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불시착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지독한 심연이었다.
아무런 빛도, 형체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무(無). 유선우는 본능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였으나 시야를 가득 채운 칠흑 같은 암흑은 조금도 걷히지 않았다. 에테르니아 황실의 마지막 후계자로서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그였지만, 감각의 완벽한 상실이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공포는 척추를 타고 차갑게 흘러내렸다.
시각이 차단되자 다른 감각들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졌다.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는 경보음, 타버린 배선에서 풍기는 매캐한 오존 냄새, 그리고 선체를 사정없이 두들기는 소행성 파편들의 둔탁한 충격음이 그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선우 씨! 정신이 들어요? 제 목소리 들려요?”
귓가에서 민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을 움켜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극심한 오한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온기였다. 반면, 그의 왼손은 감각이 완전히 거세된 채 차가운 강철 의수처럼 시트의 손잡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노 침식률(Nano Corrosion Limit)이 임계치를 넘어서며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마비가 손목까지 삼켜버린 탓이었다.
선우는 각혈의 잔해로 끈적해진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민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눈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레나의 억제제도 이제 바닥났는데…….”
민아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선우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감은 채, 상황을 연산했다. 순양함 ‘여명의 빛’호의 주포를 역폭발시키기 위해 클래스 4 마스터 권한을 폭주시킨 피드백이었다. 뇌 신경망이 타들어 가며 시각 세포가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된 상태. 지금 그는 완벽한 맹인이었다.
“엔진 압력이 요동칩니다! 수동 제어간이 말을 안 들어요! 자동 회피 프로토콜을 켜려고 해도 함선 외부 안테나가 파손되어 신호 수신이 불가능합니다!”
조종석에서 들려오는 제이콥의 비명 섞인 외침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에테르-플라이어(Ether-Flyer)는 지금 우주에서 가장 가혹한 자연적 장벽이라 불리는 ‘토네이도 링’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었다.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회전하는 소행성 파편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죽음의 지대였다.
[경고. 우측 보조 추진기 열 폭주 감지. 메인 전력 코어 과부하 임계치 92% 돌파.]
수송선 AI ‘윈드’의 정중하지만 다급한 전자음이 콘솔에서 흘러나왔다.
“제이콥, 수동으로 출력을 조율해라.”
선우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낮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말은 쉽죠! 사방이 온통 소행성 먼지라 전방 센서가 완전히 먹통입니다! 앞이 안 보여요!”
제이콥이 조종간을 움켜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우주선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콰아아앙! 육중한 소행성 파편이 에테르-플라이어의 우측 날개를 스치고 지나간 충격이었다. 선체가 비명을 지르며 좌측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보호막 잔여량 9.4%. 다음 직접 충격 시 선체 장갑 파손율 80% 예상.]
윈드의 경고가 쐐기를 박았다. 이대로 소행성 폭풍에 휩쓸린다면, 그들은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산화할 터였다.
선우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시각은 사라졌지만, 그가 지닌 ‘기계의 속삭임 청취’ 능력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욱 예리하게 칼날을 갈고 있었다. 에테르-플라이어의 내부를 흐르는 미세한 전류의 진동, 엔진 코어가 발산하는 주파수의 불규칙한 요동이 그의 뇌리 속에 3차원 전술 지도가 되어 그려지기 시작했다.
“민아. 내 품에 있는 고대 제국 홀로그램 나침반을 꺼내다오.”
민아가 서둘러 그의 품을 뒤져 차가운 금속 나침반을 꺼냈다.
“꺼냈어요! 하지만 홀로그램 침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어요. 전자기 간섭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 것 같아요!”
“아니다. 나침반은 전자기 신호가 아닌 미세한 중력 왜곡을 감지한다. 민아, 내 마비된 왼손을 나침반 위에 올려다오. 그리고 나침반의 홀로그램 침이 가리키는 중력 왜곡의 방향을 제이콥에게 소리쳐라.”
