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 불꽃
“주포 충전율 100%. 조준점 고정…… 게토-9.”
에테르-플라이어의 조종실을 가득 채운 경보음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크야드에 살아 숨 쉬는 수백만 하층민들의 사형 선고였다. 붉은 조명 아래, 탈영병 파일럿 제이콥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조종간 위로 툭툭 떨어졌다.
창밖의 우주 공간, 아르카디아-0 궤도 대기 구역에는 기계교단의 거대 순양함 ‘여명의 빛’호가 그 위압적인 강철 동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순양함의 하부 주포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플라즈마 에너지가 주변의 소행성 파편들을 붉게 달구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빛줄기는 정확히 정크야드의 심장부, 게토-9 자치구를 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 주포가 직격하면 게토-9은 흔적도 없이 증발합니다! 소형 수송선의 화력으로는 저 괴물의 보호막에 기스조차 낼 수 없다고요!”
제이콥이 절규하며 함선의 보조 포탑 발사 버튼을 연타했다. 에테르-플라이어의 포구에서 청색 입자포가 연사되었으나, 순양함의 군용 전자기 보호막 표면에 닿는 순간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듯 허무하게 분산될 뿐이었다.
지지직—.
조종실 메인 스크린에 노이즈와 함께 2등 심문관 발락의 냉혹한 얼굴이 투영되었다. 신체의 35%가 기계로 대체된 그의 차가운 의안이 선우를 정조준했다.
“이단자 유선우. 네놈이 아무리 고대의 기적을 행한다 한들, 교단의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네놈을 살려두기 위해 저 쓰레기 더미의 생명들을 인질로 삼겠다. 순순히 항복하고 뇌를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저 거주구를 통째로 소멸시키겠다.”
발락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기계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광신도 사령관에게 하층민들의 목숨은 연산 과정에서 지워질 소모품에 불과했다.
[궤도 주포 발사 5초 전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5…… 4……]
“선우 씨…….”
민아가 선우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극도의 공포와 슬픔이 서렸다.
선우는 천천히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노 침식률 15.3% 돌파. 이미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차가운 은빛 금속으로 변해 촉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팔이었다. 손가락에 끼워진 마스터 링은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한 채 방전되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무선 오버라이드도, 그 어떤 제국의 기계 제어도 가동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선우의 금빛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육체의 신경망을 직접 매개체로 삼는다.’
선우는 조종석 콘솔 하부의 물리 포트에 자신의 목 뒤 신경 포트 커넥터를 직접 찔러 넣었다.
콰드득—!
“으윽……!”
척추를 타고 뇌하수체로 직접 밀려드는 초고전압의 역류 전류에 선우의 전신이 발작하듯 굳어졌다. 뇌세포가 고열로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그는 방전된 마스터 링의 루트 코드를 강제로 개방했다. 착용자의 생체 에너지를 연료로 삼아 반지의 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금단의 오버클럭.
[경고: 생체 에너지 강제 추출 시작.]
[제어 권한 일시 상승: 클래스 4 (황태자 마스터 권한) 강제 활성화.]
[뇌 신경망의 나노 침식 속도가 임계치를 초과합니다!]
선우의 온몸에 은빛 나노 회로가 번개처럼 피어오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 그의 의식은 가상 네트워크망을 타고 순양함 ‘여명의 빛’호의 메인 컴퓨터를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가상 공간 속에서 선우의 자아는 거대한 황금빛 거인의 형상으로 투영되었다.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순양함 함장 레너드가 구축한 겹겹의 군용 방화벽이었다.
“이단 침입 감지! 모든 방화벽을 최고 등급으로 가동해라! 전파 접속을 완전히 차단해!”
레너드 함장의 다급한 음성이 데이터 흐름 사이로 울려 퍼졌다. 붉은색 강철 격벽 형태의 보안 방화벽들이 선우의 황금빛 아바타를 사방에서 압착해 들어왔다.
선우는 피가 거꾸로 솟는 고통 속에서도 뇌 세포를 태우며 해킹 경로를 우회시켰다. 정면 돌파가 아닌, 기계교단 시스템 최하층에 숨겨진 제국의 고대 백도어 경로를 활용하는 우회 전술이었다.
‘나노 오버라이드, 주입.’
선우는 이미 이륙 전, 순양함의 무선 전력 충전 안테나 대역에 자신의 피 속에 담긴 마이크로 나노 입자들을 미세하게 비산시켜 두었다. 나노 입자들이 전함의 동력선 내부로 침투해 들어가며, 비상 차단기 스위치를 고열로 녹여 물리적으로 용융 고정해버렸다.
“함장님! 비상 전원 차단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스위치가 물리적으로 용융되어 고정되었습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다! 수동으로 전원을 끊어!”
레너드가 절규했으나 이미 늦었다. 선우의 황금빛 의식은 방화벽의 틈새를 뚫고 순양함의 무기 제어 코어 깊숙이 침투했다. 그는 주포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메인 냉각 장치의 밸브 제어 프로토콜을 움켜쥐었다.
[클래스 4 마스터 권한 오버라이드.]
[순양함 주포 냉각 밸브 강제 잠금 프로토콜 실행.]
철컥—!
가상 공간 속에서 황금빛 열쇠가 회전함과 동시에, 실제 순양함 하부의 거대한 냉각 파이프들이 일제히 고정되며 닫혔다.
