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지상 묘지
쿠구구구구—.
지하 요람의 두꺼운 합금 벽 너머로 대지를 울리는 둔탁한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지각 변동이 아니었다. 수십 대의 중장갑 엔진이 동시에 뿜어내는, 유기물을 위협하는 기계적이고 차가운 박동이었다.
아틀라스의 거대한 은빛 신체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가슴에 새겨진 황실 문양이 푸르게 빛나며, 안구의 금빛 광채가 어두운 대피소의 벽면을 훑었다. 아틀라스가 선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묵직한 이진법 신호를 보냈다. 굳이 언어로 변환하지 않아도, 기계의 속삭임을 청취하는 선우의 감각은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지상 배관로 출구. 교단 장갑차들의 포위망 형성 완료.’
“차폐막의 에너지가 바닥나고 있어.”
민아가 홀로그램 나침반을 품에 꼭 쥔 채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우는 자신의 왼손가락에 끼워진 은빛 마스터 링을 바라보았다. 가늘게 깜빡이는 푸른 빛은 남은 배터리가 40% 내외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어깨의 상처는 민아의 응급처치로 지혈되었으나, 클래스 3 권한을 무리하게 가동한 여파로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신경통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황태자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기 위해 허리를 곧게 폈다.
“가야 한다. 이곳에 주저앉아 기계의 부품이 될 수는 없다.”
선우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이끼 낀 고대 나노 섬유 망토—전자기 차폐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체온과 미세 주파수를 완벽히 흡수하는 이 고대의 유산만이 현재 교단의 감시망을 피할 유일한 물리적 방패였다.
그들은 아틀라스를 앞세워 요람의 비상 해치를 열고, 지상으로 통하는 수직 배관로를 따라 기어올랐다. 어둡고 좁은 배관 내부를 타고 흐르는 공기는 점점 더 차갑고 황량해졌다. 마침내 배관의 끝, 부식된 쇠창살 틈새로 아르카디아-0의 황량한 지표면이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멈추십시오, 이방인들이여.”
어둠 속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가 흣, 하고 숨을 들이켜며 반사적으로 선우의 뒤로 물러섰다. 아틀라스의 대형 레일건이 소리 없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조준했다.
그곳에는 이끼 낀 나노 섬유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낡은 금속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서 있는 주름진 노인이 있었다. 아르카디아-0의 지상 묘지를 지키며 살아온 늙은 관리인, 한스였다. 한스는 아틀라스의 위압적인 거구와 그 어깨에 새겨진 황실 문양을 바라보더니, 지팡이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선우의 창백한 얼굴과 왼손의 마스터 링에 닿았다.
“이 은빛 머리칼…… 그리고 황실의 반지. 천 년의 전설이 진짜였단 말인가…….”
한스의 노안에 경외감과 함께 눈물이 고였다. 그는 무릎을 꿇으며 지팡이를 바닥에 놓았다.
“천 년 동안 이 무덤을 지키며 황실의 복귀를 기다려왔습니다, 황태자 전하. 제국 에테르니아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이제야 눈으로 보는군요.”
선우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 치솟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자신을 기억하고, 제국을 그리워하는 후손이 아직 이 황량한 행성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선우는 한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일으켰다.
“그대 같은 충신이 있었기에 내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군. 지상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스는 서둘러 후드를 고쳐 쓰며 밖을 가리켰다.
“이단심문소의 2등 심문관 발락의 명령을 받은 지상 수색 대장 고든이 이끄는 중장갑 보병대가 지상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고밀도 티타늄 방패로 무장한 장갑차들이 계곡 양방향에서 좁혀오고 있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전하께는 길이 있습니다.”
한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근처에 고대 중력 제어 장치의 고장으로 물리 법칙이 뒤틀린 ‘아르카디아-0 중력 이상 구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실시간으로 중력이 뒤바뀌는 죽음의 계곡입니다. 제가 그 중력 역전의 주기를 알고 있습니다. 저들을 그곳으로 유인하십시오.”
선우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적인 화력으로는 고든의 중장갑 부대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행성의 자연 재해를 무기화하는 수밖에 없다.
쇠창살을 밀어젖히고 나선 지상은 지옥 그 자체였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과 붉은 전자기 폭풍으로 뒤덮여 있었고, 흙먼지가 매섭게 몰아쳤다.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육중한 강철 장갑판을 덧댄 고든의 중장갑차들이 계곡 입구를 막아서며 포격을 개시했다.
콰아앙—!
플라즈마 포탄이 선우 일행이 서 있던 바위 더미를 직격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틀라스가 신속히 전면에 나서며 중력 실드를 전개하려 했으나, 몰아치는 전자기 폭풍의 간섭으로 인해 실드의 출력이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물리적인 화력으로는 저 장갑을 뚫을 수 없다!”
선우가 외쳤다. 아틀라스가 적의 전면 방패를 향해 레일건을 조준 사격했으나, 탄환은 고밀도 티타늄 장갑에 불꽃을 튀기며 가볍게 튕겨 나갔다. 아틀라스의 실드 에너지만 허무하게 소모될 뿐이었다.
“망토를 쓰십시오!”
