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소교주의 잠입과 중립 배달
“아이고, 내 다리야. 진짜 이번엔 허벅지가 터져서 가루가 되는 줄 알았네.”
낙안현 외곽의 낡은 마구간을 개조한 팔도익스프레스 임시소. 김대남은 낡은 나무 평상에 털썩 주저앉으며 지독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양손에 낀 빨간색 3M 특제 미끄럼 방지 장갑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진 그는 곧바로 안장 거치대에서 스마트폰을 분리했다. 화면에는 다행히 금빛의 평점 5점 만점 마크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배달 완료: 청운문 대사매 청아 소저 앞 / 일회용 핫팩 교체 완료]
[고객 만족도 평점: ★★★★★ 5.0]
[배터리 잔량: 25%]
“휴, 살았다. 1분만 늦었어도 다이소 핫팩이 완전히 얼음장처럼 식어서 평점 테러당할 뻔했잖아. 그 소림사 땡중 녀석 때문에 길바닥에서 시간만 안 버렸어도 이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대남은 입술을 삐죽이며 다리를 주물렀다. 약선장로 단약자가 준 백운단을 도핑약처럼 삼켜가며 청운문 내문 석벽까지 자전거 번개호의 페달을 광적으로 밟아댄 탓에, 양쪽 허벅지는 이미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공이 단 한 톨도 없는 평범한 현대의 생계형 라이더에게 무림의 가파른 오프로드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동이었다.
“그나저나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네. 또 밤새 페달 돌려서 자가발전기 돌려야 하나? 아, 퇴근 없는 삶 진짜 지긋지긋하다.”
대남은 한숨을 내쉬며 마구간 구석에 주차된 번개호를 바라보았다. 대장간 철수가 영석 합금 조각을 녹여 휠과 프레임을 보강해 준 덕분에, 자전거는 험난한 절벽 길을 폭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스 하나 없이 튼튼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체인 표면에는 철수가 발라둔 WD-40의 무마찰 소수성 기름 피막이 남아있어, 은은한 저녁노을 빛을 받아 기묘한 은빛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으으으…….*
닫힌 마구간 판자문 틈새로, 붉은 빛을 띤 음산하고 차가운 안개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안개가 닿는 곳마다 바닥의 짚단들이 미세하게 얼어붙으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콧등을 찌르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유황 냄새가 좁은 마구간 내부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대남은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뭐야? 이 동네는 저녁만 되면 하수구가 터지나? 왜 이리 썩은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해? 가습기를 틀어놓은 것도 아니고 안개는 또 왜 이래?”
대남은 그저 무림 특유의 열악한 위생 상태와 기상 이변 정도로 치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이익-*
낡은 판자문이 바람 한 점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좌우로 열렸다. 붉은 안개 장막을 헤치고, 허름한 삼베옷을 걸친 사내가 마구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얼핏 보면 평범한 낙안현의 낭인 같았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는 핏빛 마기(魔氣)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정파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입한 마교의 젊은 소교주, 독고운이었다.
독고운은 마구간 한가운데에 서서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채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대남을 매서운 안광으로 쏘아보았다. 최근 마교 잠입 특수조로부터 ‘청운문의 결계를 자전거라는 해괴한 쇳덩이로 부수고, 태상장로의 영맥을 뚫어 화경으로 인도한 무시무시한 공간 이동 대종사’가 낙안현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직접 확인하러 온 참이었다.
‘이 자가 바로 소문의 주황색 괴물인가…….’
독고운은 소매 속에서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극의에 달한 살인적인 기운을 미세하게 방출하기 시작했다. 절정 최정상의 고수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공간을 압착하자, 대남의 발밑에 있던 낡은 목조 의자의 다리 하나가 견디지 못하고 *쩍!*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나 나뒹굴었다.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단전이 뒤틀리고 무릎을 꿇었을 터였다. 하지만 대남은 그저 부서진 의자 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독고운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저씨! 왜 남의 영업장 가구를 부수고 난리예요! 이거 왕씨 아저씨한테 은자 반 냥 주고 빌린 마구간인데, 기물 파손하면 보증금에서 깎인다고요! 들어올 거면 곱게 들어오지, 왜 발로 의자를 차고 그래요!”
