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 자객과 펑크 나지 않는 신물
“탁! 탁! 타다닥! 콰당!”
낙안현 시장 중심가에 위치한 거대한 기와집. 흑풍상단의 본거지이자 상단주 팽무적의 집무실에서는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팽무적은 눈에 불을 켠 채 황금 주판을 사정없이 두들겨 대고 있었다. 하지만 주판알이 튕겨 나갈 때마다 그의 미간은 점점 더 깊게 일그러졌다.
“이럴 수는 없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낙안현 서민들의 만두 배달 주문이 몽땅 그 주황색 괴물 놈에게 넘어갈 수 있단 말이냐! 내 손에서 빠져나간 은자가 벌써 수십 냥이다!”
팽무적은 분노로 가득 차 황금 주판을 책상 위에 내리쳤다. 무림의 물류와 유통을 독점하며 폭리를 취하던 그에게, 최근 나타난 ‘팔도익스프레스’라는 기괴한 배달 상단은 눈엣가시를 넘어 목숨을 위협하는 재앙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청운문의 이등제자 배진태가 그 주황색 괴물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낡은 자전거 체인 한 방에 이빨이 털려 도망쳤다는 첩보까지 들려왔다.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철사슬 하나로 일류 검법을 무력화하는 연검술의 대종사라니…….”
팽무적은 소름 끼치는 밀정의 보고서를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탐욕은 공포보다 강한 법이었다. 이대로 시장 독점권을 빼앗겨 파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두운 그늘을 향해 나직하게 손짓했다.
“나오너라, 혈랑.”
스스슥.
그늘 속에서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검은 복면을 쓴 날렵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수집단 흑월문 소속이자, 낙안현 인근에서 악명 높은 일류 자객 혈랑이었다. 그의 양손에는 보기만 해도 오싹한 가시가 돋친 철구슬들이 가득 쥐여 있었다. 사파의 비전 암기이자, 스치기만 해도 강철마저 뚫어버린다는 전설의 ‘철질려’였다.
“상단주여, 부르셨습니까.”
“저 주황색 옷을 입은 괴물이 타는 세 바퀴 수레를 멈춰 세워라. 그놈의 수레바퀴를 몽땅 펑크 내고, 가방 속에 든 물건을 약탈해 오너라. 바퀴가 멈추면 아무리 대단한 축지법을 쓰는 고수라도 한낱 기어 다니는 거북이에 불과할 터!”
혈랑은 비열한 안광을 번뜩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염려 마십시오. 제 철질려는 고대 화경 고수의 호신강기마저 뚫어내는 예리함을 지녔습니다. 그 해괴한 철마의 바퀴 가죽 따위는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같은 시각, 김대남은 평화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낙안현 시장통 외곽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청아 소저에게 수주한 소중한 비단 상자가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 안에 안전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아, 날씨 좋다. 역시 체인에 기름칠을 해두니까 페달이 깃털처럼 가볍네.”
대남은 작업용 빨간색 3M 특제 미끄럼 방지 장갑을 낀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가볍게 쥐었다. 어제 철수의 대장간에서 WD-40을 듬뿍 치고 림을 교정한 덕분에 번개호는 소음 하나 없이 부드럽게 흙바닥을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스마트폰 거치대 화면에서는 GPS 최단경로 네비게이션의 선명한 붉은 선이 청운산 뒤편 절벽 길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배터리 잔량: 24%]
[알림: 배송 완료 예정 시간까지 남은 시간 15분]
“좋아, 이 속도만 유지하면 시간 내에 도착해서 평점 5점 만점을 사수할 수 있어. 지연되면 박 점장 영감탱이가 또 감봉이라고 난리를 칠 테니까 절대 쉴 수 없지.”
대남은 허벅지에 힘을 주며 페달링 속도를 올렸다. 한참을 신나게 달리던 대남의 눈앞에, 낙안현 시장 외곽의 좁고 어두운 골목길 초입이 나타났다. 네비게이션의 빨간 선은 그 골목길을 통과하라고 정확히 지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 골목길 지붕 위, 검은 복면을 쓴 혈랑이 숨을 죽인 채 대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왔구나, 주황색 괴물 놈.”
혈랑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골목바닥 전체에 수백 개의 철질려를 골고루 뿌려두었다. 사방으로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검은 무쇠 구슬들이 흙먼지 사이에 교묘하게 몸을 숨겼다. 저 가시밭 위를 세 바퀴 자전거가 밟는 순간, 바퀴 가죽은 순식간에 찢어지고 자전거는 통제력을 잃어 벽에 처박힐 터였다.
“아무리 대단한 연검술을 쓴다 한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내 철질려의 덫을 피할 수는 없다!”
