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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컵라면 스프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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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그 정화조 테러리스트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중원 무림 서쪽 변방, 낙안현 마을의 외곽 길을 달리는 삼륜 자전거 ‘번개호’ 위에서 김대남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청아 소저의 영초 배달을 제한 시간 단 2분을 남겨두고 극적으로 완료하며 평점 5점 만점을 지켜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의 유니폼 가슴팍에서는 여전히 코를 찌르는 지독한 썩은 달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자객 혈랑이 기습하며 뿜어댔던 가공할 맹독 ‘혈련독’의 흔적이었다. 물론 현대의 초강력 나노 발수 방수 코팅 기술 덕분에 독액 자체는 옷감 표면을 뚫지 못하고 전부 또르르 흘러내렸지만, 그 특유의 지독한 유황 성분이 남긴 악취만큼은 코팅막조차 완벽히 막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대남은 그 무시무시한 피의 자객을 그저 ‘길바닥에서 똥물이나 뿌려대는 정화조 테러범’ 정도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이거 물로 대충 빨아도 냄새가 안 빠지네. 회사 보증금에서 세탁비로 삼만 원 깎이면 진짜 그 새끼 무덤까지 쫓아가서 삥 뜯을 줄 알아라.”


대남은 툴툴거리며 마구간 자취방 마당에 자전거를 세웠다. 스마트폰을 켜보니 배터리 잔량은 어느덧 24%. 당장 충전 페달을 밟아야 할 처지였지만, 어제오늘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뱃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허벅지는 자가발전 노가다와 절벽 질주로 인해 터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일단 먹고 보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무림 정복이고 나발이고 굶어 죽으면 평점이고 월급이고 다 끝이야.”


대남은 방수 배달 가방의 옆구리 그물망을 뒤적거렸다. 그곳에는 그가 차원 이동을 당할 당시 비상식량으로 챙겨두었던 소중한 보물, 현대식 인스턴트 컵라면 한 사발과 낱개로 포장된 스프 봉지가 잠들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대남의 자취방 지붕 위 썩은 기와 틈새에는 한 소년이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개방 낙안현 분타의 천재 전령, 소칠이었다.


소칠은 꼬질꼬질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청운문의 천년 결계를 기괴한 철마로 부수고 들어와 장문인을 구했다는 이 ‘주황색 괴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반나절 동안 대남의 뒤를 미행해 왔다.


‘믿을 수 없다. 기운이…… 정말로 단 한 톨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완벽한 반박귀진의 경지가 존재한단 말인가?’


소칠은 침을 삼켰다. 일류 자객 혈랑마저 맨손으로 제압하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던 대남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기에, 그의 경계심은 극도에 달해 있었다. 소칠의 목표는 기회를 봐서 대남이 한눈을 팔 때 저 주황색 ‘공간 전송 보패(배달 가방)’를 훔쳐 달아나는 것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대남은 지붕 위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가방에서 휴대용 부탄가스버너를 꺼냈다. 그리고 낡은 냄비에 우물물을 붓고 불을 켰다.


*탁! 촤아아-*


맑은 한낮의 마당에 가스버너의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지붕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소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장풍도, 수화(水火)의 술법도 쓰지 않고 손가락 끝의 튕김만으로 저토록 순수한 벽력의 불꽃을 일으키다니! 과연 기계종사라 불릴 만한 신비로운 수법이로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대남은 컵라면의 뚜껑을 뜯고, 붉은색 인스턴트 스프 봉지를 찢었다. 그리고 끓는 물에 스프 가루를 아낌없이 탈탈 털어 넣었다.


그 순간, 마구간 앞마당의 대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쉬이이익-!*


스프 가루가 끓는 물과 만나는 찰나, 현대 식품공학의 정수이자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화학적 미각 촉진제인 L-글루탐산나트륨(MSG)의 자극적이고 강렬한 향기가 수증기를 타고 폭발하듯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매콤한 마늘 향, 쇠고기 엑기스의 진한 감칠맛, 그리고 짭조름한 조미료의 향이 한데 어우러진, 무림의 역사상 그 어디에서도 존재한 적 없는 미각의 핵폭탄이었다.


