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팽가 힘꾼의 뽁뽁이 굴욕
낙안현 팔도익스프레스 임시소 앞마당에 감돌던 서늘한 아침 공기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마구간 골목 어귀에서, 마치 거대한 성벽이 걸어 나오는 듯한 압도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키가 무려 2미터에 육박하고, 어깨나비는 웬만한 장롱 두 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넓은 거구. 굵직한 팔뚝에는 터질 듯한 힘줄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성인 남성의 키만 한 거대하고 투박한 참마도(斬馬刀)가 붉은 천에 감긴 채 매여 있었다. 하북팽가의 차세대 무력 수석이자, 단순무식한 괴력으로 일류(一流) 초기의 경지에 달했다는 천재 힘꾼, 팽도진이었다.
팽도진의 이글거리는 황소 같은 눈망울이 자전거 앞바퀴 앞에 꿇어앉아 있는 임소라를 향했다. 그의 얼굴이 질투와 분노로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임소라! 제천검법의 유일한 전승자이자 그 도도하기 짝이 없던 제천검이…… 어찌하여 저런 기괴한 주황색 옷을 입은 맹물 같은 녀석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냐! 천도의 서약이라니, 그 찬란한 명성이 아깝지도 않더냐!”
임소라는 차가운 안광을 빛내며 제천검의 자루를 쥔 채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서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구차하군, 팽도진. 그대의 좁은 안목으로는 공간 대종사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법. 내 이미 대종사님의 천도 서판(스마트폰)에 지장을 찍어 영혼의 계약을 마쳤으니, 더 이상 대종사님을 모욕한다면 내 검이 그대의 목을 먼저 벨 것이다.”
대남은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 억울함에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아니, 천도의 서약이 아니라 그냥 영수증 사인이라고! 그리고 팽도진인지 뭔지 하는 저 냉장고만 한 아저씨는 왜 아침부터 남의 영업소에 와서 깽판이야! 나 지금 배달 가야 할 물량이 산더미인데!’
대남은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보았다. 배터리 잔량은 여전히 25%에서 간당간당했고, 화면 한구석의 타이머는 붉은빛을 깜빡이며 퇴근 시간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서 저 괴물 같은 거구와 시비가 붙어 지연된다면, 박 점장의 살벌한 감봉 채찍이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저기, 팽 씨 아저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요. 저는 대종사 같은 거 아니고요, 그냥 평범한 배달원입니다. 이 아가씨가 혼자 착각해서 이러는 거니까, 데려가시든 말든 맘대로 하시고 제발 길 좀 비켜주세요. 저 진짜 바쁘거든요?”
대남은 자전거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으려 했다. 하지만 팽도진의 눈에는 대남의 그 현실적이고 비굴한 태도가 오히려 ‘절대 강자의 여유로운 조롱’으로 비쳤다.
“하하하! 내공이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범인의 몸뚱이로 감히 나를 기만하려 드는구나! 임소라를 홀린 그 해괴한 사술이 내 참마도 앞에서도 통할 것 같더냐! 내 오늘 저 주황색 가방인지 보패인지를 단칼에 베어버려, 네놈의 사기극을 천하에 폭로하겠다!”
*스르릉-!*
팽도진이 등 뒤의 참마도를 뽑아 들었다. 백 근이 넘는 거대한 도신이 허공을 가르자, 하북팽가 비전의 기공인 혼원벽력공(混元劈瀝功)의 묵직한 도강(刀罡)이 붉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일류 고수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마구간 마당 전체를 압착했다.
“대종사님, 물러서십시오! 제천검법으로 이 무식한 황소를 베어버리겠나이다!”
임소라가 제천검을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팽도진의 도의 기운은 이미 대남의 자전거 사방을 넓게 포위하고 있었다. 2미터 거구의 무식한 참마도가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속도는 대남이 자전거 기어를 바꾸어 도망치기에는 너무나도 빨랐다.
‘으악, 미친! 저 칼에 맞으면 진짜 두 동강 난다!’
대남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앞으로 피할 수도, 옆으로 피할 수도 없다. 저 거대한 칼날이 몸 전면에 닿는 순간 즉사다.
하지만 대남의 뇌리 속에 현대 택배 기사로서의 본능적인 생존 처세술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몸을 돌려 등판으로 막아야 돼! 내 가방 등판에는 인체공학적 알루미늄 지지 프레임이 들어있고, 등판 패드가 무지하게 두껍다고!’
대남은 비명을 지르며 자전거 핸들을 급격하게 꺾어 임소라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자전거 안장 위에서 몸을 극단적으로 웅크리며, 등에 매고 있던 거대한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을 팽도진의 참마도를 향해 방패처럼 내밀었다.
“내 가방 건드리지 마, 이 미친놈아! 안에 든 라면 수프 다 터진단 말이야!!!”
대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팽도진은 대남이 등을 돌려 가방을 내밀자 비열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놈! 내 참마도 앞에서는 무림의 명장들이 만든 철갑도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거늘, 고작 저 가죽 주머니로 내 도강을 막으려 드느냐! 가방과 함께 몸뚱이를 반으로 갈라주마!”
