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계는 자전거를 감지하지 못한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푸른 번개의 결계를 본 대남은 브레이크를 잡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 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았다.
“비켜어어어! 감봉은 절대 안 돼!”
폭우가 쏟아지는 청운산맥의 가파른 하산길. 시속 6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폭주하는 주황색 삼륜 자전거 ‘번개호’는 이미 제어 장치를 잃은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었다. 대남의 등 뒤에 매여 있는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이 비바람에 찢어질 듯이 펄럭였고, 머리에 쓴 플라스틱 헬멧 사이로 빗물이 사정없이 들이쳤지만 대남은 눈을 부릅떴다.
정확히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새빨갛게 점멸하는 타이머가 그의 심장을 사정없이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 14분 52초]
[경고: 배송 지연 시 당일 일당 50% 즉시 삭감!]
“일당이 날아가면 이번 달 월세는 어떡하냐고! 이 대머리 점장 영감탱이야!”
대남은 비명과 함께 다리 근육을 쥐어짜며 페달을 더 빠르게 굴렸다. 내공이나 영기 같은 초자연적인 힘은 단 한 톨도 없었다. 하지만 매일 백 건이 넘는 배달을 소화하며 다져진 생계형 허벅지 근육은 이 순간만큼은 천하제일인의 그것 못지않은 폭발적인 운동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편, 청운문의 굳게 닫힌 외문 앞.
비바람을 맞으며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청운문 외문 순찰조 제자들은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따릉! 따릉! 따르르릉!*
“……무슨 소리지? 범종 소리는 아닌데?”
“저기 위를 보게! 산길에서 무언가 내려오고 있네!”
제자들이 가리킨 손가락 끝, 자욱한 안개와 폭우를 뚫고 주황색 형체의 괴인이 기이하게 생긴 철마(鐵馬)를 탄 채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바퀴가 세 개 달린 번뜩이는 금속체, 그리고 그 위에 탄 사내가 머리에 쓴 기괴한 주황색 투구.
“사, 사파의 기습이다! 괴상한 법보를 탄 세작이 외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외문 수호 검진(劍陣)을 전개하라! 결계를 활성화해라!”
순찰조 조장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외문 제자들 십여 명이 일제히 장검을 뽑아 들었다. 촤자작! 그들이 검을 휘두르며 기운을 모으자, 외문 아치교 사이에 설치되어 있던 청운문의 고대 방어막, ‘청운문 천년 결계 구역’이 푸른빛을 발하며 사납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침입자의 영혼마저 삼멸(三滅)시킨다는 무시무시한 삼멸진뢰의 푸른 번개가 결계 표면에서 콰르릉 소리를 내며 대기했다.
“멈추어라, 괴인! 이곳은 천하정도 청운문의 성역이다! 더 이상 접근하면 결계의 벼락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제자들이 검기를 뿜어내며 소리쳤지만, 폭풍 속을 질주하는 대남의 귀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그저 ‘웅웅’거리는 소음으로만 들렸다. 대남의 시야에는 오직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붉은색 최단 경로 선과, 그 선이 관통하고 있는 결계 너머의 전각들뿐이었다.
“아니, 저 코스프레 동호회 놈들은 왜 길 한가운데서 칼을 들고 난리야!”
대남은 다급하게 자전거 핸들에 달린 클래식 황동 벨을 튕겼다.
*따릉! 따릉! 따르릉!*
“택배요! 택배! 비켜주세요, 고객님! 부딪힙니다!”
대남은 현대 백화점식 고객 서비스 교육을 떠올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고객 감동 미소 기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 진흙을 뒤집어쓴 채 이빨을 드러내고 주황색 옷을 입은 채 웃는 대남의 모습은, 제자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광기에 미친 사파 마두의 살기 어린 미소로 보였다.
“저 자가 우리를 비웃고 있다! 검기를 방출해 철마를 베어라!”
제자들이 검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검기를 방출했다. 쉬이익! 푸른 검기 두 줄기가 대남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날아왔다.
“미친! 진짜 칼바람을 날리네?!”
대남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평점 1점 테러와 함께 감봉이 확정된다. 대남의 머릿속에서 본사의 ‘배달 표준 매뉴얼’ 제7조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배달 표준 매뉴얼 제7조: 고객 또는 외부 요인이 물리적 위해를 가하거나 배송을 방해할 시, 라이더는 신속히 비대면 강제 돌파를 감행할 수 있다.]
