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배달하는 사나이
하늘이 무너질 듯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콰르릉! 대지를 찢어발길 듯한 날카로운 뇌전이 먹구름 사이를 뚫고 내리쳤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허공에서 툭 떨어진 주황색 물체가 진흙바닥 위를 사정없이 뒹굴었다. 찌그러진 페트병처럼 볼품없이 처박힌 사내, 김대남은 머리에 쓴 주황색 플라스틱 헬멧을 움켜쥐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앗, 뜨거워! 뭔 번개가 이렇게 무식하게 친대?"
대남은 온몸을 엄습하는 찌릿찌릿한 통증에 몸서리를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방금 전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달리던 서울 마포구의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거대한 고목들, 사방을 가득 채운 짙은 안개, 그리고 현대의 매연 냄새 대신 코끝을 찌르는 흙과 풀의 비린내.
"여기…… 어디야? 세트장인가?"
대남은 황급히 자신의 분신이자 유일한 이동 수단인 주황색 철제 삼륜 자전거 '번개호'를 찾았다. 다행히 번개호는 그의 바로 옆에 바퀴를 하늘로 향한 채 쓰러져 있었다. 대남은 번개호를 일으켜 세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띠리링! 띠리링!
그의 유니폼 오른쪽 주머니에서 익숙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대남은 떨리는 손으로 배달 전용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빨간색 경고 표시와 함께 피도 눈물도 없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경고: 배송 지연 임박!]
- 주문번호: 2026-0526-CHUNGUN
- 배달지: 청운문 내문(內門)
- 남은 시간: 29분 59초
- 알림: 배송 예정 시간 초과 시 즉시 당일 일당 50% 감봉 조치함. 평점 1점 테러 시 라이더 자격 영구 박탈.
- 발신자: 마포 대리점 점장 박팔도
"감…… 감봉?!"
대남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일당 삭감이라는 두 글자는 26세 생계형 택배 기사인 그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하루 일당 10냥, 한국 돈으로 따지면 꼬박 하루를 굴러야 손에 쥐는 피 같은 돈이었다. 게다가 평점 1점이라니! 신용도가 생명인 배달 플랫폼에서 평점 하락은 곧 굶어 죽으라는 소리였다.
"박 점장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마포구 배달인데 무슨 청운문인지 청와대인지가 왜 나와! 그리고 신호도 안 잡히는데 이 문자는 어떻게 온 거야?"
스마트폰 상단의 안테나 표시는 명백히 '서비스 없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배달 전용 앱은 시뻘건 타이머를 째깍째깍 돌리며 대남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대남은 다급히 등에 맨 주황색 방수 배달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비닐로 꽁꽁 싸인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송장 표면에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송: 천년 설삼 - 청운문 장문인 앞]
"강원도 심마니 특송이라더니…… 천년 설삼? 뭔 삼을 천 년이나 묵혀? 인삼이 아니라 도라지 아니야?"
대남은 투덜거리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GPS 네비게이션 어플을 주시했다. 신기하게도 안개가 자욱한 숲 한가운데에서 붉은색 최단 경로 선이 저 멀리 솟아오른 거대한 산맥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바로 '청운산맥 청운문'.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고 보자! 일당 날아가면 이번 달 방세도 못 낸단 말이다!"
대남은 번개호의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번개호의 세 바퀴가 진흙을 사방으로 튀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무림의 험난한 지형은 현대의 평평한 보도블록과 달랐다. 낙안현 산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깊게 팬 진흙 구덩이가 대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호의 뒷바퀴 두 개가 깊은 진흙 수렁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페달을 밟아보았지만, 바퀴는 허공에서 헛돌며 진흙만 사방으로 뿌려댈 뿐이었다. 흙탕물이 대남의 주황색 유니폼과 얼굴에 튀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남은 시간은 24분. 대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억지로 자전거를 밀어보려 했지만, 젖은 흙이 타이어에 엉겨 붙어 무게가 두 배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갇혀 일당이 반토막 날 위기였다.
