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진법과 직진 내비게이션
낙안현 외곽의 비포장도로는 갓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삼륜 자전거 ‘번개호’의 페달을 밟는 김대남의 허벅지 근육은 터질 듯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어제 하북팽가의 천재 힘꾼 팽도진의 참마도를 가방 속 ‘뽁뽁이’의 완벽한 물리적 충격 분산력으로 막아내고 손목을 부러뜨린 기적 같은 사건은, 대남에게는 그저 ‘라면 스프 박스를 지켜낸 눈물겨운 사투’에 불과했다.
“으어어, 다리가 아직도 뻐근하네. 철수 아저씨가 자전거 체인을 짱짱하게 조여줘서 그나마 굴러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다리 풀려서 자빠졌을 거야.”
대남은 핸들바에 장착된 스마트폰 액정을 힐끗 보았다.
[배터리 잔량: 25%]
[알림: 백가촌 만두 배달 완료 예정 시간까지 남은 시간 20분]
배터리도 간당간당한데 더 끔찍한 시한폭탄이 있었다. 바로 어제 한천동 얼음 동굴에서 냉독에 걸린 청운문 대사매 청아 소저를 구해줄 때 썼던 다이소제 일회용 핫팩의 발열 수명이 이제 단 20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식어서 차가운 모래주머니가 되는 순간, 청아 소저는 그게 천계의 화속성 보패가 아니라 현대 편의점에서 파는 300원짜리 일회용 핫팩이라는 걸 눈치채겠지! 그럼 내 평점 5점 만점 신용도는 완전히 끝장나는 거야!’
평점 5점에 목숨을 건 생계형 택배 기사에게 신용도 하락은 곧 감봉이자 차원 유배의 영구화였다. 대남의 등 뒤를 묵묵히 따르던 제천검의 소유자 임소라가 대남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종사님, 페달을 밟으시는 기세에 미세한 초조함이 서려 있나이다. 혹시 소녀가 모르는 천기의 이변이라도 감지하신 것이옵니까?”
“아니요, 이변이 아니라 제 일당이 날아가게 생겨서 그래요. 임 소저, 제발 말 걸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요. 지금 시속 20km 이하로 떨어지면 우리 둘 다 굶어 죽습니다.”
대남은 땀방울을 훔치며 페달을 밟았다. 늘어난 바퀴살을 철수가 영석 합금으로 완벽하게 수리해 준 덕분에 번개호는 소음 하나 없이 부드럽게 흙길을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평화롭던 낙안현 외곽 도로의 대기가 기괴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사방에서 갑작스럽게 짙은 백색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아침 햇살을 차단했다. 불과 3초 만에 대남의 앞길은 1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몽환적인 안개 장벽으로 뒤덮였다. 지독한 유황 냄새와 함께 귀를 찢는 듯한 음산한 바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도로 옆 거대한 팽나무 지붕 위, 하얀 도포에 기이한 부적들을 주렁주렁 붙인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나무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흑풍상단주 팽무적에게 거액의 은자를 받고 고용된 사파 독문의 진법가, 미진자(미진자)였다. 그의 발밑에는 보라색 환각 안개를 뿜어내는 고대의 진법 도구 ‘미혼향로’가 붉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흐흐흐, 청운문의 결계를 부수고 영맥을 뚫었다는 공간 대종사 녀석. 내 오늘 네놈의 그 해괴한 철마를 이 미혼진(迷魂陣) 속에 영원히 가두어 뇌를 마비시켜 주마. 내 진법에 들어선 이상, 필멸자는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고 환각의 심연 속에서 스스로 미쳐 죽게 될 터!”
미진자가 지팡이 끝으로 미혼향로를 톡 치자, 안개의 농도가 백 배로 짙어지며 대남의 눈앞에 기상천외한 광경이 펼쳐졌다.
“어어?! 으아악! 브레이크!”
대남은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잡으려 했다.
눈앞의 비포장도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끝을 알 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 절벽이 나타난 것이었다. 절벽 아래에서는 붉은 용암이 이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고, 용암 속에서 수만 개의 뼈다귀로 이루어진 거대한 몬스터 환각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대남의 자전거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대종사님, 멈추십시오! 이것은 사파의 흉악한 환각 진법이옵니다!”
등 뒤의 임소라가 제천검을 뽑아 들며 살기를 뿜어냈다. 일류 최정상의 검객인 그녀조차 미혼진의 지독한 영적 압박에 눈앞이 어지러워져 스텝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십시오! 사파의 무리가 전개한 환각 안개가 우리의 신체 감각과 단전의 기운을 속이고 있나이다! 마음을 비우고 심검(心劍)의 궤적을 쫓아야...”