민아는 선우의 차갑고 무거운 왼손을 이끌어 나침반 표면에 접촉시켰다. 선우는 마스터 링의 배터리가 0%로 방전된 상태에서, 자신의 뇌 신경을 직접 매개체로 삼아 나침반의 중력 감지 주파수를 역연산했다. 머릿속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며 코밑으로 다시 한번 따뜻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지직, 지지직.
선우의 뇌파를 타고 흐른 미세한 나노 전류가 나침반의 고대 잠금장치를 우회했다. 순간, 미친 듯이 회전하던 나침반의 바늘이 소행성대 한가운데의 특정 공간 왜곡 지점을 가리키며 고정되었다. 그곳이 바로 저항군의 비밀 은신처, ‘네스트-4’의 좌표였다.
“잡혔어요! 11시 방향! 아니, 약간 위쪽이에요!”
민아가 소리쳤다.
“제이콥! 들었나? 11시 상방으로 기수를 꺾어라!”
선우가 소리침과 동시에, 조종석 콘솔에 자신의 오른손을 대고 미세 주파수를 방출했다. 방전된 마스터 링의 틈새로 그의 혈액 속 메디컬 나노 군집이 방출한 전자기 파동이 함선의 제어 회로에 직접 침투했다. 윈드 AI의 조종 제어 프로토콜을 강제로 오버라이드하여, 나침반의 중력 감지 주파수를 제이콥의 수동 조종간에 다이렉트로 링크시킨 것이다.
“오, 신이시여! 조종간에 중력 가이드 라인이 보입니다!”
제이콥이 환호성을 지르며 조종간을 힘껏 당겼다. 에테르-플라이어가 소행성 파편들의 조밀한 그물망 사이를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기적적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선체를 긁으며 불꽃을 튀겼지만, 함선은 선우가 연산해낸 안전 궤도를 따라 폭풍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마지막 순간, 거대한 암석 파편 하나가 함선의 후방 보조 엔진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에테르-플라이어의 우측 추진기가 굉음을 내며 완전히 정지했다. 보조 엔진 하나가 소행성 마찰로 인해 영구 반파된 것이다.
“엔진 출력 급감! 고도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추락합니다!”
제이콥의 비명과 함께 에테르-플라이어는 토네이도 링의 내벽 소행성 균열 내부로 사정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암흑 속에서 선우는 전해지는 진동만으로 함선이 네스트-4의 입구 격벽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쿠구구구구궁—!
에테르-플라이어의 하부 장갑이 비밀 은신처의 금속 도크 바닥과 마찰하며 끔찍한 금속 마찰음을 질렀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고, 선체 내부의 모든 전자기 장치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차례로 정지했다. 몇 번의 격렬한 바운드 끝에, 함선은 완전히 기동력을 상실한 채 둔탁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치이이익—.
함선 내부를 가득 채웠던 엔진의 진동이 사라지고, 기묘한 정적이 조종실을 지배했다. 에테르-플라이어는 마침내 비밀 은신처 ‘네스트-4’에 거칠게 불시착했다. 함선은 완전히 기동 불능 상태에 빠졌고, 선우는 극심한 신경통으로 인해 숨을 헐떡이며 조종석 시트에 쓰러지듯 기대었다.
“선우 씨…… 살았어요. 우리 살았어…….”
민아가 안도감에 겨워 선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쉬이이익—.
전력이 차단된 함선의 비상 수동 해치가 외부의 물리적 충격에 의해 거칠게 열렸다. 매캐하고 차가운 소행성 기지의 공기가 조종실 내부로 밀려 들어왔다.
선우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시각은 없었지만, 해치 너머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무기 조준 센서가 기동하며 발산하는 미세한 고주파 비프음이 그의 고막을 사정없이 찔렀. 붉은색 레이저 조준선들이 어둠 속에서 그들의 가슴과 머리를 조준하고 있음이 전자기적 진동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민아가 흣, 하고 숨을 들이키며 선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제이콥 역시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강직하고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조종실 내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마라. 기계교의 밀정인지, 아니면 죽으러 온 이단자인지 밝히기 전까지는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순간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네스트-4의 사령관이자 저항군 대위, 카일의 경고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총구가 선우 일행의 숨통을 겨누며 팽팽한 긴장감이 실내를 채웠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