*콰아아앙-!!!*
붉은 도강을 실은 백 근 무게의 참마도가 대남의 주황색 배달 가방 정중앙을 강타했다. 일류 고수의 전력을 다한 참격이었다. 마당의 흙바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갈라지며 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임소라는 비명을 지르며 검을 뻗으려 했고, 지붕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당철마저 대남의 파멸을 예견하며 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 순간, 마구간 마당에 울려 퍼진 것은 살점이 찢어지거나 가죽이 베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뾱! 뾱! 뾱뾱뾱뾱뾱-!!!*
마치 수만 개의 작은 침방울이 동시에 터지는 듯한 기괴하고도 경쾌한 파열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어?!”
팽도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의 참마도는 대남의 가방을 단 1치도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가방 표면의 방수 천막은 팽팽하게 늘어났을 뿐 찢어지지 않았고, 가방 내부에서 무언가 신비로운 완충 작용이 일어나 도의 파괴적인 충격을 흔적도 없이 흡수해 버리고 있었다.
그것은 대남이 가방 내부에 보관 중이던 현대식 ‘인스턴트 컵라면 스프’ 박스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장장이 철수가 대장간에 널려 있던 현대의 ‘뽁뽁이(에어캡)’ 뭉치들을 가방 내부 벽면에 무식할 정도로 꽉꽉 채워둔 덕분이었다.
나일론과 고분자 수지로 이중 가공된 현대의 에어캡. 그 수만 개의 미세한 밀폐 공기 주머니들이 동시에 눌리며, 가해진 물리적 충격과 에너지를 공기 압축 분산 원리(Air Cushion Shock Absorption)를 통해 사방으로 완벽하게 분산시켜 버린 것이다.
일류 고수의 도강마저도, 현대 포장 과학의 정수인 뽁뽁이의 압도적인 탄성력 앞에서는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이, 이럴 수가……! 내 도강의 위력이 어째서 저 조잡한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이냐! 기운을 흡수하여 소멸시키는 흡성대법(吸星大法)의 극의가 저 주머니에 깃들어 있단 말이냐!”
팽도진이 경악하며 도를 거두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물리학의 법칙은 무림의 내공 법칙보다 가차 없고 정직했다.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 법. 뽁뽁이 수만 개가 압축되었다가 원래대로 복원되려는 엄청난 공기 탄성 에너지와, 대남의 가방 등판에 내장된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프레임의 반발력이 참마도의 강철 도신을 타고 그대로 역류했다.
*오오오옹-!*
참마도가 팽팽하게 떨리며 엄청난 진동을 일으켰다. 도에 가해진 무식한 반발력이 팽도진이 도를 쥐고 있던 오른손목 경맥으로 고스란히 역류했다.
*우드득! 콰직-!!!*
“끄아아아아악-!!!”
마구간 마당에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팽도진의 단말마 비명이 울려 퍼졌다.
참마도를 쥐고 있던 그의 오른손목 관절이 반사된 충격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기괴한 각도로 뒤틀리며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백 근 무게의 참마도가 팽도진의 손에서 빠져나와 마당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팽도진은 부러진 손목을 왼손으로 움켜쥔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의 거구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안구는 공포와 경악으로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대남의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흠집 하나 없이 주황색 빛을 발하고 있는 그 가방은, 그의 눈에 세상의 그 어떤 타격도 흡수하여 되돌려보내는 전설의 절대 방어구, 만타불침(萬打不侵)의 천외보패(天外寶貝)로 보였다.
“허억…… 허억…… 만타불침의 천외보패……! 단 한 번의 반격도 없이, 오직 저 주머니의 호신강기만으로 내 손목을 부러뜨리다니……! 이것이 정녕 공간 대종사의 위엄이란 말이냐!”
팽도진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뒤로 엉금엉금 물러섰다.
대남은 조심스럽게 감았던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구의 힘꾼이 손목을 쥐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대남은 황급히 자전거에서 내려 배달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야, 너 진짜 미쳤어?! 남의 소중한 배달 가방을 칼로 치면 어떡해! 안에 든 라면 스프 박스 찌그러졌으면 네가 변상할 거야?!”
대남은 가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철수가 넣어둔 뽁뽁이 뭉치들 덕분에, 구석에 고이 모셔둔 인스턴트 컵라면 스프 상자는 찌그러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대남은 십 년 감수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다행이다. 스프 봉지 터졌으면 세탁비에 배송 불가 패널티까지 먹을 뻔했네.”
대남은 가방 안에서 공기가 빠져 찌그러진 뽁뽁이 비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팽도진을 바라보며 짜증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뾱-*
대남이 뽁뽁이 알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터뜨렸다. 그 경쾌한 소리가 고요한 마당에 울려 퍼지자, 팽도진은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거두려는 대종사의 마지막 경고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종사님! 이 무식한 팽도진이 대종사님의 보패를 알아보지 못하고 대역죄를 지었나이다! 제발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대남은 뽁뽁이를 만지작거리며 혀를 찼다.
“아니, 아침부터 남의 집 마당에서 웬 소란이야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갈 길 바쁘니까 다들 저리 가서 싸워요!”
대남은 자전거 안장에 다시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늘어난 바퀴살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번개호가 마구간 마당을 벗어날 때, 임소라는 제천검을 비스듬히 쥔 채 팽도진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어리석은 팽도진. 대종사님의 경고를 들었겠지. 당장 네놈의 무기를 챙겨 낙안현에서 꺼지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검이 천도의 계약에 따라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팽도진은 부러진 손목을 움켜쥔 채, 대남이 사라진 골목길을 향해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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