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요람, 네뷸라 정크야드
사이렌 성운의 붉은 가스 장막이 걷히며 에테르-플라이어의 전방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우주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억 개의 고철 파편과 폐기된 전함의 잔해들이 소행성 중력에 묶여 거대한 고리를 그리며 돌고 있는 곳. 기계교단의 삼엄한 눈길조차 닿지 않는 은하 변방의 무법지대, 네뷸라 정크야드였다. 수십 년 동안 버려진 기계들의 기름때와 매연이 성간 가스와 뒤엉켜 탁한 회색빛 안개를 형성하고 있었다.
“엔진 출력이 한계입니다. 좌측 보조 추진기는 완전히 침묵했고, 메인 코어 전압도 춤을 추고 있어요.”
조종간을 붙잡은 제이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신경 칩이 경고음을 울릴 때마다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이식된 반기계 회로가 붉은빛을 깜빡였다. 대기권 탈출 당시 브루노 사령관의 궤도 레이저에 직격당한 여파가 함선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
선우는 조종실 바닥에 쓰러진 채, 자신의 왼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노 침식률 15% 돌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왼쪽 손가락 끝은 이미 감각을 잃고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으며, 피부 밑으로 은빛 회로 패턴이 기괴하게 깔려 있었다. 조금 전 마신 물의 차가운 감촉 외에는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는 미각 상실의 공포가 그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홀로 살아남았다는 고독감과, 서서히 기계로 변해가는 육체의 시한부 운명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
“전하, 정신 차리세요. 거의 다 왔어요.”
민아가 선우의 창백한 뺨을 타고 흐르는 은빛 피를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내며 속삭였다. 그녀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만이 선우가 여전히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이정표였다. 선우는 이가 시릴 정도의 오한을 견디며 이를 악물었다.
“걱정 마라. 아직 쓰러질 때는 아니다.”
그때, 조종실 뒷좌석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던 밀수업자 실바가 전방 스크린의 특정 좌표를 가리켰다.
“저기야! 저 거대한 채굴 소행성 안쪽으로 들어가야 해. 내 오랜 동업자이자 정크야드 최고의 정비사인 바스의 비밀 도크가 저기 숨겨져 있거든. 교단의 레이더망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지.”
제이콥은 실바가 지시한 대로 속도를 줄이며 소행성 균열 사이의 좁은 틈새로 함선을 밀어 넣었다. 기괴하게 뻗은 철골 잔해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가며, 에테르-플라이어는 마침내 거대한 소행성 공동 내부에 은폐된 정비창 안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쿵—!
육중한 유압식 클램프가 함선의 용융된 외갑을 강제로 움켜쥐며 고정했다. 착륙 충격과 함께 에테르-플라이어의 메인 엔진이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완전히 정지했다.
치이익—.
수송선의 탑승 해치가 열리며 정크야드의 매캐한 기름 탄내와 탁한 공기가 들이닥쳤다. 해치 아래로 낡은 작업복을 입고 한쪽 눈에 돋보기 루페를 장착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는 투박한 철제 기계 의수로 대체되어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도크 내부를 울렸다. 개조 등급 1단계에 처한 하층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노정비사 바스였다.
“실바, 이 미친 자식아! 대체 뭘 끌고 들어온 거야? 내 정비창을 통째로 날려버릴 작정이야?”
바스는 소리치면서도 루페 너머의 눈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시선은 에테르-플라이어의 빛을 흡수하는 나노 장갑과 날렵한 곡선형 선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현대 우주의 그 어떤 기계교단 전함에서도 볼 수 없는 극도의 정교함과 순수한 에테르 기술의 정수. 바스는 삐걱거리는 의수로 함선의 외갑을 만지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천 년 전 제국의 기술이잖아? 전설로만 내려오던 황실의 날개라고! 대체 이걸 어디서 훔쳐온 거지?”
실바가 어깨를 으쓱하며 선우의 뒤를 가리켰다. 선우는 민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해치 아래로 걸어 내려왔. 그의 창백한 피부와 은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칼, 그리고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묻어난 은빛 피의 흔적이 바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훔친 게 아니네, 바스. 이 배의 진짜 주인을 모셔온 거지.”
