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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아래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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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팍을 옥죄는 붉은 안광 너머로, 대기를 찢는 궤도 포격의 파멸적인 충전음이 울려 퍼졌다.


하늘을 뒤덮은 사우론-X의 거대한 외눈 렌즈가 뿜어내는 열기는 지상의 대기마저 붉게 태워버릴 듯했다. 조준선이 유선우의 심장 한가운데에 고정된 순간, 늙은 묘지기 한스가 그의 도포 자락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전하!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 발걸음을 쫓으십시오!”


한스는 노쇠한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민첩하게 절벽 바위틈 사이로 몸을 던졌다. 선우는 전자기 차폐 망토를 휘날리며 민아의 어깨를 감싸 쥐고 그 뒤를 따랐다. 3미터 거구의 가디언 아틀라스가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그들의 후방을 엄호했다.


쿠구구구궁—!


그들이 절벽 틈새의 어두운 동굴 입구로 들이치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로 수십 조 줄(Joule)에 달하는 궤도 플라즈마 폭격이 내리꽂혔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폭발의 충격파가 동굴 내부까지 밀려와 선우의 등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무시무시한 낙반이 동굴 입구를 완전히 집어삼키며 사우론-X의 조준 광선을 물리적으로 차단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지만, 그들의 앞길을 밝힌 것은 아틀라스의 안구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금빛 광채뿐이었다.


“이 안쪽입니다. 북극 빙하의 심부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지요.”


한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팡이 끝으로 어두운 터널 아래를 가리켰다. 동굴 벽면은 가공되지 않은 암석에서 서서히 정교하게 제련된 고대 제국의 나노 합금 격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얼어붙은 빙하가 합금 벽면을 겹겹이 덮고 있었지만, 제국의 기술력은 여전히 그 웅장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 지하 공동. 그 중심에 천 년 동안 완벽한 보존 상태로 잠들어 있던 고대 황실 전용 고속 수송선, 에테르-플라이어(Ether-Flyer)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선체는 빛을 흡수하는 특수 나노 장갑으로 덮여 있었고, 날렵하게 뻗은 날개는 당장에라도 우주를 가를 듯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아…….”


민아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홀로그램 나침반을 가슴에 품었다. 역사책에서도 단 한 줄의 전설로만 기록되어 있던 황실의 방주가 바로 눈앞에 실재하고 있었다.


“전하, 에테르-플라이어입니다. 천 년 전 부황께서 전하의 탈출을 위해 이곳에 봉인해 두신 마지막 날개이지요.”


한스가 무릎을 꿇으며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는 말없이 수송선을 바라보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황태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소멸해간 제국인들에 대한 상실감이 동시에 몰아쳤다. 하지만 슬퍼할 여유는 없었다. 지상의 붕괴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가자. 시간이 없다.”


선우는 신속히 수송선의 탑승 해치 아래로 걸어갔다. 그의 왼손가락에 끼워진 황실 마스터 링이 에테르-플라이어의 생체 센서와 공명하며 푸른빛을 발산했다.


스으으윽—.


두꺼운 빙하가 갈라지며 수송선의 해치가 부드럽게 열렸다. 선우와 민아, 한스가 내부로 진입하자, 아틀라스가 마지막으로 탑승하며 입구를 경계했다. 수송선 조종실의 메인 콘솔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선우는 주저 없이 조종석 콘솔 중앙의 원형 홈에 마스터 링을 밀착시켰다.


“나노 오버라이드(Nano Override), 기동.”


선우는 마스터 링 내부의 미세 바늘이 자신의 손가락 끝을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그의 창백한 피부 아래로 흐르는 은빛 피가 링을 매개로 콘솔 내부의 나노 회로망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웅—!


차가운 암흑이 가득했던 조종실 내부가 순식간에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색 에테르 광채로 채워졌다. 벽면의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차례로 켜지며 고대 제국의 시스템 기동음이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황실 마스터 신호 감지. 클래스 4 마스터 권한 승인.]

[에테르-플라이어 메인 시스템 기동을 시작합니다. 엔진 코어 전력 충전율 12%…….]


“엔진이 깨어나고 있어!”


민아가 조종석 옆 스크린의 데이터 흐름을 분석하며 외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선우의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함선의 거대한 연산 장치와 마스터 링이 급격하게 동조화되면서, 그의 뇌 신경망에 흐르는 나노 기계들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나노 침식률이 자극을 받으며 심장이 터질 듯이 박동했다.


“으윽……!”


선우가 콘솔을 붙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입술 틈새로 은빛이 섞인 붉은 피가 가늘게 흘러내렸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한스가 경악하며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선우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엔진 충전율이 50%에 도달할 때까지…… 조종간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시스템을 강제로 정렬해야 해.”


그때였다.


쾅—!