그 순간, 대남의 머릿속에 평생을 무뚝뚝하게 살아온 아버지 김태평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스쳤다.
'대남아, 자전거를 탈 때나 인생을 살 때나, 진흙탕에 빠지면 억지로 힘만 쓰지 마라. 기어를 낮추고, 무게 중심을 앞으로 실은 다음에 한 번에 밟아 쳐야 하는 법이다. 뚝심을 가져라, 뚝심을!'
일요일 아침마다 조기축구회 회원들과 다져진 생존 체력을 자랑하던 아버지의 잔소리였다. 대남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기어 변속이다!"
대남은 번개호의 오른쪽 핸들에 달린 수동 기어 레버를 움켜쥐었다. *딸깍, 딸깍.* 기어를 가장 가벼운 1단으로 변속했다. 체인이 영석 합금 기어에 단단히 물리며 기분 좋은 쇳소리를 냈다. 대남은 상체를 핸들바 쪽으로 최대한 밀착시켜 무게 중심을 앞으로 이동했다.
"으아아아차아아!"
대남의 양 허벅지에 굵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내공은 단 한 톨도 없었지만, 하루에 백 건이 넘는 배달을 소화하며 다져진 생계형 허벅지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번개호의 체인이 팽팽하게 긴장하더니,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뒷바퀴가 진흙 구덩이를 물리적으로 찍어 누르며 탈출에 성공했다.
"오오, 탈출했다! 역시 기어 1단이 최고야!"
대남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으나, 곧바로 스마트폰에서 다시 불길한 경고음이 울렸다.
띠링! [경고: 배터리 잔량 15%]
"미친! 배터리는 또 왜 이래!"
GPS를 지속적으로 켜둔 탓에 배터리가 광속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꺼지면 배달 완료 서명을 받을 수 없고, 결국 평점 테러를 맞게 된다. 대남은 다급히 배달 가방의 사이드 그물망을 뒤져 20,000mAh짜리 대용량 보조배터리를 꺼냈다. 그는 3M 미끄럼 방지 장갑을 낀 손으로 고속 충전 케이블을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화면에 번개 모양의 충전 표시가 뜨자 대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자, 마침내 탁 트인 구릉지 평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안개에 싸인 웅장한 기와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고대 중국의 황궁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문파의 전경이었다. 네비게이션의 붉은 선은 그 문파의 중심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가 청운문인가……?"
남은 시간은 15분. 하지만 눈앞의 오르막길은 끝났고, 이제 아찔한 경사도의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었다. 비바람 때문에 돌멩이와 진흙이 뒤섞인 험난한 오프로드였다.
대남은 침을 꿀컥 삼켰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잡고 천천히 내려가면 무조건 지연이었다. 일당 50% 삭감과 점장 박팔도의 대머리가 뇌리를 스쳤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감봉당하느니 구르고 만다!"
대남은 브레이크 레버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엉덩이를 안장에서 들어 올렸다. 중력 가속도가 삼륜 자전거의 육중한 무게와 결합하자, 번개호는 시속 60km가 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직 낙하하듯 내리막길을 쏘아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비켜어어어! 배달 왔단 말이야!"
주황색 바람막이 유니폼이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였다.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지만 대남은 눈을 부릅뜬 채 오직 네비게이션의 붉은 선만 바라보았다. 자갈밭을 짓밟는 세 바퀴의 진동이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침내 내리막길의 끝, 청운문의 거대한 석조 입구인 외문 광장이 눈앞에 다가왔다. 대남은 안도하며 브레이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단순한 돌문이 아니었다. 석조 아치교 사이로 푸른색 뇌전의 기운이 사납게 일렁이는, 침입자를 단번에 찢어발긴다는 청운문의 천년 방어 결계 장벽이 거대한 빛의 장막이 되어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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