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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속성 보패 핫팩과 한천동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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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강의 세찬 물살을 뚫고 무사히 백가촌 상단에 뜨끈한 만두와 약재를 배달한 김대남은 평점 5점 만점과 함께 은자 십 냥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청운문 약선당의 깐깐한 약선장로 단약자가 그를 급히 호출했다. 대남이 자전거 번개호를 몰고 약선당 마당에 들어서자, 단약자가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대남의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오! 대종사님! 이 가방이 정녕 시간을 멈추고 신선도를 고정한다는 전설의 건조 보패(Preservation Treasure)이옵니까? 영하 40도의 한천동에서도 영초가 전혀 얼지 않고 그 약효를 유지할 수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단약자는 대남의 가방 내부에 장착된 현대식 은박 단열 팩(보온보냉 팩)을 만지며 침을 흘렸다. 대남은 속으로 ‘이건 그냥 배달 대리점에서 보급해 준 방수 단열 가방인데’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설명하기 귀찮아 대종사 특유의 무심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허허, 약선장로님. 이 주황색 가방은 온도 제어 인과율이 적용되어 있어 외부의 음한 기운을 완벽히 차단하옵니다. 배송 요청하신 영초는 어디 있습니까? 시간이 지체되면 신선도가 떨어집니다.”


“여기 있사옵니다! 한천동(한천동) 깊은 곳에 보관해야 할 ‘설산벽련’이옵니다. 부디 동굴 가장 깊은 연단실까지 안전하게 배송해 주십시오!”


단약자가 정성스럽게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대남은 상자를 단열 가방 안에 쏙 넣고 지퍼를 꽉 잠갔다. 그리고 자전거 번개호의 페달을 밟아 청운문 뒤편의 금지구역이자 만년설이 녹지 않는 극한의 얼음 동굴, 한천동으로 향했다.


한천동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뼛속까지 시려오는 영하 40도의 칼바람이 대남의 주황색 유니폼을 때렸다. 일반적인 무사라면 내공을 운용해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고서는 단 10분도 버티기 힘든 혹한이었다. 하지만 내공이 0인 대남에게는 오직 ‘배송 지연 시 감봉’이라는 지독한 현대 직장인의 생계형 집념이 뿜어내는 정신적 열기만이 유일한 방한 대책이었다.


“으어어, 존나 춥네 진짜! 마포구 겨울철 새벽 배달 돌 때보다 더 추운 것 같아! 빨리 배달하고 따뜻한 사당으로 돌아가서 컵라면이나 끓여 먹어야지!”


대남은 입김을 뿜으며 자전거 바퀴에 철수가 감아준 미끄럼 방지 체인의 회전력에 의지해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동굴 벽면은 푸르스름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바닥은 얼어붙어 아찔한 오프로드 주행이 이어졌다. 다행히 단열 가방 내부의 은박 단열재 덕분에 설산벽련의 온도는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동굴 깊숙한 연단실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대남의 시야에 얼음 기둥 옆에 쓰러져 있는 하얀 도포의 실루엣이 포착되었다. 대남은 자전거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잡으며 멈춰 섰다.


“어? 저기 누가 쓰러져 있네? 설마 길바닥에 취객인가?”


대남이 자전거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하얀 도포 위로 붉은 매화 문양의 띠를 맨 청운문 최고의 미소녀이자 대사매인 청아(청아) 소저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얼굴은 만년 냉독(만년 냉독)에 중독되어 푸르스름한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길게 늘어진 속눈썹에는 얼음 알갱이가 맺혀 있었다.


“청아 소저?! 야, 큰일 났다! 이거 저체온증이잖아!”


대남은 깜짝 놀라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청아는 한천동의 냉기를 다스리는 수련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기운이 역류하여 만년 냉독에 걸린 상태였다. 무림의 고수들이라면 내공을 주입해 기혈을 뚫어주었겠지만, 대남의 내공 수치는 완벽하게 0이었다. 대남은 어설프게 그녀의 맥을 짚어보려 손을 꼬집어 보았지만, 청아는 미세하게 신음할 뿐 차가운 체온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어쩌지? 인공호흡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 그 전에 나 내공 같은 거 없는데 어떻게 열을 내냐고! 이대로 놔두면 심장마비로 죽겠는데!’


만약 청운문의 대사매가 자신이 배달하는 도중 한천동에서 사망한다면, 청운문 전체가 슬픔에 잠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배달 업무고 뭐고 평점 테러는 물론이고 영구적인 영업 정지를 당할 것이 뻔했다. 대남의 뇌리에서 ‘평점 1점’과 ‘감봉’이라는 붉은색 해골 마크가 깜빡였다.