[주포 발사 1초 전……]
“발사해! 당장 발사해라!”
발락의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주포의 트리거가 당겨졌다. 그러나 차갑게 순환해야 할 냉각재가 막혀버린 주포 코어 내부의 온도는 찰나의 순간 수만 도까지 치솟았다. 방출되지 못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내부에서 갈 길을 잃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안 돼……! 에너지가 역전파된다! 모두 대피—!”
레너드 함장의 마지막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폭발이 순양함 ‘여명의 빛’호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순양함 하부 주포에서 방출되려던 핏빛 광선이 내부에서 폭발하며 함선의 전면 브릿지와 메인 전력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우주 공간 속에서 거대한 화염의 꽃이 피어올랐다. 순양함의 상부 장갑판이 종이처럼 찢겨 나갔고, 발락의 지휘망과 연산 서버들이 일시에 불타오르며 교단의 함대는 대혼란에 빠졌다.
정크야드 게토-9을 향하던 소멸의 빛은 그렇게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 처절한 불꽃이 되어 산산조각 났다.
“해…… 해냈다! 주포가 내부에서 터졌어요!”
제이콥이 환호성을 지르며 조종간을 당겼다.
그러나 그 기적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선우 씨! 선우 씨!”
민아의 비명 어린 울음소리가 조종실에 울려 퍼졌다.
클래스 4 마스터 권한의 폭주 여파로 엄청난 양의 신경 역류 전류가 선우의 뇌를 직접 강타했다. 선우는 조종석 시트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상체를 꺾었다. 그의 두 눈에서 붉은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입과 코에서도 은빛 피가 왈칵 쏟아졌다.
“아…….”
선우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찬란했던 조종실의 푸른 에테르 광채도, 울부짖는 민아의 얼굴도, 우주의 별빛도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그의 세계를 지배했다. 마스터 권한 폭주의 대가로 시각 신경이 완전히 마비되어 일시적인 완전 실명 상태에 빠진 것이다.
[나노 침식률 급증. 시각 신경망 일시 차단.]
[경고: 자아 보존 한계점 접근 중.]
“선우 씨, 제 목소리 들려요? 눈에서 피가…… 어떡해, 레나의 억제제는 어디 있는 거야!”
민아가 울며 그의 손을 잡았다. 선우의 손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촉각에 이어 시각마저 잃어버린 심연의 공포가 그를 덮쳤다.
하지만 선우는 어둠 속에서 민아의 떨리는 손을 꼭 쥐었다.
“제이콥…… 멈추지 마라. 지금 도약해야 한다.”
“하지만 전방에 사이렌 성운의 전자기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함선의 내비게이션이 완전히 먹통이라 눈 감고 비행하는 꼴이라고요!”
제이콥의 목소리에 절망이 가득했다. 순양함은 파괴했으나 잔존 추격선들이 성운 입구에서 포위를 좁혀오고 있었다. 이대로 머뭇거리면 결국 나포당할 터였다.
선우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귀를 기울였다. 시각이 차단되자 기계들이 내뿜는 미세한 전자기 소음이 더욱 선명하게 뇌리를 파고들었다. 에테르-플라이어의 메인 컴퓨터 ‘윈드’의 연산 흐름, 성운이 내뿜는 중력 왜곡의 진동 주파수가 속삭임이 되어 들려왔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무기였다.
“민아…… 내 손을 잡고 윈드의 메인 콘솔에 연결해 다오. 제이콥, 내가 부르는 좌표를 수동으로 입력해라.”
민아는 눈물을 닦으며 선우의 마비된 은빛 손을 이끌어 함선의 제어 단말기에 밀착시켰다. 선우는 뇌 속에서 수천 개의 천체 궤도를 홀로 연산하기 시작했다. '하이퍼드라이브 정밀 궤도 연산식'이었다.
“중력 상수 4.2, 편각 12도 수동 고정. 소행성 충돌 예측 오차율 0.02% 범위 내에서…… 도약 각도 조율.”
선우의 목소리는 피가 섞여 거칠었지만 얼음처럼 단호했다.
제이콥은 침을 삼키며 선우가 읊조리는 좌표를 수동으로 제어반에 입력했다. 함선의 하이퍼드라이브 엔진 코어가 터질 듯한 진동을 일으키며 푸른색 광막을 내뿜었다.
“도약 좌표 입력 완료! 엔진 임계치 돌파! 갑니다!”
제이콥이 수동 도약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에테르-플라이어의 동체가 은빛 섬광과 함께 공간을 찢어발겼다. 붉은빛의 사이렌 성운을 관통하며, 함선은 초광속의 궤적을 그리며 우주 너머 미지의 성계로 도약해 들어갔다.
그 장엄한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크야드의 추격망은 완전히 뒤편으로 사라졌다. 1단계의 가혹했던 사투가 마침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도약의 충격이 멈추고 함선 내부에는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선우는 조종실 시트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점 없는 완전한 어둠. 민아의 거친 숨소리와 제이콥의 안도 섞인 한숨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자신의 두 눈이 완전히 기능을 잃었음을 깨달은 선우는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은빛 손목을 쓸쓸히 만지며 차갑게 독백했다.
‘인간으로서의 빛을 잃었을지언정, 제국의 불씨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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