“심검은 무슨 얼어 죽을 심검이에요! 눈을 감으면 자전거가 자빠지는데!”
대남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도, 핸들바에 거치된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스마트폰 액정 속 ‘GPS 최단경로 네비게이션’ 화면은 아무런 이상 없이 선명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용암도, 절벽도, 뼈다귀 몬스터도 없었다. 오직 평평한 평지 도로 위에 그어진 선명하고 붉은색 일직선 경로만이 북서쪽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차원의 균열이 발생할 때 뿜어져 나온 시공간 에너지가 스마트폰 GPS 안테나에 동기화되어 작동하는 현대 과학과 차원 마법의 결합체(스마트폰 GPS의 작동 원리)였기 때문이다. 우주의 인과율을 직접 수신하는 디지털 GPS 센서 앞에서는, 인간의 뇌와 영혼을 속이는 미진자의 영적 환각 안개 따위는 단 1%의 전파 간섭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했다.
대남은 눈앞의 거대한 뼈다귀 몬스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몬스터의 발끝이 지면에서 살짝 떠 있었고, 용암의 붉은 빛이 자전거 핸들바의 은색 도금에 반사되지 않고 있었다.
‘어? 저거 가짜잖아! 요즘 무림 코스프레 동호회 놈들은 3D 홀로그램 가상현실 기술까지 쓰고 난리야? 스마트폰 액정에 먼지가 껴서 홀로그램 필터 효과가 난 건가?’
대남은 작업용 빨간색 3M 특제 미끄럼 방지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액정의 먼지를 쓱쓱 닦아냈다. 화면 속 붉은 선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직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스마트폰 배달 앱에서 살벌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띠링! 배송 지연 5분 전! 미완료 시 일당 삭감 및 페널티 부여!*
*감봉(減俸).*
그 두 글자가 대남의 망막에 붉은 빛으로 투사되는 순간, 대남의 뇌 속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완벽하게 마비되었다. 절벽? 용암? 뼈다귀 괴물? 그 하찮은 3D 입체 그래픽 따위가 감히 현대 직장인의 피 같은 일당을 깎으려 든단 말인가!
“내 일당 깎으려는 놈들은 귀신이든 독종이든 다 비켜!!! 오늘 배송 늦으면 느이 집 앞으로 반품 고지서 백 장 보낼 줄 알아!!!”
대남의 눈동자가 주황색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자전거의 핸들 레버를 움켜쥐고 ‘기어 변속 가속법’을 시전했다. 오른손 엄지로 기어 레버를 탁 치며 3단에서 가장 무거운 고단 기어로 변속했다.
*착각-!*
체인이 영석 합금 기어에 맞물리며 은빛 불꽃을 튀겼다. 대남은 엉덩이를 안장에서 들어 올린 채 온 체중을 페달에 싣고 미친 듯이 다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 대종사님?! 절벽이옵니다! 멈추십시오!”
임소라가 비명을 질렀지만, 대남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용암이 끓어오르는 ‘절벽’을 향해 시속 60km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미진자는 턱을 빠뜨렸다.
“저, 저 미친 자가 미혼진의 심연을 보고도 멈추지 않고 돌진한단 말이냐! 어찌 단전의 기운이 흔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설마 내 환각이 저 자의 눈에는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따릉! 따릉! 따르릉-!!!*
대남이 핸들의 황동 벨을 격렬하게 튕겼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자전거 따릉이 벨 소리의 물리적 음파가 미혼안개의 영적 주파수를 교란하며 허공을 찢어발겼다.
대남의 자전거 번개호는 용암 절벽의 허공을 향해 거침없이 도약했다. 아니, 도약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절벽 자체가 가짜 홀로그램이었기에, 대남은 그저 평평한 흙길 위를 똑바로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슈우우우-*
자전거 앞바퀴가 뼈다귀 몬스터의 거대한 가슴팍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괴물의 환각은 한낱 주황색 바람 먼지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디 길 한가운데에 가상현실 빔프로젝터를 틀어놓고 깽판이야! 영업 방해죄로 소비자원 신고당하고 싶어?!”