선우는 전자기 차폐 망토를 넓게 펼쳐 민아와 한스를 감쌌다. 망토의 고대 나노 섬유가 작동하며 그들의 체온과 미세 주파수를 주변의 환경 소음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뜨렸다. 적들의 열화상 스캐너가 일순간 그들의 위치를 놓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일행은 한스의 안내를 받아 중력 이상 구역의 거대한 계곡 안으로 몸을 던졌다.
계곡 내부는 기괴함 그 자체였다. 거대한 암석들이 중력을 잃고 공중에 둥둥 떠 있었고, 전자기 폭풍의 번개가 공중의 바위들 사이를 사납게 뚫고 지나갔다.
우웅—!
뒤이어 고든의 중장갑차 3대가 굉음을 울리며 계곡 내부로 진입했다. 장갑차들의 붉은색 센서 렌즈가 선우 일행을 다시 포착하고 포신을 돌렸다.
“전하, 지금입니다! 전자기 폭풍이 동쪽에서 불어오고, 10초 뒤에 중력이 완전히 역전되는 0G 주기가 시작됩니다!”
한스가 세찬 바람 속에서 선우의 귀에 대고 절규하듯 소리쳤.
선우는 눈을 감고 뇌파를 극도로 가속했다. 머릿속에서 고대 제국의 전술 연산 프로토콜—‘에테르니아 군사 전술 연산법’이 무서운 속도로 연산을 개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차가운 금빛으로 급격히 일렁였다.
‘적 장갑차들의 현재 질량, 속도, 그리고 바람의 저항값 대입. 중력 역전 시 발생하는 부력 연산 완료.’
“으윽……!”
뇌의 연산 속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대가로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통증이 덮쳐왔다. 귓가에 고주파의 이명이 날카롭게 울렸고, 창백한 코끝에서 은빛이 감도는 붉은 피가 가늘게 흘러내려 턱 끝을 적셨다. 하지만 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의 황금색 조준선들이 적 장갑차들의 주행 궤도를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해 나갔.
“아틀라스, 적들을 계곡 절벽 가장자리로 유인해라!”
선우의 명령에 아틀라스가 거대한 몸체로 허공의 바위들을 밟고 도약하며 적들의 시선을 끌었다. 고든의 장갑차들이 포격을 가하며 절벽 끝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 순간, 중력 제어 장치의 고장 주기가 임계치에 도달했다.
스우우우—!
계곡 전체의 중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닥에 깔려 있던 흙먼지와 자갈들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고, 수십 톤에 달하는 적의 장갑차들 역시 바닥에서 둥실 떠올랐다. 장갑차의 바퀴가 허공을 헛돌며 기동력을 상실했다.
“닻을 내려라! 중력 고정 닻을 투하하라!”
장갑차 내부에서 고든의 다급한 명령이 무전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장갑차 하부에서 거대한 강철 닻들이 뿜어져 나와 절벽 바닥에 단단히 박히며 그들의 신체를 고정하려 했다.
하지만 선우의 금빛 눈동자는 이미 그 닻들의 전자 제어 장치를 포착하고 있었다.
“해제하라.”
선우가 마스터 링을 전방으로 뻗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링에서 방출된 고주파 노이즈 신호가 공기 중의 나노 입자를 타고 닻의 전자 제어 장치에 침투했다.
파지직—!
스파크와 함께 고정 장치가 강제로 해제되며 닻들이 맥없이 풀려났다. 중력을 잃고 허공에 뜬 장갑차들은 휘몰아치는 전자기 폭풍의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 가장자리 너머로 무력하게 밀려났다.
그리고 다시 중력이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쿠우우웅—!
엄청난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장갑차들이 수십 미터 아래의 절벽 밑바닥으로 추락하며 거대한 화염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대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계곡 전체를 메웠다.
“해냈어……!”
민아가 주먹을 꽉 쥐며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한스 역시 감격에 젖어 선우를 바라보았다. 고든의 중장갑 부대를 지형지물과 정확한 연산만으로 완벽하게 무력화한 장엄한 역전극이었다.
선우는 코끝에 흐르는 은빛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귀를 찢는 이명 속에서도 승리의 안도감이 밀려오려던 찰나였다.
쿠르릉—.
하늘을 뒤덮고 있던 붉은 전자기 먹구름이 기괴한 힘에 의해 양갈래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우주 상공에서 거대한 물리적 질량체가 구름을 밀어내며 하강할 때 발생하는 압력 장막이었다. 찢어진 구름 사이로, 아르카디아-0의 밤하늘을 통째로 가로막는 거대한 강철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교단이 자랑하는 초거대 감시 위성 AI—사우론-X(사우론-X)였다.
위성의 중심부에 박힌 거대하고 기괴한 붉은색 외눈 렌즈가 천천히 회전하더니, 정확히 계곡 끝에 서 있는 유선우 일행을 정조준했다.
위이이이잉—!
하늘에서 내려온 차갑고 거대한 붉은색 타겟 조준 광선이 어둠을 가르고 내려와 선우의 가슴 한가운데에 붉은 점으로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전조이자, 궤도 요새의 소멸 레이저 포탑이 발사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죽음의 신호였다.
[이단 표적 조준 완료. 궤도 폭격 프로토콜을 개시합니다.]
사우론-X의 차가운 기계음이 대기 전체를 진동시키며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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