혈랑은 지붕 기와 뒤에 바짝 엎드린 채, 말린 곶감 하나를 입에 물고 느긋하게 대남의 몰락을 기다렸다.
대남의 자전거 번개호가 골목길 안으로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시속 30km가 넘는 속도였다. 코너를 도는 순간, 대남의 시야에 도로 바닥에 흩뿌려진 기묘한 검은 쇠구슬들이 포착되었다.
“어? 저게 뭐야?”
대남은 깜짝 놀라 안경을 고쳐 썼다. 바닥에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난 무형의 철구슬들이 가득 깔려 있었다. 현대인인 대남의 눈에는 그것이 무림의 살벌한 암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개념한 공사 업자가 도로에 아무렇게나 버려둔 불법 건축 폐기물이나 녹슨 못더미로 보였을 뿐이었다.
“아니, 어떤 몰상식한 인간들이 도로 한가운데에 이런 뾰족한 철조각들을 버려둔 거야! 이 동네는 구청도 없나? 진짜 도로 포장 상태가 왜 이 모양이냐고! 나중에 관청 찾으면 진짜 떼거리로 민원 넣을 테다!”
대남은 속으로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여기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제동 거리가 밀려 자전거가 미끄러질 것이 뻔했다. 비포장 흙길에서 급제동은 삼륜 자전거의 전복을 유발한다. 게다가 멈추어 서서 못을 일일이 줍다가는 배송 제한 시간을 맞추지 못해 무자비한 감봉 패널티를 먹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철수 아저씨의 기술력을 믿는다!”
대남은 핸들을 꽉 쥐고 중력 중심을 아래로 낮추며 페달을 더 강하게 밟았다. 안전 운전 매뉴얼에 따른 정면 돌파였다.
사실 대남이 타는 자전거 번개호의 타이어는 이미 평범한 고무 타이어가 아니었다. 며칠 전, 대장장이 철수가 대남의 펑크 수리 키트에서 꺼낸 질긴 ‘초마찰성 고무 원료’의 탄성에 감탄하며, 대장간 용광로에서 ‘영석 합금 조각’을 함께 녹여 타이어 내부에 아낌없이 채워 넣은 특제 ‘마개조 통가죽 타이어’였다. 공기가 들어간 튜브식이 아니라, 영석 합금과 현대식 초고밀도 합성 고무가 분자 수준으로 결합된 무식한 경도의 통고무 솔리드 타이어였던 것이다.
*스스스슥-!*
자전거 바퀴가 철질려 가시밭 위로 들이닥쳤다.
지붕 위의 혈랑은 곶감을 씹으며 눈을 빛냈다.
‘터져라! 찢어져라! 사파의 괴물이여, 무릎을 꿇어라!’
그러나 다음 순간, 골목길 안을 가득 채운 소리는 타이어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아니었다.
*뽀드득! 바드득! 콰작-!!!*
지극히 무겁고 묵직한, 무언가가 일방적으로 짓눌려 으스러지는 기괴한 소리였다.
대남의 자전거 뒷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강철도 뚫는다던 흑월문의 자랑 철질려들이 사정없이 납작하게 짓눌려 평평한 쇠딱지로 변하고 있었다. 영석 합금의 단단함과 초마찰성 고무의 무식한 질량 하중이 결합된 번개호의 타이어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오히려 디딤돌 삼아 대지 깊숙이 박아버리거나 물리적으로 으스러뜨리며 전진했다.
*바스락, 드드득, 뽀드득!*
타이어 표면에는 미세한 스크래치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가시들이 찌르려다 부러지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번개호는 마치 스팀롤러처럼 가시밭길을 유유히 다지며 시속 30km의 속도를 전혀 잃지 않고 돌진해 왔다.
“……켁?!”
지붕 위의 혈랑은 씹던 곶감이 목구멍에 턱 걸려 비명을 질렀다.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전설적인 비전 암기가, 한낱 세 바퀴 달린 주황색 수레바퀴 아래에서 껌딱지처럼 납작하게 눌려 으스러져 있었다. 수레바퀴는 바람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은은한 영석의 푸른 빛을 내뿜으며 더욱 맹렬하게 굴러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 철질려가…… 사천당가의 명기마저 부순다는 내 암기가 어찌 저런 짐마차 바퀴 따위에 짓밟혀 깨진단 말이냐! 저 바퀴 가죽은 대체 무슨 신수의 가죽으로 만든 법보란 말이냐!”
혈랑은 심장이 터질 듯한 충격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대남은 그저 엉덩이에 가해지는 덜컹거리는 진동에 짜증을 내며 소리칠 뿐이었다.
“아이고, 엉덩이야! 진짜 도로 포장 개판이네! 이놈의 동네는 세금 걷어서 다 어디다 쓰는 거야!”
