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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부수는 검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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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익—!


머리 위의 두꺼운 흑철문 틈새로 흘러드는 유황 타는 냄새와 뜨거운 쇳물 증기가 망자 구덩이의 어둠을 가득 채웠다. 사독이 이끄는 간수들이 출구를 완전히 용접하여 밀폐해 버린 것이다. 숨통을 조여오는 녹색의 장기 가스는 이미 구덩이 바닥을 무겁게 메우고 있었다. 흡입하는 순간 허파가 타들어 가고 피를 토하며 소멸하는 치명적인 천연 극독이었다.


"컥...! 헉...! 살려... 살려주십시오, 장군님...!"


범무강의 무거운 철갑 발치에서 비참한 비명이 울렸다. 밀고의 대가로 염철전 몇 푼을 받았다가 토사구팽당한 왕충이었다. 그의 피부는 이미 가스의 독성에 중독되어 시퍼런 녹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칠공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왕충은 무강의 다리를 감싼 묵직한 쇠사슬을 붙잡으려 버둥거렸으나, 무강은 투구의 좁은 틈새 너머로 그를 차갑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배신의 대가는 오직 비참한 소멸뿐이다. 가문을 밀고하여 파멸로 몰고 갔던 방계 친척 범태호의 음험한 얼굴이 왕충의 비참한 몰골 위로 겹쳐 보였다. 무강은 단 한 마디의 자비도 베풀지 않은 채, 발을 가볍게 비틀어 왕충의 손아귀를 털어냈다. 바닥에 흩어진 염철전들이 녹색 독 안개 속에서 허망하게 뒹굴었다. 왕충은 이내 온몸을 뒤틀며 숨을 거두었고, 그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는 배신자의 종말이 어떠한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장군님... 공기가... 공기가 희박해지고 있어요...!"


사천당가의 의녀 당소소가 벽면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조제한 암혈수 해독액은 이미 다른 노예들에게 모두 배분되어 빈 병만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가스실의 산소는 임계점에 도달해 가고 있었고, 해독액을 마신 삼돌과 노예들조차 산소 부족으로 인해 점차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강 역시 폐쇄 호흡인 폐식법을 전개하고 있었으나, 천근의 무거운 현철 갑옷이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공이 완전히 봉인된 구중 경맥 봉인 상태에서 오직 순수 육체의 힘만으로 숨을 참는 것은 매 순간 허파가 찢어지는 고통을 동반했다. 게다가 갑옷 내부에는 주조소에서 묻은 돈피 마찰유의 퀴퀴하고 비린 탄 냄새가 차가운 쇠독 상처의 냄새와 뒤섞여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갈무경이 나를 백주대낮에 죽이지 못하고 이 어두운 사지에 밀어 넣은 이유를 안다.'


무강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모용선이 광산 내부의 가혹한 실태와 자신의 무죄를 정파 무림에 퍼뜨리겠다는 비밀 약속을 이행한 것이 분명했다.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을 공개 처형하지 못한 제갈무경이, 결국 사독을 시켜 이곳 망자 구덩이에서 사고사를 위장해 몰살하려 한 것이다.


그때, 무강의 피부에 닿은 장기 가스의 치명적인 독성이 그의 전신 세포를 사정없이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범씨 대장군 가문의 피에 흐르는 천생골격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무강의 뼛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뇌성 같은 진동음이 울렸다. 일반인보다 세 배 이상 굵고 조밀한 그의 뼈대가 외부의 독성 자극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금강골 격동의 전조를 일으킨 것이다. 그의 전신 피부 아래에 새겨진 혈관들이 은은한 황금빛으로 꿈틀거리며 타올랐고, 체내로 침투하려던 장기 가스의 독소들을 세포 단위에서 강제로 분쇄하고 흡수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훗날 만독불침의 육체로 진화하게 될 신화적인 경지의 시작이었다.


황금빛 안광이 투구의 좁은 틈새 너머로 차갑게 번뜩였다. 독 가스의 고통이 가라앉고 시야가 입체적으로 맑아지기 시작했다.


"장군님! 장군님! 여기를 보십시오!"


구덩이 구석에서 흙바닥을 더듬던 기계 장치 분석가 판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눈이 침침해 미간을 찌푸린 그의 손가락 끝이 닿은 곳은, 썩어 문드러진 목조 지지대 뒤쪽에 숨겨진 정교한 석조 옹벽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바위벽이 아닙니다! 제갈세가의 기문진법식으로 위장된 비밀 환기구의 석조 옹벽입니다! 이 뒤에 광산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대형 환기 파이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꺼운 화강암 옹벽을 부수지 못하면 우리는 여기서 질식사하고 맙니다!"


