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는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다
눈앞의 무쇠 사슬을 본 대남은 브레이크를 잡는 대신, 자전거 핸들을 위로 힘껏 낚아챘다.
“아니, 왜 도로 공사를 이 타이밍에 하고 지랄이야!”
폭우가 쏟아지는 청운문 내문 후원의 급경사 내리막길. 주황색 에어백 유니폼이 질소 가스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졸지에 거대한 주황색 튜브 인형이 되어버린 김대남은 빗물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절규했다.
그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자전거 거치대에 장착된 스마트폰 화면이었다.
[배터리 잔량: 11%]
[경고: 강력한 전자기적 간섭으로 인해 배터리가 급격히 소모 중입니다!]
[남은 시간: 7분 45초]
[지연 시 당일 일당 100% 전액 삭감 및 평점 1점 테러 예고!]
“일당 전액 삭감?! 평점 일 점?!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 자본주의의 노예 영감탱이야!”
대남의 뇌리 속에 마포구 대리점 박 점장의 잔인한 대머리가 스쳐 지나갔다. 일당이 날아가면 이번 달 월세는커녕 당장 저녁에 왕씨네 만두 한 판도 사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을 판이었다. 게다가 평점 1점을 맞으면 배달 앱 계정이 영구 정지되어 원래 세계인 지구로 돌아갈 기회마저 영영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극단적인 공포가 대남의 전신을 지배했다.
그 순간, 대남의 안구에 이성이 가출하고 주황색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 택배 기사들이 지옥의 상하차와 진상 고객의 클레임을 버티며 단련해 온 궁극의 정신 무장, ‘무호흡 생존 페달링’의 전조였다.
“흡!”
대남은 허파에서 산소를 완전히 비워내고 숨을 멈췄다. 뇌가 산소 부족을 경고하기도 전에, 오직 생존을 향한 짠돌이 본능이 다리 근육의 한계를 강제로 해제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대남의 양쪽 허벅지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공이나 영기 따위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오직 ‘감봉만은 절대 안 된다’는 소시민의 처절한 땀방울이 만들어낸 물리적인 근육 폭발이었다.
*카르르릉-!*
자전거 번개호의 페달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체인이 영석 기어에 맞물리며 비명을 질렀고, 뒷바퀴의 통고무 타이어가 젖은 흙바닥을 사정없이 긁으며 시속 90km에 육박하는 초고속 추진력을 얻었다. 빗방울이 대남의 얼굴을 때려 무형의 검기처럼 뺨이 아렸지만, 대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 시각, 내리막길 아래에서 그물과 쇠사슬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청운문 율법당 대장 독고황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흥, 미련한 마교의 세작 녀석. 삼멸결계를 부수고 숙부님을 해한 무시무시한 고수라 하더니, 겨우 저런 괴상한 수레를 타고 폭주하는 것이 전부란 말이냐? 이 무쇠 사슬 장벽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투명 강철 그물 덫을 결코 뚫지 못할 것이다!”
독고황은 자신만만했다. 그가 준비한 사슬은 일류 고수의 검격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특제 흑쇠 사슬이었다. 게다가 수십 명의 집행대원들이 내공을 실어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기에,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도 정면으로 부딪히면 뼈가 으스러질 터였다.
“전원, 사슬을 고정하고 그물을 투하할 준비를 하라! 저 주황색 괴물을 생포하여 장문인 처소 앞으로 끌고 간다!”
“존명!”
집행대원들이 일제히 기합을 넣으며 사슬을 단단히 쥐었다.
하지만 그들의 살기등등한 집중력은, 대남이 핸들바의 스프링 레버를 손가락 끝으로 튕기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따릉! 따릉! 따르릉-!!!*
폭우와 굉음 속을 뚫고 맑고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자전거 따릉이 벨 소리였다.
“어……? 저게 무슨 음공(音功)이냐?”
“귀가…… 귀가 간지럽다!”
율법당 대원들은 난생처음 듣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맑은 쇳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비장한 살기를 품고 내공을 끌어올리던 대원들의 단전이 기묘한 청각적 부조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멈칫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대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리케이드 직전 3미터 앞, 대남은 ‘원심력 드리프트 이론’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핸들을 살짝 비틀었다가 몸을 위로 강하게 솟구쳤다.
“분노의 윌리(Fury Wheelie)!!!”
*슉-!*
자전거 번개호의 앞바퀴가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치켜들렸다. 뒷바퀴 하나만으로 무게 중심을 잡은 자전거는, 독고황이 설치해 둔 무쇠 사슬 장벽의 정중앙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깡-!!!*
쇠와 쇠가 부딪히는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사슬은 자전거 바퀴를 묶지 못했다. 오히려 고속 회전하던 뒷바퀴의 통고무 타이어가 사슬 표면의 미세한 틈새를 움켜쥐듯 접지력을 발휘했다. 자전거의 무식한 하중과 회전 토크가 사슬을 디딤돌 삼아 위로 튕겨 올라가는 물리적 도약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슈우우웅-!*
“어, 어어?! 날아간다!”
대남은 하늘로 붕 떠오르는 자전거와 함께 허공으로 솟구쳤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에어백 유니폼 덕분에 대남은 마치 거대한 주황색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기괴한 비주얼을 연출했다.
그 모습을 아래에서 바라보던 독고황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등패보(登牌步)의 극의란 말이냐! 무쇠 사슬의 반동을 이용해 허공으로 신형을 띄우다니!”
독고황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던 자전거 번개호의 육중한 뒷바퀴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퍽-!!!*
“억……!”
독고황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이마에 아주 선명하고 정교한 자전거 타이어 체인 tread 자국을 새기며 그대로 진흙탕 속으로 수직 낙하했다. 대남은 바퀴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우, 이놈의 산동네는 과속방지턱을 왜 이렇게 높게 만들어 놨어? 게다가 비에 젖어서 그런지 방지턱이 말랑말랑하네?’
독고황이 흙바닥에 처박혀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모습을 본 율법당 대원들은 단체로 무기를 떨어뜨렸다.
“대, 대장님!!!”
“단 한 발의 보법으로 대장님의 뇌문을 밟아 기혈을 봉인하셨다!”
“저 자는 진짜 인간이 아니다! 시공간을 접어 날아다니는 대종사가 확실하다!”
대원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이, 허공에 뜬 대남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중력의 법칙은 무자비했다. 하늘로 솟구쳤던 자전거는 이제 무서운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낙하 경로의 끝에는, 청운문 내문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장문인 이청풍의 처소 지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지붕 뚫고 하이킥 찍게 생겼네! 엄마아아아!!!”
대남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청운산맥의 비바람 속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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