독고운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뭐라 하느냐? 내 천마살기를 정면으로 맞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고작 저 낡은 나무 쪼가리의 파손을 논한단 말인가?’
독고운은 속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살기가 완벽하게 무력화된 것이다. 대남의 몸에서는 그 어떤 내공의 흐름도 감지되지 않았다.
‘소문이 진짜였구나! 기운을 완전히 무(無)로 돌려 자연의 일부가 되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극의! 내 살기를 한낱 미풍처럼 흘려보내며, 오히려 나를 세속의 잡배 취급하는 저 대범함…… 과연 공간을 찢는 대종사답도다!’
독고운은 대남의 지독한 ‘생계형 징징거림’을 절대자의 초연한 풍모로 완벽하게 오해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슬며시 살기를 거두고, 소매 안에서 묵직하고 검은 황금 테두리의 명패를 꺼내 대남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교 소교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성물, ‘흑마령(黑魔令)’이었다.
“본좌가 누군지 알고도 그리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이 패를 보고도 내공 없는 척 위장을 유지할 셈인가?”
독고운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대남의 시선은 독고운의 붉은 눈이 아닌, 그의 손에 든 흑마령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두운 마구간 조명 속에서도 흑마령의 테두리에 둘러싸인 황금빛이 번쩍하고 대남의 시야를 강타했다.
‘어…… 저거 진짜 금인가? 테두리가 완전 번쩍번쩍한데? 저 정도 크기의 순금이면 한국 돈으로 얼마야? 아니, 무림 은자로 따져도 최소 백 냥은 넘겠는데?’
순간 대남의 뇌리에서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고액 마케팅 회로가 폭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대남의 눈동자가 달러 마크 모양으로 빛나며, 굳어있던 안면 근육이 순식간에 백화점 명품관 수석 직원의 ‘고객 감동 미소’로 전환되었다.
“아유! 고객님! 진작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눈이 어두워 VIP 귀빈분을 몰라뵈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의자가 부서졌지? 그냥 여기 평상에 편하게 앉으십시오!”
대남은 주황색 헬멧을 벗어 평상 위에 놔두고, 독고운의 손을 덥석 잡으려다 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자 상냥한 목소리로 배달 표준 매뉴얼의 VIP 응대 조항을 읊조렸다.
“저희 팔도익스프레스는 고객님의 신분, 문파, 이념을 전혀 차별하지 않는 ‘절대 중립적 고객 감동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정파든 사파든, 혹은 마교든 상관없습니다! 배송비만 선불로 깔끔하게 결제해 주신다면, 그 어떤 위험 구역이라도 시간 엄수, 친절 배송해 드립니다!”
독고운은 대남의 거침없는 태도에 말문이 막혔다. 마교의 성물인 흑마령을 보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빛내며 ‘VIP 귀빈’이라 부르며 상업적 제안을 해오는 자는 강호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정파와 사파의 이념 대립을 그저 ‘하찮은 상행위의 영역’으로 치환해 버리는구나. 이 얼마나 오만하고도 거대한 기개인가! 천하를 자신의 배달 바둑판 위의 돌로 보고 있음이야!’
독고운이 대남의 정체를 시험하기 위해, 슬며시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은형마기(隱形魔氣)의 침을 뻗어 대남의 단전을 향해 쏘아 보냈다. 내공의 깊이를 강제로 탐지하려는 사천당가의 기법을 개량한 마교의 비전 기술이었다.
바로 그 순간, 대남의 스마트폰 화면이 24%로 떨어지며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앗, 배터리 충전해야 돼!”
대남은 기겁하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보조배터리와 충전 케이블을 줍기 위해 몸을 90도로 극단적으로 숙였다.