도크의 입구 격벽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불길이 치솟았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차가운 철제 가면을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의 붕괴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단심문소의 3등 심문관, 바르토였다. 그의 부서진 가면 너머로 광기에 젖은 붉은 의안이 번뜩였다.


“찾았다, 신성모독자 놈들!”


바르토의 목소리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도크 내부의 온도를 단숨에 얼려버릴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기는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전신의 60% 이상을 군용 중장갑으로 대체한 발락 심문관의 직속 처형인, 철의 집행관 크론이었다.


크론은 어깨에 메고 있던 거대한 플라즈마 중력 도끼를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도크의 강철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움푹 패였다. 그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도크 전체를 웅웅 울렸다.


“악마의 핏줄이 고대의 더러운 기계를 깨우고 있군. 교단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영혼을 소멸시켜 주마.”


크론의 명령에 따라 그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중장갑 보병들이 수송선을 향해 레이저 소총을 겨누었다.


“아틀라스! 저들을 막아라! 함선 내부 침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선우가 콘솔에 묶인 채 뇌파로 명령을 내렸다. 아틀라스의 금빛 안광이 번쩍였다. 3미터의 은빛 거구가 수송선의 열린 해치 전면으로 걸어 나가 길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가라, 크론! 저 악마의 인형을 부수고 황태자를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바르토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크론이 거대한 플라즈마 중력 도끼를 치켜들며 아틀라스를 향해 폭풍처럼 돌격했다. 그의 육중한 기계 신체가 움직일 때마다 도크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아틀라스 역시 지체 없이 전방을 향해 ‘뇌파 동조 장벽’을 가동했다. 아틀라스의 전면에 반투명한 은빛 구형 전자기 장막이 형성되며 크론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콰아앙—!


크론의 중력 도끼가 아틀라스의 장막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귀를 찢는 듯한 금속성 파열음과 함께 청백색의 전자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끼에 실린 엄청난 중력 제어 에너지가 장막을 일그러뜨렸지만, 아틀라스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버텨냈다.


“잔재주를!”


크론이 도끼를 회수하며 다시 한번 지진파 충격을 가했다. 장막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뒤에 서 있던 바르토가 비열하게 웃으며 고전압 진압 장비를 치켜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고대의 고철 덩어리!”


바르토가 발사한 특수 고전압 마비 탄환들이 아틀라스의 무릎 관절 부위에 명중했다. 수만 볼트에 달하는 전류가 아틀라스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며 은빛 다리가 일시적으로 경직되었다. 아틀라스의 자세가 무너지며 중력 실드의 출력이 급감했다.


‘위기다.’


선우는 조종석 콘솔에서 실시간으로 전장의 데이터 흐름을 읽고 있었다. 아틀라스가 레일건을 조준해 크론을 사격하려 했으나, 이 좁고 노후화된 도크 내부에서 고출력 레일건을 격발할 경우 천장의 빙하 격벽이 붕괴해 일행 전체가 매몰될 확률이 98%에 달했다. 아틀라스는 사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크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를 치켜들었다. 아틀라스의 무너진 방패를 찢어발기기 직전이었다.


선우는 입술을 깨물며 마스터 링에 자신의 미세 뇌파 주파수를 한계까지 주입했다. 뇌 신경이 불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도크 내부 바닥에 매설된 비상 전력망의 백도어 경로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단 심문관의 무기를 빌리지.”


선우의 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는 바르토가 아틀라스에게 쏘았던 고전압 진압 장비의 잔류 전하를 바닥의 나노 전선망을 통해 역류시켰다.


파지직—!


크론이 서 있던 강철 바닥에서 은빛 전류가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나노 오버라이드 기술이 주입된 역전류는 크론의 하반신 기계 의족 제어 칩을 직격했다.


“으윽……! 내 다리가……!”


크론의 거구 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그의 기계 의족이 불규칙한 스파크를 뿜으며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아틀라스를 베려던 도끼의 궤적이 허공으로 크게 어긋났다. 그 사이 아틀라스는 관절 마비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며 크론의 흉부를 거칠게 밀쳐냈다.


[엔진 코어 전력 충전율 48%…… 49%…… 50%. 메인 동력 점화 성공.]


에테르-플라이어의 웅장한 엔진음이 빙하 도크 전체를 뒤흔들며 푸른빛의 시동 시퀀스를 완성했다. 마침내 수송선이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마비에서 풀려난 크론이 광신적인 분노로 눈을 붉게 물들이며 거대한 플라즈마 중력 도끼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색 플라즈마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아틀라스 역시 부러진 방패를 버리고 근접 합금 소드를 뽑아 들며 최후의 충돌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가 허공에서 서로를 향해 교차하려던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궁—!


사우론-X의 궤도 폭격 충격파와 두 거구의 파괴적인 충돌 에너지를 견디지 못한 도크 천장의 거대한 빙하 격벽이, 마침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십 톤에 달하는 빙하 파편과 고대 철제 구조물들이 굉음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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