“그래, 배달은 신용이다! 뚫고 간다!”
대남은 몸을 극단적으로 안쪽으로 숙였다. 그리고 ‘원심력 드리프트 이론’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코너를 돌 때 자전거의 무게 중심을 안쪽으로 기울이고 뒷바퀴를 미끄러뜨려 속도를 유지하는 물리 법칙. 대남은 오른손으로 뒷브레이크를 살짝 잡는 동시에 핸들을 과감하게 꺾었다.
*콰아아아악!*
번개호의 뒷바퀴 두 개가 빗물에 젖은 진흙 바닥을 긁으며 반원형의 진흙 폭풍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엄청난 가속도와 원심력이 결합하며 자전거가 수평으로 미끄러지듯 궤도를 틀었다. 날아오던 검기 두 줄기는 대남이 드리프트로 궤적을 비튼 덕분에 그의 주황색 가방 옆면을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가며 땅바닥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저, 저게 무슨 신형보법이냐! 철마를 탄 채로 허공을 미끄러지듯 꺾다니!”
제자들이 경악하는 사이, 대남의 번개호는 마침내 푸른 뇌전이 일렁이는 천년 결계 장막 코앞까지 도달했다.
결계를 지키던 순찰조 조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기이한 보법을 쓴다 한들, 침입자의 기운과 금속 무기를 감지해 천 개의 번개를 떨어뜨리는 삼멸결계를 통과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알지 못했고, 대남 역시 자각하지 못한 거대한 ‘청운문 삼멸진법의 허점’이 있었다.
청운문의 고대 결계는 침입자의 내공(內氣)이나 마기, 혹은 금속제 칼날이 가진 날카로운 기운을 감지하여 작동하는 영적 센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대남은 내공이 단 한 톨도 없는 순수한 범인(凡人)이었고, 그가 타는 자전거 번개호의 바퀴는 완벽한 절연체인 ‘합성 고무 타이어’로 감싸여 있었다. 게다가 대남이 머리에 쓴 헬멧은 전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이었고, 그의 유니폼 역시 특수 나일론 재질이었다.
결계의 영적 센서 입장에서 대남과 자전거는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히 절연된 무기물 덩어리’에 불과했다.
*찌이이이이잉-*
고무 타이어가 푸른 결계막에 닿는 순간, 기이한 스파크가 튀며 결계의 영적 주파수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침입자의 내기를 감지하지 못한 결계 센서는 번개를 어디로 떨어뜨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서 헛돌았다.
“어? 어? 결계가 왜 작동하지 않지? 번개가 왜 안 치는 거냐!”
조장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대남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페달을 밟았고,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진하는 자전거의 무식한 운동에너지와 무게 하중이 그대로 결계막에 부딪혔다.
*콰콰콰쾅-!*
영적 에너지는 완벽한 절연체인 고무 타이어에 전도되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대신 자전거 바퀴의 무자비한 물리적 마찰력과 회전력이 결계의 얇은 장막 표면을 그대로 짓밟고 찢어발겼다. 쩌적! 소리와 함께 천년 동안 청운문을 지켜오던 단단한 푸른 장막이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으아아아악!”
결계가 깨지며 발생한 거대한 물리적 충격파와 바람이 외문 광장을 휩쓸었다. 입구를 지키던 외문 제자들은 결계 파편의 폭풍에 휘말려 사방으로 날아가 진흙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따릉! 따릉! 따르릉!*
먼지와 푸른 스파크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대남은 자전거 벨을 울리며 유유히 연무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휴, 전기가 좀 찌릿하긴 했는데 역시 고무 타이어라 멀쩡하네! 다 비켰지? 나 먼저 간다!”
대남은 뒤에서 날아간 제자들이 왜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스마트폰 화면의 빨간 선만 보며 내문 전각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뒤에 남겨진 외문 조장은 입에서 진흙을 뱉어내며 멀어져 가는 주황색 괴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천…… 천년 결계를 몸뚱이 하나로 부수고 들어가다니…… 저 자는 필시 공간을 마음대로 접어 달리는 천외천의 대종사(大宗사)다!”
한편, 외문 결계가 깨지며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는 지면을 타고 청운산맥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진동은 대지 깊숙한 곳으로 전도되어, 청운문 내문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잠들어 있던 고대의 영맥(靈脈) 혈자리를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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