그 순간, 대남의 자본주의적 생존 본능이 번뜩였다. 그는 자신의 주황색 유니폼 안쪽에 있는 비밀 지퍼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 잡힌 것은, 겨울철 오토바이 배달을 돌 때 손가락이 얼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이소에서 10개 묶음으로 사서 아껴두었던 현대 과학의 방한 용품.


바로 ‘일회용 핫팩’이었다.


“좋아, 이판사판이다! 다이소 300원짜리 핫팩의 위력을 보여주마!”


대남은 비닐 포장지를 거칠게 찢고 핫팩을 꺼냈다. 그리고 한천동의 엄숙하고 차가운 고요함 속에서, 기상천외한 동작을 시작했다.


양손으로 핫팩을 움켜쥐고 미친 듯이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만년설이 잠든 차가운 얼음 동굴 속에 얇은 플라스틱 부직포가 마찰하는 해괴하고 경쾌한 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의식을 잃어가던 청아는 그 기이한 소음에 미세하게 눈꺼풀을 떨었다. 그녀의 흐릿한 시야 속에서,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대종사 김대남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손을 교차하며 기묘한 수인을 맺고 있었다.


‘아…… 대종사님께서 나를 구하기 위해…… 천계의 수인(手印)을 맺고 계시는구나…….’


청아는 그것이 대남이 핫팩 내부의 철가루를 산소와 반응시키기 위해 펼치는 필사적인 ‘쉐킷쉐킷’ 페달링 손기술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혼자 깊은 도가적 감격에 젖어 들었다.


대남의 손안에서 철가루와 활성탄이 산소와 결합하며 초고속 산화 발열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섭씨 6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온기가 순식간에 부직포 표면을 뚫고 뿜어져 나왔다. 대남은 빵빵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주황색 핫팩을 청아의 얼어붙은 두 손 사이에 꾹 쥐여주었다.


“청아 소저! 이거 꼭 쥐고 있어요! 이거 진짜 뜨거우니까 손 녹을 겁니다!”


그 순간, 청아의 전신이 세차게 떨렸다.


보통의 무림인들이 부리는 화공(火功)이나 양강(陽剛)의 내력은 일시적으로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지만, 만년 냉독의 영적 파동과 충돌하여 경맥을 상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현대 화학의 정수가 담긴 일회용 핫팩이 내뿜는 섭씨 60도의 지속적이고 순수한 물리적 열 에너지는 달랐다. 영적 파동이 전혀 섞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직한 열전도 현상이 청아의 얼어붙은 피부와 혈관을 아주 부드럽고 일정하게 녹여내기 시작했다.


청아의 손끝에서부터 푸른 서리가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흘러내렸다. 뼛속을 파고들던 냉독의 음한 기운이, 핫팩이 뿜어내는 일정한 온기 앞에 힘없이 밀려나며 정화되기 시작했다. 청아의 창백했던 볼에 은은한 복사꽃 빛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 뜨겁다…… 영구히 식지 않는 태양의 돌…….”


청아는 자신의 손안에서 아무런 내공의 흐름도 없이, 오직 순수한 온기만을 끝없이 뿜어내는 이 신비로운 주황색 부직포 주머니를 바라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에는 이 핫팩이 만년 냉독을 정화하기 위해 대종사가 천계에서 가져온 불속성 최상급 보패인 ‘태양의 돌(Stone of the Sun)’로 보였다.


청아는 핫팩의 따스함을 가슴에 꼭 품은 채, 눈물을 글썽이며 대남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뺨이 부끄러움과 감격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대종사님…… 이토록 귀한 화속성 천상 보패를 저 같은 미천한 제자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다니…… 이 은혜를 평생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촉촉하고 뜨거운 시선이 대남의 주황색 헬멧 바이저 너머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대남은 청아의 붉어진 얼굴과 지나치게 진지한 눈빛을 보며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어…… 저기요, 소저? 그거 300원짜리 일회용이라 내일 아침이면 완전히 식어서 굳어버리는 쓰레기가 되는데요…….’


진실을 말하려 대남이 입을 달싹이는 순간, 청아의 가슴팍에 안긴 핫팩이 마지막 열기를 뿜어내며 그녀의 옷자락을 따스하게 적셨다. 분위기가 너무 장엄하고 애틋해서, 대남은 차마 “그거 일회용이니까 내일 버리세요”라는 자본주의적 팩트 폭행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훔칠 뿐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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