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 천재 승려와 고해의 화두
“아, 진짜 허벅지 터지겠네. 기어비고 나발이고 오르막길은 그냥 지옥이잖아!”
낙안현 외곽에서 청운문 내문으로 향하는 가파른 흙길 대로. 주황색 배달원 유니폼을 입은 김대남은 이마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훔치며 자전거 번개호의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다.
철수의 대장간에서 영석 합금으로 바퀴살을 보강하고 WD-40을 듬뿍 쳐둔 덕분에 자전거 자체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굴러갔지만, 그것과 대남의 엔진인 허벅지 근육통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대남은 안장 앞 거치대에 고정된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보았다.
[배터리 잔량: 25%]
[경고: 청아 소저의 ‘태양의 돌(일회용 핫팩)’ 수명 종료 20분 전!]
“20분! 20분 남았다고! 야, 다이소 삼백 원짜리 핫팩 수명이 이렇게 칼 같을 줄이야!”
만년 냉독에 걸려 한천동에 누워 있던 청운문 대사매 청아 소저. 그녀의 품에 안겨준 핫팩의 철가루가 완전히 산화하여 차가운 쇳가루 덩어리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만약 보패로 오인받은 핫팩이 식어버린다면 ‘평점 5점 만점’의 신화가 깨지는 것은 물론, 고객 만족 센터에서 박 점장의 살벌한 ‘감봉’ 독촉장이 날아올 터였다.
“으윽, 일단 도핑부터 하자.”
대남은 다급하게 유니폼 주머니를 뒤적여 청운문의 약선장로 단약자가 준 ‘백운단’ 한 알을 꺼냈다. 무림의 내문 엘리트 제자들도 한 달에 한 알 겨우 배급받는다는 귀한 회복 단약이었지만, 대남에게는 그저 젖산을 초고속으로 분해해 주는 파스 대용 피로회복제에 불과했다.
대남은 백운단을 입안에 툭 던져 넣고 껌처럼 씹기 시작했다. 씁쓸한 한약재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허벅지 세포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청운산맥 초입의 좁아지는 우회로 모퉁이에서 거대한 황토색 승복을 입은 사내가 정중하게 합장을 한 채 길 한가운데를 턱 하니 가로막아 섰다.
그는 소림사 역사상 백 년 만에 출현했다는 불법의 천재이자, 젊은 나이에 이미 절정(絶頂)의 경지에 도달한 수석 승려 각현(각현)이었다.
각현은 청운문과의 무술 교류차 방문했다가, 최근 낙안현을 뒤흔든 ‘주황색 대종사’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특히 제갈세가의 천재 제갈명이 대종사의 자전거 타이어 마찰 자국을 분석하다가 원형 탈모가 왔다는 소문은, 구도에 미쳐 있던 각현의 심장을 강하게 자극했다.
‘저 자가 바로 공간을 찢고 번개를 다스린다는 주황색 대종사인가.’
각현은 다가오는 대남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머리에 쓴 기괴한 주황색 투구(플라스틱 헬멧)와 불타오르는 듯한 주황색 도포(유니폼), 그리고 양손에 낀 핏빛 장갑(3M 코팅 장갑). 그리고 그가 타고 있는, 세 개의 은빛 바퀴가 달린 기이한 철마(자전거).
무엇보다 경악스러운 것은, 각현의 절정 경지 탐지력으로도 대남의 몸에서 그 어떤 내공이나 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과연 소문대로구나! 기운을 완벽하게 무(無)로 돌려 자연과 동화시키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극의! 내공을 전혀 쓰지 않는 듯 보이나, 저 철마의 바퀴 회전은 대지의 지맥을 정확히 누르며 나아가고 있다!’
각현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경외심을 억누르며, 대남의 자전거 코앞에서 엄숙하게 외쳤다.
“아미타불. 소림사의 각현이라 합니다. 주황색 대종사시여, 소승 가시는 길을 잠시 멈추고 불법의 화두를 청하고자 하나이다. 우주의 만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되 본질은 고요한 법이거늘, 대종사께서는 어찌하여 저 기괴한 철륜을 굴리며 세속의 먼지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계십니까?”
“헉…… 헉…… 아, 진짜 뭐야! 비켜요, 아저씨!”
대남은 자전거 브레이크를 급하게 움켜쥐며 소리쳤다. 핫팩 수명은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웬 덩치 큰 땡중이 길 한가운데서 가부좌를 틀 기세로 길을 막아서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대남은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페달을 밟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입안에 씹히는 백운단의 씁쓸한 즙을 삼키며, 대남은 타들어 가는 허벅지 통증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지독한 현실적 불평을 뱉어냈다.
“아, 진짜 존나 힘드네 진짜……! 다 때려치우고 그냥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왜 오르막길만 나오냐고!”
대남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하루 일당 만 원을 벌기 위해 땀 흘리는 현대 소시민의 처절한 징징거림이었다.