대남이 자전거 벨을 사정없이 울려댔다.
*따릉! 따릉! 따르릉-!!!*
맑고 청아한 벨 소리가 골목길을 찢었다. 하지만 충격에 빠진 혈랑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사파 대종사의 가차 없는 음공으로 들렸다.
자객으로서의 자존심이 산산조각 난 혈랑은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 이대로 임무를 실패하고 돌아가면 흑풍상단주에게 비웃음을 사고 흑월문에서 퇴출당할 터였다. 그는 더 이상 암기 공작에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놈! 내 직접 네 목을 베어 수레와 함께 묻어주마!”
스아아악!
혈랑이 지붕 기와를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푸른 독기가 서린 날카로운 암살 단검이 쥐여 있었다. 일류 자객의 신형이 중력을 거스르며 대남의 정수리를 향해 급강하했다. 칼날 끝이 공기를 찢으며 차가운 살기를 내뿜었다.
대남은 갑자기 하늘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들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야! 날강도다!!!”
대남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잡은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의 양손에는 NBR 합성고무가 두껍게 코팅된 빨간색 3M 특제 미끄럼 방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마찰력을 극대화하여 어떤 미끄러운 상황에서도 핸들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현대 과학의 정수였다.
급강하하는 단검이 대남의 목덜미를 스치기 직전, 대남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감쌌다.
*채앵-!!!*
날카로운 쇠 마찰음과 함께, 혈랑의 단검 날이 대남의 왼쪽 손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혈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맨손으로 자신의 독검을 막아섰으니, 손가락이 몽땅 잘려 나갈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단검이 대남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기이한 감각이 혈랑의 손목을 타고 역류했다.
대남이 낀 3M 장갑의 붉은색 고무 코팅 표면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상의 마찰력으로 단검의 날카로운 쇠 표면을 꽉 움켜쥐듯 고정해 버렸다. 미끄러져 베고 지나가야 할 칼날이, 장갑의 합성고무 분자 구조에 가로막혀 단 1밀리미터도 미끄러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딱’ 멈춰 선 것이다.
“어……? 어째서 칼이 박히지도, 미끄러지지도 않는 거지?!”
혈랑이 당황하여 힘을 주려 했으나, 대남 역시 살기 위해 왼손을 꽉 쥐고 있었다. 3M 장갑의 무식한 미끄럼 방지력 덕분에, 대남의 손아귀에 잡힌 단검은 완전히 결박당한 상태였다.
대남은 눈앞의 강도가 칼을 들이밀고 있자, 극도의 공포와 함께 생존 본능이 폭발했다.
“이 미친 강도 놈아! 배달 물건 탐내지 말고 저리 가!!!”
대남은 오른손으로 핸들을 꽉 쥔 채, 왼팔을 있는 힘껏 앞으로 밀쳐냈다. 무공의 내공은 단 한 톨도 없었지만, 매일같이 쌀가마니와 택배 상자를 나르며 단련된 소시민의 처절한 팔뚝 힘이었다.
*쩌어억-!*
장갑의 마찰력에 걸려 있던 단검과 함께, 혈랑의 몸뚱이가 대남의 무식한 밀치기 힘에 밀려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크헉?!”
혈랑은 대남의 몸에서 아무런 내공의 흐름도 느끼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육신이 엄청난 물리적 척력에 밀려 나가는 것에 경악했다. 그는 흙바닥에 착지하며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의 오른손목은 대남의 손아귀 힘과 장갑의 마찰력에 비틀려 찌릿찌릿한 통증을 토해내고 있었다.
혈랑은 흙바닥에 침을 뱉으며 대남을 노려보았다. 대남의 붉은색 장갑형 법보에는 칼날 자국조차 나지 않은 채 멀쩡했다.
“과연 소문대로군…… 기운을 완전히 감춘 채, 맨손으로 내 독검을 받아내다니. 저 빨간 가죽 장갑 역시 만타불침의 천상 법보가 분명해!”
Huh? 대남은 멍하니 제 장갑을 바라보았다. 장갑은 그저 그리스가 묻어 조금 까매졌을 뿐, 아주 튼튼했다. 역시 3M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틈도 없었다. 혈랑의 눈빛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단검 끝에서 시커먼 마기와 함께 푸르스름한 독기가 서서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좋다. 내 육신의 힘으로는 밀렸을지언정, 내 일생의 공력이 담긴 흑월독공(黑月毒功) 앞에서도 그 가짜 법보가 버틸 수 있을지 보자!”
혈랑의 단검이 기괴한 독빛을 뿜어내며 대남의 심장을 향해 다시 한번 살벌한 궤적을 그리며 좁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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