지붕 위에서 대남을 매섭게 감시하던 소칠은 순간 뇌가 정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이 향취는 대체 무엇이냐……!’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소칠의 단전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개방의 거지로 살아가며 매일같이 찬 밥덩이와 썩어가는 만두피, 맹물에 소금만 탄 국물로 연명해 온 소칠이었다. 그런 그의 미각 세포에 현대 화학 조미료의 농축된 향기가 정면으로 직격한 것이다.


입안에서 침이 폭포수처럼 고이기 시작했다. 이성을 유지하려던 소칠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풀렸다. 단전의 내공이 향기에 반응하여 멋대로 순환하는 기현상마저 일어났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냄새만으로 인간의 뇌 속 도파민을 강제로 폭발시키는 가공할 법력의 영약이었다.


‘설마…… 저 주황색 괴인이 천상의 단약을 연성하고 있는 것인가? 저 붉은 가루는 천 년 묵은 불속성 영물의 내단 가루가 분명하다!’


소칠이 침을 꿀꺽 삼키는 찰나, 꼬르륵하는 천둥 같은 소리가 그의 뱃속에서 울려 퍼졌다. 너무나도 강렬한 굶주림의 비명이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페달질로 멍하니 냄비를 바라보던 대남이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 정도였다.


“어? 무슨 소리야? 돼지 우는 소리인가?”


대남이 고개를 들어 지붕 위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소칠이 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냄새에 취해 다리가 풀린 탓에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와르르릉! 쿵!*


낡은 기와 조각들이 깨져 내리며, 꼬질꼬질한 누더기를 입은 소칠이 대남의 코앞 마당으로 꼴사납게 굴러떨어졌다. 진흙투성이가 된 소칠은 먼지를 털어내며 다급히 대나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이류 고수로서의 경계태세를 취하려 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대남의 손에 들린 붉은 국물의 냄비에 고정되어 있었다. 침이 턱 끝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대남은 마당에 갑자기 굴러떨어진 거지 소년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너? 우리 집 담벼락에서 뭐 하던 꼬맹이야? 설마 도둑놈이냐?”


소칠은 경계심을 담아 외치려 했으나, 입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것은 엉뚱한 고백이었다.


“그, 그 붉은 단약의 국물을…… 내게도 한 모금만 넘겨다오! 내 평생 이런 가공할 영기를 품은 향취는 맡아본 적이 없다!”


“단약? 국물?”


대남은 소칠의 더러운 몰골과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마른 몸을 보았다. 영락없이 며칠은 굶은 동네 거지 아이였다. 험악한 자객들을 상대하다가 이런 불쌍한 꼬마를 보니, 대남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현대 소시민의 측은지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혼자 먹기에는 양이 조금 많기도 했고, 국물을 다 마시면 나중에 나트륨 과다로 얼굴이 부을 터였다. 대남은 혀를 차며 자전거 가방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꺼냈다.


“에휴, 쯧쯧. 이 동네는 애들을 왜 이렇게 굶겨 키우냐. 자, 옛다. 국물 아까우니까 면발이랑 같이 조금 줄 테니까 먹고 당장 가라.”


대남은 국수 면발과 벌건 국물을 플라스틱 그릇에 덜어 소칠의 앞에 툭 내려놓았다.


소칠은 눈앞에 놓인 붉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하얀색 신비로운 그릇(플라스틱)에 담긴 붉은 국물은 마치 지옥의 염화가 끓어오르는 듯 강렬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소칠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릇을 들고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꿀꺽-*


그 순간, 소칠의 세상이 멈췄다.


정말로 뇌 속에서 섬광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L-글루탐산나트륨과 정제염, 그리고 각종 인공 조미료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현대 과학의 결정체가 소칠의 톳톳한 혀끝에 닿는 순간, 그의 미각 신경은 말 그대로 백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마비되었다.


단맛, 짠맛, 매운맛, 그리고 감칠맛이 완벽한 비율로 동기화되어 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무림인들이 평생 먹어온 그 어떤 고가의 단약이나 영수 고기 요리도 이토록 강렬한 도파민의 폭격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으, 으아아아아……!”