바스는 선우의 차가우면서도 기품 있는 눈빛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선우는 바스의 정비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비창의 얇은 격벽 너머로 정크야드의 거대한 슬럼가, 게토-9의 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인간의 지옥이었다. 녹슨 철판과 폐기된 전함의 내벽을 이어 붙여 만든 판자촌 사이로, 수천 명의 하층민들이 개조 등급 1단계의 조잡한 의수와 의족을 단 채 무거운 고철 더미를 나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공허하게 비어 있었으며, 등 뒤와 목덜미에 박힌 조잡한 신경 커넥터 포트에서는 정기적으로 미세한 전자기 스파크가 튀었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마치 태엽 인형처럼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은 대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선우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과 분노가 배어 나왔다. 바스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씁쓸하게 답했다.
“기계교단 ‘강철의 여명’이 지배하는 이 우주의 평범한 풍경입니다, 전하. 교단은 매주 신도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아 강제로 세뇌 칩을 이식하고, 그들의 뇌파에서 ‘정신 동조력’을 수확해 가죠. 수확당한 인간들은 감정과 자아를 잃고 저렇게 기계 부품처럼 일하다 버려집니다. 개조를 받지 못하면 굶어 죽고, 개조를 받으면 영혼을 빼앗기는 세상이지요.”
바스의 설명은 선우의 심장을 사정없이 찔렀. 저들은 천 년 전 자신이 다스리고 보호해야 했던 제국민들의 가련한 후손들이었다. 왜곡된 신앙과 독점된 기술에 의해 자아를 빼앗기고 기계의 부품으로 소모되는 비참한 노예들. 선우는 단순히 교단에 복수하고 살아남겠다는 도망자로서의 얄팍한 생각을 버렸다. 이 왜곡된 세계를 바로잡고, 저들에게 생각할 권리와 인간성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황태자로서의 숭고한 책임감이 그의 가슴속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
“내 반드시 저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쇠사슬을 끊어내리라.”
선우의 비장한 결의에 민아는 묵묵히 그의 손을 더 꽉 쥐어주었다.
한편, 바스는 에테르-플라이어의 반파된 추진기를 수리하기 위해 작업대로 향했으나, 골치 아픈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작업대 위에는 기계교단의 감시 레이더를 우회하기 위해 바스가 직접 튜닝 중이던 구형 라디오 주파수 송수신기가 놓여 있었다. 디지털 스캐너의 역추적을 차단하기 위한 아날로그 필터링 작업이었으나, 현대의 퇴보한 기술력으로는 주파수의 미세한 간섭을 잡지 못해 계속해서 과부하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젠장, 교단의 탐지망이 너무 촘촘해서 이 아날로그 필터가 주파수 대역을 버텨내지 못하는군. 이대로 수리를 시작했다간 궤도 요새에 비상 신호가 즉각 노출될 거야.”
바스가 한탄하자, 선우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비록 손끝의 감각은 마비되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제국의 과학 기술력은 여전히 완벽했다.
“도선을 교차하지 말고, 주파수의 진폭을 432Hz 대역의 아날로그 잡음 뒤로 숨겨라. 디지털 신호는 아날로그 노이즈를 단순한 우주 배경 방사능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필터링할 것이다.”
선우는 마스터 링의 미세한 전류 방출을 제어하며, 바스의 작업대 위 도선들을 직접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없는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정밀하게 회로를 조율하는 그의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선우가 마지막 접지를 연결하는 순간, 송수신기에서 발생하던 붉은색 스파크가 일시에 가라앉으며 푸른색의 안정적인 주파수 파형이 스크린에 그려졌다. 교단의 촘촘한 디지털 센서 추적망을 완벽하게 속여넘기는 ‘고대 아날로그 주파수 튜닝법’의 시연이었다.
“이, 이럴 수가…….”
바스는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스크린과 선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현대 우주의 그 어떤 대기술 사제도 해내지 못한 주파수 우회 공법을, 이 젊은 황태자는 단 몇 초 만에 수동으로 완성해냈다. 바스의 눈에 경외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는 선우가 가진 기술적 압도함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바스가 감격을 표하려던 찰나, 그의 시선이 선우의 왼손가락에서 가늘게 깜빡이는 은빛 반지에 닿았다. 반지의 표면에 새겨진 고대 제국의 황실 문양이 푸른 에테르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어……? 그 반지는…… 황실 마스터 링?!”
바스의 노안이 경악으로 크게 찢어졌다.
동시에, 정비창 외곽의 어두운 소행성 잔해 틈새에서 붉은색 의안을 번쩍이는 자칼 갱단의 밀정이 무전기를 켰다.
[보스, 바스의 정비창에 엄청난 고대 기술 유물이 들어왔습니다. 전설 속의 황실 반지인 것 같습니다.]
정크야드를 지배하는 잔혹한 사이보그 마피아, 자칼의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선우의 뒤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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