덜미 피부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끔찍한 통증이 뇌리를 찔렀으나, 무강은 고통 면역 능력을 가동해 뇌로 전달되는 통각을 강제로 차단했다. 그의 안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무강은 피하는 대신, 동피철골의 단단한 외공으로 버티며 채찍을 쥔 조백의 장력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육중한 철갑 장갑을 뻗어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쇠채찍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우드득!
“뭐, 뭐라고……?”
조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사혈공의 음독한 진기가 채찍을 타고 흘러들었으나, 무강의 단단한 흑철 장갑과 동피철골의 육체는 진기를 정면으로 밀어냈다. 무강이 천근력의 완력으로 채찍을 움켜쥐고 버티자, 조백은 마치 거대한 암반에 닻을 내린 것처럼 단 한 치도 채찍을 회수할 수 없었다.
“장군을 찔러라! 갑옷 틈새를 노려라!”
조백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좌우에서 대기하던 철사방 무사 4명이 장창을 내밀며 범무강의 어깨와 옆구리 관절 틈새를 정밀하게 찔러왔다. 쇠창끝이 갑옷의 이음새를 파고들면 내장과 뼈가 상할 터였다.
무강은 움켜쥔 채찍을 놓지 않은 채, 양손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현철 족쇄 사슬을 크게 회전시켰.
‘철벽선풍(鐵壁旋風)!’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완력과 갑옷의 회전 관성만으로 돌아가는 사슬은 그 자체로 파괴적인 무쇠 장막이었다. 웅웅웅—! 공기를 찢는 웅장한 파공음과 함께 회전하는 사슬이 찔러오던 쇠창들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깡! 깡! 콰직!
단단한 강철 창끝들이 무쇠 사슬의 질량에 부딪혀 낙엽처럼 부러져 나갔다. 무사들의 손목이 충격파로 인해 꺾이며 비명이 터졌다.
무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슬 끝을 강하게 던졌다.
‘사슬 옭아매기!’
뱀처럼 날아간 굵은 쇠사슬이 앞선 무사 세 명의 다리를 한데 묶어 감아쥐었다. 무강이 하체를 굳건히 디디며 천근력의 괴력으로 사슬을 제 몸 쪽으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으아아악!”
콰드득! 콰직!
무시무시한 골절음과 함께 무사들의 다리뼈가 사슬의 인장력을 버티지 못하고 처참하게 바스러졌다. 세 명의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져 피를 토했다.
무강은 이 기세를 몰아 조백을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 군부 사장보의 무게중심 이동을 가동했다. 상체를 앞으로 던지며 중력의 관성을 실어 돌격하려 했다. 그러나 무릎과 골반 관절의 기계 장치가 단단히 잠겨 있는 사지 잠금의 제약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체의 가동 범위가 일반인의 삼분의 일에 불과한 탓에, 돌격 보폭이 너무나 짧았다.
쉭-!
조백은 뺨에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하게 채찍 손잡이를 놓아버리고 뒤로 날렵하게 신형을 날려 도망쳤다. 무강의 묵직한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조백이 서 있던 바위벽을 강타했다.
콰아앙!
바위벽이 주먹 자국대로 함몰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조백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경악 어린 눈으로 범무강을 바라보았다. 내공이 봉인되고 사지가 묶인 죄수가 어떻게 이런 괴력을 발휘한단 말인가.
“이, 이 괴물 같은 장수 놈이……! 전원 후퇴해라! 입구 쪽으로 후퇴해서 진형을 짜라!”
조백이 공포에 질려 부하들을 이끌고 갱도 안쪽으로 다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강은 무릎 관절 내부 기어의 마찰열이 급상승하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자, 섣부른 추격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전술적 선택을 내렸다. 손목 장갑 틈새로 가시에 쓸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장군님! 조백 놈들이 도망칩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철우가 부러진 창 조각을 치켜들며 환호했고, 삼돌이 이끄는 노예 광산 연합 무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 지옥 같던 광산에서 늘 자신들을 채찍질하던 부방주 조백을 무릎 꿇린 역전의 통쾌함이 갱도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범무강은 방심하지 않았다. 조백은 쉽게 물러설 자가 아니었으며,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가 현철 사슬을 다시 손목에 감아 쥐며 출구를 향해 육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전방의 어두운 터널 끝에서 기이한 열기와 함께 붉은 불빛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수십 개의 횃불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켜지며 차가운 살기가 갱도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백이 범무강의 압도적인 쇠사슬 위력에 밀려 뒤로 물러서는 순간, 철사방의 최강 정예 살수 부대이자 핏빛 귀신이라 불리는 '혈투대(血鬪隊)'가 거대한 참마도와 횃불을 켜고 어둠 속에서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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