대남은 스마트폰 화면의 빨간 선만 보며 핸들을 굳건히 잡고 직진했다. 번개호의 세 바퀴가 안개 속의 장애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네비게이션의 빨간 선이 가리키는 종착지이자 미혼진의 핵심 눈(진안)이 위치한 수풀 한가운데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미진자가 진법을 유지하기 위해 숨겨둔 놋쇠 재질의 ‘미혼향로’가 붉은 독무를 내뿜으며 바닥에 꽂혀 있었다.
대남은 그것이 길바닥에 떨어진 무단 투기 쓰레기인 줄 알고 소리쳤다.
“누가 도로 한가운데에 놋그릇을 버려놓은 거야! 교통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대남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자전거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원심력 드리프트’를 시전했다. 철수가 영석 합금으로 강화해 둔 번개호의 묵직한 앞바퀴와 뒷바퀴가, 시속 60km의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실은 채 미혼향로의 정중앙을 짓밟고 지나갔다.
*깡-! 콰직-!!!*
수천만 금을 호가한다는 사파 독문의 비전 법보, 미혼향로가 대남의 무식한 자전거 타이어 압력에 눌려 단 0.1초 만에 납작한 청동 호떡 모양으로 으스러져 박살이 났다.
*파아아아앙-!!!*
향로가 완파됨과 동시에 귀곡림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보라색 환각 안개가 한순간에 사방으로 방전되며 흩어졌다. 음산한 바람 소리도 사라지고, 다시 따스한 아침 햇살이 낙안현 도로를 평화롭게 비추었다.
“끄아아아아악-!!!”
지붕 위에 서 있던 미진자는 자신의 영혼과 내공이 연결되어 있던 법보가 물리적으로 으스러지자,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단전의 내기가 폭풍처럼 역류하며 경맥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푸하학-!*
미진자는 공중에서 한 말은 족히 될 법한 검붉은 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팽나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흙바닥에 처박힌 그의 사지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내…… 내 평생의 비전 진법이…… 고작 저 세 바퀴 달린 철마의 수레바퀴에 깔려 깨진단 말이냐……! 어찌 내공의 간섭도 없이 법보의 진안을 정확히 포착해 물리적으로 뭉개버린단 말인가……!”
미진자는 대남의 자전거 타이어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내공은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지만, 우주의 인과율을 해킹해 진법의 약점만을 정확히 조준해 파괴하는 저 주황색 괴물은, 그의 눈에 천벌의 뇌신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비쳤다.
대남은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섰다. 그리고 흙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는 미진자를 내려다보며,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헬멧을 고쳐 쓰며 짜증 가득한 사자후를 터뜨렸다.
“야! 아저씨! 도로 교통법 몰라요?! 왜 공공 도로 한가운데에 저런 무식한 놋그릇을 놔두고 그래요?! 내 자전거 타이어 펑크 났으면 아저씨가 세탁비랑 타이어 값 다 물어낼 뻔했잖아! 요즘 도로 무단 점거 단속이 얼마나 심한데 진짜!”
미진자는 대남의 지극히 현실적인 투덜거림을, 자신을 향한 공간 대종사의 자비로운 훈계이자 생사경 고수의 초연한 조롱으로 오해했다.
“허억…… 허억…… 대종사님…… 이 미천한 미진자가 대종사님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역죄를 지었나이다…… 제발 단전만은 살려주십시오……”
미진자는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대남의 압도적인 기세(감봉 공포의 안광)에 눌려 기절해 버렸다.
대남은 혀를 차며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미진자가 쓰러진 풀숲 구석, 부서진 향로 조각들 사이로 기묘한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툭 떨어져 있는 것이 대남의 눈에 들어왔.
“어? 저건 또 뭐야? 누가 택배 상자를 길바닥에 떨어뜨리고 간 건가?”
대남은 자전거에서 내려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주워 들었다. 상자의 겉면에는 붉은색 비단 끈이 묶여 있었고, 겉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배달 표준 매뉴얼의 오배송 확인 규정에 따라, 대남은 상자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상자 뚜껑을 열어볼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임소라가 제천검을 거두며 대남의 뒤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대종사님, 사파의 비열한 진법을 단 한 걸음의 보법으로 파쇄하시고 마두의 사악한 법보까지 수거하시다니…… 과연 천하제일의 공간 대종사이십니다! 소녀, 평생을 대종사님의 자전거 뒤에서 수호자로 살아가겠나이다!”
대남은 상자를 든 채 이마를 짚었다. 이 귀찮은 여검객과 사파의 음모 세력들 속에서, 그의 1단계 무림 정복의 마지막 배달 신화가 서서히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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