*휘이이잉-!*
독고운이 쏜 무형의 은형마기 침은 대남의 머리 위 허공을 그대로 관통하여, 마구간 흙벽에 지름 1센티미터 크기의 깊은 구멍을 뚫고 사라졌다.
독고운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확장되었다.
‘내, 내 은형마기를…… 단 한 치의 예비 동작도 없이, 고작 고개 하나를 숙여 완벽한 타이밍에 피해 버렸다고?! 단전의 기운을 탐지하려던 내 수법을 미리 예지하고 비웃은 것이 분명하다! 과연 천안통(天眼通)의 경지에 달한 기인로다!’
독고운은 대남이 마배터리 경고 때문에 고개를 숙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의 완벽한 물리적 회피 능력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대남은 보조배터리를 스마트폰에 꽂아 충전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독고운을 향해 흑마령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고객님, 저희 팔도익스프레스에는 특별히 보안이 철저한 ‘고액 특송 프리미엄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시 마교 본단이나 사파의 은밀한 아지트로 가야 할 비밀 서찰 같은 게 있으신가요? 분실 시 200% 보상해 드리는 안심 보장제도 적용됩니다!”
독고운은 침을 삼켰다. 이 주황색 괴물은 마교의 존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신용과 계약’이라는 자신만의 엄격한 율법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대…… 정말로 정마(正魔)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배달을 한단 말이냐? 청운문의 비호를 받으면서도, 우리 마교의 밀서를 배달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독고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남은 콧방귀를 뀌며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아유, 당연하죠! 저희 사훈이 ‘친절, 신속, 정확’입니다. 돈만 주시면 마교가 아니라 지옥 끝이라도 자전거 타고 배달 갑니다! 배송비 선불이면 지옥도 다이렉트로 쏴드려요!”
“……!!”
‘배송비 선불이면 마교가 아니라 지옥도 간다……!’
독고운은 대남의 그 처절할 정도로 당당한 자본주의적 선언에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이념과 신념의 대립으로 매일 피비린내가 나는 무림 한복판에서, 오직 ‘계약과 신용’이라는 지고한 가치만을 수호하며 삼계를 아래로 굽어보는 위대한 중립자의 모습이 독고운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과연…… 공간을 찢는 대종사답군. 내 그대의 그 철저한 중립성과 신용을 믿고, 이 의뢰를 맡기겠다.”
독고운은 품속에서 붉은 비단으로 꽁꽁 싸인 비밀 서찰 하나를 꺼내 평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황금 테두리가 둘러싸인 은자 열 냥을 대남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서찰을 낙안현 외곽 흑망곡 초입에 있는 우리 연락책에게 전달해 다오. 제시간에 도착한다면, 흑마령의 이름으로 그대 상단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하겠다.”
“아유! 감사합니다, 고객님! 여기 스마트폰 액정에 손가락으로 사인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평점 5점 만점도 꼭 눌러주시고요!”
대남은 은자 열 냥의 묵직한 무게에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스마트폰 서명란을 내밀었다. 독고운은 대남의 비굴하면서도 당당한 자본주의적 기세에 홀린 듯 손가락을 대어 서명을 완료했다.
*띠링! 배달 접수 완료: 마교 비밀 서찰 특송*
독고운은 대남의 자전거 번개호를 경외스러운 눈빛으로 한 번 바라본 뒤, 붉은 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마구간에 홀로 남은 대남은 은자를 주머니에 넣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예! 오늘 야근 수당 확실하게 챙겼네! 역시 검은 옷 입은 고객님들이 깐깐하긴 해도 팁은 확실하다니까!”
대남은 자전거 안장에 오르며 다시 페달을 밟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가 마구간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저 멀리 청운산맥 봉우리 너머로 푸른색 청운문의 경비 신호탄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정파 맹주가 대남이 마교와 내통한다는 소문을 듣고 보낸 감시자들의 눈초리가 낙안현 대로를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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