소칠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이성을 잃고 그릇에 코를 박은 채 면발을 폭풍처럼 흡입하기 시작했다. 쫄깃쫄깃한 밀가루 면발이 매콤하고 짭짤한 국물을 가득 머금은 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소칠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이것은 단약이다! 인간의 미각을 지배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천상의 단약, 백미단약(百味丹藥)이 분명하다! 단 한 모금에 온몸의 경맥이 활성화되고 뇌리가 맑아지는구나!’


사실 경맥이 활성화된 게 아니라, 단지 엄청난 양의 나노 나트륨과 MSG가 들어가 뇌의 보상 중추가 미쳐 날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소칠에게는 이 맛이 무림의 그 어떤 기연보다도 강력한 영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릇 바닥까지 혀로 핥아 먹을 기세로 순식간에 라면을 비워냈다.


“하아, 하아……!”


빈 그릇을 쥔 채 헐떡이는 소칠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제 경계심이 아닌, 절대적인 숭배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소칠은 대남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마당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찧었다.


“대종사님! 개방 낙안현 분타의 수석 전령 소칠, 이제야 진정한 무림의 태산북두를 뵈옵니다! 제발 이 어리석은 소자를 거두어 주십시오! 평생 대종사님의 곁에서 저 백미단약의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면, 제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나이다!”


대남은 라면 면발을 씹다 말고 황당한 표정으로 소칠을 내려다보았다.


“어……? 야, 너 왜 그래? 무섭게 왜 대가리를 박고 그래? 그냥 라면 국물 좀 준 것뿐인데.”


“대종사님의 자비로우심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토록 가공할 영약을 한낱 거지 소년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다니, 과연 하늘의 법도를 깨달은 분이십니다!”


소칠은 진지했다. 개방의 전령으로서 수많은 정보를 다루어 왔지만, 이 주황색 옷을 입은 괴인의 손에서 나오는 현대식 물건과 음식들은 매번 천하를 뒤흔들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소칠은 품속에서 낙안현 주변의 모든 비밀 정보가 적힌 개방의 극비 연락용 대나무 패를 꺼내 대남의 발밑에 바쳤다.


“대종사님, 비록 미천한 몸이나 개방의 신속 정보망을 다룰 권한이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하시는 이 ‘배달’ 사업에 낙안현 구석구석의 지리와 문파들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겠나이다! 부디 저를 대종사님의 충직한 정보 전령으로 써 주십시오!”


대남의 눈동자가 그 순간 번뜩였다.


‘개방의 정보망이라고?’


짠돌이 배달원 대남에게 있어, 낙안현 골목길의 지리와 고객들의 정확한 위치 정보는 평점 5점을 사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이 가끔 결계 구역에서 GPS 수신 장애를 일으킬 때마다 애를 먹었는데, 현지 최고의 정보원들이 길잡이를 자처해 준다면 오배송 리스크를 제로로 만들 수 있었다.


대남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배달 앱 화면을 켰다. 배달 완료 서명판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좋아. 네 성의가 갸륵하니 내 특별히 너를 팔도익스프레스의 비공식 정보 연락책으로 고용해 주지. 대신, 조건이 있다.”


“무슨 조항이든 따르겠나이다!”


“여기 내 스마트폰 액정에 네 손가락으로 사인을 해라. 그리고 앞으로 배달 지연이나 정보 오류로 내 평점이 깎이면, 국물은커녕 스프 냄새도 맡지 못할 줄 알아.”


소칠은 대남이 내민 스마트폰 액정의 붉은 서약판을 경외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것이 천도의 인과율에 묶이는 절대적인 계약 보패라고 확신하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액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었다.


*띠링! 배달 파트너 정보 등록 완료.*


스마트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울려 퍼지자, 소칠은 자신이 위대한 대종사와의 영혼 계약을 마쳤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대남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남은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드디어 낙안현 최고의 정보망을 공짜 라면 국물 한 사발로 손에 넣은 것이다.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 협상은 현대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남과 소칠이 기쁨을 나누던 바로 그 순간, 마구간 보관소 주변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 강렬한 컵라면 스프의 향취는, 낙안현 시장통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다른 거지들의 코끝을 이미 완벽하게 장악한 뒤였다.


*스스스슥-*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마구간 담벼락 너머로,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수십 개의Glowing 눈동자들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며 냄새의 근원을 향해 서서히 좁혀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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