그러나 이 날것의 욕설 섞인 불평이 각현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소림사 천재 승려의 머릿속은 마치 거대한 범종이 울린 듯한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
각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존나 힘드네……? 다 때려치우고 죽고 싶다?!’
각현은 대남의 찌푸린 미간과 고통스러운 표정, 그리고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바라보았다. 그의 뇌 필터는 대남의 세속적인 불평을 즉시 고매한 불교 철학으로 번역해 내기 시작했다.
‘아아! 대종사께서는 지금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이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 즉 고해(苦海)를 온몸으로 대변하고 계시는구나! 스스로 내공을 봉인하고 범인의 육체로 이 험난한 오르막길을 오르며, 중생의 번뇌가 얼마나 무겁고 고달픈지를 몸소 보여주고 계심이야!’
게다가 대남이 씹고 있는 백운단의 강렬한 약초 향기가 각현의 코끝을 스쳤다. 각현은 대남이 씹고 있는 시커먼 약 알갱이를 보고 또 한 번 오열할 뻔했다.
‘저것은…… 번뇌를 태우고 남은 고승들의 사리(사리)가 아닌가! 대종사께서는 중생의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스스로 사리를 삼켜 내면의 번뇌를 정화하고 계신 것이로다! 다 때려치우고 죽고 싶다는 말씀은, 아집과 욕망으로 가득 찬 자아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불교 최고의 경지, 즉 적멸(寂滅)과 무상(無相)의 화두였구나!’
각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대종사시여…… 소승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대종사께서는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 ‘무위자연 배송설’의 극의를 통해, 이 고해의 오르막길을 묵묵히 오르며 중생 구원의 자비를 실천하고 계셨거늘! 소승은 그것도 모르고 하찮은 말장난으로 대종사의 구도를 방해하려 했습니다!”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아저씨가 진짜 미쳤나? 나 바쁘다고요! 평점 깎이면 아저씨가 내 월급 책임질 거야? 비켜요!”
대남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자신을 우러러보는 땡중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낙안현에는 왜 이리 제정신이 아닌 놈들만 가득한지 알 수가 없었다. 대남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광인이라 판단하고, 자전거 핸들 오른쪽에 달린 클래식 황동 ‘따릉이 자전거 벨’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스프링 레버를 뒤로 당겼다가 힘껏 놓았다.
*따릉! 따릉! 따르릉-!!!*
맑고 청아한 자전거 벨 소리가 고요한 청운산맥의 계곡 사이로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지극히 평범한 현대식 자전거 경적 소리였지만, 극도의 영적 각성 상태에 있던 각현의 청각에는 완전히 다르게 들렸다.
*콰아아아앙-!!!*
각현의 영혼 속에서 수만 개의 번뇌를 단숨에 깨뜨리는 소림사의 거대한 구리 범종 소리가 뇌리를 강타했다. 맑고 투명한 진동이 그의 꼬여 있던 경맥의 흐름을 단숨에 관통하며, 단전 속에 뭉쳐 있던 절정 경지의 기운이 순식간에 정화되는 듯한 물리적 충격파가 일어났다.
‘이, 이 청아한 음공은…… 번뇌를 깨뜨리는 천상의 종소리! 마음속의 온갖 집착과 망상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구도의 일침이로다!’
각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흐윽…… 깨달았습니다! 대종사님의 청아한 종소리 한 방에, 소승이 품고 있던 해묵은 번뇌와 오만함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나이다! 길은 억지로 닦는 것이 아니요, 오직 묵묵히 페달을 밟듯 나아가는 것뿐임을 깨달았나이다!”
“아니, 그러니까 비키라고요! 나 진짜 바쁘다고!”
대남은 무릎을 꿇고 우는 땡중을 피해, 자전거 기어를 고단으로 변속하며 페달을 사정없이 밟아 그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늘어난 바퀴살이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 번개호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르막길 위로 광속으로 사라졌다.
대남은 멀어지며 뒤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중한테 가르칠 자전거 기술 같은 거 없으니까 다신 길 막지 마요! 평점 테러하면 진짜 신고할 거야!”
흙먼지 속에 남겨진 각현은, 대남이 남긴 마지막 일침을 가슴에 새기며 합장을 올렸다.
“‘중한테 가르칠 철마의 기술은 없다’…… 아아, 형상과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마음으로 도를 전하라는 대종사님의 마지막 자비이시구나! 소승, 평생 대종사님의 무위자연 배송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나이다!”
각현은 품속에서 붓과 서찰을 꺼내 들었다. 그의 손끝이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소림사 본단의 방장 스님과 고승들에게 보낼 서찰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고: 낙안현에 공간을 다스리고 번뇌를 깨뜨리는 살아있는 지장보살, 주황색 대종사가 강림하셨나이다. 그분의 따릉이 종소리 한 번에 소승의 절정 경지 벽이 허물어졌으니, 소림사 전체가 그분의 자비로운 행보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대남은 단지 일당을 지키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페달을 밟았을 뿐이었지만, 소림사의 거물들이 그의 자전거 바퀴 자국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거대한 오해의 스노우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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