판수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구덩이 내부의 산소는 이제 3분도 채 남지 않았다. 철우를 비롯한 우직한 광부들이 쇠삽을 들고 옹벽을 내리쳤으나, 깡! 하는 불쾌한 쇳소리와 함께 불꽃만 튈 뿐 화강암 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양팔의 관절 자물쇠가 단단히 잠겨 있는 범무강 역시 무거운 흑철 삽을 정교하게 휘둘러 벽을 파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기가 없다면, 내 몸의 질량 자체를 무기로 삼는다.'


무강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그는 도가 장생식의 구결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체내의 미세한 물리적 정기를 한곳으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정기 압축 (精氣 壓縮)'.


단전의 봉인을 우회하여 흐르는 극소량의 활력과 뼛속에서 요동치는 황금빛 온기를 온몸의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강제로 우겨넣었다. 그의 단단한 완력과 하체의 근육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전신의 혈관이 검붉은 밧줄처럼 도드라졌다. 현철갑의 이음새 사이로 돈피 마찰유가 타들어 가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무강은 양손과 양다리를 몸 안쪽으로 최대한 밀착시키며 거대한 철갑 구체의 형상을 취했다.


'함몰 구르기(陷沒 滾步)'.


그는 하체의 모든 탄력을 발끝에 집중시킨 뒤, 천근의 무게를 지닌 전신을 앞으로 강하게 던졌다. 거대한 무쇠 요새가 회전 가속도를 얻으며 지면을 으스러뜨리고 석조 옹벽을 향해 돌격했다.


콰과과광—!


망자 구덩이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한 거대한 폭발음이 지하를 뒤흔들었다. 천 장 무게의 무쇠 구체와 단단한 화강암 옹벽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범무강의 온몸의 관절 뼈들이 어긋나는 듯한 피로 골절의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고, 현철갑 표면의 쇠사슬들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쩍! 쩌적! 콰르릉!


하지만 이내 화강암 옹벽의 중심부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웅장한 화강암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판수가 예측한 대로, 부서진 옹벽 너머로 거대한 구리 재질의 대형 환기 파이프와 기계식 환기 장치 레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해냈습니다! 탈출구가 열렸습니다!"


판수가 비틀거리며 잔해를 딛고 올라가 환기 장치의 묵직한 무쇠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는 평생 다져온 기계 제어 기술을 전개하여 레버를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꺾었다.


키이이이잉—!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들이 기분 좋은 기계음을 내며 역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덩이 내부의 자욱하던 녹색 독 가스가 거대한 흡입력에 이끌려 환기구 파이프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내 역풍이 불기 시작하며 구덩이 내부로 맑은 북방의 지상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


"컥! 으아악! 이게 무슨 소리냐!"


"가스가... 가스가 역류한다! 문을 열어라!"


동시에 흑철문 밖의 복도에서 간수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판수가 조작한 역풍으로 인해 고농도의 장기 가스가 사독과 간수들이 대기 중이던 외부 경비실로 통째로 뿜어져 나간 것이다. 자신들이 살포한 극독에 역으로 중독된 간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용접된 흑철문을 열기 위해 발악했다.


콰직!


범무강은 부서진 옹벽의 틈새를 통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밖으로 걸어 나갔. 그의 거대한 철갑 실루엣이 녹색 안개 속에서 귀신처럼 솟아올랐다. 가스로 인해 눈이 멀어 비틀거리던 사독이 무강의 천근 무게 발소리를 듣고 경악하며 독액 분사기를 겨누려 했다.


스슥, 팟!


그러나 무강의 손목에 감긴 현철 사슬이 뱀처럼 날아가 사독의 손목을 칭칭 감아쥐었다. 무강이 사슬을 가볍게 잡아당기자, 사독의 왜소한 체구가 허공을 날아 무강의 전방으로 끌려왔다. 무강은 잠긴 팔 관절의 한계를 순수 완력으로 극복하며, 사독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단단한 석조 바닥을 향해 정면으로 메쳐버렸다.


콰직—!


두개골이 바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사독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히며 즉사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독액 분사기가 쓸쓸하게 굴러떨어졌다. 무강은 사독의 시신을 차갑게 딛고 서서, 투구의 좁은 틈새 너머로 은은하게 일렁이는 황금빛 안광을 뿜어냈다.


그의 등 뒤로, 살아남은 9번 갱도의 노예들과 당소소, 판수가 차례로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절망과 공포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의 가스실에서 살아 돌아온 검은 거인의 위용을 목격한 노예들의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분노와 자유를 향한 투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군님이 살아계신다! 지옥을 부순 거인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삼돌이 녹슨 곡괭이를 치켜들며 광산 전체를 향해 포효했다.


그 외침은 9번 갱도를 넘어, 가혹한 채찍질 아래 신음하던 철사광산 전체의 이백 명 노예들에게 봉화처럼 번져나갔다. 광부들이 하나둘씩 채광용 정과 곡괭이를 치켜들며 철사방 무사들을 향해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동의 전조가 북방의 차가운 대지를 뒤흔들며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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